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39)
신인인데 천만배우 39화
전화위복
촬영부지 8번 창고에 세워진 ‘재니의 방’ 세트.
작은 골방에 온갖 쓰레기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얼굴에 떡이 진 머리. 재니는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거울을 확인했다.
“재니야. 준비.”
“네!”
세트장에서 소품을 확인하던 스태프들이 모두 물러섰다. 벽만 세워진 공간은 곧 아이만의 보금자리가 되었고, 순식간에 [역병>의 시간이 펼쳐졌다.
“레디-”
감독의 신호에 작은 달리(dolly-카메라 이동차)가 움직였다. 트레일러를 끌어가며 앞으로, 앞으로.
“액션!”
벌레 시선을 따라가는 앵글이다. 바닥을 훑으며 재니에게 다가가는 카메라. 음향 감독의 신호에 맞춰 벽 뒤에 있던 스태프가 세차게 주먹질을 해댔다.
콰앙! 쾅!
불안하게 앞과 뒤를 돌아보는 재니.
‘달리 인(dolly in-피사체로 다가가는 것)으로 들어가면 렌즈에 얼굴을 최대한으로 붙여줘. 벌레가 눈에 딱 붙는 그런 느낌.’
‘화면에 꽉 차도록 잡으시는 거죠?’
아이는 감독의 지시를 떠올리며 바닥에 시선을 고정했다. 코앞까지,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카메라. 촬영감독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지이잉.
가깝게 붙이되 얼굴에 부딪히면 안 된다.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그의 손아귀에 땀을 내는 사이, 유나는 대사를 이어 쳤다.
“······어째서?”
끼익!
거의 닿을락 말락 하는 거리.
유나는 몸을 움찔거렸지만 눈 만큼은 부릅뜬 채 고정했다. 감독의 컷을 기다리는 것이다. 적막 속에서 필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진경문의 신호가 떨어졌다.
“오케이! 컷!”
“후아! 깜짝이야.”
“아이고, 미안하다 유나야. 조금 더 나갔네.”
미리 합을 맞춘 것보다 카메라가 더 가깝게 붙어버렸다. 여차하면 NG가 났을 거고, 재수 없다면 충돌이 있었겠지. 그가 미안해하며 사과하자, 유나는 웃기만 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어쨌거나 컷은 따냈으니까.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카메라 감독님이니 뭐라 할 수 있나.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스태프를 불렀다.
“여기 브레이크 좀 봐봐. 이게 빡빡해야 잘 잡히는데 계속 미끄러진다. 청테이프 없나?”
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동안, 아이는 촬영장 구석으로 향했다. 무영이 간이 의자에 앉아 유나를 지켜보고 있었으니.
“어땠어?”
“최고. 진짜 잘했어.”
쌍 엄지 척척!
유나는 배시시 웃으며 분장팀의 붓질을 받아 냈다. 살짝 지워졌던 땟국물이 다시 짙어졌다.
‘대단한 아이구나.’
고사(告祀) 이후, 유나의 단독 촬영만 벌써 삼 일째. 제작비 절감 차원에서 잡힌 일정이라, 만들어진 세트에서 할 수 있는 건 죄다 찍는 중이었다.
속된 말로 한 번에 뽕 뽑기.
“스크립터님. 다음이 17씬 맞아요?”
“네. 그리고 이어서 3번, 104번, 98번 순서로 가신답니다. 옷 찢어주세요. 104번에서 98 넘어갈 때만 달력 갈아주시고요. 아시죠?”
“네. 그럼요.”
“감독님! 방금 네 번째로 찍은 게 오케이 맞으시죠? 이걸로 기록합니다?”
“으응. 혹시 모르니 세 번째 것도 잡아줘.”
게다가 시간 순서도 뒤죽박죽. 시나리오대로 쭉 이어서 촬영하는 경우는 원래 없다만, 첫 개시부터 이렇게 정신없을 줄은 몰랐다.
‘스크립터님 고생하시네.’
촬영 모든 것을 기록하는 스크립터뿐이겠는가. 유나는 몇 번이나 미래의 재니, 과거의 재니를 연기해야 했다. 고작 9살짜리가!
대단하다는 말로는 부족하지.
“오빠. 아-”
그런 유나는 틈이 생길 때마다 무영에게로 와 초콜릿을 얻어먹었다.
진경문의 예상대로, 그의 존재는 유나에게 큰 의지가 되는 듯했다. 보호자인 엄마는 뒷전이요, 무영에게 껌딱지처럼 붙어 있으니까.
“아-”
무영은 유나에게 초콜릿을 먹여주며 물었다.
“놀랐지? 카메라 넘어와서.”
“괜찮아. 그래도 앞에서 딱 멈췄잖아. 근데 오빠는 어딜 그렇게 보고 있어?”
아이는 세심했다. 액팅에 집중하는 동시, 현장 분위기와 눈치를 정확히 잡아냈으니.
특히나 좋아하는 무영의 일이다 보니 더욱 촉이 예민했다.
“자꾸 위쪽 힐끔거리던데.”
“그걸 봤어?”
무영이 고개를 치켜들자, 유나 역시 따라서 시선을 올렸다. 어두컴컴하고 높은 천장. 웹드라마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은 조명이 달려 있었다.
‘저놈.’
그중 꺼진 조명에 매달려 있는 잡귀 한 마리.
고사 때 봤던 그 녀석 같은데, 이상하게 촬영장을 떠나지 않고 맴도는 것 아닌가.
저번에는 대형 창고에서, 지금은 여기 8번 창고에서.
‘신경 쓰이게.’
스태프들 사이를 오가던 놈은, 어느 순간부터 저기에 꿀이라도 발라놓은 양 착 달라붙어 있었다.
사람 형상을 하고 대롱대롱.
눈이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지.
“오빠?”
“그냥. 영화 촬영은 처음이라 신기해서.”
“에이. 뭘 이런 걸 갖고. 오빠도 내일부터 같이 찍잖아?”
“밖에 완전 멋지더라. 그치?”
“응. 딴 세계에 온 것 같았어. 나도 이렇게 큰 세트는 처음 봤다?”
8번 창고 외 촬영부지 전체가 갈아엎어지고 있었다. 굴착기와 온갖 공사 기기 사이로 [역병>의 세계가 조금씩 엿보였다. 거기엔 루이의 구멍가게도 포함되었고.
“유나. 잠시 이리 와볼래?”
“네에!”
혼자 남은 무영은 아예 대놓고 천장을 노려봤다. 어둠에 가려져 티는 안 나지만, 검은 기운을 감고 있는 게 분명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오고 가던 스태프들이 의아하게 물었다. 간혹 쥐나 새가 들어오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혹시나 한 마음에, 그들 역시 고개를 쳐들었다.
“저기 조명이요.”
“어디 조명?”
“왼쪽에서 두 번째. 밑에서 다섯 번째요.”
“꺼진 거?”
그는 고개만 끄덕였다. 무어라 말을 꺼내야 할지 잠시 고민하는 거다.
귀신이 달려 있으니 신경 쓰인다는 말은 차마······.
“보자.”
스태프가 손으로 빛을 가리며 눈을 찌푸렸다.
“음?”
그리고 떠오르는 묘한 표정. 당황스럽다는 목소리는 덤이다.
“왜 저것만 흔들리지?”
“흔들려요?”
“그래서 본 거 아니야?”
“아. 맞아요. 맞습니다요.”
놈의 흔들림이 곧 기계의 흔들림이었나 보다. 두 팔과 다리로 감싼 모습이라, 조명 자체는 잘 보이지 않았다.
“감독님. 저것 좀 보세요.”
스태프의 말에 현장 모두가 시선을 집중했다. 실내 세트장이라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닐 터.
“쟤 왜 저러냐?”
“올라가서 한번 볼까요?”
“아서라. 어차피 꺼진 건데 뭐.”
써야 하는 조명이라면 고정을 해야겠지만, 상관없잖아? 조명팀에서 제일가는 분의 지시니, 스태프들은 궁금해하면서도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아, 참. 감독님. HMI 6K 맞죠? 세팅됐습니다.”
“그거 끌어서 창문 뒤로 넘겨.”
“돼지코 남는 사람 있어요?”
게다가 여타 팀보다 훨씬 바쁘고 정신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금방 흥미를 거두고 본업에 집중했다.
그저 할 일 없는 무영만 물끄럼-
“무영 씨.”
잡귀 녀석과 눈싸움 아닌 눈싸움을 계속하는 와중. 누군가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아. 안녕하세요.”
스틸팀의 스태프였다. 스틸컷 촬영을 도맡아 하는 담당. 목에 걸린 DSLR 카메라가 묵직해 보였다.
“저거 진짜 신경 쓰인다. 그쵸?”
“네. 그러게요.”
“내가 한번 찍어 볼까? 혹시 알아요? 위에서 쥐들이 싸우고 있을지. 하하.”
“천장을요? 괜찮으시겠어요?”
“사다리만 쓰면 되니까. 조명팀은 생각 없어 보이고, 여차하면 부감(high angle)으로 한 컷 찍고 내려오죠, 뭐. 도와주실래요?”
스태프가 고개를 까딱거렸다.
올라갔을 때 밑에서 잡아줄 수 있겠냐는 뜻. 무영은 흔쾌히 그러겠노라 대답 후 그를 따랐다.
끼익- 끽!
“으차!”
그는 사다리를 하나 가져와 발을 걸쳤다. 현장 사람들은 힐끔거리긴 했지만, 별 관심 없어 보였다. 아니. 바빠서 관심 쓸 틈이 없는 거지.
“조심하셔야 해요.”
“무영 씨가 꽉 잡아주면 문제없죠.”
“헉. 그럼 죽어도 안 놓을게요.”
남자가 천장으로 오르는 걸 밑에서 지켜보는 무영. 거꾸로 매달려 있던 잡귀의 움직임이 조금씩 흐트러졌다.
‘어?’
장난치듯 까딱까딱.
점점 그 궤가 커지더니 눈에 확연히 보일 정도로 떨림이 거세졌다. 천장에 거의 닿은 남자가 당황해서 중얼거렸다.
“이거 가까이서 보니까 훨씬 더 흔들리는데?”
끼익-
찰칵! 찰칵!
그렇게 말하면서도 천장 위쪽으로 손을 넣어 카메라 찍는 것을 잊지 않았다. 팔을 돌려가며 이리저리, 셔터를 눌러대는 남자.
“어라.”
그때였다.
잡귀가 갑자기 아래로 쑤욱 떨어지며 무영에게 다가왔다. 시선을 꼿꼿이 마주한 찰나, 터지는 남자의 고함.
“어어! 저기, 저기!”
끼익-
풀린 나사에 겨우 걸려 있던 조명 핀이 부러지고 말았다.
사람 얼굴 크기만 한 라이트가 떨어졌고, 남자는 반대 손으로 그걸 겨우 받아 쳐냈다.
쿵! 쨍-!
“무슨 일이야?”
“다들 괜찮아요?”
“헉! 뭐야? 뭐야?”
무영의 뒤로 박살 난 조명이 널브러졌다. 만약 그가 쳐주지 않았다면, 무영의 머리로 떨어졌겠지.
잡귀는 무영의 어깨 부근을 한번 훑더니, 웃으며 사라졌다.
“무영 씨. 괜찮아?”
“아니, 그걸 왜 건드려서 그래요?”
“큰일 날 뻔했네!”
“오빠! 괜찮아?”
무영은 얼떨떨하게 얼굴을 매만졌다. 그리고 이내 웃으며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전 괜찮아요. 하나도 안 다쳤어요. 스틸 기사님은 괜찮으세요?”
“아. 나도 괜찮기는 한데······.”
사고를 쳐버렸구나.
난감한 표정의 스틸팀 기사. 조명팀 감독이 얼굴을 잔뜩 붉히며 화를 쏟아냈다.
“왜 건드냐고요. 그걸!”
“죄송합니다. 자꾸 흔들리니까 신경 쓰여서······.”
“그러니까 그걸 왜 그쪽이 신경을 써? 야! 빨리 올라가서 다른 거 확인해 봐.”
“네.”
조명팀 직원이 사다리를 밟고 올라섰다. 무영 역시 이 상황을 어쩌나, 싶어 어색한 미소만 짓고 있던 터.
반짝-
“응?”
떨어진 조명 구멍에서 꽃가루가 솔솔 뿌려졌다. 먼지인가 싶지만, 아니다. 확실한 빛.
‘왜지?’
무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천장을 올려다봤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조명팀 직원이 뭔가를 점검하다 큰소리로 외쳤다.
“팀장님! 여기 레일 전체가 나갔는데요?”
“뭐?”
“어어? 빨리 잡아야 할 것 같아요. 3번 양옆 고리가 다 풀려 있어요. 이거, 선배! 반대쪽 올라가서 잡아주세요! 빨리!”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나 뭔가 심각한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조명팀이 경악하며 순식간에 흩어졌으니.
“무슨 일이에요?”
진경문 감독이 놀란 걸음으로 달려왔다.
“레일 고리가 풀려 있었대요.”
“레일이라 하면······.”
세트장 천장을 가로지르는 긴 대를 말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보통 열 개에서 스무 개의 조명이 달려 있는데······.
“어쩌다가요?”
“저도 그건 모르겠어요. 일단 고리 조이고 다시 얘기합시다. 잠시만요.”
무영은 허리에 매달린 유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상황을 지켜봤다. 저 거대한 레일. 만약 저게 떨어졌으면-
‘세트장 전체가 박살 났을 수도 있었겠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