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70)
신인인데 천만배우 70화
드라마 정보
“감사합니다!”
쩌렁쩌렁. 기운차게 인사하는 무영의 인사가 방송국 홀을 울렸다. 부끄럽다는 듯, 이유진 피디가 손으로 얼굴을 조금 가렸다. 하지만 무영에겐 보이지 않는다. 당장이라도 방방 뛰고 싶은 마음이니까!
“준비 잘 해봐요. 쟁쟁한 사람들 다 올 거니까.”
“네. 피디님. 정말 감사합니다!”
공식 오디션이라 하면 출연을 거머쥘 기회였다. 혹시 불발된다고 하더라도, 그 자리까지 가서 탈락한 거면 후회도 없다. 물론 그럴 일은 생각도 안 하지만! 앞만 보고 달리기도 모자란 시간이다. 안 될 거란 생각은 할 필요가 없지.
“아. 그리고 사실 올해가 S사 창사 30주년인 거 알고 있어요?”
“네! 방금 알았습니다!”
“몰랐구나? TV에서 툭하면 특집 해댔는데.”
무영은 방긋 웃으며 이유진 피디의 말에 귀를 쫑긋거렸다. 무슨 말씀을 하려고 저러실까?
“이번에 신인 연예인들 다큐멘터리를 만들려고 해요. 연기자, 아이돌, 개그맨, 모델…… 혹시 나와줄 수 있어요? 그때 얘기 들어보니 흥미로워서.”
두루뭉술하게 넘기긴 했다.
계부의 학대나 불우한 가정사, 귀신 보는 눈 같은 거 말이다. 하지만 그걸 제하고서도 상당히 다이내믹한 인생인 건 틀림없다.
“다큐요?”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인터뷰랑 일상 보여주고. 뭐 그런 거예요.”
오. 좋은데?
무영은 고경민을 쳐다봤다. 수락해도 되겠냐는 무언의 시선. 매니저는 두말할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신인인 그에게는 단 1초라도 미디어에 노출되는 게 중요했으니까.
“제안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게요.”
“그럴 것도 없고, 그냥 있는 그대로 하면 돼요.”
“있는 그대로…… 근데요. 혹시 집도 찍어야 하나요?”
“집? 본인 사는 집?”
그녀는 콘티를 떠올렸다.
아직 구상 중이긴 하지만, 배경으로 필요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꿈과 열정을 좇아 사는 청춘 신인들에게 경제적 궁핍은 거의 기본 패시브니까.
“하무영 씨만 괜찮다면?”
“너무 괜찮아서요. 저 지금 지인 집에 얹혀사는데, 엄청 좋은 집이거든요. 마포 쪽 오피스텔이에요. 평수가 몇이더라?”
“72평이라며?”
“맞아요! 72평.”
오호라? 이건 또 의외네.
선입견이라면 선입견일 것이다. 학자금대출이니 뭐니 별로 경제 사정이 좋아 보이진 않았거든. 이유진 피디는 자꾸 울려대는 휴대폰을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그래요? 일단 참고만 할게요. 배경이 다양할수록 재미있는 장면이 만들어지니까. 아이고. 나 이제 들어가 봐야겠다.”
“앗! 넵!”
“오늘 감사합니다, 피디님.”
무영과 고경민이 벌떡 일어나 인사했다. 주머니를 주섬거리며 오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는 이유진. 테이블 위에 놓으며 찡긋, 웃었다.
“오디션 보는 배우한테서 뭐 얻어먹기는 좀 그래서. 그럼 연락 줄게요. 캐스팅 일정이랑 저기, 다큐 쪽.”
그녀는 바쁘게 몸을 돌리려다가 멈칫거렸다.
“오늘 스타일링 좋네요. 혹시 주연이 안 되더라도 다른 길은 많으니까. 낙심하지 말고, 프러포즈 잘- 받았습니다?”
방송국 공개 홀에서 세레나데라.
참 재미있지 않은가. 그녀는 이 이벤트를 작가에게 말해줘야겠다며 다짐했다. 분명 흥미로운 상황 설정으로 쓸 수 있을 거다.
“조심히 가세요!”
“감사합니다!”
다시 90도로 꾸벅!
무영과 고경민은 그녀의 모습이 모퉁이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인사했다. 그리고 이내 털썩! 긴장이 풀린 듯 의자에 퍼질러졌다.
“흐흐…….”
동시에 낮은 웃음을 터트렸다.
“됐다! 오예!”
“잘했다, 무영아! 잘했어!”
“대박이다! 그쵸?”
시선을 주고받자 짜기라도 한 듯, 같이 호들갑을 떨어댔다. 카페 사장이 컵을 닦으며 흐뭇하게 그들을 힐끔거렸다.
“자. 그럼 이제 회사 쪽에서 나설 차례군!”
“회사에서요? 뭘요?”
고경민은 이 기쁜 소식을 바로 나금동에게 전송했다. 오디션 일정이 잡혔으니 준비를 해야 할 것 아닌가. 배우는 배우 나름대로, 회사는 회사 나름대로!
“김은송 작가님이라 그랬지?”
집필하고 있는 드라마 내용이 상세하게 어떤 것인지. 오디션에 참가하는 상대 배우들은 누구인지. 티오가 난 자리는 무엇이며 그 역과 맞는 이미지는 무엇인지!
“가자. 사장님. 엄청 좋아하시겠다.”
두 사람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카페를 나서려고 했다. 그때, 무영을 붙잡는 여자 목소리.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누군지 모르겠다. 무영은 고개만 갸웃거리며 지나가려 했는데,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는 게 아닌가.
“보라 친구 맞죠?”
“누구세요?”
전혀 감을 못 잡는 그와 달리, 고경민은 날카로운 눈썰미로 그녀를 알아봤다.
“다령이잖아. 다령.”
속닥속닥, 무영에게만 들릴 정도로 아주 작게 언질을 넣는다. ‘다령’이란 이름,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어! 보라 코 후려친!”
갑자기 번득이는 기억에 무영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말이 너무 크게 나간 것일까. 지나가던 사람들이 고개를 돌릴 정도다.
“헉. 죄송합니다.”
“……아니요. ‘사고’였으니까요.”
아직 메이크업을 안 받은 상태인지라, 마스크 낀 게 천만다행이다. 표정 관리가 제대로 안 되었거든.
“그런데 저 아세요?”
“저번에 단역 오디션 보러 왔을 때 봤어요. 친구랑 같이 왔잖아요. 촬영장에서 문제 있었다면서요. 나중에 들었는데, 정말 뭐라 위로 드릴 말이 없네요.”
내용만 들으면 천사 그 자체다.
여주인공이니, 작품을 이끄는 주체로서 단역에게 사과하는 거다. 무영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덕분에 이렇게 드라마 오디션 기회까지 얻었잖아. 그때 기사 사진이 아니었다면, 이유진 피디가 무영을 어떻게 알았겠어.
“그래서 제가 밥 한 끼 사고 싶은데. 어떠세요?”
“밥이요?”
“네. 맛있는 거 먹으면서 기분 전환해요.”
대화가 뜻밖으로 흘러갔다. 고경민은 물론 그녀의 매니저까지 흠칫. 이게 무슨 상황인고, 유심히 지켜보게 했다.
“그때 그 친구분도 같이.”
“친구? 아! 준호?”
준호라는 말을 뱉자마자, 이상한 일이 생겼다.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 것처럼 다령의 어깨에 꽃가루가 소복이 쌓이는 게 아닌가.
“네. 꼭이요.”
두 가지 생각이 충돌하며 서로를 밀어내려고 했다.
다령은 보라를 괴롭힌 사람!
밥은 무슨 물 한잔도 거절하고 싶지만…… 저 꽃가루가 의미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 물론 행운은 맞겠지. 맞는데, ……대체 어떤 방식으로?
“싫으세요?”
소처럼 크고 순한 눈이다. 행실과 달리 독기가 쏙 빠진 눈. 무영은 잠시 고민하다 웃어넘겼다.
“아니요. 좋아요.”
“아. 그럼 이게 제 번호거든요.”
그녀는 이때다 싶어 휴대폰을 내밀었다. 빠르게 교환되는 번호. 다령은 생긋, 눈으로만 웃으며 인사했다.
“그럼 연락 드릴게요.”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구나.
무영은 휴대폰을 든 채로 얼떨떨하게 그녀 뒤를 지켜봤다. 고경민이 그의 허리를 쿡 찔렀다.
“뭐야. 너 정말 밥 먹을 거야?”
아이돌도 아니고, 사생활은 관여할 부분이 아니다. 하지만 알아둬야 하지. 그는 매니저니까!
“고민 좀 해보고요. 반짝이 때문에.”
“반짝이 무슨? 쌩얼이더만.”
“아무튼, 가요. 기타 연습하려면 바쁘겠다.”
무영은 대수롭지 않게 고경민의 등을 밀어 방송국을 빠져나왔다. 차에 타서야 여유롭게 보내는 인사.
[로민 씨! 오디션 기회 잡았어요. 다 덕분이에요. 고마워요.]띠링.
[형, 축하해요! 꼭 오디션 붙으세요!] [어떻게 됐어요? 로민 씨는?]으으. 반말과 존댓말 사이의 이 어색한 경계!
다시 한번 더 만나면 확실히 친해질 것 같은데!
[떨어졌죠. 뭐. 하하. 그래도 도움 많이 됐어요. 피디님이 연기 늘었다고 칭찬해주셨거든요.]에구. 로민이는 떨어졌구나. 나름 써먹을 수 있는 단기 스킬은 죄다 알려줬는데, 어찌 잘 안 된 모양이다. 이것도 몸을 쓰는 일인지라…….
무영은 차가운 창문에 이마를 대고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길은 다르지만, 같이 준비했으니, 함께 붙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네네. 사장님. 그, 김은송 작가님이요.”
한편, 고경민은 나금동에게 이 상황을 전달하느라 정신없었다. 이어폰을 통해 주고받는 지시. 소속 배우의 기회를 잡아주기 위해, 회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지만 큰 발걸음으로.
* * *
“후훗. 제목 [너는 별, 나는 별>”
그리고 며칠 후.
나금동은 선글라스를 낀 채 보드 앞에 서서 팔짱을 끼었다. 그의 앞에 앉아 있는 것은 무영과 고경민. 담담하게 오징어 다리만 질겅거렸다.
“김은송 작가님의 네 번째 작품이자 S사 올 하반기 예정작. 12월쯤 방영 예정으로 잡고 있는데, 창사 30주년 맞이하는 해의 마지막 간판이라 이게 애매하다 이거여.”
“뭐가요?”
“연말, 연초에 들어가는 작품은 홀대받잖아.”
바로 시상식에서.
아무리 히트 친 작품이라도 그게 연초라면, 시상식을 1년 동안 기다려야 하는데…… 모두 기억이나 하겠어? 아득히 먼 추억의 드라마처럼 느껴질 텐데.
그리고 연말. 이것도 아무리 반응이 좋아도, 시상식 때는 초반이라 수상을 해주지 않는다. 역시 연초처럼 1년 기다려야지.
“그래서 방송국에서도 어지간하면 이쯤에 새 기획작품을 안 넣거든? 근데 30주년 기념으로 몇몇 프로가 새로 짜지는 바람에 좀 틀어졌나 봐.”
“12월인 건 기정사실이에요?”
“내가 듣기로는.”
“김은송 작가가 그 정도 급은 아닌데? 벌써 S사에서만 두 작품 째잖아요.”
“이유진 피디. 그 양반이랑 어떻게 딜은 한 모양이여. 그 뒤까지는 아직 모르겠고.”
뭐, 예산을 좀 더 끌어온다거나 아니면 고료를 올렸을 수도 있지. 이런 조건은 계약상으로 누설 금지라 알 수가 없다.
“아무튼! 그래서 희소식과 사알짝 애매한 소식 두 개가 있다.”
“오! 좋은 소식부터요!”
“배우들이 별로 안 하려고 해.”
연말·연초라 싫다 이거지. 게다가 ‘젊은’ 뮤지션들 얘기다 보니, 나이나 외적인 조건도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연말·연초에는 그들도 바쁘다 이거지.
“경쟁이 좀 덜하겠네요?”
무영이 반색하자 나금동이 바로 받아쳤다.
“바로 이어서 애매한 소식갑니다!”
“엑. 설마.”
“그래서 아이돌들 위주로 캐스팅이 물색 중이라는 정보가 들어왔어. 딱 맞긴 하지. 나이 맞고, 노래 되고, 끼 있고. 팬덤 있고.”
연기야 적당히, 어느 정도만 되어도 되니까. 그는 보드에 에이포 용지 다섯 장을 붙였다. 제작사 통해 어찌저찌 열심히 빼 온 정보였다.
“주요 인물은 총 다섯. 이 중에 여자가 둘이니 제치고, 우리 무영이는 당연히 주인공 노리는 거겠지?”
“……저어는 그런 말 안 했는데요? 무슨 역이든 하면 좋고, 감사하죠.”
“어허! 목표는 항상 저 높게 가져야지!”
주인공을 노리는 건 무영이 아니라 나금동이었나 보다. 그는 종이 다섯 장 중 두 장을 보란 듯이 떨궜다.
“그렇다면 남은 티오는 총 셋! 남주와 서브, 그리고 진짜 서브가 있겠다!”
“진짜 서브는 뭔데요? 앞에는 그럼 가짜 서브에요?”
여주와 여주 친구.
그리고 여주를 좋아하는 남자 둘(남주, 서브), 여주 친구를 좋아하는 남자. 이렇게 총 다섯 명의 이야기가 얽히고 얽힐 것이다. 무영은 세 남자의 간단한 컨셉지를 읽었다.
“기타리스트, 천상천하유아독존의 매력남. 4차원 엉뚱 뇌섹남. 완벽주의자에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차세대 섹시남? 진짜 이게 설정이에요?”
작가님들은 글 쓸 때 이렇게 잡고 가는구나…….
“초기 설정이 그랬대. 지금은 아무도 모르지. 알면 대본 유출이야, 그거.”
제작사 실장이랑 술 두 번 먹고 얻어낸 내용이다. 그것도 아주 비싼 거로! 영 못 믿을만한 정보는 아닐 터.
“서브보단 낫다야. 서브는 멍뭉미, 다정남, 카푸치노의 거품 같은 남자래. 피아노 친다는데?”
“마지막 세 번째는요? 여주 친구 좋아한다는.”
“걔는…… 어? 얘 좀 신선하네. 가수 지망생인데 사고로 목소리를 잃은 현대판 인어왕자 설정이란다. 가끔 서브 라인이 잘 먹힐 때가 있지. 이거 괜찮네.”
“목소리가 안 나오면, 대사가 없겠네요?”
“그러지 않을까?”
무영은 종이를 찬찬히 넘기며 세부 사항을 확인했다. 나금동은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톡톡톡, 그의 반응을 기다렸다.
“주인공 할 거지?”
“네. 일단은요. 오디션 갈 때 그쪽으로 준비할게요.”
“앗싸! 그래! 좋아- 가자!”
나금동은 주먹을 콱 움켜쥐며 무영에게 기운을 불어넣었다.
“아이돌 걔들 해봤자 얼마나 하겠냐? 우리 무영이가 가서 다 뚜까 패버리자!”
“싸우는 게 아니라 연기하러 가는 건데요?”
“연기로 패버려!”
무영은 그저 웃으며 휴대폰을 찾았다,
회사 도움 없이 고군분투하고 있을 로민이를 위하여. 주인공은 본인이 하되, 인어왕자 씨는 로민이가 하면 딱이겠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