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73)
신인인데 천만배우 73화
지금 뭔데?
회의실 밖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는 매니저들. 언제쯤 나오려나, 초조한 모습이 붕어빵처럼 똑같다. 이내, 문이 열리자 다들 동시에 일어섰다.
“무영아!”
이 모습…… 뭐랄까? 수능 마친 아들내미를 반겨주는 엄마 같다. 무영과 로민이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어땠어? 잘했어?”
역시 속닥속닥. 주위에는 아직 경쟁자들이 있었기에, 고경민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물었다. 둘은 그저 말없이 방긋.
“차에서 얘기해요.”
“아, 그래. 여긴 좀 그렇지?”
“으아! 배고프다.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갈래요?”
“로민이가 사는 거면 간다!”
“헐. 제가 막내인데?”
“돈 많으면 형이야. 형.”
그들은 잡담을 떠들어대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그때, 헐레벌떡 뛰어오는 이유진 피디.
“잠시만요!”
주위 사람들이 뭔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혹시? 저요?
“하무영 씨!”
“네?”
그러면 그렇지. 이유진 피디는 무영을 붙잡으며 다시 한번 스케줄을 상기시켰다.
“잊지 마세요. 다큐멘터리.”
“아아. 맞다.”
“회사 쪽으로 곧 연락 갈 건데, 촬영 일정이 안 잡혀서 러프하게 생각해 둬요.”
“네에! 알겠슴당.”
띵동!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무영이 꾸벅 인사하며 올라탔다. 로민과 고경민 역시 마찬가지. 그녀는 팔짱을 낀 채 의미심장한 말로 마무리했다.
“또 봐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또 본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다큐멘터리? 아니면…….
‘잘했구나! 무영이! 장하다!’
고경민은 벅차오르는 김칫국을 한 사발 마시며 무영의 뒤통수를 사랑스럽게 쳐다봤다. 그 뜨거운 눈빛을 알아챈 무영. 살짝 뒤돌며 멋쩍게 웃었다.
“왜 그래요?”
“아니야. 가자. 밥 먹으러!”
“오. 매니저 형이 사는 건가요?”
무영은 웃으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낯선 번호로 들어와 있는 문자 하나.
[오늘 저녁 어때요?]누구더라? 곰곰이 기억을 헤집자 떠오르는 그 이름.
“다령?”
“다령이요? 걔 왜요?”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 무영의 중얼거림에 로민이 의아하게 되물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영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오니 참 궁금했거든.
“몰라. 저녁 먹자는데?”
“헐. 왜? 형 먹지 마요. 차라리 나랑 먹어.”
“나도 그러고 싶은디…….”
그때 봤던 반짝이가 뭘 가져올지 궁금했거든. 무영이 벨트를 매는 동안, 로민은 쫑알쫑알 그녀의 뒷얘기를 늘어놨다.
“걔 성격 장난 아니던데. 소문도 안 좋고.”
“너랑 동갑이야?”
“아뇨. 세 살 많을걸요?”
응. 연장자 취급도 안 해준다 이거구나.
무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준호에게 연락했다. 그때 준호를 꼭 좀 데리고 오라 했으니, 걔가 된다고 하면 가고. 아니면 말고.
[준호쓰. 오늘 저녁 괜춘?] [오디션 잘 봤나 보네. 치킨 사주려고 했는데. 뭐 먹을까?]얘는 바빠 보이는데 은근히 시간 많아. 무영은 SOS 겸 사실을 털어놓았다.
[다령있잖아. 그때 보라 코 후려친. 걔가 저녁 먹자 그러는데 같이 가자. 나 혼자서는 좀.] [도랏나. 누구보고 밥을 먹재. 너 보라 친구인 거 몰라? 어디서 발을 뻗어대?] [잘 모르겠는데.] [야이. 하무영 띨띨아.]눈에 훤하다.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쾅쾅 쳐대고 있겠지. 하지만 나도 먹고 싶어서 먹는 줄 아냐? 다 반짝이의 유혹 때문이라고!
[넌 나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 장소랑 시간 딱 찍어 놔. 형아가 철통 방어 들어가 준다.]오케이. 알겠슴다.
든든한 아군을 등에 업자 뭔가 마음이 편안해졌다. 무영의 문자를 옆에서 지켜보던 로민이 경고했다.
“절대! 절대 술 마시지 말고요. 밥만 후르륵 마시고 나와요. 알겠죠?”
“네네. 알겠습니다. 너 자꾸 그러면 매니저 형이 걱정해. 됐고, 밥 어디서 먹을지만 정해. 원래 사는 사람이 정하는 거야.”
그의 말에 로민이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식당 주소를 읊어줬다. 마침 숙소 근처! 밥 먹고 데려다주면 딱이겠네! 무영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와중, 고경민은 이어폰으로 나금동의 전화를 받았다.
“네. 사장님. 지금 끝나고 밥 먹으러 가는…… 아아. 네. 진짜요? 그러면 어떡합니까?”
목소리가 자못 심각하다.
무영과 로민이 숨죽이며 그의 분위기를 살폈다. 긴 통화가 이어지고 나서, 무영이 무슨 일이냐는 듯 쳐다봤다.
“응. 아니야. 확실한 게 아니라, 나중에 말해줄게. 미안한데 난 사무실 들어가야 해서.”
그리고 힐끔. 고경민은 로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음. 알겠어요. 그럼 둘이서 먹을까?”
“좋아요! 형 어차피 저녁에 또 나가야 하잖아요. 우리 숙소에서 있다가 나가요. 씨원 형이 형 되게 좋아하는데.”
“나를? 왜?”
“노래 그렇게 부르는 사람 처음 봤다고.”
뭔지 궁금하지만, 말하지 않은데는 이유가 다 있는 법. 아마 로민이 외부인이라서 그런 걸 수도. 무영은 차가운 창문에 이마를 기대며 한남동으로 향하는 길목을 쳐다봤다.
* * *
그리고 그날 저녁.
“뭔데. 하무영. 왜 그렇게 멋 부린 건데?”
강남의 술집. 퇴근 후 바로 와 수수한 준호와 달리, 무영은 오디션 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덕분에 술집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선 집중.
“룸 아니었으면 바로 뛰쳐나갔다.”
“그렇게 눈에 띄어?”
“거울 안 봄?”
분명 밥집이라고 했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밥은 거들 뿐, 술을 주로 파는 곳이었다. 준호가 전투적인 태세로 소매를 걷어붙였다.
“오늘 내가 보라 복수해준다.”
“……너도 코 후려치게?”
“미쳤냐? 뉴스타고 깜빵 갈 일 있어? 신사답게 하겠다 이거야. 신사답게.”
열의를 불태우는 와중, 갑자기 문이 열리며 두 여자가 들어왔다. 다령과 모르는 사람 한 명. 키가 훤칠한 것이 딱 봐도 모델이었다. 준호는 그녀를 바로 알아보고 중얼거렸다.
“모리?”
“안녕하세요. 저희가 너무 늦었죠? 차가 막혀서.”
“저 아시네요. 와아- 기뻐라.”
모리. 신예 중 제일 핫한 모델 아니던가. 그들은 방긋 웃으며 앞자리에 앉았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무슨…… 2대2 미팅처럼 되어버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저도 친구 한 명 데리고 왔어요.”
“놀라셨죠? 하하.”
다령이 마스크를 벗으며 인사했다. 이번에는 풀 메이크업! 저번에 봤던 것보다 눈이 두 배는 커진 상태다.
“배 많이 고프죠? 여기 전골이 진짜 맛있거든요. 두 분 다 소주 드시죠?”
다령은 많이 와봤는지, 능숙하게 메뉴를 정하고 주문했다. 일사천리로 세팅되는 테이블. 술과 밥이 늘어지자, 그녀들은 자연스럽게 소주잔을 돌렸다.
“우와! 진짜 맛있다!”
무영이 전골을 먹고 감탄하자, 준호가 테이블 아래로 그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정신 차리라는 뜻으로. 다령이 그에게 술을 따라주며 물었다.
“근데 이름이 준호 씨 맞죠?”
“네. 맞습니다. 임준호요.”
“본투리에서 일하신다고?”
굉장히 촉촉한 웃음. 준호가 멈칫거리자, 이번에는 무영이 그의 허벅지를 꼬집어 줬다.
“으악!”
“네?”
“네네. 맞다고요. 거기서 MD로 일해요.”
그렇게 대답하며 지그시 무영을 노려본다. 메롱. 혀를 빼꼼 내미는 무영. 정신 차리라 이 말씀이여!
“우리 이러지 말고 짠해요. 짠!”
그들의 요청에 준호가 비장한 얼굴로 술잔을 들었다. 그 표정을 보아하니, 이제야 알겠다. 보라의 복수라는 게…….
‘술병 내주겠다 이거구먼?’
그렇다면 무영은 한 발 떨어져서 응원해줄 수밖에.
짠-
소주잔 가득 찰랑이는 술이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준호는 전쟁에 임하는 태도로 그걸 한 번에 들이마셨다. 그리고 어서 따라오라는 듯, 다령을 향해 웃었다.
* * *
“히끅-!”
세 시간 뒤. 테이블 옆에 놓인 소주만 여덟 병이다. 중간부터 빠진 무영과 달리 계속 퍼부은 세 명은 거의 꽐라 상태.
“-해서 제가 뭐라 그랬게?”
“……몰라.”
“아이참. 준호는 너무 쌀쌀맞아. 나 만나러 온 거 아니야?”
“당연히 술 먹으러 왔지! 짠!”
“너무해-!”
“또 먹자고? 우에엑-”
셋 다 벌게진 얼굴로 제 말만 해댔다. 술 대신 전골을 들이마신 무영은 볼록해진 배를 매만지며 그들을 지켜봤다.
‘아오. 피곤해 죽겠네. 대체 반짝이는 뭔데?’
막잔까지 원샷한 준호가 혀를 쭉 내밀며 무영의 어깨에 기댔다.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표정으로 중얼중얼.
“쟤들 대체 뭐냐? 술 X나 잘 먹네.”
“그려. 니가 제일 취한 것 같다.”
“안 되는데. 우리 보라…… 복수해야 하는디.”
그 순간,
쿵-
“어? 야야. 괜찮아?”
다령의 친구가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네에. 한 명 가셨고요. 무영이 이제 그만하자는 듯 손을 내저으며 일어섰다. 반짝이가 뭔지 몰라도, 더는 못하겠으니.
“많이 마셨네. 이제 슬슬 일어나죠.”
“나 좀 부축해줘.”
다령이 헤실헤실 웃으며 준호에게 손을 뻗었다. 무영이 대신 잡아주려고 하자, 손등을 가볍게 쳐댔다.
“싫어! 준호가!”
“아오. 진짜 가지가지 하네.”
무영이 준호를 쳐다봤다. 빨리 택시 태워서 보내자는 시선이다. 세 시간 동안 다령이 준호에게 부린 끼만 해도 산더미. 옆에서 보고 있자니 피곤해서 죽겠다.
“자아. 계산은 그쪽이.”
비틀거리는 손과 다리, 다령 역시 만취한 게 분명했다. 그녀는 사인을 갈기고 바깥으로 나왔다.
“으음. 밤바람! 너무 추워!”
“여름이라 더운데?”
“다령이는 추워어-”
그러면서 자꾸 준호의 팔에 매달리는 게 아닌가. 준호가 그녀를 떼어내려고 할 때였다.
“야!”
술이 달아날 정도로 우렁찬 고함. 무영과 준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뒤를 돌아봤다. 보라였다.
“임준호. 너 뭐하냐?”
“보, 보라야. 네가 왜 여기 있어?”
헉. 준호가 경기를 일으키며 다령을 떼어냈다. 하지만 그럴수록 거머리처럼 들러붙는 그녀.
“나 미팅 겸 회식 있다고 했잖아. 너야말로 뭔데? 오늘 일찍 퇴근했다며?”
그녀의 시선이 만취한 다령에게로 향했다. 마스크가 불편한지, 거의 턱에 걸쳐져 있었다. 다령이 준호의 팔을 감싸며 대꾸했다.
“일찍 퇴근하고 한잔했지. 왜 그렇게 소리쳐?”
아주 요망하고 앙칼진 말투. 보라가 기가 찬다는 듯 준호를 노려봤다. 그리고 말없이 휙! 몸을 돌려 멀어졌다.
“보라야!”
“어디 가? 택시 타고 우리 집 가자. 2차 콜?”
“얼어 뒤질 소리 하네. 이거 놔봐!”
준호가 그녀를 팽개치고 보라를 쫓아갔다. 휘청거리며 몸을 가누지 못하는 다령. 무영은 택시를 재빨리 잡고 모델 친구와 다령을 밀어 넣었다.
“조심히 가요. 기사님한테 주소 말해줘요! 번호가 서울 아 8457, 미공운수…… 도착하면 연락하고, 기사님. 잘 부탁드립니다!”
“어디가-! 다 어디 가냐고!”
그리고 그 역시 준호와 보라의 뒤를 쫓았다. 택시 번호랑 회사도 확인하고, 문도 제대로 닫아 줬건만, 한 가지 실수를 했다면…….
“내려줘!”
“어어. 아가씨. 문 열면 위험해? 내릴 거예요?”
“아 몰라! 안 가! X발, 나 내릴 거야! 강보라가 뭔데 다 쟤만 쫓아가냐고……!”
“허! 거참.”
택시가 출발했다 멈춘 걸 못 봤다는 거지. 다령은 길가에 앉은 채로 꿍얼꿍얼…… 이어서 몇 시간 동안 먹은 모든 걸 게워내기 시작했다.
“우에에엑-!”
“어머. 저 사람 좀 봐.”
“으엑. 더러워.”
“응? 근데 다령 아니야?”
“다령? 어디?”
……한편, 준호가 사라진 곳으로 뛰어간 무영.
그새 놓치고 말았다. 휴대폰으로 연락해도 받질 않고. 그는 스스로 자책하며 머리를 헝클였다.
‘꽃가루 뭔데! 진짜!’
행운은 개뿔! 보라한테 미움만 받게 생겼다. 배신자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무엇보다 준호가 오해받으면 정말 미안한데…….
“아오!”
쪼그려 앉아 한창 후회하고 있을 때. 뭔가가 바닥에 흐르고 있었다. 꽃가루!
‘……?’
무영은 가만히 그걸 보다가, 천천히 따라나섰다. 마치 길을 인도하는 것 같았거든. 굽이진 골목 안쪽까지 계속해서 이어지는 반짝이. 이내 모퉁이를 돌자-
“헉!”
진하게 키스하고 있는 남녀가 보였다. 인기척을 느낀 여자가 화들짝 놀라며 남자 목에 감았던 손을 풀었다.
“앗, 죄, 죄송합니다아-”
무영이 눈가를 가리며 급히 시선을 돌리려는데.
“……잠깐만.”
거기 두 사람. 실루엣이 굉장히 익숙하잖아?
“야!”
무영이 기겁을 하며 둘에게 삿대질해댔다. 너무 놀라서 입만 벙긋벙긋. 보라는 망했다는 듯 얼굴을 손으로 가렸고, 준호는 머쓱하게 웃었다.
“갈 길 가라. 무영아.”
“야이, 미친! 너희 뭔데!”
둘을 감싸고 있는 따뜻한 반짝이. 소중한 사람에게 소중한 사람이 생기는 것. 반짝거림이 뜻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