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49)
신인인데 천만배우 49화
서프라이즈
며칠 후. 햇볕이 따뜻하다 못해 뜨거워졌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르른 정오의 하늘. 다른 사람들이라면 그저 좋구나, 생각했을 날씨건만. 촬영 현장에선 구시렁대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미쳤네. 벌써 이렇게 더워?”
“이걸 좋아해야 해. 말아야 해. 오늘은 또 유독 맑네. 일기예보에는 미세먼지 많음이라 나오던데.”
“감독님. 오늘 하늘 찍겠습니까?”
“안 될 것 같지? 허허.”
디스토피아 세계관인지라 뿌연 하늘이 기본 디폴트 배경이었다. 색감 조정이나 어느 정도 후처리를 생각하고 찍긴 해도, 오늘은 너무 쨍하다.
“롱 샷, 아니다. 설정으로 가는 건 빼자.”
롱 샷(배경이 많이 들어가는) 이후 배경만 보여주는 설정 샷은 배경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에 자연의 영향이 막대했다. 그런 장면들은 나중에 따로 날 잡아 찍어야 할 듯싶다.
“그나저나 효정이 쪽은 뭐래? 언제부터 가능하대?”
“글쎄요. 저도 이틀 전이 마지막 연락이라. 무슨 검사하고 그런다던데요. 꼰아트에서도 추이 보고 계약 해지 결정하겠답니다.”
“그래. 그전까지는 분위기 좋게 가자고. 응?”
“오늘 보조 출연자는 몇이지?”
“예순일곱입니다!”
수뇌부들이 촬영 계획을 새로 세우는 동안, 보조 출연자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대기하고 있었다. 그늘은 모두 촬영 장비와 스태프들 차지.
“오빠. 공부 재밌어?”
그리고 그 몇 없는 자리 중 하나를 차지해 책을 읽고 있는 무영. 분장을 마친 유나가 슬금슬금 다가와 머리를 들이밀었다. 다시 꼬질꼬질해진 재니다.
“전혀. 유나는 나중에 꼭 관심 있는 학과로 가.”
말 그대로 기말고사가 코앞까지 들이닥쳤다.
아마 다음 주 안에는 종강을 맞겠지. 당장 시험도 문제지만 방학 동안 거주할 곳도 문제다. 이런저런 일이 한꺼번에 들이닥쳐 정신이 사납다.
진짜로, 공부하기 싫어서 대는 핑계가 아니라.
“그럼 난 연기학과로 가야지.”
“좋다. 거기는 시험을 어떻게 치는지 모르겠지만. 오빠 친구들이 거기 갔는데, 굉장히 재밌다 하더라고.”
아, 참. 그러고 보니 유찬이.
대학 가고 나서 한 번도 연락을 못 했네. 보라처럼 현역으로 활동하는 게 아니라 그런가. 무영은 책을 내려놓고 휴대폰을 찾았다.
그런 그 옆에 찰싹 붙어서 조잘대는 유나.
“근데 오빠. 우리 저번에 먹었던 과자 말이야.”
“응? 과자?”
“왜에. 콩콩칩. 그거 인기가 진짜 많나 봐. 회사까지 누가 연락해서 물어봤다? 스틸 컷 아직 안 풀렸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어. 그날 있던 보조 출연자분인가? 우리 먹는 거 보고 너무 생각났나 봐.”
무영은 유찬에게 문자를 넣으며 아이를 힐끔거렸다. 분명 닥터마텔 쪽일 거다. 그날 정보를 얻고 나서 나름대로 조처하는 모양.
“이봐요! 거기 뭐 해요? 기대면 안 되는데!”
그때, 갑자기 큰 소리가 났다.
보조 출연자 중 한 명이 더위를 참지 못하고 그늘에 파고든 것이다. 문제는 카메라와 마이크 등 고가의 촬영 장비가 세워져 있다는 것.
“미안합니다. 근데 너무 더워서.”
“어쩔 수 없어요. 저쪽 가서 쉬세요.”
“저쪽에선 이쪽으로 가라 하고, 이쪽에선 저쪽으로 가라 하고. 어쩌란 말이에요?”
“그걸 왜 나한테 말해요? 반장님!”
스태프는 보란 듯이 현장 반장을 찾았다. 보조 출연자들을 직접 통솔하는 사람이자 고용한 사람.
“반장님 어디 계세요? 아무리 대기라 해도 그렇지, 막 풀어놓으면 어떡합니까? 반장님!”
그런데 말이 좀 거칠다. 풀어놓다니. 뉘 집 개도 아니고. 남자는 울컥, 잠시 아랫입술을 깨물다가 결국 항복했다.
“됐어요. 반장님 화장실 갔으니까. 내가 옮길게요. 미안합니다.”
그리고 질겁하며 벌떡! 아직 한 컷도 안 들어갔는데, 웃옷이 땀 범벅이었다. 그는 뜨뜻해진 생수병을 들고 터덜터덜 흙더미 속으로 걸어갔다.
“아저씨!”
그런 그를 부르는 무영.
“이쪽으로 오세요. 여기 자리 있어요.”
옆자리를 툭툭 두드리자, 유나 역시 무영에게 착 달라붙어 공간을 마련해 줬다. 남자는 엉거주춤 뒤를 돌아보더니, 자신을 손으로 가리켰다.
“나요?”
“네. 아저씨요. 오세요. 너무 더워서 다들 예민하신가 봐요. 그쵸?”
애살스런 웃음에 남자는 조심스레 다가왔다. 다른 보조 출연자들이 힐끔댔지만, 긴 기다림에 지친 터라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하무영입니다. 앉으세요.”
“알아요. 루이 역. 나는 저기, 운정길이오.”
마흔 중반 정도 되는 평범한 남자였다.
“처음 뵙네요. 오늘따라 대기가 참 길어요.”
“드라마 판에 비하면 괜찮은 편이요. 거기는 19시간 대기하고 십 분 찍은 적도 있어요. 근데 오늘은 할당 씬이 많다고 들어서.”
“원래 드라마 전문이세요?”
“오래 했죠. 벌써 십 년 되었지. 그간 나온 작품만 해도 [단군신화> [파수꾼의 눈물> [가가 가가가?> 뭐 많아요. 하핫.”
“와. 대박. 베테랑이시구나.”
시청률이 대히트 쳤던 작품들이다. 감탄하는 무영과 달리 유나는 그저 심드렁했다. 그래 봤자, 수혜받는 사람은 따로 있었으니까. 감독, 연출 외 주조연이 아니면 누가 알아준단 말인가.
“이렇게 더울 때 해 바로 쬐면 쓰러져요. 저는 해야 할 게 있어서 책 좀 볼 테니 아저씨는 편히 쉬세요.”
“아이고. 정말 고마워요. 잘생긴 청년이 싹싹하니 마음씨도 좋네. 우리 아들도 이랬으면 좋겠어.”
“과찬이세요.”
무영은 방긋 웃고 나서 다시 책에 시선을 집중했다. 이제 진짜 빡공 들어간다! 출석률이 저조해서 여차하면 C 뿌린 학기가 될 테니까.
“저 왔습니다아!”
그리고 몇 분 후, 조용히 가라앉았던 촬영장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이히준이 제 매니저와 함께 도착한 것이다. 양손 가득 커다란 종이백을 들고.
“진짜 덥죠? 다들 시원한 커피 한잔하세요! 과자도 작지만 준비했습니다.”
“오오. 뭐야. 히준이가 사는 거야?”
“그럼요. 다들 고생하시는데 이 정도는 해야죠.”
“갑자기 웬일이래?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제가 너무 오랜만에 샀나요? 하하!”
“오랜만? 거의 처음 같은데.”
이히준은 캔커피를 나눠주며 너스레를 떨어댔다.
바로 며칠 전 있었던 무영의 죽음 씬 이후, 스태프들의 수군거림이 더욱 거세진 것을 느낀 거다.
역시, 이히준이 무영에게 까인 것이 분명하다고.
“자!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사실이든 아니든, 이제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현장 모두가 무영과 히준의 실력 차를 알아버렸다는 게 중요하지. 연기력으로 여론을 못 뒤집으면, 외적인 걸 쓸 수밖에.
젠장. 이게 무슨 사서 고생인지!
“고마워. 히준 씨. 잘 먹을게.”
“역시 연차가 답인가? 센스가 있어? 응? 하하!”
하지만 반응은 즉각적이고 나쁘지 않았다.
사람들과 함께 만드는 작품이기에, 혼자 잘한다고 만사가 아니거든. 분위가 좋아야 능률도 올라가는 법이다.
“삼촌. 나도 줘요.”
“커피밖에 없는데. 넌 거기 음료수 있네.”
“와. 너무해!”
“대신 쿠키라도 먹어라. 하무영. 하나 해.”
타악-!
히준은 무영에게 캔커피를 던졌다. 시원하긴 하다만 차 안에 오래 있었는지 반쯤 식은 상태다. 옆에 어색하게 앉아 있던 운정길이 괜히 시선을 돌리며 헛기침했다.
“크흠.”
“어? 우리 스태프세요? 처음 뵙는데.”
“저기, 방송스토리 소속입니다.”
“아. 보조 출연자?”
캔커피를 하나 더 내밀려면 이히준이 손을 거두었다. 인원수 계산해서 사 온 거라, 모자라면 안 되잖아. 그는 방긋 웃으며 몸을 돌렸다.
“수고하세요.”
어차피 하루 보고 말 사이. 이히준은 미련 없이 다른 스태프들을 찾아 떠났다. 그걸 멀뚱히 보던 무영이 운정길에게 캔커피를 내밀었다.
“아저씨. 이거 드세요.”
“뭐? 아니야. 학생 먹어요.”
“저 커피 안 마셔요.”
“진짜 괜찮다니까?”
“……저도 진짜 안 마시는데?”
거듭 오고 가는 권유와 거절. 남자는 무영이 계속 양보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진짜, 커피 안 먹는다니까. 믿질 않아.
“연기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아주 능청스러워?”
“아니…… 저 진짜 커피 안 마셔요.”
“아무튼, 잘 마실게요. 여기 근처에는 뭐 슈퍼도 없어서 딱 목말라 죽을 지경이었는데.”
“세트장이 좀 크죠?”
미군 부대 개조해서 만든 거라 위치 자체도 외딴곳이다.
“근데 나 혼자 이렇게 호사 누리면 좀 그래서.”
“다 처음 만난 분들 아니에요?”
“그렇긴 한데. 이 일 오래 해서 그런지 보는 사람들끼리는 자주 현장에서 자주 봐요. 이건 내가 갖고 있다가 조금씩 아껴 먹을게. 하하. 고마워요. 정말. 그쪽도 더울 텐데.”
“아니요. 정말 괜찮아요.”
“우리 드라마 현장에서 보면 좋겠네. 그럼 내가 잘 챙겨줄 텐데. 하하핫!”
십 년의 세월이 담긴 허세였지만, 무영은 그냥 웃기만 했다.
그래. 이쪽 업계 은근히 좁잖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또 만나겠지.
“내가 재밌는 얘기해 줄까요? 아 일전에 [휘뚜루마뚜루> 찍는데 거기 여주인공이-”
“아 잠시만요.”
무영은 운정길의 말을 끊으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진동이 울리는 게, 문자다. 아마 유찬이겠지?
“어?”
아니네.
[받았냐? 아직이냐?]엔빈이다. 생뚱맞은 의문의 메시지. 혹시 잘못 보낸 건가 싶어 답장하려 하는데…….
“하무영 씨! 하무영 씨 계세요?”
“네? 저요?”
“무영아! 이게 다 뭐냐?”
촬영장 정문 두 개를 활짝 열고 들어오는 작은 분홍색 트럭. 형형색색의 풍선과 꽃들이 달려 있었다. 길에 그냥저냥 앉아 있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며 일어섰다.
“……어라?”
[★☆한밤포차에서 질질 짜던 고딩이 대학생이 되었네☆★ [역병> 관계자 여러분 파이팅! 대박 나시길 바랍니다. 무영이 잘 좀 봐주세요. -엔빈-]커피차였다. 종류만 해도 다섯 가지! 게다가 쿠키와 과자, 과일 디저트까지 준비된. 무영은 멍하니 현수막을 보더니, 웃음을 빵 터뜨렸다.
“이게 뭐야!”
보통은 커피차 받는 사람 얼굴로 보내지 않나? 왜 엔빈, 제 얼굴을 걸어둔 거야? 무기력하게 대기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몰려들었다.
“엔빈 씨가 보낸 커피차입니다. 다들 와서 한 잔씩 하세요!”
커피차 안의 바리스타가 큰 소리로 외쳤다.
“와. 대박이네.”
“그러게요. 더웠는데 잘 됐다. 저 아아 주세요!”
“무영아. 고마워. 잘 먹을게!”
캔커피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지. 얼음을 와작와작 씹으며 행복감에 젖는 스태프들. 무영은 계속 믿기지 않는다는 듯 헛웃음만 지었다.
“아. 이거 먹어도 되나요?”
그때, 한 보조 출연자가 다가와 물었다. 무영은 뭘 묻냐는 듯, 모두에게, 특히 보조 출연자들에게 손짓했다. 내가 내는 것도 아닌데요. 당연하죠!
“다들 와서 드세요! 많이 드세요! 뽕 뽑아주세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저는 시원한 아이스티! 얼음 가득 넣어서요.”
무영은 키득대며 인증 사진을 찍었다. 감독들과 얘기하던 고경민이 헐레벌떡 다가와 휴대폰을 대신 잡았다.
“내가 찍어줄게. 가서 서봐.”
“아싸! SNS에 올려야지. 대박! 엔빈이 진짜 대박이다! 뭘 이런 걸 보냈대?”
“자자. 하나, 둘 셋!”
찰칵! 찰칵!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순도 깊은 즐거움이다. 무영은 활짝 웃으며 각가지 재미있는 포즈를 취했다.
사진을 열성적으로 찍어주던 고경민.
“인증 사진 올리기 전에 닥터마텔 피드부터 올리자.”
“닥터마텔 거요? 하지만 아직 효정 선배-”
“방금 연락받았는데, 효정 씨 알레르기란다. 닥터마텔 쪽이랑 잘 해결했다 하니까, 우리도 글 올려달래. 거기 대표님이 촬영 끝나고 전화 한 통만 하자더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