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42)
신인인데 천만배우 42화
애드리브
적막이 흘렀다.
두 매니저는 상대 배우를 쳐다보며 입만 살짝 벌렸다. 결은 다르지만 느끼는 감정은 똑같다.
바로 ‘어이없음’.
“그리고 제가 NG 안 내려고 연습 엄청 했거든요. 근데 그걸 일부러 하라고요? 왜요? 무엇 때문에?”
또랑또랑하게 되묻는 무영.
정말 모르겠다는 듯, 맑은 눈빛이 이히준에게 바로 꽂혔다. 어처구니없는 순수한 호기심이란 게 바로 저런 걸까?
“야, 너…….”
이히준은 전혀 예상 못 한 반응에 주춤거렸다. 맨날 선배님, 선배님 거리며 헤실대기에 만만한 성격일 줄 알았건만.
“촬영이 장난은 아니시죠?”
다른 면으로 강적이다.
진심이 꾹꾹 눌러져 있는 저 대답!
혹시 정말로 어디가 아프냐는 표정이 일품이었다. 머릿속으로 어떤 시나리오가 스쳐 가는지, 무영은 혼자서 점점 경악했다.
“혹시 장난이세요? 선배님 지금 놀러 다니시는 거?”
헉. 이번에는 이히준의 매니저가 돌처럼 굳었다. 말투는 악의 하나 없이 무결하건만, 내용은 가시가 박히다 못해 칼질하듯 날카로웠으니까.
“아니. 근데 듣자 듣자 하니-”
무영과 그의 매니저 반응을 보고 있자니, 이히준은 그가 내뱉은 말이 얼마나 실언이었는지 깨달았다.
하지만 이런 식의 반응은 아니지.
체면이 있는데, 예의상으로라도 까는 척은 해줘야 할 거 아니야? 분위기 좀 잡아보려 할 때, 무영이 그의 말을 가로챘다.
“그쵸? 아니죠? 후아. 진짜 놀랄 뻔했다. 그런 거였으면 제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고민했거든요.”
“너 내 말 안 듣냐?”
“듣고 있는데요? 대화, 잘하고 있잖아요. 우리.”
뭐지? 기에 밀리고 분위기에 말린다.
천하의 이히준이! 이런 신인한테? 그는 이를 아득한 거리며 담배를 던져 버렸다. 확 붉어진 얼굴이 말하고 있었다.
‘쪽팔리게-!’
그런 그의 앞을 막아서는 고경민. 무영이 매니저 어깨너머로 고개를 빼꼼 내밀며 이히준을 쳐다봤다.
“방금 하신 말은 못 들은 거로 하겠습니다. 실언하셨을 거라 생각해요. 요즘 워낙 바쁘니 그럴 수 있죠.”
오호라, 정신이 나갈 정도로 바쁘단 말이야?
무영은 감탄하는 표정으로 이히준에게 엄지를 올려 보였다. 그게 더 먹이는 건 줄도 모르고.
“그럼 즐담 하시고, 이따 뵙겠습니다. 아차. 진짜 덧붙이자면 그 소문 저희가 낸 거 아니에요. 이히준 씨가 무영이에게 ‘연기로’ 까였다는, 뭐 그런 거.”
“맞아요. 절대 아님!”
살살 신경을 긁어대는 고경민의 솜씨가 일품이었다.
연기 판뿐만 아니라 온갖 고된 곳에서 구르고 구른 그였으니까. 이 정도로 받아치고 끊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가자. 무영아.”
“선배님! 커피 한 잔 준비해 놓고 있을게요. 정신 좀 똑디 차리세요! 아자아자, 파이팅?”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응원하는 무영. 매니저는 됐다는 듯, 어서 가자며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코너를 돌아 사라지는 순간까지, 무영은 아자아자 파이팅을 외쳐댔다.
“저, 저, 저것들이-!”
“히준아. 참아, 참아.”
“아오! 썅!”
깡-!
둘이 사라지자, 제 분을 못 이겨 잡화를 발로 까버리는 이히준. 매니저가 과장된 몸짓으로 그를 말렸다. 아무도 없는 창고 뒤편. 쪽팔림에 절어버린 이히준의 괴성이 울렸다.
“참 이상하네.”
현장 안으로 들어서는 무영이 중얼거리자, 고경민은 그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단속했다. 이제 스태프들의 눈과 귀가 사방에 깔릴 것이니.
“그냥 똥 밟았다 생각해.”
“대체 왜 그런 부탁을 했을까요? 생각도 못 해본 건데. 일부러 실수? ……일부러?”
무영에겐 있을 수 없는 단어의 조합이었다.
게다가 이히준 입장에선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었겠지만, 그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고경민이 희미한 웃음을 흘리며 대본을 챙겼다.
“우리는 촬영에만 집중하자. 오늘 새 조명 감독님 확인차 오신다 했거든? 인사 야무지게 잘하고-”
촬영 일정을 줄줄 읊는 고경민. 무영은 그 말을 들으며 스태프들과 인사했다. 고되어 보이던 스태프들의 얼굴에 반가움이 물들었다.
“무영이. 왔어?”
“안녕하세요!”
“오오. 좋은 아침!”
말단 스태프까지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눈인사를 주고받는 무영.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조명감독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분장 바로 들어갈게요?”
“네. 누나. 아, 참. 커피 한 잔 내려야 하는데.”
“커피? 무영이 커피 안 마시잖아?”
분장팀 막내가 도구를 정리하며 물었다.
창고 문이 열리며, 열을 대충 삭인 이히준이 들어섰다. 찌릿, 노려보는 눈빛에 무영이 중얼거렸다.
저저, 아직도 정신이 없구먼?
“저 말고요. 커피 마시면 확 깬다면서요. 그거 필요한 사람 있어요.”
* * *
“레디-!”
진경문의 사인이 울렸다.
다들 숨죽이며 세트장에 서 있는 이히준을 지켜봤다. 발 디딜 틈 없이 쓰레기로 가득 찬 재니의 집. 이히준이 숨을 골랐다.
“액션!”
“어디 있어? 어디 있냐고-!”
미친 사람처럼 바닥을 헤집는 진. 재니가 모르고 가져간 쪽지를 찾으려는 것이다. 매일 바뀌는 공장 시스템 비밀번호가 적힌.
우당탕탕-!
스윽! 차악!
후시 작업으로 소리를 입힐 거지만, 이런 생동감도 나쁘지 않았다. 붐마이크가 최대한 세트와 붙으며 소리를 담아냈다.
계속 이어지는 열연. 진경문은 뷰파인더를 보며 만족스럽게 컷했다.
“오케이! 좋네. 이거로 갈게요. 다음 씬 준비해 줘요. 몇 번이더라?”
“이어서 58씬이요. 유나랑 무영이 준비됐나요?”
“그 전에 합 마지막으로 맞춰봐. 무술감독님 어디 계셔?”
“히준 씨. 잠시만요.”
한 테이크가 끝날 때마다 스태프들은 정신없이 뛰어다녀야 했다. 혼란스러운 현장 사이. 그나마 여유로운 건 바로 배우들.
“둘이 액션은 처음이다.”
“그러게. 긴장되는걸?”
“으음. 유나만 믿고 오시라.”
액션이라 해봤자, 서로 멱살 잡고 뒹구는 정도에서 그치겠지만. 유나는 가슴을 주먹으로 쳐대며 장담했다. 그런 모습을 무미건조하게 지켜보는 효정.
‘나 좀 차에 들어가서 쉬자? 응?’
매니저에게 보내는 SOS는 ‘X’ 표 손가락이 되어 돌아왔다. 그놈의 스틸컷이 뭔지, 이렇게 앉아서 사진을 꼭 찍어야겠단다.
“언니. 언니도 하나 먹어요.”
유나가 효정에게 과자를 건넸다. 다이어트 때문에 평소라면 절대 먹지 않을 효정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사진을 대놓고 찍겠다며 스틸팀이 렌즈를 들이대는데, 어떻게 거절하겠는가.
“고마워.”
“효정이는 오늘 끝났나?”
셋이 사진을 찍고 있는데, 이히준이 손을 닦으며 다가왔다. 네 배우가 모두 모여 렌즈를 쳐다봤다.
찰칵- 찰칵!
“네. 일단은요.”
“추가 촬영만 없으면 바로 가겠네? 부러워라. 조연은 이래서 좋아. 안 그래?”
어깨동무하며 실실 비꼬는 이히준.
효정이 웃음 가면을 쓴 채 속으로 짜증을 쏟아냈다. 그러자 유나가 과자를 와작거리며 대꾸했다.
“그러면 삼촌도 조연하시지.”
“응? 뭐라고?”
“조연이 부러우면 조연하면 되죠. 맨 처음에는 진 역도 아니었잖아요.”
“……저기. 유나야?”
“사진 찍는다. 저 보지 말고 앞 보세요.”
당돌하다 못해 영악하기는! 히준은 유나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혀를 차댔다. 폭풍의 소용돌이 같은 그들의 만남. 구석에서 매니저들만 조마조마한 마음을 끌어안아야 했다.
‘무영이 쟤는…… 진짜 뭐지?’
고경민만 빼고.
효정과 히준. 히준과 유나 사이의 저 복잡 미묘 날 선 기류를 모르는 것인가?
“자세를 이렇게도 해볼까요?”
“우리 다 같이 어깨동무해요!”
“우왕. 사진 잘 나왔다.”
눈치란 게 있으면 모를 수가 없을 텐데.
무영은 혼자 신나 스틸팀 앞에서 연신 브이를 보였다. 하지만 고경민이 모르는 게 있었으니.
“다들 한 번만 제대로 웃어봐요.”
무영은 모르는 게 아니라, 신경을 쓰지 않는 거였다. 그냥 그러려니,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다! 촬영에 지장만 없으면 뭐.
그는 계속 뭔가 아쉽다는 스틸 기사의 표정을 캐치하고, 동료 배우들에게 넌지시 부탁했다.
찰칵! 찰칵-!
“유나야, 히준 씨! 무영이! 이쪽으로!”
“네에!”
그리고 드디어 무술감독이 그들을 불렀다. 감독은 대본과 화면을 번갈아 확인하며 설명했다. 셋이서 엉기고 엉키는 씬이다.
“다들 숙지한 대로 몸싸움 씬 들어갈 건데요. 사실 별거 없습니다. 루이가 먼저 들어오죠? 바닥을 뒤집던 진을 발견, 들어오려는 재니를 막아서고, 달려드는 진을 저지. 진은 루이 멱살.”
“유나랑 저랑 묶인 붕대는 어떻게 해요?”
“왼손이니 뒤로 쭉 빼고 오른손으로만 휘저어요. 유나는 거기에 맞춰서 몸을 흔들어주면 돼. 그리고 루이를 도와주려고 몸부림 정도?”
진짜 별거 아닌 씬이다.
하지만 무술감독이 붙은 이유는 오직 하나. 어린아이가 끼어 있으니 조심해달라는 진경문의 부탁 때문이다.
“이렇게요?”
이히준은 담담한 손길로 무영의 멱살을 잡아끌었다.
“그러면 전 바로 몸 틀게요.”
“그러고 나서 이쪽을 막고-”
스태프들이 죄다 집중하고 있어서일까. 이히준은 상당히 프로페셔널하게 무영과 합을 맞췄다. 살짝 걱정하던 고경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딱! 하면 컷 나는 거죠?”
“움직임을 좀 빨리해야 할걸요?”
“그래요? 감독님!”
몸싸움이니 한 번에 가는 것이 목표다.
셋은 충분히 합을 맞추며 계속 연습했다. 무영이 만족스럽게 목덜미를 터는데-
“흐음.”
유나가 인상을 찌푸리며 턱을 긁어댔다.
“왜 그래?”
“아니. 그냥. 뭔가 좀 꽁기해서.”
아이의 눈은 진경문과 얘기하는 이히준의 옆모습에 꽂혀 있었다. 이상하단 말이지. 평소랑 뭔가 달라도 달라.
“근데 아무래도 박진감이 생명이라, 벽에 밀치고 난 뒤로는 자연스럽게 애드리브로 마무리해 봐요.”
진경문은 무영과 히준에게 지시한 후, 헤드셋을 꼈다. 들어가자는 신호였다. 무영은 계속 혼자 골똘히 생각하는 유나의 손을 잡아끌었다.
“레디-!”
착!
“액션!”
“X발, 어디 있어? 종이가…… 분명 노란색이었는데…….”
촤악!
강박에 떠는 사람처럼 진의 손이 흔들렸다. 종이와 쓰레기가 흩날리고, 거의 미쳐 버리기 일보 직전인 상황.
끼익.
“옷만 갈아입고…….”
“……!”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오자, 진이 고개를 휙 돌렸다. 본능적이었다. 마치 짐승처럼 소리에 반응해 뛰어드는 것이.
콰앙!
“재니야! 안 돼!”
“X발 너 이리 와! 너!”
“가! 가! 재니야! 이거 풀어!”
히준이 무영의 멱살을 잡고 벽에 밀쳤다. 아이를 보호하려고 안간힘을 써대는 루이. 둘 사이를 이어주는 붕대가 거추장스럽다.
“풀고 뛰어! 뛰어!”
“아아악! 루이! 안 풀려! 못 풀겠어!”
루이의 괴성에 재니 역시 비명을 질렀다. 꼬질꼬질한 천을 따라 이리저리 아이의 몸이 흔들렸다. 두 남자 사이에서 위태롭게.
“이 새끼가! 까불어어-!”
‘까불어? 없는 대사인데.’
그때, 히준이 괴성을 지르며 무영의 멱살을 더욱 세차게 붙잡아 흔들었다.
벽에 콰앙, 쾅! 쾅!
리허설 했을 때보다 강하지만 버틸 만했다. 무영이 필사적으로 두 손으로 그를 떼어내려고 할 때.
대앵- 땡!
“억!”
갑자기 휘청이는 히준. 어이없다는 듯이 뒤를 돌아봤다. 양은냄비를 손에 든 유나가 그의 머리를 후려친 것이다.
“뭐 해요? 아- 진짜. 삼촌! NG 났네.”
그리고 보란 듯이 한숨.
아이는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애드리브잖아요. 애드리브.”
적당히 잡으라고. 히준이 무영에게 힘을 쓸 때마다 자신도 열과 성을 다해 그의 머리통을 후려치겠노라고.
“다시 해야겠네. 그쵸? 감독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