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72)
신인인데 천만배우 72화
연기력
“구룡 씨. 괜찮아요?”
“네? 아아. 네. 그럼요.”
실장은 계속해서 구룡의 오디션을 진행했다. 문신 여부를 지금 당장 여기서 밝힐 필요는 없겠지. 보여준 적은 없지만…….
‘W 앱에서 말한 적은 있으니까.’
완전한 비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도 아니었다. 오디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를 지금. 입을 여는 건 섣부른 행동이었다.
“혹시 OST 작업 같은 것도 가능하죠? 극 중에서 나오는 밴드 노래를 OST로 쓸 건데.”
“네. 가능합니다.”
아이돌들이니 그쪽은 뭐, 걱정할 필요 없다. 오히려 패시브에 가까운 옵션이니. 오히려 무영에게만 따로 물어야지.
“하무영 씨는 음악 경험이 없는데…… 아 물론 우리가 배우를 뽑는 거지만, 이왕 같이 기용할 수 있으면 좋잖아요. 노래는 어느 정도 합니까?”
“들어줄 만은 하다 하셨습니다.”
“하하. 그래요? 누가요?”
“저요.”
턱을 괴던 이유진 피디가 손을 들어 보였다. 그렇단 말이지? 실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그럼 노래는 차치하고, 하무영 씨는 음반 작업을 따로 맡겨야 하는 거네요?”
아이돌에게 맡기면 그 비용이 절감되잖아. 돈을 더 지불하면서까지 그를 써야 할 이유, 실장은 그걸 찾고 싶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로민이 끼어들었다. 물꼬를 재빨리 제 쪽으로 튼 것이다.
“만약에 저랑 같이 되면 작업 함께 하면 돼요.”
“로민 씨랑? 같이?”
“네. 저는 인어왕자 역을 하고 싶거든요. 사실 연기 지망생이긴 했는데, 아직 많이 부족해서요. 호흡과 대사 전달력은 미흡하지만, 표정 연기는 자신 있습니다.”
아이돌이 무대에서 매일 하는 게 표정 연기잖아. 오프닝, 클로징, 중간중간 끼워 넣는 대사 맞춤 액션까지.
“그러면 하무영 씨는 주연을 원하는 거네요?”
의미 없는 질문이다.
외모랑 스타일링이 벌써 ‘나 기타리스트를 노리고 있소’ 라 광고하고 있건만. 무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이번에 진경문 감독님 작품 [역병> 크랭크업해서 시간 널널하고요, 다른 스케줄이랑 병행할 일이 없습니다. 아마 일정 짜기는 수월하실 거예요.”
그리고 힐끔. 꽁지 머리 남자를 쳐다봤다. 누군지 솔직히 모르겠는데, 로민의 말로는 저 사람이 요즘 타 방송 드라마 캐스팅 물망에 올랐단다.
“전 한 번에 작품 하나만 하자는 주의라.”
“그렇지. 신인 때는 그게 중요하지. 이게, 급하니까 서두르다가 망치는 격이거든. 스위치 끄고 켜는 것처럼 분리가 안 되니까. 본인 단점은 뭐라 생각해요?”
실장의 물음에 무영이 잠시 고민하는 척,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굉장히 쑥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실 걱정되는 건 상대 배우와의 호흡이에요. 제가 아직 연애를 안 해봐서.”
“어머! 정말?”
“네. 근데 인물 컨셉은 굉장히 매력적이고 마성의 바람둥이 같은 느낌이던데. 하하.”
“왜지? 여자친구 엄청 많았을 것 같아.”
“공부하느라 바빴어요. 그리고 정신 차려보니 지금은 오디션 보느라 바쁘고요.”
“아참. 서연대 재학 중이라 했죠?”
“네. 방학 중인데, 2학기는 휴학할 수도 있어요.”
“우리 캐릭터가 마성(魔性)은 맞는데, 바람둥이는 아니거든. 그쪽으로는 영 바보야. 바보. 대본 보면 감이 올 거예요.”
“그래. 차라리 쑥맥이 낫지. 저번엔 촬영장에서 배우 둘이 눈 맞았다가 도중에 헤어진 거 있지? 어우. 분위기가 어찌나 어색하던지.”
마치 동네 사람들이 수다 떨 듯, 관계자들이 예전 얘기를 끄집어냈다. 다들 재밌어하며 웃는데 역시 한 명만 어색하게 호응한다.
‘저 분이 여자를 굉장히- 아주 굉장히 밝히시는 분이구나.’
음. 역시 얼굴을 모르니, 로민이가 알려준 신체 특징으로 겨우 가늠할 뿐이다. 이런 식으로 무영은 인터뷰를 빙자한 광역딜을 사방으로 쏘아댔다.
‘쟤 뭐지?’
‘내 얘기하는 건가?’
‘아니지. 알 리가 없는데?’
경쟁자들의 머릿속에는 물음표만 떠오르고, 관계자들에겐 은연중에 각인시키는 것. 그것만 하더라도 이미 절반은 성공이었다. 잔잔바리 기 싸움 뒤에는-
“자. 그럼 리딩 한번 들어가 볼까요?”
이제 진짜 승부만 남았지.
구룡이 대본집을 넘기며 실장을 쳐다봤다.
“어느 부분을 할까요?”
“원하는 곳이요. 오디션이니까 본인이 잘 할 수 있는 거로.”
차라락.
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동시에 대본을 훑었다. 무영 역시 마찬가지. 잠깐의 시간 동안 종이를 빠르게 넘기는데,
‘어?’
반짝-
대본 틈 사이에서 뭔가가 반짝였다. 무영은 다시 천천히 펼치며 그 페이지를 찾았다.
[#37. 클럽 안] [하우스 파티가 열리는 클럽. 정민이 예전 동아리원들과 마주치고, 그들은 농아인이 된 정민을 조롱한다. 그때 뒤에서 나타나는 도하.]‘도하. 주인공 이름이 도하구나!’
마치 잊어버린 제 이름을 찾은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영은 종이를 가볍게 쓸어내리며 로민의 팔을 툭툭 쳐댔다.
“나랑 이거 같이 해볼래? 너만 좋다면.”
소곤소곤. 둘이 머리를 맞대며 중얼거리는 모습. 피디와 작가가 보더니 묘한 시선을 나누었다.
‘캐미 좋네.’
‘그러게요. 잘 어울려요. 송아랑 표라이까지 끼면 볼 만하겠어.’
“저희는 같이 해도 될까요? 로민 씨가 아무래도 상대역이 있어야 해서.”
“편하신 대로. 자유롭게 합시다. 자유롭게.”
허락이 떨어지자, 둘은 옳다구나 하고 그 부분을 깊게 파기 시작했다. 구룡이 목을 가다듬더니 대사를 읊었다.
“거리 공연하는 거 처음 봐요? 처음 보는 거면 거기 앉아서 박수나 치시고, 아니면 저쪽으로 꺼지세요. 콱! 어디 이 몸이 기타 좀 치겠다는데, 고마워하진 못 할망정.”
“이 몸? 네가 뭔데?”
맞받아치는 대사는 제작사 직원이 해주었다. 무미건조, 감정이 하나도 담겨있지 않았지만, 그는 몰입을 깨지 않았다.
“임도하요. 메릴켈린 리더. 임도하.”
오호. 확실히 짬이 있다.
연기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본인 만의 개성을 더해서 더욱 돋보였다. 대본보다 조금 더 과장하긴 했지만, 그건 배우의 역량으로 넘길만한 수준. 작가가 그의 이름에 동그라미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네.’
하지만 역시 자꾸 눈에 밟히는 건 저쪽, 하무영.
아무래도 반반 나뉠 것 같다. 제작사 쪽은 구룡을 본인과 피디는 하무영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조금 떨려서요. 더 할까요?”
“떨렸는데 그 정도예요? 너무 긴장하지 마요.”
구룡은 너스레를 떨며 뒷부분까지 연기를 이어갔다. 아이돌‘치고’가 아닌 그냥 배우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 첫 시작을 저렇게 잘해버리니, 다른 지원자들의 기가 팍 죽었다.
“다음이요.”
“크흠! 네!”
그러든지 말든지, 무영과 로민만 본인의 대본에 집중하며 옆을 보지도 않는다. 그때, 로민이 종이 끝부분에 뭔가를 써서 무영에게 보여줬다.
“누, 누구 좋으라고 돌아가? 절대 못 하지. 꺾는다고 꺾일 사람들이야? 우리, 우리가?”
“죽으면 죽었지 꺾이지는 않지.”
“바, 바, 바로 그거거든!”
“네에. 잘했어요. 다음.”
긴장을 많이 했나 보군.
저렇게 말을 더듬어대서야 원. 실장이 안경을 바로 쓰며 다음 사람을 호명했다. 무영과 로민의 차례였다. 이번에는 제작사 직원이 먼저 운을 떼어줘야 했다.
“정민이 아니야?”
“맞네. 말 못 한다고 동아리 나가더니, 바로 다른 곳에 들어갔더라. 야야! 김정민!”
제작사 직원이 크게 부르자, 로민이 쳐다봤다.
무표정하게 세상만사 모두 귀찮다는 듯.
“너 여기 무슨 일이야? 오늘 무대 서?”
“무슨 소리야. 말도 못 하는 애가 무슨 무대. 크큭.”
노골적으로 걸어오는 시비에 그가 입을 이죽거렸다. 옆에서 지켜보던 무영이 살짝 웃었다. 역시, 말 안 하니까 훨씬 낫네!
“꼽냐? 꼬우면 어디 꺼지라고 말 해보던-”
“그럼 꺼져 이 새끼들아~”
직원의 말을 자르며 훅 들어오는 무영의 대사. 흔히 말하는 ‘치고 들어간다’의 공간 없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그는 옆에 앉은 로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꺼지라고. 두 번 말해줘? 귀먹었어?”
이상하다? 분명 아까 연애 못 해봤다고 수줍게 웃던 그 하무영이 맞나? 입에 착착 달라붙는 쌍소리가 쫀득쫀득하다. 피디가 미소를 띠며 그를 지켜봤다.
스윽-
그때, 로민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분에 차고, 짜증 나는 눈빛으로. 가운뎃손가락이 올라가려고 할 때.
“어허. 말고 말고.”
무영이 손바닥을 펼쳐 그 손가락을 가려줬다. 방송 심의상 걸리는 부분이라 그렇게 서술한 것이다. 그런데-
“하하하!”
무영이 장난스럽게 손가락 사이를 빠르게 벌렸다 모았다. 그 틈으로 슬쩍슬쩍 보이는 로민의 가운뎃손가락. 능청스러운 몸짓에 실장이 웃음을 터트렸다.
“뭐지? 원래 지문이?”
“음…… 정민의 손가락을 가린 도하가 장난스럽게 까분다, 라고 적혀있네요.”
무영은 로민의 귀에 뭔가를 속삭이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자 로민이 씨익 웃으며 수화를 하기 시작했다. 팔을 양옆으로 쓸고, 귀를 훔치며, 코를 닦는 모션.
“……?”
피디는 이어서 다음 지문을 확인했다.
[둘은 소란을 떨어대며 상대 무리를 쫓아낸다. 클럽 분위기에 맞춰 경쾌하고 즐겁게.]욕하는 수화였다.
정민 역 때문에 수화를 배운 작가만 알아보는 욕.
‘레고 밟고 발톱 나가라!’
‘재채기할 때마다 콧물 터져라!’
‘겨드랑이 냄새 때문에 차여라!’
척척척! 절도 있는 로민의 몸짓이 마치 춤을 추는 것 같다. 그걸 옆에서 보던 무영도 재밌다는 듯 활짝 웃으며 따라 했다.
척척척!
마치 무술을 하는 것처럼 칼군무다. 둘은 몇 번이고 그렇게 수화로 욕을 퍼붓더니, 동시에 시선을 마주하고 웃었다.
“푸하하하!”
“…….”
절로 영상이 그려졌다.
그들의 알 수 없는 행동에 상대 무리 애들은 슬금슬금 피했겠지. 또라이들이라며, 그냥 가자고. 폭포처럼 시원하게 울리는 무영의 웃음소리가 맑았다.
‘오호.’
실장은 흥미롭게 그의 연기를 계속 지켜봤다. 사실 대사보다 어려운 것이 바로 저것이었다.
갑자기 웃음과 눈물처럼 감정 쏟아내기 같은 거.
대사가 있다면 윤활유가 되어 상황에 자연스레 녹아들게 하겠지만, 저렇게 행동만으로 연기하던 중 소화하기는 참 어려웠다.
‘대사 전제가 없어도 납득시키는 힘이 있네.’
피디 역시 마찬가지.
대사 없이 막무가내로 웃어도, 진짜 즐거워서 웃는 것처럼 보이는 무영의 연기에 조금 놀란 참이다. 그의 연기가 성공적이었다는 방증을 묻자면, 이 회의실 사람들 표정을 들어 보일 것이다.
“방금 뭐예요? 하하. 진짜 웃긴다!”
“로민이가 수화를 할 수 있대요.”
“팬분들 중 농아인분들이 꽤 계시거든요.”
“와아. 정말? 대박이네. 근데 무영 씨는 그걸 보고 한 번에 따라 한 거예요?”
“네? 아. 뭐. 그렇죠? 어쩌다 보니?”
“이야. 재밌네!”
덩달아 즐거워 웃음이 전염되지 않았던가.
피디는 아예 볼펜을 내려놓고 팔짱을 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본인은 저 하무영이란 배우가 마음에 들었다. 딱 이 역에 맞는 사람 같다 이 말이지.
이건 피디로서 오는 본능 같은 거였다.
“작가님. 어때요?”
이유진 피디의 말에 작가 역시 대본을 덮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안 들리도록, 아주 조용히 속삭였다.
“나 방금 보고 왔잖아요. 도하랑 정민이.”
만족스럽다는 얘기.
둘 다 이미지가 찰떡으로 붙는 건 물론이요, 연기력도 나쁘지 않았다. 물론 로민이 쪽은 좀 두고 봐야겠지만. 그들은 무영과 나누었던 대화 포인트를 되씹었다.
‘이러나저러나, 조건 참 잘 맞네.’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문신이나 스케줄 병행 따위의 귀찮은 게 없다면…… 이유진 피디는 제작사 실장의 눈치를 살피며 결심했다.
‘난 꼭 하무영 써야겠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