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43)
신인인데 천만배우 43화
화해해
“유, 유나야?”
진경문이 놀라서 재빨리 헤드셋을 벗었다. 스태프들 역시 띠용. 하지만 유나는 태연하게 손을 탈탈 털었다. 댕그랑- 하고 양은냄비가 바닥에 떨어졌다.
“……아니.”
이히준은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왔다. 아픈 것보다 정신이 쏙 빠진 것 같달까.
유나는 활짝, 아주 활짝 천사의 미소를 보이며 눈썹을 찡긋거렸다.
“죄송해요. 많이 아팠어요?”
아팠냐고? 당연한 말씀을. 실로 오랜만에 듣는 청명한 타격음이었잖아.
이히준은 주위 스태프 분위기를 살피며 겨우 대답했다.
“아…… 니.”
“다행이다. 감독님! 다시 갈게요. 이번에는 히준 삼촌 아파도 꼭 참으신대요. 애드리브도 받아줘야 치는 맛이 있잖아요. 잘 부탁드려요!”
기류를 읽지 못한 몇몇 사람들은 그저 재미있는 해프닝 따위로 생각하는 듯싶다. 하하, 웃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으니.
“유나가 너무 몰입했네.”
“애라서 그런가?”
몰입? 정말? 이히준은 뒤통수를 계속 긁적이며 유나를 쳐다봤다. 콧노래를 부르며 다시 무영과의 붕대를 점검하는 아이. 히준과 눈이 마주치자 왜 그러냐는 듯 웃었다.
“애드리브하지 마.”
그는 사뭇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유나에게 속삭였다. 하지만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무영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으앙, 무서운 사람이다- 하는 순수하고 가식적인 표정으로.
“그럼 삼촌도 치지 마요.”
“뭐?”
“삼촌은 치는데 저는 치지 말라니. 그런 게 어딨어요? 안 그래요?”
그렇게 쏘아대며 고개를 휙 돌리는 유나. 아리까리한 것이, 얘가 진짜 무영이 때문에 그런 건가 싶었다. 분명 뉘앙스는 알아챘는데 직접 말로 한 건 아니니까.
“유나야. 살살.”
진경문 역시 한마디 덧붙이며 다시 메가폰을 잡았다.
“이 씬은 진이랑 루이 포커싱이 주라서 너무 세게 안 쳐도 돼.”
“네! 알겠슴돠-!”
대답 하나 똑 부러지게 잘하는군.
모두 재촬영을 위해 제자리로 돌아갔다. 히준은 바닥으로, 무영과 유나는 문 뒤로. 스태프들 역시 각자의 위치로.
‘오빠. 괜찮아?’
유나가 자신의 목덜미를 가리키며 입 모양으로 물었다. 피부가 워낙 희어서 그런가, 그새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올라와 있었다. 무영은 장난으로 앓는 시늉을 했다.
‘죽을 뻔.’
‘괜찮아 보이네.’
‘……고마워. 나 때문에 그렇게 해준 거지? 근데 자꾸 NG 나면 곤란하니까 이제 안 그래도 돼.’
둘이 소곤소곤, 유나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
‘그게 무슨 말이야?’
‘있어. 아무튼, 조심해. 촬영장은 위험하다니까.’
알 수 없는 말을 하고서 유나는 문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물론 무영을 지키기 위한 것이긴 했지만, 상대가 이히준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으면 그렇게까진 안 했을 거다.
“자, 다시 갑시다!”
진경문의 목소리가 들리고, 바닥을 보던 이히준이 고개를 들었다. 천진난만 반짝이는 유나의 시선과 마주쳤다. 움찔, 쟤가 왜 저러나?
‘한 번에 갑시다? 히준 삼촌?’
아이의 눈짓이 바닥에 떨어진 양은냄비로 향했으니, 연기에 사적인 감정을 담아 푸는 건 배우로서 용납 못 해! 이 구역의 주인공은 나라고!
“레디-!”
‘안 그러면 저도 계속 가요?’
히준은 얼얼한 두통을 애써 무시하며 연기에 집중했다. 아이 눈치가 무슨 백 년 산 이무기급도 아니고…….
‘짜증 나-!’
하지만 여기서 계속 오기 부리면 진짜 뒤통수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아니지. 쟤 성격상 냄비만 계속 쓰겠어?
어린애랑 싸우면 이겨도 본전이요, 지면 개쪽이란 걸 잘 안다. 아는데, 알긴 아는데!
‘아니 그래도 애새끼가…….’
“액션!”
진경문의 신호에 히준이 다시 한번 미친 듯이 바닥을 헤집었다. 무영에 대한 짜증에 유나를 끼얹었더니 미칠 것 같다. 불처럼 활활 타오르는 분노!
“X바아알-!”
* * *
“저, 저거 저래도 돼?”
한 스태프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벌써 다섯 번째 이어진 58번 씬. 그리고 맑은 타격음이 울린 것도 벌써 두 번째였다.
대앵-! 땡!
“아악!”
“앗! 또! 아이참. 조금만 참아보라니까요.”
히준이 참지 못하고 뒤통수를 감싸며 주저앉았다. 이번엔 제대로 들어간 모양이다. 아주 엉망진창이 된 상태.
“괜찮아요? 삼촌?”
“야이씨-! 너 같으면 괜찮겠냐?”
냄비로 때리지 말라 해서 귀 한 번, 오른팔 한 번 깨물었지. 옆구리에 박치기까지 넣었더랬다. 하지만 역시 뭐니 뭐니 해도 냄비가 최고!
“유나 쟤 지금…….”
“히준 씨 잡는 거지?”
“세상에나.”
스태프들도 이제 눈치채기 시작했다. 히준이 격앙되어 무영을 거세게 흔들 때마다 유나가 그걸 잘라주고 있다는 것을. 히준과 유나는 서로 마주 보며 으르렁거렸다.
‘해보자 이거지?’
‘거참 끈질기네! 힘 빼라니까! 계속 얻어맞으시든가!’
“잠깐, 잠깐!”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감독이 두 손을 내저으며 둘을 불렀다. 숱한 현장에서 숱한 기 싸움을 봐왔지만, 이런 건 또 처음이네. 이십 대 후반 남자와 아홉 살 난 여자아이의 싸움이라니.
“자꾸 그러지 말고, 합대로만 갑시다. 합대로.”
“그럴까요? 저도 좋은 것 같아요. 히준 삼촌이 애드리브는 치는데 받는 걸 못하시네. 어떻게 생각해요? 삼촌?”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쌍소리. 히준은 보는 눈이 많다는 거로 겨우 이성의 끈을 붙잡고 있었다. 감독은 한숨을 푹 내쉬며 둘을 진정시켰다.
“무술감독님!”
“예에. 언제 부르나 했습니다.”
“합 다시 맞춰보세요. 잠시 쉬었다 갑시다!”
뚱하니 서 있는 둘. 무영이 그 사이에서 뻘쭘하게 웃었다. 멀리서 고경민이 끼어들지 말라는 듯 팔로 ‘X’ 자를 그렸다. 하지만-
“저기 선배님.”
“뭐!”
“유나야?”
“응?”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미약하나마 원인은 자신에게 있었으니까. 무영은 두 사람의 손을 붙잡아 끌어왔다.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아주 조심스럽게.
“이제 그만해요. 둘다.”
“내가 뭘? 저 꼬맹이가 시작하고 끝을 안 맺는데.”
“말씀드렸잖아요? 애드리브 칠 거면 저도 칠 거라고!”
“이게 진짜!”
“어허! 쉿!”
무영은 미친개 두 마리를 타이르듯, 쓰읍거렸다. 히준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굳었다. 지금 나한테, 어허? 쉿?
“선배님. 오늘 하루 종일 기분 나쁘신 거 알고 있어요. 근데 그걸 이렇게 풀면 안 되죠. 상관도 없는 저한테 화풀이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요?”
“아니-”
“유나도. 스태프들 고생하시는 거 알면서 자꾸 그러면 못 써. 주인공이면 주인공답게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야지.”
“아니…….”
그러면서 둘의 손을 억지로 쥐여줬다.
“빨리 화해하고 들어갑시다. 찍을 게 산더미인데 이렇게 있을 순 없잖아요.”
윽. 싫은데!
둘이 노골적으로 앞니를 보이며 표정을 구겼다. 파앗! 더러운 거라도 묻었다는 듯, 동시에 손을 뿌리쳤다.
“흐음.”
그 모습을 본 무영이 히준의 귀에 속삭였다. 아이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
“이대로 계속 가면 진짜 머리통에 빵꾸나요. 선배. 유나 쟤 한다면 끝까지 하는 애잖아요. 감독님도 못 말려서 도망쳤는데, 이렇게 자리 마련할 때 못 이기는 척하고 들어오세요. 이러다 본전도 못 찾아요.”
그리고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살다 보면 다 이런 경우도 있고 저런 경우도 있는 법 아니겠는가. 이어서 유나에겐-
“유나야. 스태프들도 슬슬 눈치채기 시작했거든? 이대로 가면 유나 평판만 안 좋아져. 우리 다른 걸 생각해 보자. 빠질 때를 제대로 알아야 진짜배기지. 내가 아까 봤는데 머리에 혹 제대로 생겼더라.”
-하고서 눈을 찡긋. 어르고 달래는 솜씨가 예술이었다. 무영의 사탕발림을 들은 두 사람이 팔짱을 끼며 서로를 노려봤다.
‘그래. 이쯤 하는 게…….’
무영이 다시 한번 둘의 손을 맞잡게 했다.
“하나, 둘, 셋 하면 사과하는 겁니다. 동시에.”
“애도 아니고.”
“맞아. 유치해.”
그렇게 말은 했지만, 은근히 눈치를 보는 유나와 히준. 무영이 씰룩씰룩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하나, 둘 셋!”
“……미안해요. 삼촌.”
“그래. 크흠!”
“뭔데, 왜 미안하다는 말 안 하는데?”
“솔직히 내가 뭘 잘못했냐? 엉?”
“막 무영이 오빠 멱살 이케이케 잡고 했잖아요-!”
“연기라고 연기!”
아이고, 다시 불붙네.
무영은 됐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무술감독님을 불렀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감독이 웃으며 다가왔다.
“자자. 다들 그만하고 마지막으로 간다는 마음가짐으로 다시 합 맞춰봅시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진경문 감독님 화나. 화나면 무서워. 알지?”
사실 그뿐만 아니라 오고 가는 스태프들이 모두 힐끔거리며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무영이 히준의 팔과 유나의 어깨를 붙잡고 모았다.
“그럼 처음부터 해볼까요? 벌써 다섯 번이나 해서 크게 다시 할 건 없잖아요.”
“그렇지.”
“선배. 잡아보세요.”
무영이 티셔츠 목을 팔랑팔랑 잡아당기며 웃었다. 끄응, 할 수 없이 무영의 멱살을 잡은 히준. 확실히 처음 할 때보단 부드러운 손짓이다.
“이어서 이렇게, 돌리면 제가 받고.”
“그리고 왼손 들어.”
“손들고, 반대쪽으로는 재니 보호.”
“그럼 나는 최대한 뒤쪽으로 물러나 있을게.”
세 배우는 이전과 달리 충실하게 합을 맞췄다. 어떤 사적인 감정 없이. 그 모습을 보던 스태프들이 수군거렸다.
“무영이 쟤는 성격이 참 신기해.”
“그러니까. 그래서 유나도 잘 따르는 건가 싶고.”
“이상하게 말리는 그런 게 있더라.”
효정 역시 마찬가지.
턱을 괴며 그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다. 방금 절에서 내려온 사람 같기도 하고, 세상만사 모든 풍파 다 겪어서 초연해진 사람 같기도 했다.
“다 맞췄어?”
“네! 준비 끝났습니다.”
감독이 커피 한 잔을 든 채 다시 나타났다. 무영이 손을 번쩍 들며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었다.
“좋아. 그럼 가자고.”
진경문은 헤드셋을 쓰며 손짓했다.
훨씬 풀어진 세 배우의 분위기. 유나가 바닥에 떨어진 양은냄비를 멀리 치워 버렸다.
“레디-! 액션!”
* * *
“오케이. 컷!”
진경문이 뷰파인더를 보며 오케이 사인을 던졌다.
이전의 테이크와 달리 미리 맞춘 합대로 끝맺은 씬. 어떤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무영이 흐트러진 옷을 정리하며 히준에게 인사했다. 오늘 재니의 집에서 찍는 건 이걸로 마지막. 대형 외부 세트가 완공되면 그때 다시 만나겠지.
“히준 삼촌. 우리는 내일 또 보겠네요.”
유나가 생글거리며 히준의 팔에 보란 듯이 매달렸다. 남들이 봤을 때는 참 사이좋아 보일 것이다. 그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유나를 떼어냈다.
“그러게. 하! 하! 하!”
“세 분, 잠시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스케줄 조정이랑 전달사항 말씀드릴게요.”
“네에!”
조감독이 그들을 향해 손짓했다. 이미 촬영이 끝난 효정만 앉아서 기다리는 중. 그녀는 턱을 괴며 무영과 유나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다.
“대기가 기네요. 추가 촬영 있으신가 봐요?”
“그러게. 피곤해 죽겠는데. 그나저나 무영 씨는 대단하다. 천군만마를 얻었어?”
“저요? 아아.”
촬영을 지켜보던 효정 역시 알아챈 것이다.
유나가 무영을 위해 냄비를 휘둘렀다는 걸. 무영은 가볍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게요. 도움 많이 받네요. 역시 선배는 선배인가 봐요.”
9살 인생, 그 절반을 연기에 바쳤더랬다! 촬영장에서 반평생 이 판에서 살아온 사람은 거의 손에 꼽았다. 진경문 감독이랑 음향 감독 정도 되려나?
“먼저 이거 받아주세요.”
배우들이 모이자 매니저들 역시 다가와 함께 앉았다. 조감독이 건네준 것은 일주일간의 대략적인 일정.
워낙 변동이 많은 곳이니 먼 계획까지는 알 수도, 짤 수도 없었다.
“아마 모레 중으로 공장 세트 완공될 겁니다.”
“와우. 좋네요.”
무영은 고경민과 함께 스케줄을 확인했다.
“음? 69번 씬이 잡혀 있네요?”
“네. 어쩌다 보니요.”
루이가 죽는 씬. 뒷부분은 모두 회상 처리라, 실재하는 루이는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그때, 조감독의 뒤로 누군가 나타났다.
“아. 맞다. 소개해 드릴게요. 이분은 새로운 조명 감독님인데요-”
고개를 든 무영이 눈을 크게 떴다.
“이택경이올시다.”
기인의 모습을 하고 뿜어내는 반짝이라.
그는 무영을 물끄러미 보며 말했다.
“다른 건 아직 모르겠고, 69번 씬 거기에 대해 내 할 말이 있는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