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80)
신인인데 천만배우 80화
임도하의 노래
치이익-
고기 굽는 소리. 무영은 노릇하게 익어가는 고기를 보며 예전 추억을 떠올렸다. 학원에서 다 같이 구워 먹었던 그 고기 파티. 그러고 보니, 그때는 준호가 샀는데…….
“이제는 내가 사네.”
“응? 왜? 싫어?”
“아니. 감격이라서.”
무영의 중얼거림을 들은 준호가 열심히 고기를 뒤집어댔다. 보라는 사이다를 한 입 머금더니, 유찬이를 향해 물었다.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건데?”
그 말에 방긋 웃는 유찬. 이미 답은 나와 있다.
“연극을 중심으로 해보려고.”
학원에서는 일부러 연극을 배척했다. 원장 오석 당사자가 그 길로 빠졌다가 된통 고생을 하기도 했었고, 연극판과 방송판에서 추구하는 연기 스타일 자체가 다르기도 했으니까.
“이제야 좀 알겠어. 왜 연극을 배우의 꽃이라 하는지.”
드라마는 작가의 꽃. 영화는 연출가의 꽃. 연극은 배우의 꽃이라 하지 않던가. 최소한의 음향과 조명으로 무대에 서서, 연기만으로 극을 이끌어가야 했다.
“해보니까 너무 재밌어요. 제가 진짜 뭘 원했는지도 알겠고.”
유찬은 원장을 향해 넌지시 고백했다.
“드라마나 영화로 매체를 타는 게, 사실 부수적인 문제였다는 사실을요. 연기를 하고 싶어서 그걸 원했던 건데, 어느 순간 앞뒤가 바뀌어 있는 것 같았어요. 그걸 해내야만 연기 할 수 있다는?”
“연극 한번 하더니 도 닦았네.”
보라가 웃으며 그의 앞접시에 고기를 놔주었다. 그런 보라를 보며 무음으로 칭얼대는 준호. 역시 입으로 쏘옥- 고기가 들어갔다.
“굶더라도 당분간 이렇게 살려고요.”
“에효. 그래. 네 선택이 그렇다면야. 나도 힘들긴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간이 제일 재밌긴 했다. 행복했고. 요즘엔 시대도 많이 바뀌었잖냐.”
예전에는 연극이면 연기, 드라마면 드라마. 이런 식으로 활동 바운더리를 딱 정해놓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그 경계가 많이 무너진 추세지.
“응원하마.”
“감사합니다. 쌤.”
“오늘 연기 죽이더라. 응? 언제 이렇게 컸나 싶어?”
오석이 그의 머리를 헝클이며 대견하다는 듯 장난쳤다. 짧은 여름 간의 방황이 결국은 인생의 갈피를 잡아주었구나. 정말 다행이다.
“나도 응원할게. 극 올릴 때마다 꼭 알려줘.”
“당연하지. 아까 봤지? 극장 객석에 다들 지인뿐인 거.”
초연이라 특히 그렇다.
배우들의 가족, 연인, 친구들이 대부분 자리를 채운 것이다. 무영은 방긋 웃으며 고기를 와앙- 입에 넣었다.
“아, 참. 근데 너 휴학할 거라며?”
“어? 어떻게 아셨어요?”
“아까 너 화장실 갔을 때.”
오석의 물음에 무영이 눈만 깜빡거렸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닌데, 거의 그러지 않을까? 드라마 촬영이 잡혀 있으니, 그거 하나에만 신경 쓰기도 힘들 거 아니야.
‘등록금도 아깝고.’
하지만 역시 걸리는 건 기숙사. 한 학기에 80만 원만 내면 되니까…… 그 유혹이 엄청났다. 관리비는 물론 공과금도 없잖아.
“고민 중이에요.”
“너 지금 살고 있는 오피스텔은?”
“보름 뒤쯤에는 빼야 하거든요.”
이제 귀신 씨도 저세상 갔으니, 집주인 부용과 딜을 잘하는 것만 남았다. 무영은 원장쌤을 지그시 지켜보며 머리를 굴렸다.
‘원장쌤한테 다 솔직하게 얘기하고 도와달라 해?’
곧 드라마가 방영되면 부용 역시 무영이 닥터마텔 직원이 아니라 배우라는 것을 알게 될 텐데. 직접 퇴마 했다고 말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컸다.
‘원장쌤을 삼촌으로 소개하고…….’
끄응. 생각보다 명쾌한 해답이 안 나네.
무영은 왜 그러냐며 눈썹을 까딱거리는 원장을 향해 고개만 가로저었다.
“귀신 사는 집이라 어차피 빈 집인데, 네가 살았으면 좋겠다. 거기 좋더만.”
“귀신? 진짜?”
“네. 근데 전 살면서 한 번도 못 봤거든요.”
그거야 무영이 귀신 씨한테 단단히 일러뒀으니 그런 거지. 무영은 머리를 골똘히 머리를 굴리며 고기만 우걱우걱 먹어댔다.
“유찬이 넌 바로 극장으로 돌아가?”
“응. 어차피 내일도 공연 있어서 크게 치울 건 없긴 한데, 팀원들이랑 피드백 주고받으려고. 너랑 준호는?”
“집에-”
“데이트 갈 건데!”
보라는 집에 가겠다는데, 준호는 능글맞게 말을 잘랐다. 유찬이가 그런 그를 빤히 보다가 진심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데이트 잘하고.”
둘 사이의 특별한 감정은 모두 과거 일. 저렇게 질투하고 불안해하는 준호가 귀여워 보였다 보다. 그는 무영을 쳐다봤다.
“너는?”
“나는 노래 녹음하러 가야 해.”
“녹음? 이 시간에? 곧 밤이잖아.”
녹음은 무슨, 발 닦고 자야 할 시간이구먼.
준호의 꿍얼거림에 그가 어깨만 으쓱거렸다. 낸들 아냐. 뮤지션들의 사정을.
“보통 목이 저녁부터 풀린다고 하더라. 근데 씨원이 형 스케줄이 안 맞아서. 어쩔 수 없이 늦춰졌어.”
“와. 씨원이 형? 제로텀의 씨원?”
“하무영 출세했다. 진짜.”
탑 아이돌들이랑 형, 동생, 친구 다 먹지 않나. 공중파 미니시리즈 드라마 주연을 맡질 않나. 곧 있으면 진경문 감독 영화도 개봉하잖아.
준호는 진지하게 그의 손을 잡으며 중얼거렸다.
“너 나중에 몸값 올라가도 본투리 모델은 계속해 줄 거지?”
“페이만 맞으면?”
“아야! 좀 깎아서 해주라!”
“하하. 장난이야. 장난.”
어지간하면 본투리는 계속 안고 가야지. 준호한테 지금까지 받은 게 얼만데. 무영이 장난스레 말하자 보라가 눈짓했다.
“너도 제작발표회랑 스케줄 곧 잡힐 건데, 그때 본투리에서 협찬받아. 난 이번에 받을 거거든.”
“어? 진짜? 얘기 끝났어?”
“응. 우리 SNS 모델 했었으니까. 너 그거 피드 대박 난 거 모르지?”
네. 모릅니다요.
SNS가 손에 안 익기도 했고, 들어가면 맨날 댓글이랑 디엠만 확인하는걸. 그조차도 회사가 관리하는 계정이라 손에 꼽았다.
“회사 쪽에 요청하면 스무스하게 받아 줄 거야.”
그치? 보라의 시선에 준호가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당근빠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영이인데. 머리부터 풀셋 가능.”
“말만 들어도 고맙네.”
무영은 그렇게 말하며 남은 밥과 고기를 싹싹 긁어먹었다. 작업실 가면 노래만 주야장천 해대야 하니, 배는 든든하게 채워야지!
식사를 마친 그가 자신 있게 계산서를 들었다.
“오늘은 제가 계산합니다.”
“오오- 하무영!”
“슈퍼스타 하무영이~”
골목길의 작은 돼지고깃집이었지만, 이렇게 살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사하다. 무영은 장난스레 도도한 표정을 지으며 카운터 직원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잘 먹었습니당!”
* * *
서초동의 스튜디오. 스케줄을 마친 씨원이 피곤한 얼굴로 들어섰다. 아침부터 이어진 CF 촬영이 예상보다 늦어진 거다.
“안녕하세요.”
“어. 왔어? 피곤해 보이네.”
“시간이 벌써 밤이잖아요.”
스튜디오를 같이 쓰는 크루의 인사에도 씨원은 날카로웠다. 밥도 잘 안 먹는 데다, 오늘 고생을 그리 해댔으니. 예민할 만도 하지.
‘오늘이 그날인갑다.’
‘쉬이. 모른 척합시다.’
근데 거기서 작업까지 들어간다?
아주 예민의 끝판왕을 볼 수 있다.
매니저 역시 들어올 때부터 입을 꾹 다문 채로 씨원의 가방을 정리해 줄 뿐이다.
“하무영은요?”
“이제 곧 올 시간 됐는데-”
그가 한숨을 내쉬며 옷을 갈아입는데,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안녕하세요오! 하무영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저기압인 씨원과 달리 아주 하이 텐션인 무영. 그는 고기 냄새를 뿜어대며 작업실로 들어왔다. 잔뜩 찌푸려지는 씨원의 미간.
“안녕하세요. 씨원이 형.”
“고기 먹고 왔냐?”
“네. 밤새 녹음한다 해서, 든든하게.”
“……팔자 좋다.”
그는 그렇게 대꾸한 다음 작은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리둥절하게 한 소리 먹은 무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관계자들을 쳐다봤다.
“제가 뭘 잘못했나요?”
“아니. 오늘 쟤가 좀 힘들어서 그래. 평소보다 두 배, 아니, 세 배는 예민할 거야.”
“……그래요?”
옆에서 그 말을 듣던 고경민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무영의 팔을 잡았다. 다른 건 몰라도 음악적으로는 완벽주의를 추구한다는 말이 있던데…….
“자, 잘하자. 무영아.”
당연하죠.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무영이 안심하라는 듯 찡긋거리자, 가벼운 옷차림의 씨원이 나왔다.
“자. 그럼 바로 시작할게요. 거기 앉아봐요. 노래 들려줄 테니까.”
무영은 씨원의 지시대로 헤드셋을 썼다. 곧이어 흘러나오는 멜로디. 상당히 에너자이틱하면서도 무게감 있고, 비트가 무거운 곡이었다.
“어때?”
고경민의 물음에 무영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자아도취, 천상천하유아독존인 도하 캐릭터에 딱 맞는 음악이다.
“최곤데요?”
게다가 중독성 있는 후렴구까지. 마음에 쏙 들어!
“다음 건 가이드 입힌 거.”
씨원이 직접 했는지,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만 가이드인지라 가사는 엉망진창. 동해물과 백두산이부터 시작해서 알 수 없는 외계어까지 남발이다.
“워, 원래 가이드가 이런 거예요?”
“……? 형! 내가 준비 똑바로 하라 그랬지!”
무영의 물음에 그가 잠시 인상을 찡그리더니, 벌컥 소리쳤다. 방금 그가 틀어준 건 가사가 안 나왔을 때의 1차 가이드고, 작사가 완료됐으니 그걸 토대로 다시 만든 게 따로 있었다.
“헉.”
무영은 너무 놀라 혀를 깨물 참이었다. 한순간에 얼어붙은 분위기. 씨원이 머리를 쓸어내리며 사과했다.
“미안. 가이드 듣고 바로 녹음 들어가자. 어차피 하루 만에는 무리니까.”
“네. 알겠습니다.”
무영은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숙지했다. 어차피 안에 들어가서 보고 하는 거니까 외울 필요는 없다. 다만…….
“혹시 이거 픽스인가요?”
“왜?”
“아. 음.”
쭉 읽다 보니 뭔가 걸리는 게 있었거든.
무영은 고민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여기, ‘가끔 먼 과거의 후회가 나를 찾아와도-’라는 부분이요. 캐릭터랑 좀 안 맞아서요.”
무영이 본 도하는 살면서 절대 후회하지 않는 직진형 스타일이거든. 그의 말에 씨원이 볼펜을 딸깍거렸다.
“그러면?”
“음. 글쎄요.”
거길 대체할 말은 잘 생각이 안 나는데요.
무영이 히죽 웃자, 그는 체념했다는 듯 볼펜으로 가사를 쭉쭉 그었다.
“그럼 여기만 일단 넘겨놓고 앞부분만 따.”
가사는 다시 생각해 봐야지.
일반 OST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겠지만, 이건 극 중에서 도하가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로 나온다. 게다가 밴드의 메인 노래. 캐릭터의 성격이 들어갈 수밖에 없지.
‘X라 힘드네.’
OST는 씨원도 처음 맡아본 거다. 그는 무영에게 고갯짓하며 부스에 들어가라 지시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만 불러보자. 그리고 차근차근 따는 거야. 방금 네가 말한 부분은 허밍으로 처리해. 오케이?”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것처럼 간단하게 워밍업하는 거지. 무영은 낯선 부스 안으로 들어가며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히히. 뭔가 신기하다.
‘우와. 진짜 밖에 소리가 잘 안 들리네.’
바깥과 완전히 차단된 방음 부스. 안쪽에 달린 스피커로만 외부와 연결되어 있다. 헤드셋을 쓰자 노래가 흘러나왔다.
-가볍게 불러봐.
“네에.”
무영은 그렇게 대답하며 눈을 감았다.
도하, 임도하!
멜릴겔린의 리더이자 음악을 사랑하는 예술가.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난 줄 알고, 또 그에 합당한 멋진 남자. 무대에서만큼은 세상 누구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남자.
지금 이 순간만큼은, 무영이 바로 도하였다.
“아름다운 햇빛이었어-”
무영은 가사를 보며 입을 떼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씨원이 고개를 들어 부스 안쪽을 쳐다봤다.
“노래할 때 목소리가 바뀌는 스타일이네?”
“그런데 훨씬 듣기 좋다. 음정도 잘 맞고.”
“노래 못 한다 하지 않았나? 응? 씨원아?”
“음색 괜찮네. 노래랑 딱 맞는다.”
도하에 빙의해 마음껏 노래를 지르는 무영.
고기로 배까지 채웠겠다, 친구 일 역시 잘 풀렸겠다, 귀신 씨 역시 저세상 갔겠다! 그에게는 정말 멋진 밤이었다.
“넌 내 매력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을 거야!”
게다가 허밍으로 처리하기로 한 부분까지 자연스레 가사를 넣어 쳤다.
그 순간 뭔가 묘한 삘을 받은 두 남자. 씨원은 허기와 예민함이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