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75)
신인인데 천만배우 75화
해프닝
“좋냐?”
그날 오전. 해장으로 짜장면과 짬뽕을 시켜 먹는 무영과 준호. 젓가락질하던 준호가 무영의 말에 배시시 웃었다.
“흐히히히.”
“말을 못 하네. 말을. 난 당최 이해가 안 된다.”
“어린이는 못 해도 돼요. 이해하지 말고 넘어가요!”
“어지간히 신났구나. 신났어.”
준호는 국물 한 입 먹고, 보라랑 문자. 다시 면 후루룩 먹고, 보라랑 문자. 를 계속해서 반복했다.
사랑에 빠지면 바보가 된다더니 저건 그냥…….
“에효. 됐다.”
말해봤자 입만 아프지.
“사랑에는 약간의 트리거가 있어야 하는 법이지. 암. 너도 슬슬 형님 품 떠나서 새 사랑 찾아가라.”
“네에. 알겠으니까 밥이나 얌전히 드세요. 정신 사나워.”
“근데-”
뭔가 신나서 말하려던 준호가 멈칫거렸다. 짜장면을 한입에 넣고 우물우물, 무영이 무슨 일이냐는 듯 쳐다봤다.
“어? 이거 뭐야?”
“왜 그래?”
준호가 손을 파닥거리며 빨리 제 옆으로 오라는 신호를 주었다. 그릇째로 들고 가니, 그가 보고 있는 것은 기사였다. 매일데일리에서 방금 막 나온, 따끈따끈한 속보.
[강남역 만취 연예인 A양 동석자는 하무영.] [술 취한 A양은 거리에, 하무영은 어디에?]“뭐야?”
후르륵! 무영이 면을 마저 입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다령은 A양이라며 가명을 써준 반면, 무영의 이름 석 자는 또박또박 박혀있었다.
“야야. 잠깐만. 이거 심각한 거 아니냐?”
“어. 음. 매니저 형이 보면 기절할 것 같긴 하네.”
[지난 새벽 강남역에서 소동을 일으킨 연예인 A양의 동석자가 신인 배우 하무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미튜브 ‘한밤포차’로 이름을 알리고 현재 SNS 인플루언서 계열에 오른 배우로, 최근에는 조연출의 갑질로 화제 되었던 [카페에 오세요>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사건 당일 A양은 하무영 군과 함께 술을 마셨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거리에 혼자 있었다고 전해왔다. (중략)]“엥? 이상하다? 나 분명 택시 태워서 보냈는데.”
[한편 네티즌들은 A양이 다령일 거라 추측했지만, 소속사 측에서는 사실무근이라 일축했으며 현재 촬영 중인 [카페에 오세요>도 차질 없이 진행할 것이라 전했다.]“장난까나. 영상이 버젓이 있는데.”
어두운 밤인 데다, 심하게 흔들리긴 했다. 술 취한 여자는 계속해서 ‘다령 아니라고-!’를 외쳐댔으니. 무영은 단무지를 와작거리며 영상을 함께 돌려봤다.
“너 지금 이러고 있어도 되냐?”
“응? 뭐가?”
“물타기 하는 거잖아. 지금. 상대 소속사에서.”
가명으로 가려진 A양 대신 하무영이란 이름 석 자를 미끼로 던져준 것이다. 대중들에게 물어뜯길 만한 먹잇감으로. 어벙한 무영과 달리 준호가 더 심각하다.
“댓글 보라고.”
-하무영 듣보 누군데 다령이랑 술 먹음?ㅋㅋ
-다령 아니라잖아요. 본인이 아니라는데 좀 믿어줍시다. 상식적으로 다령 정도 되는 애가 그러는 게 말이 됨?
-근데 하무영도 웃긴다. 같이 술 먹어놓고 사람을 그냥 놓고 가네; 요즘 세상 얼마나 험한데.
-술 먹고 먼저 뻗은 거 아님?
-하무영…… 당신…… 실망…… 얼굴값 해…….
-어떻게 사람을 저렇게 두고 감?
다들 기자가 던져준 화두를 즐겁게 뜯고 씹어댔다. 그 밑에는 원색적인 악플도 꽤 많다.
준호가 대충 필터링해 주며 친구의 눈치를 힐끗거렸다.
“너 괜찮냐?”
그런데 어째, 반응이 없다? 멍하니 우물우물, 단무지만 아작거리며 한 곳만 응시했다. 뭔가를 깊게 생각하는 것처럼.
지이잉- 지이잉-
“아. 매니저 형이다.”
마침 기다렸다는 듯, 무영이 입가를 닦았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심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기, 무영아. 미안하다. 이게 우리도 막아보려 했는데 매일데일리 쪽이 연락도 안 받네. 이 괘씸한 새끼들이 돈도 처받아 놓고…….
인터뷰 때부터 뭔가 싸하다 했어.
-일단 우리도 아니라고 기사 낼 거니까 넌 당분간 인터넷 하지 말고 기다려. 우리가 수습해 볼게.
하지만 말이 수습이지, 겉을 까놓고 본다면 소속사 간의 알력 싸움이었다. 다령을 보호하려는 곳과 무영을 보호하려는 곳의 싸움. 무영은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며 물었다.
“근데 형. 실링액터스 쪽은 완전히 입장 낸 거예요? 다령 아니라고?”
-어. 사실무근이라 일축했어.
“그리고 매일데일리 쪽에서 낸 기사, 사실과 다른 거면 소송 가능하죠?”
-소송? 가능하지. 근데 어떤 거? 술 마신 건 사실이잖아.
“그렇지만 제가 다령 놓고 갔다는 식으로 몰아가잖아요. 저 분명 택시 태워서 보냈거든요.”
무영은 그렇게 말하며 손끝으로 테이블을 툭툭 두드렸다. 귀찮아 죽겠네, 진짜. 피곤해서 낮잠 좀 자려고 했건만.
“실링이랑 매일데일리 쪽에 연락 넣어보세요. 진짜 개망신당하기 전에 알아서 처신하는 게 좋을 거라고.”
준호가 슬그머니 그릇을 가져와 눈치 봤다. 처음 보는 무영의 시니컬한 표정. 평소 얌전한 사람이 화나면 더 무섭다더니, 딱 그 꼴 아닌가.
-사진이나 영상 따로 있어?
“미공운수 서울 아 8457번. 제가 그 택시 태워서 보냈거든요. 블박에 찍혀 있을 거예요.”
경찰한테까지 그 난리를 쳐댔으니, 택시 기사님께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거다. 고경민이 빠르게 메모하는 듯, 연필 갈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거 확 SNS에 올려 버릴까요?”
-검토 좀 하고 우리가 대응해 볼게. 일단 알았다.
뚝.
다급한지 전화가 맥없이 끊어졌다.
준호가 짬뽕을 마저 먹으며 물었다.
“근데 넌 술 취한 와중에 그걸 다 기억하냐?”
택시 번호 확인하는 건 기억하려고 하는 거 아니야? 무영이 당연한 말을 하냐는 듯 웃었다. 준호가 하는 말의 포인트는 그게 아닌데.
‘역시 서연대. 기억력 하나는 졸라리 좋아요.’
본인은 그게 당연한 거니까 모르는 모양이지. 어디 기록이라도 하지 않는 한, 준호 같았으면 바로 까먹어서 강남역 일대 CCTV를 다 뒤지고 다녔을 거다.
“아우…….”
무영은 쿠션에 얼굴을 박은 채 앓는 소리를 해댔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사람들이 뭐라 해도 네가 아니면 된 거지.”
술 취한 사람 두고 간 매정한 놈부터 시작해서 책임감이 없다 등등. 필터링 안 하면 들을 수도 없는 말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었으니.
“난 그런 거 신경 안 써.”
“뭐? 그럼?”
하지만 무영에게는 닿지 않았다. 세상 사람 다 욕하든 말든 알게 뭐람. 면전에서 침 뱉는 것도 아닌데. 다만, 그가 걱정하는 것은…….
“오디션 결과에 문제 생길까 봐 걱정되는 거지.”
에구. 분명 문제 안 일으킬 자신 있다고 피디님께 말씀드렸는데, 이런 해프닝에 휩쓸리다니. 무영이 눈을 부릅뜨며 준호를 노려봤다.
“다 너 때문이다. 짜식아.”
“나? 나 왜?”
“너랑 보라랑 이어주려고! 응? 반짝이가 반짝반짝해서 내가 다령이랑 술 먹은 거잖아.”
“덜 깼네. 덜 깼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절규하는 무영을 보며, 준호는 그릇을 정리했다. 뭔 말인지는 몰라도 저렇게 호들갑 떨어대는 걸 보니 괜찮은 것 같다.
“한숨 자고 일어나. 그러면 좋아질 테니.”
“넌?”
“나도 이거 치우고 잘 건데? 오랜만의 휴일이니까 뽕 뽑아야지. 자자. 어서 누우셔. 먹고 눕는 게 찐 행복이잖아.”
무영은 준호의 말을 들으며 담요를 찾았다. 햇살 따사로운 여름 오전. 에어컨 바람은 솔솔 나오지, 전날의 피로는 밀려오지.
‘자고 일어나면 다 잘 마무리되어 있음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솔솔, 속에서 꿈틀대던 짜증을 가라앉혔다. 기분이 평온해질수록 그의 눈꺼풀도 감겨갔다.
* * *
“피디님. 방금 올라온 영상 보셨어요?”
“또 뭔데? 나 무섭다 진짜.”
[카페에 오세요>를 담당하고 있던 피디. 아침부터 호출받고 방송국에 출근해서 다령 뒷수습을 도와주고 있던 차였다.‘방영 앞두고 이러면 진짜 어쩌라고!’
사전제작이라 대부분 완성된 작품이었다. 이제 방영만 하면 되는데, 여주인공이 이렇게 병크를 터뜨리다니. 소속사와 합심해서 기사를 내긴 했지만, 이미 여론이 안 봐도 뻔했다.
‘말 많은 드라마.’
조연출 사건부터 시작해서…… 아주 제대로 찍혔지. 차라리 노이즈마케팅으로 넘어가면 소원이 없을 정도다.
“방금 기사 떴는데요. 뉴스원픽에서 단독으로 보도한 건데, 다령이 탔었다는 택시 블랙박스가 공개됐어요.”
“뭐? 무슨 블랙박스?”
무슨 하루가 이렇게 긴지 모르겠다!
또 뭐 터질 게 있는데? 피디는 조마조마한 심정을 부여잡으며 동영상을 재생했다. 거기에는 익숙한 두 목소리가 녹음되어 있었다.
[조심히 가요. 기사님한테 주소 말해줘요! 번호가 서울 아 8457, 미공운수…… 도착하면 연락하고, 기사님. 잘 부탁드립니다!] [어디가! 다 어디 가냐고!] [내려줘!] [어어. 아가씨. 문 열면 위험해? 내릴 거예요?] [아 몰라! 안 가! X발, 나 내릴 거야! 강보라가 뭔데 다 쟤만 쫓아가냐고……!] [허! 거참.]누가 봐도 다령의 목소리였다. 쌍소리를 자연스럽게 해대는. 그리고 택시 태워서 보낸 남자는…….
“하무영이지?”
“네. 아무래도 거기서 터트린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본부장님이 긴급회의 열었어요. 바로 올라가셔야 할 것 같은데요.”
“아. 제발.”
방영 취소까지는 안 갈 것이다. 이미 제작비가 엄청나게 들어갔으니까. 최선으로는 다령을 하차시킨 후 새로운 여주인공을 영입하는 거지.
편성이 늦춰지는 한이 있더라도. 피디는 서류파일을 그러모으며 손짓했다.
“가자. 어이고. 죽겠다.”
그런 그의 뒤를 따르는 조연출. 그녀는 끝도 없이 올라오는 피드와 댓글을 힐끔거리며 복도를 뛰었다.
-목소리 딱 봐도 다령인데?
-성깔 미쳤네;; 역시 이미지랑 실제랑은 다른 듯. 기사님한테 저럴 정도면 경찰서에서 개X랄 떤 것도 납득 가능.
-하무영이 거리에 두고 갔다며? 택시 태워서 보냈는데? 기사 내용이랑 좀 다르네요?
-그 와중에 번호 기억하는 거 보소. 소스윗.
-잘 들어가라고 인사까지 하네요. 도착하면 연락하라 하고. 이만하면 할 일 다 한 거 아님? 중간에 내린 걸 어쩌라고.
-방금 하무영 인스타 떴는데, 다령이 조연출 사건 때문에 사과하고 싶다면서 술 사준 거래ㅋㅋㅋ 근데 혼자 취해서 저 X랄한 거임. 둘이 마신 것도 아니고 네 명이서 마셨다는데. 쟤 혼자 왜 저럼?
댓글을 가장한 사이버불링이 해일처럼 쏟아졌다. 제삼자가 봐도 기운이 쏙 빠지는데, 본인은 어떨지. 쯧.
“실링 쪽에서는 연락 없어?”
“음. 사실관계 확인 중이라는 정정 기사만 냈던데요. 현장에 있었던 다른 목격 사진도 계속 올라오는 중이라. 아무래도 좀 힘들 것 같습니다.”
“하아. 그래.”
그와 동시에 삭제되는 매일데일리 측 기사. 피디의 눈짓에 조연출이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가 비장한 표정으로 회의실 문을 열었다.
끼익!
* * *
지이잉- 지이잉-
시끄럽게 울려대는 휴대폰. 무영은 엎드린 채 손만 더듬거려 기계를 찾았다. 어느새 어스름해진 저녁이다.
“……여보세요.”
-정신없고 바쁜 건 알겠는데, 연락이 너무 안 된다.
“이유진 피디님?”
-잤어요? 목소리가 왜 그래? 운 건 아니죠?
장난스러운 피디의 위로에 코가 괜히 찡해졌다.
“……안 울었는데여. 잤어요.”
-오늘 참 힘들었죠? 근데 그럴수록 바쁘게 지내야 해요. 시간이 약이라고, 정신 차리면 다 지나가 있을 테니까.
그녀는 잠깐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번 주에 제작사로 나올래요? 메릴켈린 멤버들 다 모아서 카메라 테스트 좀 해보고 싶은데.
“네?”
메릴켈린이라 하면 [너는 별, 나는 별>의 밴드 이름이잖아. 무영이 멍하니 무릎 꿇은 채 휴대폰만 두 손으로 받쳤다. 지금 이 말은…….
“저, 저 오늘 난리났는데요.”
-알아요. 새벽부터 완전 장난 아니었잖아요. 근데 자느라 못 봤구나?
뭘 못 봐? 궁금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래도 괜찮나요?”
-원래 스타는 잡음이 있어 줘야 해요. 평범한 사람한테는 있고 싶어도 있을 수 없는 거니까. 그리고 해프닝이었잖아요? 왜요, 싫어요?
그럴 리가! 무영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우렁차게-
“아니요! 그럴 리가요! 감사합니다!”
“크어억…….”
감사 인사를 소리쳤다. 덕분에 꿀잠 자던 준호가 경기를 일으키며 일어났지. 무영은 전화가 끊어진 후에도 꿈을 꾸는 것처럼 앉아만 있었다.
‘그나저나 자느라 뭘 못 봤다는 거지?’
정신을 차린 무영은 휴대폰으로 포탈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리고 실시간 검색어에 떠 있는 단어들로 한 번에 상황을 파악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