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59)
신인인데 천만배우 59화
오해
“빨리요.”
무영의 재촉에 그녀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입가에는 피가 묻어 있지만, 그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제 눈에만 보이는 거니까.
“일단 호칭을 제가 그냥, 귀신 씨라고 할게요? 실은요.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 여의고 엄청 힘들게 살았거든요. 세상에 사정 없는 사람 없다 하고, 그쪽이야말로 진짜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된 거 알고 있습니다만, 일단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가정하에 부탁 좀 드릴게요?”
꿈-뻑. 귀신은 축 늘어진 채 앉아서 무영의 말을 듣기만 했다. 살다 살다, 아니, 죽어서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자신을 똑바로 보는 것은 물론이요,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다니.
“이 집 팔 수 있게끔 도와주실래요?”
바닥을 짚고 있는 귀신의 두 손에, 무영이 자신의 손을 포갰다. 연기처럼 폴싹, 귀신의 형체가 흐트러졌다.
“일단 오늘 여기서 인터뷰 촬영이 있을 거예요. 그걸 시작으로 SNS 등 제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이 집을 홍보하는 거죠. 동시에, 부용 씨에게도 제안할 거예요. 부용 씨 아시죠? 여기 집주인. 당신 때문에 골머리 썩히고 있는.”
집 홍보 및 팔 수 있게 도와주면 인센티브 금액을 달라고. 얼마나 될지는 준호가 대신 계산기 두드려 줄 것이다. 수십억짜리 오피스텔이니까, 적어도 몇억은 받지 않을까? 으히히.
“그쪽에서 거절하면 평생- 여기 붙어 계셔도 좋은데요, 만약 오케이 하면 여기서 나가주세요.”
스스슷!
무영의 말에 귀신이 날을 세웠다. 순식간에 도는 한기. 오뉴월에도 서리를 내리게 한다는 귀신의 한이었다.
다짜고짜 여기서 나가라! 그렇게는 절대 못 하지. 무영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혀를 차댔다.
“사람 말을 끝까지 들으셔야죠. 귀신이라 그새 다 까먹으셨나?”
그를 도와주는 대가로 귀신에게 돌아갈 것은…….
“제사상 차려드릴게요. 저쪽, 암왕산에 잘 아는 스님이 있거든요. 어렸을 때 제 신기 문제로 몇 번 뵈었던 분인데, 참 인자하고 좋으셔요. 인센티브 받은 돈으로 거기에 신당을…….”
캬아아앗!
이제는 아예 쇳소리까지 내며 싫어한다. 띠용, 예상치 못한 반응인데. 무영이 눈을 댕그랗게 뜨며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밥 싫어요?”
잡귀들 대부분 제사상이라 하면 환장하는데. 여러 사정이 있겠지만, 보통은 상 차려줄 가족 하나 없어 외로운 존재들이거든.
“그럼 뭐, 어떡하지?”
이건 생각지도 못했다. 그는 고개를 옆으로 축 늘어뜨리며 귀신을 찬찬히 뜯어봤다. 여전히 붉은 눈동자. 그녀의 눈에는 슬픔이 묻어 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밥이 최고인데.”
-……그건 네 생각이고.
“헐! 말하네?”
또렷하게 들리는 육성. 무영이 화들짝 놀라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때, 현관 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하무영. 뭐 하냐? 똥 싸냐?”
준호가 짐을 바리바리 들고 올라온 것이다. 복도로 빼꼼 고개를 내미는 준호. 무영은 휴대폰을 꺼내 통화하는 척, 손을 흔들었다.
“어. 아니. 거기 좀 있어, 나 통화 좀.”
“소파 두고 왜 거기 앉아서 그래?”
“이게 편해서. 너야말로 가서 앉아 있어.”
그리고 훠이훠이! 비둘기 쫓듯 그를 보내 버렸다. 무영은 안방으로 들어가 귀신에게 이리 오라며 재촉했다.
“말할 줄 알면 진작 얘기하지!”
-…….
“또 또 입 다무네? 그러지 말고 원하는 거 있어요? 돈은 필요 없을 건데?”
안방에 옹기종기 앉은 둘. 햇빛이 쨍한 대낮이건만 그녀의 주위는 어둠이 가득했다. 그녀는…….
-배우라며?
나지막이 무영을 쳐다보며 물었다. 아까랑 눈빛이 좀 다르다. 형체가 일렁거리는 데다, 치렁치렁한 머리카락 아래 숨겨져 있으니 잘 보이지 않았다.
“맞아요.”
무영은 손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걷으며 대답했다. 살짝 울음을 머금은 얼굴. 아, 알겠다. 이건 부러움과 질투다. 꽉 깨문 입술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왜, 왜 그러세요? 제가 뭘 잘못했나요?”
-넌 애가 기본이 안 되어 있네. 통성명이랑 자초지종부터 물어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지금 이 꼴을 하고 있는데!
“그, 자살하셨다고 들어서요. 뭐 그리 좋은 얘기라고 물을까요? 그냥 그런 갑다 하는 거지.”
그래. 별로 알고 싶지는 않다.
지금까지 경험상, 깊게 알수록 귀찮은 일들만 꼬였거든. 서로 담백하게 필요한 것들만 주고받는 게 낫지 않겠는가.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봐요. 가능하다면 들어줄게요. 밥은 싫다 하니, 뭐…….”
그녀는 머리카락을 늘어트린 채 고개만 까딱까딱. 뭔가 고민하는 게 분명했다. 무영은 그 앞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려줬다. 째깍째깍,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대학로 45번 길에 하동극장이라고 있어.
“하동극장이요?”
-거기서 열리는 [호랑가시나무>라는 작품이 내 인생 첫 주연이었거든.
그래. 솔직히 축복받은 인생이었다. 부유한 부모님 아래 별 고생 없이 배우의 꿈길을 따라 걸었으니까. 예술의 제일 가난한 곳 아래, 발을 담그면서도 그녀의 삶은 언제나 윤택했다.
“그런데요?”
그런데, 살아가면서 조금은 거칠어야 하는 게 인생이더라. 한번 넘어지니 미끄러워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쭈욱, 우울의 통로에 빠진 그녀는 뭔가를 잡을 새도 없이 죽음에 도달했다.
한순간에. 아주 조금, 힘을 놓았을 뿐인데.
-내가 그걸 못 했어. 준비를 참 많이 했는데.
“미안하지만 몸 빌려주고 그런 건 절대 안 해요.”
-……네 몸 얻다 쓰게?
“넹? 이래 봬도 쓸 만한데?”
무영이 단호하게 손날을 보이자, 귀신이 어이없이 대꾸했다.
-나 거기서 공연하고 싶어. 상대 역 좀 해줘.
사실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한 가지를 꼽으라면 그것뿐. 서지 못했던 무대에서 대사를 치는 것.
“아. 그런 거야 뭐. 근데 여기서는 안 되나요? 꼭 거기서?”
-거기서.
“까다로우시네.”
하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게 아니라 다행이었다. 신당처럼 돈 나가는 것도 아니고. 무영은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그녀에게 당부했다.
“그럼 약속해요. 우리 서로 지킬 건 지키자고. 다른 것도 아니고 수십억짜리 오피스텔이 걸려 있는 문제예요. 그쪽이야 부자니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저는-”
열변을 토하는 무영을 내버려 두고, 그녀는 말없이 일어나 벽을 통과해 버렸다. 시끄럽다는 뜻이었다.
“왜 사람 말을 무시-”
“야. 하무영.”
어이없어 벌떡 일어서자, 그를 더 어이없게 쳐다보고 있는 준호. 둘 사이에 적막만 흘렀다. 준호는 한껏 심각한 표정으로 무영의 어깨를 붙잡았다.
다행히 한쪽 손에 휴대폰은 들고 있었다. 통화하고 있었다며, 둘러대는 수밖에.
“너 이 새끼 이럴 줄 알았어.”
“뭐, 뭐가?”
대체 언제부터 들은 거지?
무영이 난감해하며 눈을 돌리자, 준호가 울먹이며 어깨를 흔들기 시작했다. 한껏 글썽글썽. 금방이라도 오열할 것 같은 표정이다.
“몸을 빌려준다는 게 뭐야? 여기서 말고 꼭 거기서 해한다는 게 뭐냐고 짜식아! 너 이 새끼 형아가 처음부터 알아봤다. 한다경 그 사람이-”
따악!
“미친놈이네. 이거!”
“뭔데 그럼? 몸 빌려준다며 방금? 오피스텔이 걸려 있으니 서로 지킬 건 지키자고 혹시 스폰-”
따악! 따악!
무영은 양손으로 준호의 머리통을 연달아 깠다. 머릿속에 든 거라곤 아주, 추잡스러운 것뿐이지! 이 음란마귀 같으니라고!
“무영아. 나 왔다. 와, 집 대박이다!”
마침 고경민이 도착했다.
무영은 준호의 귀를 잡아당기며 현관 쪽으로 달려갔다. 우당탕탕! 난데없는 소란에 고경민이 놀라서 신발도 벗지 못한다.
“형! 임준호 얘한테 설명 좀 해줘요!”
“매니저 형! 무영이가, 이놈이 시커멓게 변해서는!”
아그작, 아그작. 서로를 씹어먹으며 다투는 두 친구. 고경민이 작은 과일 바구니를 내려놓으며 웃기만 했다.
“……거참 사이 좋네.”
* * *
“배우 효정? 피부가? 알레르기?”
“그래. 그렇다니까. 그래서 닥터마텔 쪽에서 사례 형식으로 마련해 준 거야. 네가 돈 대신 부동산이 최고라며?”
무영은 사과를 우물거리며 대꾸했다. 고경민의 증언에 따라 그놈의 이상한 오해는 바로 풀렸다. 다행이지만, 저런 게 제 친구라니. 무영은 한숨만 나올 뿐이다.
“그럼 아까 그건 뭔데?”
“……작품 의뢰.”
그는 부엌에서 정리 중인 매니저가 들리지 않게, 조용히 둘러댔다. 그제야 연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준호.
“근데 너 사과 먹어도 되냐? 입술 발랐잖아.”
“혹시 몰라서 좀 얻어왔거든.”
무영은 작은 투명비닐을 흔들었다. 안에는 립스틱이 발려 있는 면봉이 들어 있었다.
청담동 이런 쪽은 너무 부담스럽고, 집 근처 머리와 메이크업 봐주는 곳에서 후다닥 하고 올라온 참이다.
“기자님은 언제 오신다고?”
“세 시쯤? 곧 도착하시겠다.”
띵-동띵동!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아니나 다를까, 바로 초인종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부엌에 있던 고경민이 재빨리 달려나가 그들을 맞이했다.
달깍-
“안녕하세요. 기자님.”
“안녕하세요. 세상에. 집이 너무 좋다. 반가워요. 하무영 씨.”
“처음 뵙겠습니다. 하무영입니다.”
어깨에 카메라를 건 기자는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집 구경에 여념 없었다.
그래, 바로 그겁니다요! 좋은 기운을 담아야 사진도 좋게 나오는 법이지.
“이쪽으로 앉으세요.”
“아. 감사합니다.”
“기자님, 커피랑 차 중에 뭐 드릴까요?”
“저는 커피 주세요. 물 좀 많이 타서.”
기자는 가방에서 노트북과 녹음기, 종이 파일 따위를 테이블 위에 늘어놓았다. 배우 인터뷰 전담인지 척척척. 행동에 막힘이 없다. 그녀는 펜을 들고서 방긋 웃었다.
“반가워요. 전 사소한 거라도 다 인터뷰에 싣는 스타일이거든요.”
지금부터 시작되었다, 생각하고 잘 대답해달라는 뜻이었다. 무영은 악수를 가볍게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자, 그럼 먼저 제 소개를 정식으로 해야겠죠? 매일데일리 연예부 소속 기자 이은아입니다. 먼저 자기소개 해주시겠어요?”
딸깍.
그 말과 함께 플레이되는 녹음기.
무영은 고경민이 일러준 대로 형식적인 소개로 포문을 열었다.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 학생인지, 서연대 생인데 공부는 어떻게 했는지, 어쩌다 전공과 상관없는 배우가 되었는지 등등.
“아. 수능 끝나고?”
약간의 각색이 있었지만, 무영은 최대한 성심성의껏 있는 그대로 말했다. 타자를 두드리는 기자의 손이 점점 빨라졌다.
“그렇게 한밤포차로 대중에게 인상을 남기고, 지금은 [역병> 촬영에 얼마 전에는 M사 미니시리즈까지 했다는 거네요? 단역이지만 일복이 좋네.”
“다 뒤에서 끌어주시는 회사 분들 덕분입니다.”
“그럼 그때 얘기 좀 해주세요. 얼마 전에 화제가 되었던 그 사건이요.”
타닥타닥.
“음. 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까요? 다 아시는 그대로인데.”
무영이 고민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뒤에서 지켜보면 고경민 역시 살짝 긴장한 상태. 이은아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웃었다.
“하하. 긴장하지 마세요. 가끔 신인분들이 오해하시더라. 기자가 뭐 연예인 잡아먹고 사는 사람인가요? 그냥 그날 있었던 일이 궁금해서 그런 건데.”
그렇게 말하는 기자의 뒤로 뭉실, 피어오르는 스모그. 무영은 먹던 사과를 뎅그렁 놓치고 말았다.
“혹시 그건 봤어요? 운타 씨와 하무영 씨 외모 비교 댓글. 어떻게 생각해요? 역시 본인이 좀 낫다 쪽?”
그리고 무영과 마찬가지로, 그 질문이 기자의 미끼임을 알아챈 고경민과 준호. 셋은 무언의 시선을 주고받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