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48)
신인인데 천만배우 48화
알레르기
검은색 세단이 서연대학교 기숙사 주차장에 들어섰다.
이미 해가 어둑해진 시간. 가벼운 옷차림의 학생들이 공터에서 삼삼오오 모여 하루의 마무리를 보내고 있었다.
톡톡.
손목시계를 두드리며 초조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한다경. 분명 삼 십 분 안에 도착한다고 그랬는데, 늦어지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 익숙한 남자가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나왔다.
“아! 혹시 하무영 씨?”
비틀비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발걸음이었지만 다경은 신경 쓰지 않았다. 한달음에 달려가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음, 맞네! 한밤포차의 그 고딩!
“하아암- 안녕하세요. 진짜 오셨네요?”
무영은 잠에 취해 중얼거렸다. 눈도 못 뜬 채 웅얼웅얼. 기숙사 도착하자마자 샤워하고 기절했거든.
정말 베개에 볼을 대자마자 바로 깨꼬닥.
룸메이트들도 조용히 그를 배려해 주려 했지만…….
-무영아. 일어나 봐. 자꾸 전화 오는데?
-중요한 거 아니야?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전화에 어쩔 수 없이 그를 깨웠더랬다. 무영은 잠꼬대하듯 전화를 받았다.
-……예에. 저어가 하무영인데요. 저요? 기숙사요. 자던 중인데…… 마음대로 하세요. 근데 누구? ……끊었네?
한다경은 생긋 웃으며 그에게 명함을 건넸다.
깔끔하고 도회적인 스타일. 성공한 젊은 사업가 분위기를 팍팍 뿜어내고 있었다.
청춘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여유로움이랄까. 나이는 또래지만.
“급한 일이라 회사에 사정했어요. 나와줘서 고마워요.”
“하아아암-”
“많이 피곤하신가 봐요?”
“오늘 촬영이 좀 힘들었거든요.”
무영은 선 채로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한다경이 명함을 내민 것도 모른 채. 그녀는 무영의 손에 종이를 쥐여주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피곤하신 것 같으니 본론만 말할게요. 촬영장에서 저희 제품 쓰고 사달 난 배우가 효정 씨인가요?”
“어? 어떻게 알았어요?”
“회사 쪽으로 컴플레인이 들어왔거든요. 근데 마침 무영 씨는 동료 중에 문제가 있다 하고. 둘이 겹치는 작품은 현재 제작 중인 [역병>이잖아요.”
무영은 그제야 눈을 반쯤 떴다.
몽롱하니, 아른거리는 사방이 밝다. 기숙사 곳곳에 켜진 조명 때문인가? 왜 이렇게 몽글몽글하지? 무영은 눈을 비비며 대꾸했다.
“그런데요?”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요. 저에게, 아니, 회사에 꽤 중요한 문제라서 솔직히 말씀해주세요. 효정 씨가 쓴 기초 화장품, 무영 씨도 같이 쓴 거죠?”
“네. 그렇다네요. 전 나중에 알았어요. 스태프 누나가 알려줘서. 분장 받는 사람은 다 똑같은 걸 썼대요.”
“효정 씨는 제품을 쓴 날부터 이상 반응이 왔나요?”
“잘 모르겠는데요.”
그리고 다시 쩌억- 하품.
한다경은 초조하게 웃기만 했다.
무영을 찾아온 이유는 딱 하나. 효정과 그 소속사를 마주하기 전, 최대한 많은 정보를 등에 업기 위해서다.
‘동료니까 옆에서 본 게 있지 않겠어?’
피해자가 주장하는 것들이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진실인지. 혹 조금의 여지가 있다면 무엇인지 등등.
대응과 대책에는 가지의 수가 많을수록 좋다. 그래야 몇 개 잘려 나가도, 나무는 멀쩡하지 않겠는가.
“정말요?”
그녀는 눈썹을 올리며 물었다. 정신이 저렇게 빠져있는 게, 지금 정상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무영은 연달아 피곤한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저도 갑자기 들어서 오늘 효정 선배 대타 나갔다구요…… 엄청 힘들었다구요…… 증말로.”
꿍얼꿍얼. 무영은 짙게 쌍꺼풀진 눈을 부릅뜨며 한다경을 노려봤다. 아니, 정확히는 눈을 뜨고 보려 했다는 게 맞을 거다.
“효정 선배는 좀 어떻대요? 많이 아프대요?”
“아파요? 피부 트러블이라고 들었는데?”
“병원 입원까지 했다잖아요.”
“아아. 그거.”
한다경이 피식 웃었다.
미팅 장소 협의로 입원한 병원을 물었더니 청담동의 에이스의원이란다. 성형과 피부미용으로 유명한.
그러니까, 말이 입원이지 아예 관리실 자리 잡고 집중 케어 중이라는 뜻.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혹시 더 말해줄 건 없어요? 저한텐 이 일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이제 막 회사 입지가 굳어지고 있는 터라, 한 번 흔들리면 타격이 커요.”
“정말 드릴 말씀이 없는데.”
무 자르듯 부드럽지만 단호한 대답. 속이 타들어 가는구나! 젠장. 한다경은 습관적으로 가방을 뒤적이며 담배를 찾았다.
“죄송한데 담배 좀 피워도 될까요? 제가 속이 답답하면 이게 좀…….”
“네. 상관없어요.”
“한 대 할래요?”
“아니요. 저 양치했는데요.”
“안 태우시는구나?”
방긋 웃으며 거절하는 무영. 점점 잠이 깨면서 그녀의 모습이 또렷해졌다. 기숙사 조명 불빛이라 생각했는데, 얼굴이 환하다. 글리터를 바른 것처럼 반짝반짝.
“아니다. 이럴 게 아니라 들어가서 마저 자요. 깨워서 미안해요. 얘기 고마웠어요.”
그녀는 무영에게 손을 내밀며 작별 인사를 했다. 어서 들어가 쉬라는 듯. 하지만 무영은 가만히 서서 그녀를 응시했다.
“왜 그래요?”
그렇게 보고 있으면 담배를 피울 수가 없잖아.
무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저거 화장품 맞지? 아니면 꽃가루? 만져보면 알 것 같은데 그럴 수도 없고…….
“혹시 이 사업 말고 다른 거 하는 게 있어요?”
닥터마텔이 망하더라도 따로 기댈 구석이 있는 건가? 분명 그녀에게는 안 좋은 일이고, 느낌상 회사 존폐의 위기처럼 들리는데. 웬 반짝이?
그저 순수한 물음이었으나 한다경의 얼굴은 굳어졌다.
“……저 알아요?”
“네? 제가 대표님을 어떻게 알아요?”
순간 움찔했다.
회사 직원들도 자신의 정체를 모르는데, 그래. 난생처음 보는 스무 살 신인배우가 알 턱이 있나.
“사업 이것뿐이에요. 그래서 이게 제 전부고요.”
대한민국 대표 코스메틱 브랜드 씨엘로의 한민춘 회장의 서녀(庶女). 그게 바로 다경의 본출신 성분이었다.
집안엔 이미 오빠가 셋이요, 막내이자 서녀인 그녀가 살아남으려면 이 길이 유일했다.
“아무튼, 고마워요. 너무 급하게 와서 빈손인 게 미안하네요. 여차하면 저기, 매점 가서 과자라도 사 줄까요?”
근데 보면 볼수록 강아지 같네. 우윳빛 피부 때문에 그런가. 유독 해맑은 어린아이 같다. 과자라는 말에 무영이 잠시 고민했다.
고승민의 차 안에서 떠올렸던 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 그런데요.”
그래. 해주자.
여차해서 나쁠 건 없잖아. 만약 알레르기 반응이라면 효정 선배도 빨리 알아야 하고.
“……?”
“효정 선배 알레르기 검사라도 해보라 하세요. 그때 유나가 준 과자가 뭐였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평소엔 아무것도 안 먹던 분이 그건 먹었거든요.”
“과자요? 무슨?”
“몰라요. 스틸팀 기사님이 사진 찍었는데, 기억이 안 나네요. 쌉싸름하고 고소한 무슨…… 신상 과자였는데.”
한다경은 불붙이지 않은 담배를 뽀각, 부러뜨렸다. 어서 더 말해달라는 신호였다.
“그날 그걸 먹었단 말이죠?”
“그날이 닥터마텔 처음 쓴 날이면요. 맞을걸요?”
“스틸팀은 어디에요? 어디 회사?”
“엥. 저도 몰라요. 제작사에 문의해 보세요.”
별걸 다 묻는다. 촬영 현장에서는 모두 식구라고.
각자 어디서 차출되었는지는 알 필요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는 뭔가 생각하는 듯, 팔짱을 끼더니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오늘 진짜 고마웠어요.”
그리고 어디론가 급히 전화 걸며 자동차 쪽으로 달려갔다. 좁은 기숙사 주차장을 매끄럽게 빠져나가는 세단.
“가세요오-!”
무영은 하품을 내지르며 손을 흔들었다. 아차. 그냥 과자 사달라고 할 걸 그랬나. 두고 먹으면 되는데.
“됐다…….”
쩝. 괜히 입만 다시며 기숙사 건물로 돌아온 무영. 다시 베개에 머리를 박자마자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이번에는 철저하게, 아예 휴대폰을 꺼버리고서.
* * *
“아 진짜…….”
은은하게 깔린 조명.
가운을 입은 효정이 울상을 지으며 거울을 들었다. 뾰루지와 붉은 기운, 두드러기 따위가 사정없이 섞어 올라온 얼굴. 흉측하다, 흉측해!
“아아악! 진짜! 이거 어떡하냐고오-!”
그녀는 수건을 던지며 패악을 부려댔다. 평소 차분하던 효정은 어디 가고, 지금은 이리저리 튀는 탱탱볼 폭탄 같다.
매니저는 부산하게 물건만 정리할 뿐. 계속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약 먹으면서 경과 보자 하시니까.”
“아니. 내가 여기서 쓴 돈이 얼마인데 자꾸 그래? 레이저든 뭐든 어떻게 빨리 좀 조치를 해야 할 거 아니야?”
“이게 다 순서라는 게…….”
“진짜 다 죽여버려! 그 막내도 그렇고 X발, 회사에 연락은 했어? 아주 매장을 시켜 버려야지. 그런 것도 물건이랍시고 파네.”
효정은 울분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싹다 손해배상 청구해 버려. 알겠지? 아니면 SNS에 확 올려 버린다고. 기사 제대로 나는 거 보여준다고-! 아아악! 짜증 나!”
관리와 치료 비용으로 하루 만에 벌써 이백을 쓴 효정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피부! 초고화질로 발전하는 TV 화면에서 무결점을 자랑하던 그녀였다.
그런데 이게 뭐냐고!
매니저는 휴대폰을 보며 대답했다.
“어…… 근데 효정아. 너 알레르기 없는 거 맞지?”
“맞다니까. 몇 번을 말해.”
이미 피부과 와서 진료받을 때 기재한 내용이었다. 흔한 먼지 알레르기 하나 없이 건강 그 자체건만. 의사도 오래 봐온 사이라 그걸 잘 인지하고 있었다.
“혹시 모르니까 검사 한번 해보라고 하는데?”
“누가?”
“사장님이. 닥터마텔 쪽에서 연락이 왔는데, 알레르기 검사하고 나서 다시 협상해 보자 했대. 그게 화장품 때문인지, 아니면 알레르기 때문인지는 봐야 알겠다면서.”
“어이가 없네. 보상은 해준대?”
매니저가 고개를 끄덕였다.
“뉘앙스가 그런 것 같지? 솔직히 너 정도면 해줘야지. 안 그래? 이 얼굴이 얼마짜린데-!”
살살 치켜세우며 달래는 말에 효정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발라당 엎드려 거울을 들여다봤다.
“검사 결과가 얼마나 걸리지?”
“보통 사나흘?”
“해봐. 그리고 결과만 나와봐. 아주. 내가 얼마나 건강하게 살았는데.”
효정은 짜증을 삭이며 중얼거렸다. 다시 울컥 올라오는 화를 뿜어내려다가.
“마사지 준비하겠습니다.”
드르륵.
기계를 끌며 들어오는 직원의 등장에 멈추고 다시 휙! 매니저를 향해 나가라 손짓했다.
“가서 오는 길에 주전부리 좀 사와.”
“또? 너 살찐다.”
“스트레스받는데 어떡해? 그럼!”
효정이 앙칼진 눈으로 레이저를 쏘아댔다.
그래. 찌면 또 빼지 뭐. 성격 감당하다간 매니저가 먼저 죽을 맛이다. 그는 지갑을 챙기며 물었다.
“저번에 그거?”
“응. 콩콩칩.”
“한번 맛 들이더니 계속 그것만 찾네.”
“그거랑 커피도.”
고소한 콩이 잔뜩 박혀있는 쿠키칩. 유나가 한번 맛을 보여준 이후, 심심하면 그걸 찾았더랬다.
끼익-
매니저가 효정의 심부름을 하는 동안, 닥터마텔 사무실에는 비장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으니.
대표 한다경과 열 명의 직원들이 모두 모인 비상대책 회의였다.
“법률자문 쪽에서는 답변 왔어요?”
“아직 검토 중이라 자세한 사안은 내일 중으로 보내준답니다. 법적인 책임으로는 크게 문제 될 게 없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건 효정의 SNS에 어떤 글이 올라갈지, 그거잖아요? 팔로워가 몇였더라?”
“320만 명이요.”
“와. 진짜 더럽게 많네. 그 정도였나?”
“드라마가 연타로 해외에서 터졌잖아요.”
딱딱딱!
다시금 한다경의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소속사에선 분명 거액의 합의금(이라 쓰고 위로금이라 부르겠지.)를 제시할 거다.
“트러블일 수도 있어. 알레르기일 수도 있고. 재수 없게 둘이 동시에 일어난 걸 수도 있지.”
그녀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중얼거렸다.
“근데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딱 하나. 무조건 알레르기입니다. 그냥 앞뒤 잴 거 없이 무조건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합의금 뜯기거나, SNS로 역풍 맞거나. 둘 중 하나겠지. 절대 안 된다. 그렇게는 안 돼.
“몽네뜨 제작사에 연락해서 스틸팀 번호 알아내고, 그 유나? 유유나 쪽도 접촉해 봐요. 대체 그날 뭘 먹었는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