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66)
신인인데 천만배우 66화
황금 막내
치이익-
시간이 꽤 지났다.
시끌벅적했던 사람들의 말소리는 계속 줄어드는 반면, 무영의 고기 굽는 소리는 끝도 없다.
먹다 지친 이유진 피디가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그게 배에 다 들어가요?”
“네. 일 인분 더 시켜도 돼요?”
“그러세요. 대단하네.”
“원래 공짜 음식은 무한대로 들어가는 게 국룰 아닌가여.”
그리고 다시 와구와구.
무영은 방금 첫 숟갈을 뗀 것처럼 맛있게 고기를 흡입했다.
홍석조와 나금동 테이블은 한껏 차분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무슨 진지한 얘기를 하는 건지, 연신 소주만 짠- 하면서 중얼중얼.
지이잉.
그때, 무영의 휴대폰이 울었다.
굉장히 오랜만에 온 유찬의 문자. 그만큼 즐거운 소식을 싣고 있었다.
[무영아 3분기 작품, [호랑가시나무>로 결정됐어. 그리고 나 거기서 이장 역할 맡았다. 너랑 하던 거 보고, 단장님이 두말없이 배역 정해줬어. 이번에 나 진짜 모든 걸 걸어보려고.]이장 역이라 하면 꽤 중요한 배역이었다.
주인공인 마리를 주도적으로 죽이고, 제일 마지막에 마을의 비극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역할이니까. 무영은 잘됐다는 듯 손뼉 치며 답장했다.
[다행이다. 극 올리면 꼭 보러 갈게.] [다 네 덕이야. 고마워. 여러모로.]초연은 약 두 달 반 정도 뒤. 분기별 연극인지라 상당히 촉박했다. 무영은 [호랑가시나무>란 글자를 곰곰이 되씹으며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귀신 씨…….’
성불 못 하겠다며 매일 안방구석에 박혀 사는 그 여자. [호랑가시나무>가 하동극장에서 올라가면…….
“오!”
꽤 괜찮은 아이디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저 대본 연습으로는 성에 안 차는 그녀를 위한, 어쩌면 완벽한 성불 조건이 되겠지.
“왜요? 좋은 일 있어요?”
“친구가 극단에 있는데 중요한 배역을 맡았거든요.”
“그래요? 잘됐네. 하아암.”
하품을 쩌억- 찢어지게 해대는 이유진 피디. 무영을 알 만큼 알았으니, 이 자리의 목적은 달성한 거나 마찬가지다. 마스크와 분위기는 꽤 괜찮으나, 음악적 재능이 아쉽다로 땅땅땅!
“피곤하세요? 슬슬 일어날까요?”
고경민이 그런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제안했다. 아주 좋은 타이밍이다.
새벽 한 시가 넘어가니, 슬슬 파해야지. 무영도 내일, 아니, 오늘 오전부터 촬영이 잡혀 있지 않은가.
“선배님. 여기 이제 마무리할까 하는데요.”
“응? 벌써? 하여간 젊은 사람 체력이 그게 뭐야?”
“아 죄송해요. 요즘 너무 피곤해요.”
“아쉬운데…… 나 사장님. 우린 2차 갈까요?”
“그러시죠!”
그나마 홍석조에게 끝내자는 말을 꺼낼 수 있는 건 동등한 피디 입장인 이유진뿐이었다.
아아. 불쌍한 우리 사장님. 무영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금동을 쳐다봤다. 태석은 이미 반쯤 맛 갔는지, 목이 꺾여 있었다.
“그럼 내가 잘 아는 곳으로 갈까? 거기가 곱창이 그렇게 유명하거든. 근처에요. 근처.”
“그럴까요? 그럼 택시를-”
“아니. 바로 근처야. 이렇게만 가는 거잖아?”
홍석조. 나금동. 태석. 그리고 연출팀 스태프 한 명.
“내 차 타고 가요. 진짜 바로 앞이라 오 분도 안 걸려. 어여. 여기 계산이요!”
그는 기분 좋게 웃으며 카운터로 걸어갔다. 비틀비틀, 갈지(之)자를 그리며 걷는 모습이 영락없이 만취인데, 차를 타고 가자고?
“피디님. 그러지 마시고 걸어갔다 오죠.”
“걸으면 멀고 차 타면 금방이라니까? 아, 나 몰라?”
“그러면 대리라도-”
“오 분 거리를 무슨!”
스태프의 제안에 그가 호쾌하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이런, 난감하다. 나금동과 태석, 고경민 역시 마찬가지. 술을 안 마신 사람이 있으면 운전대를 잡겠는데, 죄다 먹었잖아.
“음?”
무영은 사이다로 입가심을 하며 홍석조의 뒤통수를 쳐다봤다. 그의 발치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검은 스모그. 가게 밖, 주차된 흰 승용차까지 이어졌다.
“혹시 피디님 차가 저건가요? 흰 차?”
“어. 맞을걸?”
“안 되는데.”
음주운전 자체가 절대 안 될 일이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더더욱 금지다.
저 스모그를 보라! 어느 정도 깊이의 불행일지 모르기에, 더욱 불안하다.
“형. 말려봐요. 운전대 잡으면 절대 안 돼요.”
“잠깐만. 그냥 대리를 부르는 게-”
“뭐 해요? 다들 빨리 와요.”
“아이고, 피디님. 잠시만요. 대리라도 부를 테니까 잠시 담배 한 대 태우고 있죠?”
나금동이 그에게 달려가서 주의를 환기했다. 그러자 홍석조는 연신 꿍얼대며 손만 흔들어댔다.
“가까운데 무슨! 대리비 아깝게!”
아니, 방송국에서 고액연봉 따박따박 타드시는 분이 왜 이렇게 대리비를 아까워해? 나금동의 손을 뿌리치며 운전석 문을 여는 피디.
달깍-
“안 돼용.”
하지만 무영이 웃으며 그 문을 다시 닫아버렸다. 으응? 얘가 지금 뭐 하는 거여. 홍석조가 눈을 깜빡깜빡. 이내 피식 웃으며 다시 문손잡이를 잡았다. 장난인 줄 아는 모양이다.
“안 된다니까요?”
“뭐 하는 거야?”
“운전대 절대 잡으시면 안 돼요. 그럼 저 바로 신고 들어갑니다?”
“저기 무영아-”
돈만 있었으면 기냥 운전대를 뽑아버렸을 텐데. 재수 있으면 검문에서 걸리는 거고, 없으면 죽는 거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검은 스모그의 위력은 그런 거니까.
“어어? 이놈 봐라?”
비틀, 홍석조가 무영의 팔을 잡으며 몸을 가누지 못했다. 봐봐. 저런 상태로 어떻게 운전을 한다고? 미친 거지.
“비켜 이놈아?”
“안 된다구용.”
“이놈이! 떼끼!”
“어허! 피디님! 떼엑!”
똑같이 소리치는 무영. 홍석조가 놀라 딸꾹질만 해댔다. 지금까지 이런 신인은 없었다. 눈도 못 마주치는 게 일반적인데. 얜 뭐야?
“푸하하하!”
그 모습을 보던 이유진이 골 때린다는 듯 이마를 쥐어 싸고 웃었다. 그리고 무영을 도와 천천히 차 문을 닫았다.
“선배님. 이번에도 시말서 쓰면 진짜 큰일 나요.”
이미 두 번의 음주운전 경험이 있던 홍석조. 꽤 예전 일이라 매스컴만 안 탔지, 회사에서는 이미 삼진아웃 일보 직전이다.
그녀는 지나가던 택시를 붙잡으며 그에게 웃어 보였다.
“이건 제가 댁으로 보내 놓을게요. 즐겁게 2차 하시고 들어가세요. 오늘 자리 마련해 줘서 고마웠어요.”
“어어? 잠만, 유진아!”
“조심히 가세요. 즐거운 2차 되시고!”
나금동과 태석이 이때다 싶어 그를 잡아끌고 택시에 올라탔다. 창문으로 손을 흔드는 두 사람. 무영과 고경민은 어서 오전 스케줄을 준비하러 가보라는 뜻이었다. 태풍이 지나간 것 같다.
“캐릭터 참, 특이하긴 하네요.”
담배를 하나 꺼내며 웃어 보이는 유진. 그녀는 참 아쉽다는 듯 무영을 쳐다봤다.
“반항아가 필요하긴 한데, 진짜 엇나갈 필요는 없거든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차기작 작품 주인공. 이상하단 말이죠. 왜 자꾸 그쪽이 눈에 밟히는지 몰라.”
주는 거 없이 마음에 드는 사람.
이런 경우는 참 오랜만이다.
그녀는 모르겠지만, 좋은 배우를 알아채는 피디의 직감이 끌어내는 호감이었다.
좋은 사람과의 작업이 곧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리라.
“이거 받아요.”
그녀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무영에게 쥐여줬다.
강렬한 밴드 음악을 하는 캐릭터와 함께 떠오르는 일련의 이미지들이 있다.
강단과 소신으로 똘똘 뭉쳐, 자신의 중심을 잘 지켜나가는.
“오늘 만나서 너무 좋았어요. 솔직히, 나 그쪽 마음에 드나 봐요. 간간이 보이는 캐릭터가 너무 찰떡이야.”
물론, 배우와 제작자로서 말이다.
“그래서 이번 작은 좀 아쉽겠지만, 다음에 기회 되면 꼭 같이해 봅시다. 적어도 음주운전으로 물의 일으킬 일은 없겠네. 하하.”
무영은 명함을 물끄러미 보며 중얼거렸다.
이유진 피디에게서 묻어나온 꽃가루가 덕지덕지, 화사하게 빛났다.
“저 마음에 드신다면서요. 근데 왜 안 돼요?”
“응? 못 들으셨나? 뮤지션 역이라 노래를 잘해야 하거든요. 물론 기타 포지션이지만, 마이크 잡는 씬이 꽤 많아요. 그때마다 연출로 커버할 순 없잖아요?”
그녀가 툭툭, 위로하듯 무영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번에는 안 되겠구나! 고경민은 아쉬워하며 새벽 공기에 한숨을 내보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 무영.
“그럼 제가 노래 잘 부르게 되면, 써주실 거예요?”
깜찍한 제안일세.
이유진 피디는 담배를 비벼끄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성이 커지겠죠?”
장담하건대, 작가님과 제작사 쪽도 무영을 마음에 들어 할 게 확실했다.
신선한 신인에 훌륭한 비주얼, 배역과 딱 맞는 성격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지 않은가.
“주위에 노래하는 친구 있으면 부탁 좀 해봐요. 그럼. 먼저 들어갈게요. 크랭크업 잘하시고.”
이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
여전히 남아 있는 고깃집의 열기.
무영은 꽃가루 붙은 명함을 조심히 주머니에 넣고 고경민을 쳐다봤다.
“너 그거 하고 싶니?”
“네. 해야 할 것 같은데요.”
꽃길만 걷기도 바쁜데, 괜히 다른 거에 신경 쓸 필요 있나. 지금 나타난 이 작품을 잡아 보고 싶었다.
고경민은 코 밑을 긁적이며 도롯가로 시선을 돌렸다. 어지간해서는 응원하고 싶은데, 노래 실력이 영…….
“일단 집에 가서 쉬고 해 뜨면 다시 전략 짜보자.”
“택시비 회사에 청구해도 되나요?”
“그려. 대신 모범 말고 일반 타라.”
그는 웃으며 택시를 잡아주었다.
* * *
술 한잔 안 마셨는데도, 어찌 이리 피곤하단 말인가.
무영은 오피스텔로 들어서자마자 소파에 고꾸라졌다.
현관에 있는 구두로 봐서, 준호는 오늘도 또! 여기서 출퇴근할 것 같다.
“노래라. 노래.”
내가 그렇게 별로였나?
본인이 듣기에 나름 나쁘지 않았는데. 무영은 보컬 학원이라도 알아봐야 하나 싶은 생각과 함께 텔레비전을 켰다.
주말마다 하는 ‘쇼! 뮤직페스티벌’ 재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다음은 1위 후보팀, 제로텀의 무대입니다!]“제로텀?”
엔빈이가 속해 있는 팀이었다. 사실 이름만 들어봤지, 그가 노래와 춤을 추는 건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오오. 뭐여뭐여.”
무영은 쿠션을 끌어안으며 화면에 집중했다.
역시 사람은 본업할 때가 제일 멋있어. 무대를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엔빈은 노래보다 랩과 댄스 담당인지, 파트가 드문드문 나왔다.
[이러지 말라고, 너에게 매달릴 때면-]메인 보컬은 누가 봐도 분홍색 머리 남자. 한없이 올라가는 고음부터 속삭이는 파트까지. 라이브인데 흐트러짐 없이 완벽하다. 간주가 나오자, 팬들의 응원 소리가 들린다.
로민? 로민이라 하면…….
그 친구잖아. 엔빈이네 막내이자 발연기의 대가. 연기하고 싶어서 학원 알아본다는. 무영은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몸을 벌떡 일으켰다.
“저거다.”
서로 필요한 걸 갖고 있으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전문가니까 단기 속성으로 ‘노래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법’이라도 배울 수 있을 거야.
“오예!”
그가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며 방방 뛰는 동안, 귀신 씨가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무영은 바로 웃음기를 싹 지우며 그녀에게 손짓했다.
“귀신 씨. 이리 와봐요. 아주 중요한 말이 있어요.”
스으윽.
“아까 친구한테 연락 왔는데요. [호랑가시나무>가 3분기 작품으로 선정됐대요. 하동극장에 그 작품이 올라가는 거예요.”
그의 말에 귀신이 띠용, 눈알이 쏟아질 것처럼 커졌다.
“그러니까 그쪽도 그때까지 연습하면서 갈고 닦아요. 공연하는 날 데려다줄게요.”
제대로 세팅된 무대에서, 다른 조연들과 함께 올리는 작품. 정말 만족스러운 무대라면 뒤도 안 보고 성불할 수 있겠지.
“그날 마리 역을 맡은 사람 대신, 전 그쪽만 볼게요. 제가 귀신 씨의 관객이 되어 준다고요. 그때 연습할 때는 없었던 관객! 그러니까 정말 후회 없이 준비해요.”
두 달 후면 무영 역시 떠난다.
기회가 있을 때, 성불하는 것이 그녀에게도 좋을 터. 아무리 이곳에 남고 싶다지만, 갈 사람은 가야지 자연의 이치 아니겠는가.
“무슨 말인지 알겠죠? 이거 거절하면 답 없어요. 이게 제 배려의 최선이에요.”
그의 말에 귀신 씨가 고개만 끄덕거렸다.
진짜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은 것일까. 그녀는 스스슥, 왔던 대로 소리 없이 사라졌다. 아마 안방구석으로 향하는 것이리라.
‘휴우.’
혹시 꼬장부릴까 봐 살짝 긴장했다.
무영은 안방 쪽을 힐끔거리며 휴대폰을 들었다. 제로텀의 1위 소식과 함께 끝난 음악 방송.
[‘매달려’ 1위 축하해. 그런데 너희 막내 씨, 혹시 연기 연습 계속하고 있니?]그는 깨어 있었는지 바로 답장 왔다.
[매달려 한 달 전 건데. TV 좀 보고 살아라. 막내? 오디션 본다고 돌아다니는 것 같긴 하던데 영 소식이 없네. 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