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85)
신인인데 천만배우 85화
GV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관객들은 관객들 나름대로 좋은 영화를 본 것에 흥분했고, 출연진들은 잘 만들어진 작품에 감사했다.
“아. 그럼 약 5분 후 바로 GV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통해 안내했다. 나갈 사람은 나가고 남을 사람은 남으라 이거지. 물론 시사회까지 와서, 그것도 만족스러운 감상 후에 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GV는 어떻게 해요?”
“보통 감독님께 질문이 들어오니까 우리는 옆에 서 있기만 하면 돼. 혹시 배우한테 할 수도 있어서.”
GV는 Guest Visit의 약자로, 영화상영 후 관계자와 관객이 질의응답으로 소통하는 시간을 말했다. 무영은 살짝 긴장된다는 듯 몸을 털었다.
“오빠. 영화 어땠는지 말해줘.”
“음. 어디가 궁금한데?”
“처음부터 끝까지!”
유나는 그런 무영에게 매달려 조잘조잘, 수다를 떨어댔다. VOD로 나오는 즉시 구매해 보겠지만, 그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고역이다. 다른 역도 아니고 주연인데!
“자. 시작합니다. 모두 한 줄로 서 주세요.”
“에고. 일어나자.”
스크린 앞에 일렬로 쭈르륵. 처음 무대 인사했을 때와 같은 대형이다. 쉴 새 없이 터지는 플래시와 사람들의 관심. 무영은 다시 한번 제 팬분들을 찾았다.
‘아직 안 가셨네.’
여전히 플래카드를 흔들며 무영을 응원하는 사람들.
카메라를 꺼내자, 그는 그쪽을 똑바로 바라봤다. 카메라와 하는 눈 맞춤. 이내 장난스럽게 윙크까지.
“네. [역병> 소문처럼 정말 재미있고 여운이 깊은 영화였는데요. 진경문 감독님의 간단한 해설을 시작으로 관객 질문받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주위가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진경문은 마이크 머리를 톡톡 두드리더니,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영화가 추구하는 방향이라든가, 담고 싶었던 의미, 그리고 결국에 그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 등등.
“-해서 오늘 이 자리에 와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예술이란 자고로 상호작용의 행위 아닙니까. 영화를 보시면서 좋아해 주시고, 감동하는 걸 보면 저 역시 황홀합니다.”
“네에. 좋은 말씀이었습니다. 자, 그럼 관객 질문을…… 네! 저기 후드티 입으신 분.”
사회자가 관객을 지목할 때마다 주옥같은 질문이 쏟아졌다. 모두 영화를 사랑하고, [역병> 출연진과 관계자들에게 애정이 있는 게 느껴지는 질문.
“통제구역 문이 닫히고 진이 제일 먼저 뛰어가는 장면에서 떨어진 담배의 의미는 어떤 건지 궁금합니다.”
“루이의 죽음이 참 인상적이었는데요. 촬영은 어떻게 하셨나요? 비하인드 스토리가 듣고 싶습니다.”
“재니의 시선으로 사건이 전개되는데, 단칸방 아주머니의 죽음은 왜 생략된 건지 여쭙고 싶습니다.”
와. 다들 영화 보는 눈이 상당히 날카롭구나. 하긴 시사회에 추첨을 넣거나, 초대받아서 올 정도면 여간 영화광들이 아닐 것이다.
“아. 그 부분은-”
진경문 역시 열정적으로 영화에 관해 설명하고, 최대한 만족스러운 답변을 주기 위해 애썼다. 가끔은 찌르듯이, 가끔은 달래듯이 들어오는 관객들의 애정 어린 질문. 무영은 처음 보는 GV의 품격에 감탄했다.
“원래 GV는 다 이래요?”
마치 명문대학 강의실에서 교수에게 집중 질문하는 열혈 학생들 같잖아.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이히준이 힐끗거리며 중얼거렸다.
“아니. 오늘따라 유독.”
유독 멋진 관객분들을 만났다 이거지. 게다가 중간중간 기자도 섞여 있는 것 같고. 그렇게 뜨거운 시간이 지나고, 거의 마무리 될 때쯤이었다.
“네. 검은 티 입으신 남자분.”
“안녕하세요. 먼저 [역병> 영화 잘 봤습니다. 그런데요. 왜 속설에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아이와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잘해야 본전이라고.”
뜨겁게 이어가던 텐션이 순식간에 파사삭 식는 것 같았다. 무례한 서문에 배우들은 물론이요, 앞에 있던 관객들까지 뒤를 돌아본다. 하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보셨을 때 어떨 것 같습니까? 진경문 감독님의 커리어가 이길지 아니면 속설이 이길지 상당히 흥미롭네요. 참고로 다른 유명 감독님들 중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 중 성공한 건 손에 꼽습니다만.”
“뭐야. 저 사람?”
“그러니까. 왜 저래?”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하지만 마이크는 남자의 손에 쥐여 있었기에, 그의 목소리만 또랑또랑하니 극장을 울렸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은 결말에 대한 겁니다. 열린 결말로 재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데 대체 왜 이렇게 만드신 겁니까? 그 상황에서 아이가 살아남았을 리 없잖아요. 뻔한 상황을 괜히 틀어서 영화적 연출로 승화하려는 것 같은데, 좀 이해가 안 됩니다.”
“아…….”
사회자가 난감하게 더듬거리며 진경문 감독을 힐끗거렸다. 감독 역시 생각지도 못한 태도에 당황했는지 멍하니 정신이 빠진 것 같다.
“감독님?”
으이구. 착한 감독님 같으니라고.
히준은 속으로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자신 같았으면 그냥 바로 ‘너 나가!’를 시전했을 터인데, 감독님은 그래도 관객이라고 친절히 말을 떼었다. 아마 머릿속으로는 온갖 생각이 뒤죽박죽 떠다닐 거다.
‘기자들도 섞여 있으니 더더욱. 아니지. 혹시 저 새끼가 기자인가?’
살짝 어두운 영화관. 질문한 남자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사회자가 혼란스러워하는 감독을 위해 질문을 요약해 줬다.
“그러니까 첫 번째 질문은 속설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두 번째 질문은 열린 결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렇게 두 개가 되겠네요.”
“아. 예. 그렇죠. 음…… 속설이 있긴 합니다만, 저도 그 얘길 시나리오 과정에서 꽤 들었고…….”
그때, 무영이 잡고 있던 유나의 손에 힘이 들어왔다. 아이는 평온하게 정면만 응시하고 있었지만, 몹시 화난 것 같았다. 주연으로 영화 고생해서 찍었더니만, 속설이 어쩌고저쩌고! 본전도 못 건진다는 말을 대놓고 하다니.
“저기.”
그 모습을 빤히 보던 무영이 손을 들었다. 마이크 잡은 진경문이 더더욱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제가 대신 답변해도 될까요? 두 분만 괜찮으시다면.”
“나? 나는 괜찮지.”
진경문은 냉큼 마이크를 넘겨주었다. 마치 폭탄을 넘기는 것처럼. 남자는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루이 역을 맡은 하무영입니다.”
유나가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이 오빠가 대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하는 듯. 무영은 방긋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영화의 흥망은 어느 누군가에게 국한된 책임이 아니라는 겁니다. 글이나 그림처럼 주체가 홀로인 예술이 아니라, 이건 수많은 배우와 감독님, 작가님, 스태프들이 모여서 만든 거잖아요.”
찰칵- 찰칵-
조용한 극장에서 무영의 말과 함께 셔터 눌러지는 소리만 울렸다. 조곤조곤하니 낮은 목소리가 참으로 듣기 좋았다.
“속설은 속설일 뿐, 저는 감독님과 우리 팀원들이 노력한 대로 결과가 나올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화 보셔서 아시겠지만, 유나 정말 대단했어요.”
조심히 한 문장씩 말을 꺼낼 때마다 무영의 시야에 흐릿한 뭔가가 떨어졌다. 그는 자연스럽게 턱을 매만지며 그걸 확인했다.
‘꽃가루다.’
“현장에서 어른 그 이상의 노력과 열정, 그리고 연기력을 보여줬기 때문에 사실 저는 유나가 어린아이라고 생각되지 않아요. 그저 한 명의 배우일 뿐이더라고요.”
“아. 좋은 말씀이네요.”
사회자가 옳다구나 감탄하며 호응해줬다. 유나 역시 눈을 반짝이며 무영에게 시선 고정.
“그리고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때, 서로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결말에 대한 해석 때문이었는데 문득 깨닫게 되더라고요. 이런 과정 역시 영화의 즐거움 중 하나구나. 관객분들도 그 즐거움을 같이 누렸으면 좋겠어요.”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이히준이 감탄하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 새끼, 서연대라더니 발표 좀 많이 했나 본데? 민감한 사안의 내용을 거리낄 것 없이 술술, 매끄럽게 풀어내는 솜씨가 예술이었다.
“아. 결말에 대해서는 말씀을 덧붙이죠. 그, 맨 처음에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그걸 듣고 있던 진경문 역시 생각 정리가 다 되었는지 마이크를 되찾아갔다. 유나는 여전히 무영의 손을 꼭 잡은 채 방긋.
“고마워. 오빠.”
“뭘요. 사실인데요.”
강아지처럼 이마를 허리춤에 대고 장난스레 비비는 유나. 둘의 다정한 모습이 카메라를 통해 그대로 담겼다.
“유나가 하무영을 진짜 잘 따르네.”
“그러게. 진짜 루이랑 재니 같다.”
예의 없던 관객의 질문으로 파사삭 식었던 분위기가 다시금 훈훈하게 데워졌다. 유나와의 장난을 마무리하며 앞을 보는 무영.
“……!”
공중에서 우수수 쏟아지는 꽃가루들. 어두운 영화관이 우주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붉은 벨벳 커튼 사이 달린 반짝이들과 함께 스타디움을 연상케 했다.
“우와.”
“왜 그래?”
“응? 아니야. 뭔가 좋은 일이 생기려나 봐.”
무영은 대충 둘러대며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유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영화 대박 나려나?”
“응. 그런가 봐.”
이제 일주일 정도 후면 개봉이다.
그리고 이어서 보름 후에는 드라마 첫 방송.
정신없이 달려 여기까지 왔으니. 그 결실이 얼마나 달콤할지, 기대되는군.
“-네에.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아쉽지만 오늘 GV는 시간관계상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참석해주신 관객 여러분과 [역병>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영화 대박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자는 진경문 감독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능숙하게 이벤트를 종료했다. 다들 박수 치며 인사했고, 관객들은 끝까지 환호성을 아끼지 않았다.
“이쪽으로 나가시죠.”
직원의 안내를 따라 통로로 나가는 감독과 배우들. 구석에서 대기하고 있던 고경민이 손짓하며 신호를 줬다.
“무영아! 사람들 많으니까 직원분들 꼭 따라가!”
“형도 잘 따라와요!”
바깥에 나가니 시사회에 초대받지는 못했지만, 연예인을 보기 위해 장사진 친 무리가 가득했다. 절반은 기자요, 절반은 팬이구나!
“오빠아아!”
“여기 봐주세요!”
“사인, 사인해주세요!”
경호원들 틈으로 불쑥불쑥 들어오는 손들. 메모지나 휴대폰 따위가 들려 있었다. 다른 배우들은 모두 고개만 푹 숙이며 제 갈 길 가려는데…….
“어어. 잠깐만요.”
무영만 멈춰서 유턴이다.
‘하무영’ 플래카드가 그를 끌어당긴 것이다. 무영은 손을 쭉 뻗으며 팬과 악수했다.
“반가워요. 와줘서 감사합니다.”
“팬이에요! 무영 씨! 사인해 주세요!”
“펜이랑 종이 있어요?”
“여기요!”
“저도, 저도 해주세요!”
걸음을 멈추니 팬들의 환호성이 우레와 같다.
경호원들이 난감하게 그를 끌어당겼으나, 무영은 끌려가면서도 헤실헤실 웃었다.
“앗. 잠시만요. 저 어차피 다음 스케줄 시간 남는데. 사인 좀 하면 안 되나요?”
“사랑해요!”
“헉. 저도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불같은 열기는 처음이다. 잠깐의 틈이 보이자, 팬들이 무영을 정신없이 감쌌다.
“대신 줄 서주세요. 최대한 해드릴 테니까요. 쉿. 조용조용.”
그러자 어쩔 수 없다는 듯, 경호원들 역시 그 옆에 서서 바운더리를 쳤다. 저 멀리 인파에 휩쓸린 매니저가 그 모습을 보며 기겁했다.
‘아이고, 무영아!’
아직 사람 무서운 걸 몰라 저러는 건지, 아니면 팬 사랑이 따끈따끈한 건지! 고경민은 벽에 딱 붙어 혼란스러운 이 상황이 정리되기만을 기다렸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그러던 중 한 여자와 어깨가 부딪히는데…… 정장에 세련된 스타일의 중년 여성이었다. 그녀는 방긋 웃으며 스쳐 지나갔다.
‘되게 카리스마 있네. 어디 엔터 사람인가?’
일반인과 다른 기운을 느낀 고경민. 그 역시 사회생활을 하면서 쌓인 촉이 대단했다.
[역병> GV에 참석한 방금 그 여자는 강옥경. 전 세계 최대 OTT 플랫폼인 넵플렉스 한국지사 총괄 투자 책임자였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