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56)
신인인데 천만배우 56화
구경꾼들
“안녕하세요!”
새벽 기운을 쫓으려는 듯, 무영이 보다 활기차게 인사했다. 시트를 확인하던 스태프가 무영을 알아봤다.
카메라랑 조명에 불이 들어와 있는 거로 봐서, 촬영 도중인 것 같은데…… 다들 어디 갔대?
“하무영 씨?”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AD님. 하무영 씨 왔는데요.”
그는 바로 조연출을 불렀다. 무영이 오면 바로 자신에게 알려달라는 지시가 있었기 때문. 박상일은 배를 벅벅 긁으며 다가왔다.
“어허. 왔네?”
“안녕하세요. 조연출님.”
“스케줄이 없나 봐?”
전날 저녁에 잡아도 새벽에 나오다니. 신인인 그를 한껏 얕잡는 말투였으나, 무영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네. 마침 다행이죠? 다른 스케줄 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다음부턴 좀 여유 있게 잡아주세요. 몇 시간 전에 알려주시면 놓칠 수도 있어서요. 감사합니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대답까지 미리 해버린 무영. 옆에 서 있던 스태프가 조연출을 힐끗 쳐다봤다.
설마, 진짜? 촬영 일정을 전날 저녁에 알려줬다고? 지금 새벽인데? 미친 거 아니야?
“크흠. 어. 그래. 저기, 저쪽 가서 대기해.”
그 시선을 알아챈 조연출이 헛기침하며 무영을 쫓아내려 했다.
그가 가리킨 저쪽이란, 촬영장 끄트머리라 구경꾼들이 닿아 있는 곳이었다.
“저 메이크업은요?”
그의 요청에 조연출이 피식 웃기만 했다. 그리고 위아래, 거만하게 훑는 눈빛.
“메이크업은 무슨.”
“네?”
“저번에 피디님이랑 얘기했잖아. 너드한 이미지로 간다고. 안경은 챙겨 왔지?”
“여기 있죠.”
“그럼 됐네. 옷도 그렇게 가.”
띠용. 진심인가요?
머리는 모자에 눌려 엉망이었고, 티도 잠잘 때나 입는 너덜너덜한 것이었다. 교복은 따로 준다 해서 그냥 입고 온 건데.
그리고 너드면 너드지, 더러운 건 아니잖아.
“하의는 챙겨 줄 테니까 맞춰 입고.”
“그럼 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눈곱이라도 떼어야겠어. 침 자국 확인도 하고.
하지만 조연출은 바로 윽박지르며 그를 압박했다.
“어딜! 언제 슛 들어갈지 알고? 너 운타랑 아직 얼굴도 못 봤지?”
일진 서브남을 맡은 운타. 역시 아이돌 출신으로 평소에도 다부진 몸과 거친 매력으로 인기가 많은 아이돌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구경꾼들이 많았던 거구나. 조금은 이해가 된다.
“지금 옷 갈아입으러 갔거든? 금방 오니까, 오자마자 한번 맞춰보고 바로 들어가. 자리 비우지 마라. 단역 하나 없다고 야외 촬영 늘어지면 그 얼마나 개 민폐냐? 응?”
그가 사악하게 씨익 웃었다.
이게 바로 그가 생각한 최상의 복수였다. 모공까지 다 보이는 요즘 텔레비전에 쌩얼로 나간다는 게 얼마나 큰 리스크겠는가.
‘어디 한번 당해봐라. 싸가지 없는 놈!’
도자기 피부를 가진 여배우들은 물론 어지간히 자신 있는 톱배우들도 꺼리는 일이다. 예능에서 보여주는 쌩얼도 다- 자연스럽게 투명메이크업을 한 상태인 거지.
“어, 그래도…….”
그는 무영의 말을 듣지 않고 몸을 휙, 돌렸다. 그리고 바쁘다는 듯 부산스러운 스태프들 사이를 정신없이 누볐다. 차를 처리하고 온 고경민이 무영의 어깨를 잡았다.
“왜 그래?”
“저 메이크업하지 말라는데요?”
“뭐? 왜?”
“몰라요. 너드한 이미지로 간다면서 화장실도 가지 말라고.”
그 말을 들은 고경민은 바로 무슨 상황인지 알아차렸다. 꼽을 주는 거다. 신인이라고 온갖 꼬투리에 눈치, 거기에 괜한 드잡이. 그는 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어떡하냐. 형이 준비를 좀 해올걸.”
“준비요? 어떤?”
“화장품이나 뭐 그런 거.”
잘 나가는 소속사라면 따로 헤어와 메이크업팀을 붙여줬겠지만, 빅윈은 건물 월세 안 밀리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무영이 웃으며 대답했다.
“도구가 있으면 뭐해요. 손이 똥손인데. 형 평소에 선크림도 잘 안바르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일단 가서 물이랑 휴지만 사다 주세요. 세수는 제대로 해야 할 것 같아요. 저 저기 앉아 있을게요.”
그래도 싸구려 낚시 의자는 준비해 줬다.
의연한 그의 모습에 괜히 미안해지며 안타까운 고경민. 다시금 빽빽한 인파 속에 뛰어들어 편의점으로 향했다.
“하아.”
의자에 앉아 대본을 보는 무영. 바리케이드가 처져 있다 해도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곤란하게 하는 저 조연출.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고민하게 하는군.
‘살면서 이런 적이 처음인데.’
누군가 자신에게 악의를 갖는 것. 아. 참. 아니다. 계부가 있었구나. 그래도 좀 결이 다르지? 그거에 비하면 이건 귀여운 정도니까.
“저기요오.”
“네?”
그때, 뒤에서 누군가 무영을 불렀다.
불콰하게 취한 한 여자.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말을 걸었다.
“혹시 배우예요?”
“네. 신인배우 하무영입니다.”
“대박. 너무 잘생겼어요.”
“감사합니다.”
“이 드라마 뭐예요? 운타 나오는 것만 아는데. 오빠도 계속 나와요?”
오빠라니. 술에 취한 것으로 봐서 최소 무영과 동갑 아니면 누나일 터. 하지만 무영은 그저 웃으며 친절하게 대답해 줬다.
“저는 단역이라 몇 화 안 나오고요. 좋으신 배우님들 많이 나와요. 사전제작이라 완성도도 높을 거고요. 꼭 시청해 주세요.”
배우가 대답해 주자 사람들이 웅성웅성. 무영 쪽으로 몰려들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텅 빈 촬영장보다야 이쪽이 훨씬 재밌어 보이는 건 자연스러운 거지.
게다가 다른 연예인들은 이렇게 반응 안 해준다고. 기껏해야 손 흔들어주는 게 다인데.
“오빠! 닥터마텔 잘 쓰고 있어요!”
“헐! 누구예요?”
“저요! 한밤포차 보고 팬 됐어요오옭!”
저 멀리, 사람들 사이에서 무영의 팬이 나타났다. 키가 작은지 손만 번쩍! 그에게 닿으려는 듯 온 힘을 다해 소리치는 게 귀엽기만 하다. 군중들 역시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와. 저 팬 처음 봬요. 악수 한번 해주세요.”
“아악! 안 돼요. 저 지금 얼굴 엉망이에요.”
“저도 엉망이에요. 오늘 메이크업도 안 하거든요. 빨리, 손잡아주세요.”
무영이 사람들 사이로 손을 쭉 뻗자, 그들이 몸을 틀어 비켜줬다. 즐겁게 술에 취한 한 여자분이 몸 둘 바를 모르며 무영의 두 손을 꼭 붙잡았다.
“소원 성취-! 흐엉.”
“정말 반가워요. 고맙습니다.”
“오빠 근데 왜 메이크업 안 해요? 드라마 촬영하는 거 아니에요?”
아. 이런. 괜한 말은 한 걸까?
무영이 멋쩍게 웃으며 말을 부드럽게 돌렸다.
“오늘 컨셉이 너드한 일진이라, 뭘 안 꾸며도 된대요. 대신 안경 쓸 거예요.”
“그래도 피부 화장은 해야죠.”
“맞아맞아. 근데 피부가 완전 달걀이네. 톤만 맞추고 눈썹만 다듬으면 되겠다.”
“저 투명 립글로스 있어요.”
“이거, 색 진짜 예쁨!”
모두 한껏 꾸미고 술자리를 찾은 사람들이라 그런지, 파우치에 화장품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다. 구경꾼들이 눈빛을 보냈다. 도와줄까요?
“어…….”
“무영아! 여기 물이랑 티슈! 혹시 몰라서 왁스도 사 왔는데, 머리를 어떻게…….”
멈칫. 고경민이 대체 무슨 일이냐는 듯 쳐다봤다. 바리케이드를 넘을락 말락, 선 사이에 서 있는 무영과 그 뒤의 구경꾼들이 동시에 시선을 맞췄으니.
“형. 그거 주세요.”
무영은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선을 넘었다. 낚시 의자를 든 채로. 군중들 사이로 파묻힌 그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잘 부탁합니다. 학생 역이니 과하지 않게 해주세요.”
“자기야. 자기 머리 그거 좀 해줘 봐.”
“나? 내가?”
“머리 싹 넘기는 거.”
“혹시 퍼프 새것 있는 분? 눈썹 칼이랑.”
“저 있죠. 무영 씨, 나중에 여기에 사인해 줘요.”
신기한 광경이었다.
술에 취한 사람들. 대학로의 젊은 기운. 무영의 구김 없는 성격 탓에 일어난 낯선 풍경. 고경민은 멀뚱히, 촬영장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사실 사람들에게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는다.
“무슨 일이에요?”
촬영장을 정리하던 스태프가 고경민에게 물었다.
“아, 아니요. 별건 아니고, 근데 촬영은 언제 들어갈까요? 배우들은 다 어디에 있는지…….”
“금방 올 거예요. 아까 촬영하다가 토사물을 밟고 미끄러졌거든요.”
홀리쒯.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배우는 배우 나름대로 기분 더러울 것이고, 담당 스태프는 일 제대로 안 했다고 겁나게 까였겠네.
그래서 촬영장 분위기가 그랬던 거구나. 고경민은 목 뒤로 흐르는 땀을 닦으며 무영 쪽을 걱정스레 쳐다봤다.
‘안 그래도 트집이란 트집이 엄청 잡히는데, 이런 환경에서 잘할 수 있을지…….’
그런 매니저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영은 팬들과 즐거운 잡담을 하며 메이크업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 * *
“X발…… 아직도 냄새나는 것 같은데.”
“아냐. 안 나. 향수 냄새야.”
“그거랑 섞인 것 같다고!”
운타가 한껏 짜증을 부리며 옷매무새를 확인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지만, 바닥을 짚은 손목 부분에 냄새가 밴 것 같다.
“대체 촬영 장소를 왜 이딴 곳에 잡은 거야?”
“어쩔 수 없지. 작가님이 여길 상정하고 썼다 하니까.”
“아. 진짜. 새벽까지 이게 뭔 개고생인지.”
“준비 다 됐지? 말씀드린다?”
커다란 밴. 움직이는 대기실인 자동차나 마찬가지다. 그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얼굴을 가리고 촬영장으로 들어섰다.
“운타 씨. 손목은 좀 괜찮아요?”
“네에. 뭐.”
“잠시만요. 송민 씨 불러올게요. 아, 그리고 저쪽이 이번에 친구 역 맡은 하무영 군. 대사 좀 간단히 맞춰주세요.”
스태프가 가리킨 곳엔 훤칠한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거칠게 넘긴 포마드에 은테안경, 날카로운 분위기지만 얼굴 자체는 또 부드럽다. 묘한 매력이 휘몰아치는 남자.
‘뭐야. 왜 저렇게 잘생겼어?’
운타 본인도 어디 가서 빠지는 키가 아니건만, 덩치도 비슷하다.
“안녕하세요. 하무영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에. 안녕하세요.”
“신인이세요?”
신인치고는 상당히 여유로운데.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운타가 대본을 뒤적거리며 묻자 무영이 대답했다.
“한밤포차라고-”
“아. 엔빈이 형이 한 거?”
“엔빈이를 아세요?”
“……저 모르세요?”
엔빈과 같은 소속사이자 사적으로도 굉장히 친한 사이인데. 하긴, 팬들 아니면 알기 힘들지.
“맞다. 미튜브 거기 나왔구나. 익숙하다 했어요. 아하. 그래, 얘기 들은 거 기억난다.”
엔빈이 보고 형이라 하는 걸 보니, 최대 무영과 동갑이다. 무영은 머릿속으로 나이 계산을 하며 최대한 입을 다물었다. 호칭 정리가 깔끔해질 때까지는 조심하자.
“근데 형이랑 친한가 봐요?”
“음. 네. 친구니까.”
오호. 엔빈이가 어지간하면 신인급이랑은 잘 안 어울리는데. 워낙 어렸을 때부터 활동했던 터라 낯선 사람 자체를 경계하거든.
“준비됐어? 피디님도 곧 오실…… 아이, 하무영.”
AD가 무영의 상태를 보고 인상을 팍 찌푸렸다.
“누가 그렇게 꾸미래? 응? 내가 메이크업하지 말라고 했던 거 잊었어?”
“메이크업을요? 왜요?”
옆에서 듣던 운타가 굉장히 놀라며 되물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드라마 촬영에서 화장을 안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그러자 AD는 한껏 비굴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아니, 이제 투샷으로 잡으면 쟤가 너무 튀니까-”
“지금 그 말은 제가 먹힌다는 이 말이네요?”
“그런 뜻은 아니고, 운타 포커싱 잡아주려면 이게 어쩔 수 없어서.”
“아나, 진짜. 어이가 없네. 포커싱 잡을 시간에 바닥 정리나 잘해주세요. 어떻게 토사물을 밟고 넘어집니까? 예?”
운타의 윽박에 조연출이 그저 난처하게 웃기만 했다. 그가 대본을 들어 보이며 AD에게 부탁했다.
“저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본 맞춰야 하거든요?”
“어어. 그래. 십 분 뒤에 바로 들어가게끔 할게.”
그가 몸을 빙글 돌려 도망쳤다. 그 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차는 운타. 촬영장이 개판이다. 사전제작이면서 이런 경우가 어디 있냐고.
지이잉.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을 촬영하고 있는 한 여자. 바로 옆 건물 이 층 술집에서 대포 카메라로 찍고 있는 일명 찍덕이었다.
“와. 진짜 얼척없네.”
최애 운타를 넘어지게 한 것도 모자라, 신인배우랑 얼굴 비교까지? 그것도 묻힌다고?
“이건 못 참지.”
운타의 찍덕은 영상을 돌려보며 제목을 뭐로 뽑을까 고민했다. 촬영 스태프들의 갑질? 아이돌 외모 비교에 안전까지 위험? 뭐가 되었든 다 죽었다잉.
하지만 그녀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운타 옆에는 무영 역시 찍히고 있었고, 팬이 아닌 객관적인 시선으로 본다면 무영이 더 매력적이란 사실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