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53)
신인인데 천만배우 53화
양아치 연기
“장난까냐…….”
실로 오랜만에 얻은 휴일. 준호는 퉁퉁 부은 얼굴로 눈앞의 광경을 지켜봤다. 갑자기 찾아온 것도 놀랄 일인데, 저 차림새는 뭐야?
“어때?”
“뭐가? X나 거지 같아.”
교복 단추란 단추는 다 헐렁하게 풀어헤치고, 마이는 패션쇼 가는 것처럼 걸친 무영. 옷만 거지 꼬라지인가. 머리에 왁스는 왜 저렇게 바른 건데?
“양아치 같지 않아?”
“찐따 같은데?”
“헐. 그러면 안 되는데.”
무영은 좌절하며 의자에 철퍼덕 쓰러졌다. 보라가 알려준 정보에 의하면, ‘여주인공에게 홀딱 반해 따라다니는 일진의 친구’가 바로 무영에게 주어진 단역이었다.
“빨리 어떻게 좀 해봐. 넌 느낌 알잖아.”
“내가 뭘? 나 범생이었어. 모범생까진 아니더라도.”
“이상하다. 너 양아치 아니었냐?”
“미쳤네. 내 뭘 보고?”
“여자 엄청 좋아하고. 툭하면 야자 째서 선생님한테 구레나룻 잡혀 오고. 수업 시간에 장난은 기본이요 사고도 많이 쳤잖아. 교장 쌤 화분 도미노처럼 박살 낸 거 너 아니야?”
술술 읊는 전적에 준호가 눈만 깜-빡.
잊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좀 재미있게 놀긴 했지. 근데, 그 정도는 귀여운 애교 수준 아닌가? 활기찬 고등학생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야. 양아치 놈들은 그, 좀 달라요. 범법 행위가 기본으로 깔려 있다고.”
“오호. 두 번째 서브남이 범법자라.”
“드라마에서는 캐릭터 살리는 용도로 쓰는 거지. 거친 매력! 반항아! 거의 뭐 클리셰 정석 아니냐? 너 로맨스 드라마 안 봤어?”
“응. 수사물이나 그런 게 더 재밌잖아.”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표정이다. 양아치를? 왜? 준호는 기지개를 쭉 켜며 잠을 완전히 떨쳤다.
“그리고 은근히 일진 중엔 멀끔한 놈도 많아. 3반에 박선구. 걔는 공부도 잘했을걸?”
“……걔가 일진이었어?”
“그래. 됐다.”
네가 그러면 그렇지. 눈치코치도 없는데 관심까지 없으니 뭘 알겠냐. 준호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화장실을 가리켰다.
“가서 머리 감고 와. 왁스 그따구로 바르는 거 아니라고. 옷도 제대로 입고. 짜식아. 형님이 또 스타일링 좀 해줘야겠구먼. 응?”
“네에. 그걸 원했습니다. 하는 김에 방송국까지 운전도 부탁합니다.”
고경민은 태석의 촬영 때문에 당장 시간을 뺄 수가 없었다. 당일 잡힌 일감이니 어쩔 수 없지. 무영은 기숙사에서 교복만 챙겨 들고 준호의 집을 찾았더랬다.
“보라 만남?”
“당연쓰.”
“오케이. 접수한다.”
무영은 머리를 감으며 고민에 빠졌다.
‘이미지’ ‘단역’이라. 인물이라기보다 배경에 가까운 배역이다. 대사가 있다면 좋겠지만, 이름도 없이 그저 ‘친구1’로 나올 텐데.
‘잘할 수 있을까?’
쏴아아-
걱정되었다. 이제까진 인물의 대사와 이름, 설정 등 모든 것이 살아 있는 사람처럼 유기적이었다. 학원에서 ‘주제’를 통해 짧게 표현한 적은 있어도,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건 처음이니.
“와봐. 머리 말려.”
“그냥 수건으로 탈탈탈 하면 안 돼?”
“양아치들은요, 꾸미는 걸 좋아해요. 화장하는 것도 아닌데, 어딜 손 보겠냐? 머리. 옷. 신발. 이게 중요하거든. 너 발 사이즈 나랑 똑같지?”
무영은 준호에게 머리를 맡기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 같은 친구 둔 걸 다행으로 알아라.”
유행에 민감한 패션 업계에서 갈리고 있는 준호였다. 안 그래도 그런 거에 민감한데, 요즘 스타일은 딱 꿰고 있지.
“마침 머리도 갈색이네. 좋다. 이 형아가 하무영이 쌩양아치로 만들어준다.”
“앗. 쌩까진 안 가도 될 듯.”
“어허. 기다려.”
준호는 입 다물라는 듯 드라이기를 흔들었다. 따뜻한 바람이 살랑살랑. 갈색 곱슬 머리칼을 부드럽게 흩트렸다.
“양아치도 종류가 많다. 네가 생각하는 건 바이크에 못 박은 배트 들고 다니는 애 같은데. 고건 너무 하급이지. 제일 악질인 게 뭔지 알아?”
“뭔데?”
“다 가진 놈. 돈도 많고 공부도 잘하는데 성격만 더러운 놈. 당해낼 수가 없어. 그런 애들은.”
* * *
여의도 MBV 방송국 로비. 보라가 팔짱을 낀 채 주위를 둘러봤다. 촬영하던 도중이라, 카페 아르바이트 복장이다.
“보라야-!”
수많은 인파 속 익숙한 두 남자가 보인다. 아니, 보였다. 둘 다 키가 커서 머리통이 불쑥 튀어나왔거든.
“하이하이!”
“왜 이렇게 늦었어?”
보라는 무영을 위아래로 천천히 훑었다.
양아치 역이라 해서 혹시 이상하게 입고 올까 봐 걱정했는데. 깔끔하다. 교복 각도 완벽하고, 신발과 가방도 최신형.
‘양아치라기보다 부잣집 도련님 같은데?’
“준호가 길 잃었어. 길치면서 내비를 못 믿어요.”
“아니, 내가 여기 예전에 와봤는데, 그때는 막혀 있었다고. 억울해 죽겠네. 진짜. 그리고 길치? 너한테 그런 말은-”
“시끄러. 됐고, 빨리 올라가자. 방문증 받아와.”
보라가 둘의 등을 밀며 재촉했다. 회사원처럼 카드 리더기를 찍고서야 엘리베이터 통로로 들어설 수 있었다.
“촬영 중이었어?”
“한 시간 정도 대기 시간 났어. 지금은 남주랑 여주 둘이서 찍고 있거든. 피디님 만나면 기다리라고 하실지, 아니면 조연출(AD)한테 넘길지 모르겠다.”
“뭐가 더 좋은 건데?”
“기다리라고 하는 거.”
무영과 보라가 얘기하는 동안, 준호는 연신 보라를 힐끔거렸다. 오랜만에 보니까 더 예뻐진 것 같다. 그는 넌지시 기억을 더듬었다.
“주인공이 다령이었나?”
보라 코 후려친.
그날 좀 심했다 싶긴 했는지, 다령은 이전처럼 발작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피곤하고 더럽지만, 참고 일할 만은 하다 이거지. 보라는 준호에게 주의했다.
“허튼짓하지 마.”
“에이. 날 뭐로 보고? 이래 봬도 사회생활하는 사람인데. 나보다 하무영 쟤 입을 더 걱정해야지. 필터가 없어요. 있는데 구멍이 너무 커.”
내가 뭘? 무영은 뚱한 표정으로 준호를 노려봤다.
띵동,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보라는 앞장서서 걸었다. 긴 복도가 딱 미디어에서 봤던 방송국의 모습 그대로다.
“촬영팀 다음 스케줄은요?”
“야야. 여기 누가 이렇게 소품 두래? 빨리 치워.”
“죄송합니다.”
복도 양쪽으로 널려 있는 알 수 없는 장비와 소품들. 그리고 스태프들의 짐 따위. 보라가 문을 열자 세트장이 나타났다.
“오오.”
한밤포차때 한번 겪었던 무영과 달리, 준호는 문 하나로 달라지는 세상이 신기한 모양이다. 뷰파인더 앞에 앉아 있는 중년 남자. PD님인가?
“AD님. PD님은 어디가셨어요?”
AD구나. 조연출.
“어? 아, 잠시 밑에. 이 친구는?”
“그때 말씀드렸던 하무영이에요. 무영아, 이쪽은 박상일 AD님.”
“안녕하세요. 하무영입니다.”
“어어. 반가워요.”
90도로 예의 있는 몸짓. 에이디는 의자에 몸을 한껏 기대며 거만하게 무영을 훑었다. 풍만한 배가 남산처럼 솟아올랐다.
“와꾸는 좀 되네.”
‘헐.’
뭐야. 말 본새가 왜 저래?
무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라를 쳐다보자, 그녀는 그저 무시하라는 듯 눈을 깜빡였다. 거칠다. 상당히 거칠고 무례해.
“근데 들은 거랑 좀 다르다? 자유분방한 이미지라며. 완전 틀에 박혀 있는데? 초중고 잘 다니고 대학까지 무사무탈 졸업할 얼굴이야. 친구라서 꽂아주기? 키야. 신인들이 벌써부터 밀고 당기고, 서로 대단하다. 대단해.”
그는 코를 킁, 훌쩍이며 건들거렸다.
뭐랄까. 진짜 양아치는 여기 있었구나. 준호는 한발 물러서서 상황을 지켜봤다. 방송 쪽이 힘들다고는 들었지만, 위압감 조성 장난 없네.
“무영이 이미지는 PD님이 말씀하신 거고요, 전 그냥 연기 잘한다고만 말했는데요.”
보라가 정정하자, AD는 쓰읍- 거리며 대놓고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제 좀 알겠다.
‘기다리는 게 좋다는 뜻이 이거구나. AD 성격이 저래서 기다리고 PD님이랑 보는 게 낫다는 말이었어.’
조명과 기기들의 열기 때문인지, 그는 연신 땀을 뻘뻘 흘려댔다.
“보라야. 너 때문에 내가 열이 확 오른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아니. 나쁠 거 없지. 나쁜 의도가 아니었을 텐데. 아닌가? 그런 의도였나?”
그녀는 연신 난감한 미소만 지었다. 친구들 앞인데 이래서 되겠는가. 준호가 끼어들며 박상일의 시선을 그에게 돌렸다.
“안녕하세요. AD님.”
“이쪽은 또 누구신가?”
“본투리 MD 임준호입니다. 보라랑 무영이가 회사 SNS 모델을 했었거든요.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그리고 명함까지.
갓 스무 살 된 아이답지 않은 인사법에, 박상일이 멈칫거렸다.
“아. 본투리? 여기 요즘 핫하잖아. TV 나오는 애들 죄다 그것만 입더만.”
“하하. 감사하게도요. 여기는 아직 협찬이 없죠?”
오? 정말?
무영이 눈을 댕그랗게 뜨고 준호를 쳐다봤다. 언제 그렇게 됐는데? 시꺼, 그냥 정신 차리니 다들 입고 있더라. 둘은 무언의 시선으로 대화를 나눴다.
“내가 알기론? 좀 줘봐요.”
“기회만 된다면 언제든지요! 하하!”
“그럼 저희는 대기하고 있을게요.”
보라는 두 친구의 팔을 잡아끌며 박상일에게서 떨어뜨려 놓으려 했다. 가까이해서 하등 좋을 게 없는 사람이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으응. 아니. 왜?”
“피디님 오시면-”
“지금 내가 여기서, 이렇게 앉아 있잖아? 나랑 미팅하면 되지. 피디님 시간 좀 걸려. 하무영 씨. 괜찮죠? AD라서 성에 안 차고 뭐 그런 거 아니죠?”
그의 물음에 무영이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하, 거참. 아무리 봐도 이미지가 아닌데. 너무 순진하잖아. 부들부들!”
안타까우면서도 묘하게 무시하는 말투. 거참 희한하다. 저런 화법을 구사하는 건 또 처음 보네.
‘캐릭터 연구라도 해볼까?’
원장쌤이 그랬잖아. 주변의 모든 것을 저장해 두라고. 그게 나중에 연기할 때의 자양분이 될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눈앞의 불쾌했던 대상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럼 어떻게, 보라가 그-렇게 자랑하던 친구 연기 좀 볼까? 얼마나 잘하는지?”
박상일은 거만하게 다리를 꼬았다. 지나가던 스태프들이 힐끔힐끔. 너무 개방된 공간이라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고,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인다.
“여기서요?”
“응? 왜? 싫어? 여기가 곧 현장이고 세트야. 슛 들어가면 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연기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면 쓰나? 안 되겠네, 이 친구. 기본이 안 되어 있어.”
음. 시비는 저렇게 터는 거군.
무영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 알겠다는 듯 감탄했다. 점점 데이터가 축적되는 기분이다.
‘헐-!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양아치 연기!’
인물의 삶을 살되 인물이 없으면? 만들어내면 되지. 실존해 있는 누군가를 따서. 그리고 다시 그 인물의 삶을 빌리면 되는 거야. 좋아.
“안 할 거야?”
“아니요. 전 괜찮은데, 혹시 AD님이 곤란하실까 봐요. 연기 시작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무영은 주위에 널브러진 의자 하나를 끌고 왔다. 그리고 AD 앞에 놓고 마주 앉았다. 등받이가 앞으로 가게끔.
다들 제 할 일 하는 척하지만, 눈과 귀는 그들을 향해 있었다.
“내가? 뭘?”
그냥 서 있어도 눈에 띄는 삼인방인데, 저러고들 있으니. 무영은 대답 없이 그냥 히죽 웃었다.
“……?”
굉장히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했다는 듯. 그의 눈빛이 점점 위험하게 변했다. 여전히 웃고 있지만 내면에서는 칼을 갈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분위기.
“하하. 이 친구, 뭐 하자는 거야?”
말없이 계속 쳐다만 본다. 빤히, 뚫어질 것처럼. 박상일이 어색하게 따라 웃으며 괜히 시선을 돌렸다. 이상하게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기(氣)가 밀리는 기분.
“와아-”
무영은 앞으로 온 등받이에 턱을 기대며 신기하게 중얼거렸다. 촉촉하게 젖어 있는 웃음기가 서늘하다.
“돼지 새끼가 쪼개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