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79)
신인인데 천만배우 79화
하동극장에서
똑똑-
무영은 안방 문에 귀를 대며 노크했다.
이쪽으로는 아예 발걸음을 하지 않았기에, 먼지가 소복하다.
안쪽에서 인기척이 없자 다시 한번 더 똑똑. 한 지붕 두 가족 같은 느낌이네.
“귀신 씨. 계세요?”
끼익.
문을 열자 화사한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아무리 봐도 여기 채광은 정말 예술이다. 그 앞에 서 있는 귀신 씨.
“불러도 왜 답이 없어요?”
그녀는 가만히 뒤돌아보기만 했다. 해가 이렇게 쨍한데 두 발로 버티고 서 있는 귀신이라. 누가 그랬는가. 미물은 밤중에만 나온다고.
“갈 시간 됐어요.”
무영이 손목시계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약속했던 대로 [호랑가시나무> 무대에 세워주기로 한 날이다.
그리고 그 말인즉슨, 성불하는 날이기도 했지.
“준비는 끝났어요?”
그녀는 스르륵 무영을 지나쳐 현관으로 걸어갔다. 준비된 모양이네. 어서 내려오라는 준호의 문자 성화에 무영은 신발을 구겨 신었다.
“자요.”
업히라는 듯, 귀신 씨에게 등까지 내주는 무영. 그녀 역시 자연스럽게 폴짝 뛰어올라 탔다.
끼잉- 쿵!
“뭐야? 자세가 왜 그래?”
어기적어기적. 주차장에서 보라와 함께 기다리던 준호가 어이없이 되물었다. 멀쩡하던 애가 허리를 저렇게 숙이고 걸으니…… 이상하지 않은가.
“허리 다쳤냐?”
“그런 거 아니니까 그냥 가자. 빨리.”
앞 좌석에 앉아 있던 보라는 백미러로 입술을 고치고 있었다.
“왔어?”
유찬이는 무영 뿐만 아니라 원장선생님을 비롯해 보라, 형주에게까지 초대권을 보냈다.
아무래도 연기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이다 보니, 그가 빛나는 순간을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양이다.
‘불꽃이 제일 밝은 순간은 꺼지기 직전이거나, 혹은 정점에 달했을 때일 테니.’
이번 연극으로 유찬이가 어떤 결심을 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무엇이 되었든 그의 삶에서 지금이 제일 빛날 것임은 분명했다.
“걔는 연락도 안 되다가 뜬금없이…….”
보라가 묘하게 착잡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무영이 짐작하건대, 보라와 유찬이 사이에서는 친구 이상의 특별한 유대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게 동료인지 연인인지는 모르겠지만.
“혼자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잖아.”
지금은 준호가 있으니 모든 건 과거의 추억으로 묻어두는 거지.
보라는 입을 비죽거리며 준호의 말에 대꾸했다.
“사람 걱정시켜 놓고 뜬금없이 초연 티켓 보내는 게 말이나 되니? 하여간. 옛날부터 제 멋대로인 건 여전해.”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고 하니, 그 깊이가 어마무시할 거다. 준호가 피식 웃으며 제 팔뚝을 매만졌다.
“근데 주차장이라 그런가. 어우, 한기가.”
응. 미안. 뒷자리에 앉은 귀신 씨 때문에 그래.
그나저나 쟤도 은근히 촉이 좋단 말이야.
무영 본인처럼 눈으로 보는 건 아니지만, 기운이나 온도 따위로 확실히 알아채고는 있었다.
“가자. 늦겠다.”
무영은 창밖을 응시하는 귀신 씨를 힐끔거리며 준호를 재촉했다. 꼭 죽으러 가는 사람 같다. 아니, 이미 죽은 건 맞지만 이제 진짜 이 세상과 이별해야 하는 거니까.
“꽃 이거야?”
“응. 색 예쁘지?”
발치에 놓인 붉은 장미 꽃다발. 차 움직임에 맞춰 천천히 흔들거렸다.
* * *
하동극장 앞은 전과 달리 북적거렸다. 텅 빈 주차장은 자동차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고,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이 구름을 이루었다.
“유찬아!”
대기실을 찾은 세 사람. 어수선한 분위기 가운데 유찬만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굉장히 딱딱하게 굳은 얼굴.
“뭐야. 왜 이렇게 떨어?”
“어. 왔어?”
오랜만에 봤지만 시시콜콜한 인사는 생략이다. 보라의 투덜거림에 유찬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 진짜 장난 아니게 긴장되나 보다.
“잘할 수 있을 거야.”
“고맙다. 와줘서. 원장쌤은 먼저 가서 앉아 있어. 바로 옆자리니까 편할 거야.”
“자아! 외부인들은 이제 나가서 객석으로 돌아가 주세요. 곧 공연 시작합니다!”
몇 마디 나누지도 못했건만, 바로 이별이다. 무영은 귀신 씨를 내려놓으며 응원의 말을 보냈다.
“화이팅. 내가 꼭 지켜볼게.”
유찬은 말없이 방긋. 귀신 씨도 처연하게 선 채로 무영을 쳐다봤다. 대기실 문이 닫히고, 그들은 객석 자리를 찾았다.
“원장쌤!”
“다들 오랜만이다!”
한껏 멋을 부린 오석이 손을 흔들며 반가워했다.
무영은 소속사 계약할 때가 마지막이었고, 보라는 졸업할 때가 마지막이었으니. 실로 오랜만에 보는 거다.
“짜식들이 말이야. 연락도 없고.”
“죄송해요. 너무 바빴어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 없었으면 서운해서 울 뻔했어. 이것들아~”
그가 바로 옆에 앉은 무영의 팔뚝을 장난스럽게 꼬집었다. 한껏 시끌벅적하게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 원장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무영에게 속삭였다.
“너 이번에 로민이랑 같이 드라마 들어갔다며?”
“아. 네. 맞아요.”
“흐히히. 기특한 놈! 잘했다!”
로민이를 소개해 준 것으로도 모자라, 같이 작품까지 하게 되다니. 아마 이달 중으로 BV아카데미 전단지에는 새로운 문구가 추가될 것이다.
‘S사 미니시리즈에 캐스팅된-’ 무영!
“로민이는 좀 어때요?”
“수업 잡긴 했는데 워낙 바빠서리. 일주일에 한 번 보면 많이 보는 거다. 나 말고 네가 잘 좀 이끌어줘 봐. 애가 실력은 영 없는데 열정이 엄청나.”
그의 말에 무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촬영 들어가면 안 그래도 서로가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창 떠들어대던 와중, 불이 천천히 꺼졌다.
“어? 시작한다.”
무영은 자세를 바로잡으며 무대를 지켜봤다. 커튼이 쳐지고, 쨍한 노란색 조명 하나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마치 천사가 강림하는 것처럼, 성스러운 음악 역시 마찬가지.
두둥-!
“엘리샤 마을을 아십니까?”
‘오. 유찬이다.’
맨 처음 포문을 여는 유찬의 대사. 그가 허공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짙은 화장 아래 담담한 남자의 눈빛이 반짝였다.
“빛으로 세워졌지만 결국 피로 무너진 마을이 있습니다. 저는 바로 그곳의 이장이었죠. 이미 사람들이 사라진 이 와중, 이장이라는 이름을 계속 갖고 있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발성 좋네. 대사 처리도 괜찮고.’
원장은 반년 간 성장한 자신의 제자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유찬의 첫 대사를 시작으로, 하동극장에는 엘리샤 마을의 전말이 펼쳐졌다.
“바로 마리라는 여자가 마을에 당도한 순간. 바로 그 순간부터 일어났습니다. 핏빛의 소용돌이가.”
타악.
조명이 꺼졌다가 구석을 밝혔다. 그곳에 서 있는 한 여자. 붉고 곱슬거리는 긴 머리를 늘어뜨린, 마리였다.
‘어?’
그리고 그 위로 흐릿하게 겹쳐지는 환영. 귀신 씨였다. 그녀는 여자주인공의 몸 위에 바로 서서 연기를 덧발랐다.
“안녕하세요. 누구 안 계시나요?”
놀랍도록 청아한 목소리.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무영의 귀에는 귀신 씨와 여주인공의 목소리가 겹쳐서 신비롭게 울리는 것처럼 들렸다.
“누구시오? 처음 보는 사람인데?”
“호랑가시나무의 냄새를 맡고 왔습니다. 괜찮다면 물 한 잔 주실 수 있나요?”
타앗!
마리가 마을에 도착하는 걸 시작으로, 극이 진행되었다. 이장인 유찬은 중간중간 내레이션까지 담당하느라 대사 지분율이 꽤 높았다.
‘다행이네.’
중요한 역을 꼭 해보고 싶어 했잖아. 무영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두 사람, 아니 유찬과 귀신 씨의 공연에 서서히 빠져들었다.
“나무를 베겠다니요? 그렇다면 이 마을엔 호랑가시나무 열매만큼 진한 피가 흐르게 될 것입니다! 아아! 이제야 알겠어요. 어째서 신께서 저를 이곳으로 보내신 건지.”
“저 미친 여자가 뭐라는 거야?”
“나무를 베지 말라는데요?”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 나무 대신 여자 목을 베기 전에 다물게 하란 뜻이다! 멍청아!”
역시 직접 할 때도 재밌지만, 보는 것 역시 그만의 맛이 있다. 무영은 귀신 씨의 마지막 불꽃을 계속해서 지켜봤다.
“차라리 내 목을 베어요! 그렇다면 흐르는 피 역시 내일이면 멈출 테니. 하지만 나무를 벤다면 수십 년 동안 그대들은 피 속에서 살게 될 것이요.”
여주인공이 뱉는 대사와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지만, 무영의 시선과 관심은 귀신 씨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죽어서까지 무대에 서고 싶어 했던 사람의 한이니까.
“죽여-!”
째앵!
붉은 조명과 함께 사방에서 빛이 아른거렸다. 껐다 켜지는 조명으로 인해 마리와 그 배를 뚫는 창, 이장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처리되었다.
“아아아악!”
고막을 찢을 것 같은 높은 비명. 분명 배우의 육성이 바닥에 깔려 있었으나, 무영에게 닿는 것은 귀신 씨의 처절한 절규였다. 금방이라도 지옥에 끌려가는 것처럼, 사방이 아비규환이다.
꿀꺽.
일반 사람들 역시 그 기운을 느낀 것일까.
배우의 비명횡사에 절로 침을 삼켰다. 소름과 함께 알 수 없는 묘한 기운. 빠져들어 가는 것 같다. 극의 절정이 그 끝으로 다다르고-
딸깍-
불이 켜지자 온통 붉은 피를 뒤집어쓴 유찬이 독백을 이어갔다. 정말로 신이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고작 나무 하나에 그들이 그리 큰 벌을 받아야 하는지.
“혹여, 나무를 베는 것 하나로 믿음을 시험하신 거라면 나는 마땅히 지옥으로 가겠소. 모든 게 부질없으니. 신의 발치 아래에서 실험당하는 쥐로 살 바에야 지옥으로 가서 그에게 침을 뱉으라!”
광기에 쌓인 독백이 쩌렁쩌렁하게 객석 사이로 스며들었다.
작은 거인, 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혼자 서 있는데 어찌 저리 무대를 꽉 채운단 말인가.
“죽이시오! 나를 죽이고 으깨버리시오!”
절규하던 이장의 머리 위로 반쯤 잘린 나무가 떨어졌다. 쿠웅, 하는 소리와 함께 적막. 불이 켜질 때까지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두 호랑가시나무를 삼킨 것처럼, 침묵했다.
찰칵-
둥. 두두둥. 두둥!
이내 배경음악이 깔리고, 커튼콜이 진행되었다. 배우들이 일렬로 서서 손을 흔들었다. 환한 웃음. 극을 잘 마무리했다는 안도감과 뿌듯함에서 나오는 미소들이다.
“멋있다! 유찬이!”
“와아아-!”
“진서야! 김진서!”
짝짝짝!
각 배우들의 지인이 그제서야 일어서 환호성을 터뜨렸다. 무영 역시 일어서서 아낌없이 박수갈채를 쏟아부었다. 맨 앞으로 나오는 여주인공.
“김진서어!”
배우 이름이 김진서인가 보다. 무영은 그녀 뒤에서 아른거리는 귀신 씨를 확인했다. 그녀 역시 다른 배우들처럼 손을 흔들고 있었다.
볼 수 있는 건 무영뿐이니, 무영을 향해서.
“유찬아! 멋있다아!”
유찬의 차례에는 원장 역시 목소리를 보탰다. 객석을 보며 활짝, 아주 활짝 웃는 유찬.
“가자!”
커튼콜까지 끝나자, 보라가 무영을 재촉하며 꽃다발을 들었다. 그녀는 무대에 서 있는 유찬의 어깨를 감싸며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야! 너무 잘하더라!”
“하하. 고마워.”
그런 둘을 보던 무영. 잠시 머뭇거리며 몸을 돌렸다. 여주인공 뒤에 서 있는 귀신 씨와 시선이 마주친 것. 그는 마리 역을 한 배우에게 가서 꽃다발을 건넸다.
“정말 멋있었어요. 공연 잘 봤습니다.”
“네? 아. 네네. 감사합니다.”
영문도 모르는 남자가 건네주는 꽃다발. 배우가 어리둥절하게 받았지만, 상관없었다. 귀신 씨가 자신에게 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사아악-
그녀가 꽃다발을 품에 안고 무영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 순간, 깜빡이는 조명.
“어? 뭐지?”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하는 사이, 무영 역시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조명이 완전히 켜지자, 귀신 씨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무영아. 거기서 뭐 해?”
“응. 그냥.”
가버린 것이다.
묵은 소원을 청산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뭔가 시원섭섭한 마음에, 무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일행들 쪽으로 걸어갔다.
‘거참. 이상하네.’
그리고 그런 그의 뒷모습을 뚫어지라 보고 있는 김진서. 품속의 붉은 장미와 무영의 뒷모습을 번갈아 쳐다봤다.
“진서야, 왜 그래?”
그녀는 친구들의 말에 그저 방긋, 고개만 저었다. 어디서 본 것 같고, 어디서 다시 볼 것 같은 이상한 기분.
“아무것도 아니야.”
그녀는 그저 방금 극이 끝난 열기에 취한 착각이라고, 스스로 단정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