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52)
신인인데 천만배우 52화
드라마?
-확실히 연예인들 스케줄이 빡빡하긴 하네요.
“아직 안 주무셨어요? 아니면 일찍 일어나신 건가?”
-그쪽 하루가 끝나기 전에, 꼭 말해두고 싶어서요. 얘기 들으셨죠? 효정 씨 알레르기라는 거.
안 잤다 이거네. 이 사람도 참 독하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촬영을, 그저 통화 하나 하기 위해 기다렸다니. 무영은 속으로 하품을 쩌억- 삼키며 대답했다.
“네. 그렇다 하더라고요.”
-덕분이라는 말이 맞겠죠? 효정 씨도 전혀 생각 못 했더라고요. 자기가 알레르기인지.
“자기 관리 철저한 분이잖아요. 알면 분명 안 먹었을 거예요. 그래도 다행이다. 큰일 나기 전에 알아서.”
빠르게 지나가는 창밖으로 도심의 빌딩 숲이 보인다. 그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 붉은 태양에 건물들이 역광으로 빛났다.
‘저렇게 건물이 많은데, 내가 마음 놓고 쉴 곳이 없네.’
-무영 씨 아니었으면 솔직히 고전했을 거예요. 몸값 있는 배우다 보니, 회사 역량으론 버거웠거든요. 아직 다 마무리된 건 아니지만, 그쪽 소속사가 사과 공문 보내주기로 했으니 결판났죠. 고마워요. 진심으로.
사과뿐만 아니다.
효정의 모델 협상 우선권 역시 따냈다. 어느 정도 가격 선만 맞춘다면 닥터마텔의 전속 모델로 그녀를 기용할 수 있게 된 거다. 물론, 말 그대로 ‘협상 우선권’이긴 하지만.
“아니요. 제가 뭘, 딱히.”
무영은 피곤하고 귀찮은 마음에 대충 중얼거렸다. 마음은 잘 받겠으나, 몸이 너무 힘들었다. 게다가 머릿속은 기말고사와 앞으로의 거처로 복잡한 상태.
‘어찌 이 대표님이랑 얘기할 때면 항상 컨디션이 이렇네.’
정신이 서랍처럼 쏙 빠진 것 같다. 그녀의 말이 한쪽 귀로 들어와서 다른 쪽 귀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웅얼웅얼웅얼…….
잠자코 듣고 있던 와중, 한다경의 질문이 훅 들어왔다.
-혹시 필요한 게 있어요?
“집이요.”
-네?
“네?”
둘은 동시에 놀라고 말았다.
그녀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되돌아온 엄청난 대답 때문에. 무영은 자기가 무슨 소릴 한 건가 싶어서. 조금씩 엿듣고 있던 고경민 역시 대놓고 고개를 돌렸다.
“무영아?”
적막. 자동차 엔진 소리만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가만히 사고가 멈췄던 무영이 멋쩍게 웃었다. 한다경 역시 장난기 섞인 말로 받아주었다.
-생각보다 그쪽도 몸값이 비싸네요.
무영은 차가운 창문에 이마를 툭, 대며 사과했다. 도저히 무리다.
“미치겠다. 대표님. 정말 죄송해요. 제가 지금 피곤해서 헛소리가 막 나가네요.”
-아니요. 괜찮아요. 잠 확 깨고 좋은걸요. 근데 아직 집을 걱정할 나이는 아니지 않나요?
“무슨 소리세요. 대표님 혹시 재벌이세요? 내 집 마련은 남녀노소, 대한민국 국민의 염원인데.”
혹시 재벌이냐는 말에 한다경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자신은 그들과 좀 다르다고 생각했건만, 이렇게 문득문득 조각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뭔가 일반적인 사고의 결이 다르다는 조각 말이다.
“곧 기숙사 빼야 해서 그것 때문에 정신이 없거든요. 말이 헛나갔어요. 죄송해요.”
-아니, 뭐…….
“근데 제가 좀 피곤해서 그만 끊어도 될까요? 대표님 일 잘 풀리셔서 정말 다행이고 기쁘네요. 앞으로도 건승하세요. 파이팅.”
-그래요. 고마워요. 푹 쉬어요.
무영은 와다다- 마무리하는 말을 쏟아내며 통화를 끝맺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고경민이 의아해했다.
“그렇게 끊었어?”
“네. 형 저 조금만 잘게요.”
“뭐 필요한지 물었잖아. 사례하려고 했던 거 아니야?”
엉뚱하게 집이라고만 안 했어도 적당한 뭔가를 받았을 텐데. 무영은 돈 다 날린 사람처럼 허탈하게 창밖만 바라봤다.
“……아아. 진짜 난 모르겄다. 난 바보다. 바보 똥개.”
“……한숨 자라. 잠이 문제네. 문제.”
눈물을 머금으며 눈을 붙이는 무영. 끄응끙, 강아지처럼 앓는 소리를 몇 번 내더니 이내 쌕쌕거리며 곯아떨어졌다.
* * *
‘특이하네. 참.’
한편, 한다경은 방금 있었던 무영과의 통화를 복기했다. 보통 필요한 게 있냐고 물으면 없다 하고, 사례금이라도 챙겨주겠다며 흘러가는 게 일반적인 흐름 아닌가?
“집이라. 집……?”
“무슨 집? 집 필요해?”
“아. 깜짝이야. 오빠! 노크 안 해?”
“했는데 네가 못 들었잖아.”
한다경은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셋째 오빠 한삼경이었다. 그나마 이복 오빠 중 가족처럼 지내는 존재. 세상 유일한 그녀의 편.
“잠은 자면서 하냐?”
“할 거 다 하면 회사는 누가 굴려?”
“독하다. 독해.”
그는 다경의 화장대에 초대장을 내려놓았다. 흰색에 금박 테두리가 아주 고급스러운.
“네 새언니 자선 파티. 한 달 후에.”
“나 시간 없는데.”
“시간은 만드는 거야. 이번에도 안 오면 엄마가 꼬투리 제대로 잡을 요령이니까, 적당히 해.”
한다경은 립스틱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삼켰다. 오빠는 여동생의 어깨를 부드럽게 토닥이며 무언의 위로를 해주었다. 그가 몸을 돌려 나가려고 할 때였다.
“오빠. 근데 부용 오빠 혹시 집 남는 거 있어?”
“집? 무슨?”
“그냥, 안 쓰는 거.”
한삼경의 친구인 부용. 사실 이름인지 별명인지도 모르지만, 강남의 잘 나가는 임대업자라고만 대충 들은 적 있다. 그는 곰곰이 턱을 매만졌다.
“……있을걸? 용강동 쪽 오피스텔인데, 세입자가 자살했거든. 그 때문인가 팔리지도 않고, 세 놓아도 금방 빼더래. 터가 텄다면서. 완전 애물단지라고 하더라. 근데 네가 왜?”
“컨셉 촬영이나 뭐 그런 거 때문에. 레지던스를 빌릴까 생각 중이거든. 한두 달 정도?”
“그래? 위치는 괜찮겠네. 부용이한테 물어볼까? 어차피 노는 거라 그냥 쓰라고 할 것 같은데.”
한다경은 그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오빠가 나가고, 혼자 남은 그녀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봤다.
“……따지고 보면 이게 이득이지? 서로에게.”
사례금으로 백에서 이백 정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정도면 수지타산이 잘 맞은 것 같다.
주는 쪽은 출혈 없이 생색낼 수 있고, 받는 쪽은 원하는 걸 얻었으니 만족할 거고.
“참나. 나 진짜.”
살다 살다 이런 거래를 다 해보네.
한다경은 립스틱을 완벽하게 바른 후, 스툴에서 일어섰다. 오빠가 준 초대장은 서랍으로 직행. 본인은 본인의 회사로 출근. 이 저택에서 씨엘로에 몸담지 않은 건 그녀뿐이다.
* * *
“우아! 미친! 교수님 해도 해도 너무하네.”
“그치? 프린트에서 나온다는 말이 그걸 다 외우라는 말인 줄은 몰랐네.”
“분량이 많아서 그렇지, 난이도 자체는 쉬웠어. 나쁘지 않았음. 5번이 좀 헷갈리더라.”
시험이 끝난 강의실.
과대와 그 무리가 출제 문제를 서로 나누며 떠들어댔다. 그들 사이에 엎드려 있는 한 남자.
“무영아. 너 괜찮냐?”
“망해써…….”
“우냐? 야 우냐? 얘 우는디?”
“진짜 쉬웠어? 난 하나도 모르겠던데.”
무영은 고개를 휙 들며 절망했다. 망했다. 그래,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다. 출석도 엉망인데 시험도 개판인 게 확실했다.
“장학금은 고사하고 다 날렸어.”
“으이구. 일단 일어나서 밥 먹으러 가자. 배 좀 차면 기운 날 거야.”
친구들은 그의 가방을 쭉 끌며, 무영을 일으켰다. 영혼이 빠진 상태로 터벅터벅. 과대가 앞서 걸으며 물었다.
“영화 촬영은 잘되어 가고?”
“응. 이제야 슬슬 시간 비기 시작하는데, 학교는 방학이네. 하하.”
아르바이트. 그것만이 살길이다.
무영은 오랜만에 다시 과외 사이트에 들어가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때, 친구들이 한 마디씩 덧붙였다.
“그러면 다른 거 또 들어가도 되는 거 아니야?”
“맞아. 개봉 시기만 안 겹치면 영화 또 찍어. 그거 한 번에 계약금 수백씩 받는다며?”
“수백은 아니고, 백 단위긴 해.”
“한 번 더 당겨서 월세 보증금이라도 마련하면 되잖아. 그게 낫겠네. 경험도 쌓고, 돈도 벌고.”
“아니지. 이번에는 영화 말고 드라마 찍어라!”
“드라마?”
무영은 학식 포스기에서 제육볶음을 선택했다. 친구들은 제 일처럼 들뜬 표정으로 떠들어댔다. 연예계 가십만큼 재미있는 게 또 어디 있겠는가.
“들어보니까, 그건 회당으로 출연료를 받는대. TV 방영될 때마다 또 주고. 가수들 저작권 타듯이 그렇게 받는다던데.”
“맞아. 그리고 누구더라. 이중기였나? 인터뷰한 거 봤는데 촬영 개빡세서 한 달 동안 집에 못 들어갔다더라. 너 방학에 붕 뜬다며? 촬영장에서 살아.”
따악!
한 친구의 어처구니없는 말에, 과대가 뒤통수 꿀밤으로 응징했다.
“애 수명 깎인다.”
“왜 때려! 정 방법 없으면 그렇게라도 하는 거지.”
“너나 그렇게 하세요.”
무영은 테이블에 앉아 골똘히 생각했다. 혹하는 말이다. 지방 촬영 같은 걸 가면 거기서 숙소 잡아주잖아.
“나쁘지 않은데?”
“봐봐. 무영이도 좋다 하네.”
“근데 당장 다음 주가 종강이야.”
캐스팅부터 촬영 개시까지 적어도 두어 달은 걸릴 건데. 지금은 늦었지. 대충 한 학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았으니까, 다음부터 제대로 준비하면 된다. 다음부터. 흐윽…….
지이잉. 지이잉.
눈물로 간을 해서 그런가.
제육이 짜다 짜. 무영은 상심한 표정으로 밥을 먹으며 휴대폰을 들었다. 보라의 전화였다.
“하이하이.”
-넌 왜 연락이 없냐?
“새벽에 촬영 끝나서. 지금은 시험 쳤고. 나중에 저녁에 할 생각이었는데. 급한 일이야?”
-시험? 아아. 맞다. 기말시즌이구나.
보라는 깜빡했다는 듯 중얼거렸다.
입학하자마자 드라마 촬영에 들어가 학교생활을 거의 못 했던 탓이다. 무영은 입안 가득 고기를 씹으며 물었다.
“근데 왜? 무슨 일 있어?”
-너 아르바이트 안 할래? 나 지금 촬영하고 있는 거, 이미지 단역 필요하다 하시네. 피디님께 친구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관심 있어 하셔. 방영 횟수는 총 4회분. 회당 30이니까 계산되지?
“헐!”
무영은 숟가락을 든 채로 벌떡 일어났다. 주위에서 밥 먹던 학생들 시선 집중.
“할래! 안 그래도 그 얘기 하고 있었는데.”
-그 얘기? 뭐?
“드라마 해보면 좋겠다 싶어서. 영화 촬영도 대충 마무리됐거든. 보름 정도는 여유 있어.”
-그럼 오늘 피디님 뵈러 올래? 말씀드려 놓을게. 다른 사람이 채가기 전에 빨리 잡는 게 좋을걸?
“갈게! 가겠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달려가겠습니다! 무영은 두 손으로 휴대폰을 공손히 잡으며 연신 대답했다.
-그럼 문자 할게.
“아. 잠깐만.”
그러고 보니, 중요한 걸 안 물어봤잖아.
“이미지 단역이면 어떤 역이야?”
대사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지만, 피디님 마음에 드려면 일단 준비는 해가야 했다. 최선을 다해서 거기 맞춰가리라.
무영이 열의를 태우는 중, 보라의 웃음 섞인 대답이 들려왔다.
-양아치.
“응?”
-일진이라고. 일진. 피디님이 한밤포차에서 너 교복 참 잘 어울린다고 하시더라. 준비 잘해서 와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