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360)
신인인데 천만배우 외전 7화
가긴 어딜 가
“차은성 씨, 하나, 둘, 셋 하면 돌아주세요.”
“네네. 지금 그 말만 다섯 번 듣는 것 같은데.”
“아, 죄송합니다.”
차은성은 촬영감독의 말에 넌지시 대꾸했다.
아침부터 촬영이 잡힌 것도 피곤해 죽겠는데, 자꾸 현장 문제로 같은 부분을 반복하고 있는 탓이다.
하지만 딱 한 번의 대꾸로 저리 의기소침해지다니.
차은성은 한숨을 팍 내쉬며 손을 내저었다.
“죄송하라고 한 말은 아니고요, 빠릿빠릿하게 좀 하자고요. 지금 이게 뭡니까? 시간은 시간대로 갈려, 체력은 체력대로 갈려. 결과물 하나 없이 예?”
“죄,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하라고 한 말 아니라니까?”
“죄송합니다!”
아, 미쳐. 열 뻗쳐서 머리가 핑 돈다.
차은성은 나름대로 위로 아닌 위로를 했는데, 워낙에 다들 그의 성질머리를 알고 있어서인지,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 것 같다.
이럴 때 하무라도 있으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터인데. 스태프들 사이를 이어주고, 분위기 풀어주는 것은 하무의 전매특허, 모두가 인정하는 특기였으니까.
‘근데 이놈은 집 나가서 소식이 없어. 하삼순 애비 놈, 영화 찍는다고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쯧.’
차은성은 스타일리스트가 머리와 재킷을 만지는 도중,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소방관 영화 찍느라 하루 종일 구르고 다니는 모양이던데, 밥은 잘 먹나 모르겠다.
삼순이도 요즘 기운이 퍽 없는 것이, 어서 얼굴이나 보면 좋을 것 같은데 말이다.
띠링! 띠링!
[하무 읽씹이냐, 안 읽씹이냐?] [너만 바빠?? 얼탱] [어디까지 찍었는데? 집에 언제 옴? 삼순이랑 놀러 가자]몇 번이나 문자를 보내봤으나 답장이 없다.
차은성의 주위로 먹구름이 느껴지자, 다들 움찔거리며 서둘러 옷매무시를 마무리했다.
“은성 씨. 마지막으로, 딱 마지막으로 갈게요!”
“네네. 그 말만 지금 다섯 번 듣는다고 했죠?”
“아, 죄, 죄송합니다.”
“아니, X 진짜, 한 번만 더 죄송하다고 해봐요! 진짜 죄송한 게 뭔지 알려주려니까, 와씨 듣기만 해도 열불이 확 나네. 감독님! 나 마음에 안 들어요?”
“그게 아니라요. 죄, 죄-”
입버릇인가 보다. 다시금 죄송하다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이번에는 잘 삼켰다.
그는 서둘러 슬레이트를 찾으며 촬영을 재개했다.
“자, 가겠습니다. 레디!”
지이잉. 지잉.
그때였다.
구석에 옷과 함께 처박아둔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하지만 차은성은 슛에 들어가느라 확인하지 못했고, 몇 번 연속으로 울리던 전화는 속절없이 끊어졌다.
“네. 여보세요.”
전화는 차은성을 건너뛰고 그의 매니저로 넘어갔다.
현장을 지키고 있던 매니저는 회사에서 들어온 연락에 속삭이다가,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다.
“네? 지금 뭐라고요?!”
“컷컷! 누구야!?”
이번에는 진짜 한 번에 가려고 했는데!
감독은 차은성의 눈치를 보며 누구보다 큰 소리로 소리를 내질렀다.
매니저는 꾸벅 고개만 숙이고서, 카메라 앞으로 불쑥 몸을 들이밀었다.
차은성은 그제야 심상치 않은 일이 있음을 알아챘다.
예전에, 아주 예전에 엄마가 밭 갈다가 허리 나가서 응급실 실려 갔을 때 매니저가 이리 전해준 적이 있었다.
“저기, 은성아.”
“뭐야, 무슨 일 있어? 엄마 허리 또 나갔대?”
“아니, 그게 아니라 하무영 씨가…….”
“하무가 왜?”
“소방관 영화 찍고 숙소 돌아갔는데, 거기서 화재가 났다네. 지금 응급실로 이송해서 치료받고 있대.”
“……지금 뭐라는 거야?”
하무영이 응급실에 실려가다니. 그것도 화재로?
차은성은 단어의 나열이 이해가 안 되는 것처럼 눈만 깜빡였다.
스태프들은 다들 중단된 현장에 무슨 일인가 싶어 웅성거리기만 했다.
“은성 씨? 왜 그래요?”
“아……. X발.”
“저기, 은성 씨!”
“죄송합니다. 잠깐만요. 오늘 촬영 여기서 마무리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이걸로 오늘 회식하시고, 혹시 문제 있으면 다 비용 처리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은성 씨!”
차은성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짐을 챙겼고, 매니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의 지갑을 통째로 감독에게 건네주며 양해를 구했다.
“지금 병원 급히 가봐야 해서요.”
“아, 그러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차은성은 평소와 달리 차분하게, 그리고 예의 있게 스태프 한 명 한 명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거절은, 이의는 받지 않겠다는 듯 아주 단호했다.
모든 손해는 자신이 감수할 터이니 오늘 촬영은 여기서 끝이라고.
뒤따르는 매니저가 부연설명을 덧붙이며 함께 고개를 숙였다.
“가족이 병원에 실려 가서요. 예, 죄송합니다.”
“가족이? 이런, 그러면 어쩔 수 없지.”
“혹시 복귀 가능하면 연락해요.”
“네. 죄송합니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당장 펑크 나는 거, 저기 다른 애들 스케줄 비는 사람 있는지 확인해 봐. 그걸로 옮겨 찍게.”
어수선한 현장을 뒤로하고, 차은성은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다리를 달달 떨며 멍하니 정신을 놓았다.
“형, 빨리 가자.”
“어? 어어. 그래.”
“빨리, 최대한 밟아봐.”
내달리는 차는 굉장히 조용했다.
걱정스러운 쌍욕을 연신 내뱉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차은성은 창밖만 바라보며 침묵했다.
스윽.
가끔 얼굴로 향하는 소매가 그가 울고 있음을 짐작하게 했다.
지이잉. 지잉.
“은성아, 전화 온다. 받아봐.”
매니저의 말에 차은성이 급하게 휴대폰을 확인했다.
부재중 다섯 통.
준호와 유사하 대표에게 온 것이었다.
지금 들어오는 전화는 유사하다.
“어.”
-차은성 씨, 들었어요?
“어.”
-저는 지금 병원 거의 다 왔거든요.
“나도 가는 중. 애는 어때?”
-전해 듣기로는 아직 의식불명이라 해요. 화상 입고 이런 건 아닌데, 연기를 마셨는지 아니면 뛰어내리면서 어디를 다친 건지 잘 모르겠네요. 외관상으로 큰 문제는 없지만, 자세한 검사 결과는 나와봐야 안다 합니다.
의식불명. 그 말에 차은성은 저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흘렸다.
흐느끼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눈물이 나오는데 다른 소리가 안 끼어들 수가 없다.
“거기 병원에서 제일 실력 좋은 의사 보고 좀 봐달라고 해봐요.”
-가는 대로 확인 후에 다시 연락할게요. 언제쯤 도착할 것 같아요?
유사하의 말에 차은성이 매니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네비게이션에는 앞으로 한 시간 반 뒤에 도착이라는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한 시간 반.”
-조심히 와요. 그사이 무슨 진전 있으면 다시 말해줄게요.
“알겠어.”
-너무 울지 말고요.
차은성은 유사하의 말에 대답하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툭 떨어뜨렸다.
그리고 휴대폰을 끊은 다음 창문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매니저는 흐느끼는 소리가 한 시간 반 동안 이어질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데뷔부터 함께한 차은성이었으나, 이렇게 우는 건 정말 손에 꼽을 정도인데.
“은성아, 무영 씨 괜찮아. 인마. 그만 울어.”
“나 안 우는데, 흐윽.”
“그래. 알았다.”
훌쩍훌쩍, 차은성은 연신 울지 않는다며 중얼거리기만 했다.
그리고 차는 멈춤 없이 달려 하무영이 옮겨졌다는 병원에 당도했다.
도착하자마자, 차은성은 바로 내달려 응급실로 뛰어들었다.
콰앙!
“아악! 선생님, 여기요!”
“여기 봐주세요, 교통사고 당한 환자입니다!”
“어머니,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나 죽게 생겼는데, 지금 그 사람이 먼저라 이거야?”
“환자분!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그만하세요!”
삐이이- 삐이-
드르륵!
응급실의 소란스러움이 차은성을 더욱 혼란하게 했다.
하무영은 어디 있을까? 응급실로 들어왔다고 하니까, 여기 어딘가에는 있을 터인데.
그때였다.
“형, 여기요. 이쪽으로 오세요.”
미리 도착한 준호와 보라였다.
보라는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눈가가 촉촉하고 퉁퉁 부어 있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차은성이 홀린 듯이 준호의 부름에 따라갔다.
“뭐야, 하무영은?”
“지금 검사 중이에요.”
“아직 안 깨어났어?”
“네. 아직이요. 연기를 많이 마셨다고 보는데…….”
준호는 말을 잇지 못하고 멈추었다.
그리고 연신 목을 가다듬으며 의사의 말을 전하려 했으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보라는 등을 돌리며 벽을 보며 흐느낌을 참았고, 준호는 침착하게 목소리를 골랐다.
“외상은 별로 안 심한데 이상하게 정신을 못 차린다고, 계속 이러면 문제 될 수도 있다 하네요.”
“무, 문제는 무슨 문제?”
“그, 언제 깰지 모르는…….”
“지랄하지 말라고 해. 미친 돌팔이 새끼가, 어디라고 함부로 씨부려? 원래 의사들은, 의사들은 최악의 상황만 가정하고 말해. 희망적으로 말했다가 환자 죽으면 누가 책임질 건데? 아니, 하무가 죽을 거라는 말은 아닌데, 아무튼 의사 말 나는 못 믿어.”
주절주절, 차은성은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가 말을 하면 할수록 준호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다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우씨, 진짜 하무영 이 새끼 일어나기만 해봐.”
“아, 은성 씨 왔어요?”
수납을 비롯하여 병원장 면담까지 하고 온 유사하가 차은성을 불렀다.
그는 소매를 팔뚝까지 걷은 채, 넥타이를 가슴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평소라면 절대 볼 수 없는 모습.
차은성이 의자에 앉자, 그 역시 옆에 앉으며 희미하게 웃었다.
“엄청 많이 밟았나 봐요. 빨리 도착했네.”
“……딱지 졸라 끊었을 거다.”
“그거 다 회사에서 내는 거 알죠?”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넌지시 던지는 농담.
차은성은 피식 웃는 것도 잠시. 이내 몽글몽글 다시 눈물을 떨구었다.
“하무 죽으면 어떡하지?”
“안 죽어요.”
“그래? 근데 만약에 죽으면?”
“아니요. 만약 같은 건 없어요.”
유사하는 담담하게 단언했다.
어떻게 해서든 살려놓겠다, 그것이 그의 각오였다.
차은성은 무릎에 얼굴을 묻고 한숨을 내쉬었고, 유사하는 연신 머리를 쓸어 넘겼다.
“다른 매니저나 스태프들은?”
“가벼운 타박상이나 화상은 있는데, 모두 생명에는 지장 없고 크게 다친 사람도 없어요. 다행이고, 기적이죠. 무영 씨가 제일 위급해요. 지금.”
그래. 그나마 다행이네.
크게 다친 사람이 없다 하니. 하무영 쟤는 그 와중에 사람까지 구했다고 하는데, 대체 생각이 있나 없나 모르겠다.
저부터 살아야 할 거 아니야, 그러고 나서 다른 사람을 구해야지. 이게 대체 뭐냐고.
드르륵.
“하무영 씨 보호자분?”
그때, 의사가 나오며 무영이의 보호자를 찾았다.
동시에 일어나는 차은성과 유사하, 준호, 보라.
네 사람이 우르르 몰려들자, 의사는 당황했는지 살짝 뒷걸음질 쳤다.
“예, 검사상으로는 큰 문제 없고요. 조금 지켜보면서 경과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생명에 지장 없나요?”
“왜 못 일어나는지 확인은 더 자세히 해봐야 해서요. 우선 생명에 지장은 없습니다.”
“하아,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네 사람이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문쪽을 쳐다봤다.
침대에 누워 있는 무영이가 직원들에 의해 옮겨지고 있었다.
“하무, 정신 좀 차려봐! 인마!”
“무영 씨. 제 얘기 들려요?”
“무영아아. 무영아.”
“하무영, 너 빨리 말 좀 해봐!”
친구들의 부름에도 무영이는 곱게 눈만 감고 있었다. 아주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그리고 가끔가다 이상한 말만 옹알이처럼 중얼거렸다.
그것이 곧 뚜렷하게 들리는 것은 시간이 좀 지나서.
“난 어디로 가라고?”
침대 옆에서 지키고 있던 차은성이 그걸 들으며 기함했다.
“가긴 어딜 가 새끼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