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78)
신인인데 천만배우 78화
첫 주연
“아. 잠시만요. 이거 왜 이래?”
실장은 볼펜을 몇 번 딸깍거리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밖으로 나갈 때까지 무영은 얌전히 앉아 앞만 보고 있었다.
타앙!
“형. 저 얼마 받아요?”
문이 닫히자마자 흥분해서 고경민에게 속닥거리는 무영. 매니저가 웃음을 터뜨렸다.
“거참, 빨리도 묻는다. 넌 먹고 살려고 연기하는 거니, 아니면 연기 하려고 사는 거니?”
“……살려고 연기하는 거죠.”
그래서 얼마인데요?
무영이 눈을 반짝이자, 고경민은 슬쩍 웃으며 계약서 표지를 톡톡 두드렸다. 선물 주는 부모님처럼, 아이를 놀려먹는 맛이 있다.
“예전에는 등급표가 있었거든.”
“얘기 들었어요. 무슨 18등급까지 있다고.”
1등급부터 5등급까지는 아역, 그 위로는 성인배우. 경력과 인지도에 따라 달라지며, 특히 인지도가 더욱 중요하게 작용되는 표라지.
“근데 요즘엔 좀 다르지. 워낙 신인 중에서도 혜성 같은 애들이 있고, 기성들은 저 멀리 천정부지 뚫고 날아가니까.”
회당 출연료 1억 돌파한 톱스타들이 어디 한둘인가. 이런 경우는 등급표보다 스타 본인의 명성과 소속사의 딜이 더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래서 저는 얼마인데요?”
“신인은 보통 300.”
주연이라도.
[역병>을 찍었다곤 하지만 아직 개봉 전. 필모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근데 인터넷상으로 네가 좀 먹히잖냐.”
“제가요? 그래요?”
“얼마 전에 다령 사건도 그렇고, 이상하게 기사는 나쁜 쪽으로 휘말리는데 결과가 좋단 말이지.”
조연출 갑질 때도 그래.
마치 악운이 그를 알아서 피해 가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무영은 손가락을 꼽으며 되짚었다.
“조연출 사건을 알겠는데, 다령도 뭐가 좋았나요?”
드라마 캐스팅이 됐으니, 조연출 건은 두말할 것 없이 행운이었다. 하지만 다령은 뭔지 모르겠는데?
“이미지 노출. 팔로워 증가.”
일각에서는 노이즈마케팅 아니냐는 말이 나돌 정도였으니까. 처음에는 무책임하다며 무영을 욕했던 사람들도 블랙박스가 공개되니 180도 태도를 바꿨다.
“택시 잡아주면서 번호 부른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다들 앓고 죽는다. 죽어.”
“어? 형 질투?”
“미쳤네. 얘가.”
장난스럽게 농담을 주고받는 둘. 하지만 현실은 진짜 장난 아니었다. 무영의 SNS는 별다른 피드 없이 계속 혼자 성장하고 있었으니.
“아무튼, 이런저런 사건들을 뒤로하고, 나랑 사장님이 샤바샤바 좀 잘했다. 같이 들어가는 애들 몸값이 좀 있어서 다행이야.”
조연에 연기 경력 전혀 없지만, 다들 인지도 만큼은 최상급. 출연료는 기본 이상이다. 그에 따라 당연히 우리의 ‘주연’ 몸값도 올라야지.
“조연보다 덜 받는 주연 봤어?”
“그래서 얼마인데요. 형. 저 뒤로 넘어가요?”
“500만 원.”
헐. 속삭이는 고경민의 말을 듣자마자, 무영이 멈칫거렸다. 눈이 반짝반짝. 촉촉해지는 것이 감격에 북받치는 표정이다.
“혀, 혀엉. 이거 몇 부작이죠?”
“16부작. 시청률 좋으면 연장 되겠지.”
500만 원 곱하기 16은?
“8천만 원…….”
찢었다! 지린다! 쩐다!
무영은 온갖 감탄사를 속으로 내지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 물론 여기서 세금 떼고 소속사랑 나눠야 하지만-
“재방료도 있는 거 알지?”
기본출연료의 20%. 삼방은 12%. 사방 이후로는 10%. 심야는 7%가 들어온다. 무영은 쭉쭉 올라가는 숫자에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였다.
“기회 왔으니까 잘 잡기만 하면 돼. 열심히 하자.”
물론 한 회 출연료 1억 내외의 스타들에 비하면 초라한 금액이었다. 그것도 주연이!
하지만, 쌩 노 필모인 신인인 것을 감안하면 굉장히 후한 금액. 무영은 찔끔 나오는 눈물을 훔치며 고경민의 손을 잡았다.
“오늘 가면서 고기 사가도 되겠죠…….”
“좋은 날이니 그 정도야!”
출연료도 출연료지만, 작품이 잘 되면 광고비용이 미친 듯이 뛰게 된다. 방영 후 판권이 해외로 팔린다면 그쪽 시장도 노려볼 수 있겠지.
“흐엉. 형. 저 진짜 열심히 알게요.”
“어이구. 우냐?”
“아니요. 훌쩍이는 건데요.”
무영은 눈가를 훔치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실장을 기다렸다. 고경민이 계약서를 마지막으로 검토하며 웃었다.
“정산받으면 뭐 할 거냐?”
“저요? 음…….”
골똘히 고민하는 무영. 하지만 시원하게 나오는 답은 없었다.
먹고 자고 입는 데에 불편함 없지, 편의는 매니저 형이 다 봐주고 있잖아. 딱히 돈 쓸데가 없다.
“학자금 한 번에 갚고요. 저축할래요.”
“그래. 너답다.”
“아. 애들 밥도 사주고 싶어요.”
준호랑 엔빈이, 로민이, 보라 등등. 평소 도움받았던 친구들에게 한턱내는 거지. 생각만 해도 즐겁다.
끼익.
“미안합니다. 볼펜이 이게, 막상 찾으면 또 없어.”
그때 실장이 들어왔다. 괜찮다며 차분한 미소를 짓는 무영. 방금까지만 해도 흥분해서 조잘대던 애가 맞나 싶다.
달달달.
‘응. 맞네.’
책상 아래 동동 굴려대는 발. 고경민이 웃으며 서류를 펼쳤다.
“그럼 검토 좀 해보겠습니다?”
“네에. 편하신대로. 싸인은 어떻게, 여기서 하시나요? 아니면 들고 가셔서?”
가계약서로 검토를 하긴 했지만 실물을 보는 건 고경민도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당사자 역시 직접 보는 게-
“시간 많이 주시면 여기서 읽고, 여기서 하고 갈래요.”
무영의 단호한 말에 실장이 그러라며 웃었다.
그날 오후. 무영은 저녁이 되어서야 제작사를 나왔다. 품에 본인의 사인이 멋들어지게 갈겨진 계약서를 안은 채.
“형! 고기 먹으러 가요!”
“오오냐. 네가 쏘는 거냐?”
“에잇. 기분이다! 갑시다! 돼지고기 먹어요!”
그는 어서 가자는 듯, 손으로 하늘을 찔렀다. 노을빛이 아주 멋들어지는 게 곧 다가올 메릴켈린의 밴드 컬러와 똑 닮아 있었다.
* * *
“저 왔어요.”
스케줄을 마친 로민이 숙소에 도착했다. 쓰는 사람에 비해 너무 넓은 집. 주방에서 물을 마시던 씨원이 인사했다.
“왔냐? 늦었네?”
“생각보다요. 형. 밥은요?”
“안 먹어.”
작업할 때의 공복감을 고수하는 씨원이었다. 그는 물만 벌컥대며 입가를 닦았다.
“너 들어가는 드라마 노래 어떻게 할 거야? 매니저 형이 그러대? 너 샘플링 따둔 거 있다고.”
“고민 중이에요. 근데 일단 형도 작업은 하고 있잖아요. 두 개 다 내면 안 되나 싶은데.”
“하나만 해. 하나만.”
제로텀 내에서도 작곡, 작사는 거의 씨원의 담당이었다.
그래서 제작사 쪽에서도 씨원에게 작업을 의뢰했지만, 로민은 그가 직접 부를 노래기에 따로 뺄까 고민하던 차다.
“하무영 걔는?”
“제일 먼저 녹음 들어간대요.”
“하여간 특이해. 어떻게 주연 자리를 먹었대.”
“근데 무영이 형 연기 작살나던데. 근데 본인은 그게 쩌는지 모르는 것 같아요.”
로민은 시시껄렁하게 잡담을 나누며 씨원을 힐끗거렸다. 아무리 작업할 때 뭘 안 먹는다지만, 저렇게 굶어서야 괜찮을까?
“형. 너무 무리하지 마요.”
“뭘. 하던 대로 하는 거지.”
“그러니까요. 이제 좀 여유 있게 해도 되잖아요. 활동도 거의 끝나가는데.”
작업을 20시간 동안 한 적도 있다.
그 시간 동안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됐다. 푹 쉬어라.”
씨원은 그렇게 대꾸한 후, 물통만 갖고 작업실로 들어섰다. 요즘 참 이상했다. 슬럼프라도 온 것인지…….
“밥 사왔다. 씨원이는?”
매니저가 두 손 가득 야식거리를 가져오며 물었다. 말 없이 고개만 젓는 로민.
“안 먹겠대요.”
“또? 저러다 몸 상하는데.”
“그러니까요. 요즘들어 더 심해진 것 같아요.”
자전거를 잘 타고 가다가, 순간적으로 중심을 놓친 기분이다.
어찌어찌 잘 가고는 있다만, 그래서 여전히 음방 1위도 먹고 그렇게 했다만…… 위태로웠다.
“스스로 강박이지.”
어느 정도 선에 도달한 후, 그 이상에 닿을 수 없다는 답답함. 남들이 봤을 때는 그것조차 굉장한 성과였지만 성장이 멈췄다는 게 본인들은 참 불안했다.
‘꺾이면, 꺾이는 거니까.’
한번 피크를 찍으면 그 이후로는 내리막길뿐이다. 모든 정상 아이돌이 그렇듯, 그게 당연한 일이지만 씨원을 비롯한 제로텀 멤버들은 아직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 여기까지 왔으니 한 걸음만 더.’
그게 씨원에겐 거식과 일중독으로 나타나는 것 같고.
“에휴. 히트곡 하나만 제대로 터져주면 좋을 텐데.”
“그러게요. 이번에도 나쁘진 않았는데, 좀 아쉽죠.”
“녹음실 귀신은 뭐하나 몰라.”
매니저의 말에 로민이 봉지를 뜯으며 웃었다. 참으로 오래된 속설이다. 녹음할 때 귀신 소리가 들어가면 대박난다는.
“에이. 귀신이 어디 있어요.”
로민은 그렇게 말하며 떡볶이를 한입 가득 우물거렸다. 꽉 닫힌 씨원의 작업실 문.
다음 날 해가 뜨도록 열리지 않았다.
* * *
“하무영이!”
“우리 왔어.”
현관 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준호와 보라가 두 손 가득 먹을 걸 들고 온 거다. 주방에서 나름대로 식사 준비를 하던 무영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왔어?”
“축하해. 이건 선물.”
“슈퍼스타 하무영이~”
“쟨 왜 저러냐. 술 먹었어?”
보라는 무영에게 샴페인을 안겨주며 웃기만 했다. 남친이지만, 저런 건 역시 못 봐주겠다는 표정. 그들은 식탁에 앉으며 음식을 펼쳤다.
“넌 어떻게 됐어?”
무영의 물음에 보라가 그저 눈썹만 까딱거렸다.
한바탕 휩쓸고 간 다령 사건으로 [카페에 오세요>는 말 그대로 초토화.
“여주 캐스팅을 물색 중이라는데, 아무도 하려 하질 않네. 내가 봤을 때는 실링액터스에서 한 명 땜빵으로 보낼 것 같아.”
다령이 친 사고, 회사 쪽에서 수습 해야지. 하지만 그걸 하고 싶어 하는 배우가 어디 있겠는가. 회사 임원이라면 또 몰라.
“그쪽 이사가 배우 진경숙이잖아.”
“나이가 쉰둘이시다.”
“아차. 그렇구나.”
‘로맨스 드라마 여주인공’이라는 조건 때문에 쓸 수 있는 배우가 한정적이었다. 그러니 더더욱 난항이지.
“네가 하면 안 돼?”
“나? 내가?”
무영의 물음에 보라가 어이없이 샴페인만 깠다.
“그럼 나 나온 부분은? 다 삭제해야 하는데?”
“너 여주인공이랑 투샷으로 찍히는 게 다잖아. 어차피 새로 찍어야 할 거, 상관없지 않나?”
준호까지 맞장구를 넣어댔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손을 내젓는 보라. 하지만 만약에…….
“만약에 여주인공 되면 진짜 대박이겠다. 그럼 우리 경쟁하는 거네?”
“편성 아직 안 떴다고 했잖아.”
“그래도 시기는 나왔으니까. 붙으면 어떡하지? 대박 재밌겠다.”
무영이 키득대며 웃자, 보라가 장난식으로 대꾸했다.
“재밌기는. 한쪽 피 보는 거지. 붙지 않게 기도나 해라. 우리 시청률 갱신할 거거든.”
“에배배. 아니거든. 우리가 할 거거든.”
둘의 유치한 싸움에 준호가 끼어들었다.
“어쨌거나 진짜 잘됐다. 얼마 후면 여기 나가야 하는데, 목돈 생겼으니까. 먹고 싶은 것도 다 사먹어.”
“그래야지. 그 전에 너랑 보라 선물.”
아직 출연료 받은 건 아니지만, 회사에서 정산금 당겨주기로 했다고!
둘 앞에 작은 선물 상자를 내놓는 무영. 준호는 넥타이핀, 보라는 립스틱이다.
“이게 뭐야!”
“그동안 고마웠다고. 약소한 표시다.”
“허얼…… 짜식. 뒤에는 뭔데?”
“어? 저거?”
준호는 하나 남은 상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와 동시에 울리는 휴대폰.
[초연 날짜 정해졌어. [호랑가시나무> 첫 타임 주말인데, 시간 괜찮아?]바로 유찬이 거지.
무영은 조용히 하라는 뜻으로 입을 가렸다. 보라 앞에서 유찬이 얘기 꺼내면 너만 속 쓰리다 바보야!
[응. 꼭 갈게.]무영은 그렇게 답장하며 식탁에 앉았다. 살면서 손에 꼽을 정도로 행복한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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