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89)
신인인데 천만배우 89화
숨기고 싶은 비밀
“몇 주만 더?”
“네. 적어도 드라마 윤곽이 나올 때까지만요.”
“끄응. 정말 괜찮겠어?”
나금동 사장은 아쉽다는 듯 입맛만 다셨다. 아무리 적은 액수라 하더라도 하루 이틀만 일하면 거금이 들어오는데! 하지만 무영은 단호했다.
“계약 기간이 길잖아요. 일단 뮤직쓰는 멤버들이랑 같이해야 하는 거니까 그것만 오케이하고 나머지는 보류해 주세요.”
하루 이틀 사이로 몸값이 바뀌는 시장이다.
드라마 흐름이 이렇게 나오는 이상, 그 역시 몸을 웅크리고 기다려야지.
천만 원짜리 하나 들어가서 1년 가야 하느니, 한 달 기다렸다가 1억짜리로 6개월 들어가는 게 낫다.
“네가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지.”
“딱 몇 주만 더요. 생각보다 긴 시간 아니에요.”
“그건 그렇다만…….”
“요즘 너무 바빠서 일주일은 눈 깜빡하면 지나가던데요. 으아. 지금도 봐요. 벌써 점심 먹을 때가 다 되어 가네. 점심 먹고 빈둥대면 금방 출근해야 한다고요.”
무영은 괴롭다는 듯이 기지개를 켰다. 하지만 몸만 힘들 뿐,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하다. 출근해서 대기하는 시간도 많지만 어쨌거나 매일매일을 연기로 채우고 있지 않은가.
“요즘 너무 행복해요.”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속마음. 잠결에 내뱉는 고백 같다. 그가 방긋 웃으며 베개에 얼굴을 비볐다.
“편안하고 좋은 집 생겼지, 영화 잘돼서 러닝 개런티 떨어졌지, 드라마도 성적 좋고. 연기도 매일 하고. 진짜 좋아서 죽으면 어카죠.”
“어떡하긴. 팬들도 슬퍼 죽는 거지.”
“아. 그러면 안 되는데.”
“말 잘 꺼냈다. 그다음이 바로 그 문제거든. 공식 팬 카페가 생겼어.”
“오오오? 어디에요?”
“주요 포탈 두 군데에 생겼는데, 아마 N 사로 가지 않을까 싶다. 그쪽이 사람 수가 더 많거든.”
팬 카페가 개설되면 개중 규모가 제일 큰 곳과 소속사가 소통한다.
물론 요즘에야 워낙 미튜브니 W 앱이니 발달해서 팬 카페 선호도가 높지는 않지만, 여전히 기성세대분들이 이용하기 쉽고 전통적인 소통의 장이니. 공식 카페 하나는 당연히 있어야지.
“팬덤 이름은 보통 팬분들이 정하거든.”
“와. 진짜요? 전 뭔데요?”
“아직 안 정했어. 그래서 SNS에 글 올릴 거야. 팬 카페 개설 소식이랑 이름 공모 소식. 너 원하는 거 있으면 그것도 넌지시 말해보려고.”
팬분들이 정하지만, 아티스트가 원하는 게 있다면 그것 역시 적극적으로 채택될 것이다. 영 구린 것만 아니면.
“하무영 하모예~ 어때요? 푸핫!”
“……잠 덜 깼네. 고 실장. 쟤 보약 좀 지어 먹여. 애가 몸이 힘들어도 머리는 말짱해야지.”
“아 장난이에요. 장난. 한번 고민해 볼게요.”
무영은 장난을 거두고 입을 앙다물었다. 수능 볼 때 헷갈리는 문제 찍는 것보다 더 신중했다. 하지만 금방 그렇게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리 없지.
“천천히 생각해 보고, 다음.”
“오늘 뭐가 많네요?”
“당연하지. 그래서 사장님이 손수 왔잖냐. 너 이렇게 쉬는 날 아니면 오순도순 앉아서 얘기도 못 해요.”
“음. 그건 인정!”
“자, 다음은 예능 스케줄입니다.”
“헉. 드디어 올 게 왔군요.”
[역병>과 [너는 별, 나는 별>이 거의 동시에 출두하면서 스케줄이 엄청 복잡하게 꼬였었다.덕분에 둘 다 애매하게 불참한 게 많았지.
“근데 어지간한 건 이미 다 들어가지 않았어요?”
케이블과 공중파 모두 아울러 유명한 예능 프로그램은 모두 들어간 상황이다.
[역병> 쪽은 유나와 히준, [너는 별, 나는 별>은 송아와 표라이가 대표로 활동했다.“제가 한 건 보자…… ‘스타가 좋다’랑 ‘본격! 영화 탐구 스페셜’ ‘연예가세상’ 인터뷰 정도고요.”
모두 예능방송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철저히 홍보를 목적으로 하는 스튜디오 인터뷰들뿐이었다.
“몽네뜨 쪽에서 연락 왔는데 넵플렉스 2차 유통 풀릴 때 그 홍보 기념으로 예능 나가는 건 어떻겠냐고 하더라. 시간이 좀 있으니 스케줄 조정하기도 좋고. 유나랑 같이 가는 거라서 프로그램 난이도도 그리 높지 않을 거야.”
“전 좋아요. 뭐든.”
“그럼 그건 오케이 한 뒤 진행하고, 그 다음은 [너는 별, 나는 별> 이쪽. 두 개 오퍼가 들어왔다.”
나금동 사장은 손가락을 하나씩 펼치며 설명했다.
“이벤트성으로 ‘KPOP중심’에서 오프닝 무대 하는 거. 멤버들 스케줄 맞는 사람 맞춰 봐야 하고-”
“네에에에-?”
“두 번째로는 ‘위대한 도전’이라는 프로그램. 알아?”
“들어는 봤어요.”
케이블에서 요즘 인기 끌고 있는 예능인데, 각종 장르를 불문 그 분야 전문가와 게스트가 대결을 펼치는 프로그램이었다. 물론 전문가에겐 핸디캡을 주고.
“얼마 전에 그건 봤는데. 바둑기사님이 눈 감고 게임 하는 편이요. 이기면 상금 주잖아요. 백만 원이었나?”
“프로게이머 콩순이 키보드랑 마우스로 게임 하는 편이 재밌더라. 아! 셰프가 장난감 조리대로 음식 하는 것도 있었지.”
핸디캡을 줘도 프로는 프로. 엉뚱한 상황에서 막상막하의 대결이 자아내는 재미가 쏠쏠한 예능이었다.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매회 반응도 좋고.
“나가면 어떤 장르로 대결할지 정해졌어요?”
“아니. 출연 오케이하면 그때부터 대본 짠대.”
무영의 이미지와 특기, 컨셉에 맞춰 주제를 정할 것이다.
“상대하는 분이 일반인이라 스케줄 맞추기는 훨씬 편해. 너 하겠다고 하면 바로 조정하고. 잘하는 특기 있으면 알려달라고 하대.”
“시간만 맞출 수 있다면 좋아요. 할래요.”
재미있을 것 같다. 촬영 시간도 그리 길지 않으니 잘만 맞춘다면 무리 없이 진행 가능할 것이다. 나금동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특기는?”
“어. 저 특기 없는데.”
“……내가 알아서 써내마.”
대한민국 입시에 특화되어 있다 정도? 나름 수능 잘 쳤으니까. 아니면 연기? 하지만 그건 직업이잖아. 끄응. 이리 보나, 저리 보나 특출나게 뭘 잘한다고 할 수가 없었다.
“그럼 오늘 회의는 끝?”
“할 거 다 했나? 고 실장?”
“네. 일단은요. 아참. 인터뷰도 계속 들어오고 있는데, 이번에는 우리가 좀 가려 뽑으려고. 급한 쪽 아니니까.”
그 말을 듣자마자 무영은 다시 벌러덩- 누워서 이불을 끌어안았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
“근데 저 진짜 KPOP중심 나가요?”
“의논 중인데, 그 무대를 뮤직쓰 광고에 낼 수도 있어. 조율되는 대로 알려줄 테니 신경 쓰지 마.”
“우와. 세상에.”
도하 연기하면서 음치 소리 안 듣는 것도 기적인데, 모든 아이돌의 꿈인 KPOP중심에 선다고? 무영은 홀로 감탄하며 고개를 저어댔다.
“하무영 출세했다. 증말.”
“앞으로 더, 더더 올라가야지.”
“물론이죠. 회사 건물 세워드릴게요.”
기특한 무영의 말에 나금동이 빵-긋 웃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기특한 것! 말하는 것도 어쩜 저리 착한지 몰라. 나금동은 웃옷을 찾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푹 쉬어라. 무영아.”
“가시게요?”
“너 자는데 내가 있어서 뭐하니. 나도 태석이 픽업하러 가야 해.”
사장이지만 매니저인 처지다. 인건비 줄이려면 몸으로 때울 수밖에.
“아, 참. 태석이 형님 운동 가는 스케줄 좀 알려주세요. 저도 따라가려고요.”
“운동? 좋지. 몸 관리하면 나중에 쓸 때 많아.”
“그것도 그건데 체력이 못 받쳐줘서요. 아무튼, 조심히 가세요.”
“오오냐. 쉬어라. 고 실장. 수고해.”
고경민은 저녁 출근할 때 같이 나가기에, 오피스텔에 남는 것이다. 둘의 배웅을 받으며 나금동이 현관문을 나섰다.
“그럼 더 자라. 배고프면 일어나고.”
“네에-”
무영은 이불 밖으로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고경민은 암막 커튼을 쳐준 다음, 문을 닫아줬다. 조용한 오피스텔. 그렇게 무영의 짧은 휴식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 * *
“안녕하세요!”
“오. 무영이. 잘 쉬었나 봐? 때깔이 좋아졌어?”
“그쵸? 역시 잠이 보약이에요.”
밤에 다시 방송국으로 출근한 무영. 피곤함에 찌든 사람들 사이 유독 눈부시다. 얼굴이 뽀얀 게, 제대로 된 휴식을 한 모양.
“로민이는요?”
“아까 갔는데. 못 만났구나?”
“어휴. 걔도 진짜 바쁘다. 바뻐. 전 이거 하나만 하는데도 정신이 없는데, 걔는 콘서트까지 어떻게 한대요?”
“그러게 말이다. 앉아. 세수는 하고 왔지?”
무영은 대본을 펼치며 분장실 의자에 앉았다. 오늘 들어갈 씬은…….
“오우.”
“드디어 러브씬이네. 꺄핫!”
“누나 왜 이렇게 좋아해요?”
“젊은 애들 꽁냥거리는 게 보기 좋아서 그런다!”
주책 맞은 코디의 말에 무영이 피식 웃었다. 그래 봤자 다 연기인데 뭘. 무영이 대본을 숙지하는 동안, 송아 역시 도착했다.
“언니. 저 왔어요. 무영 하이.”
“어서 오세요. 오늘 춥죠?”
“밤 되니까 바람이 더 부네. 하하.”
두 살 누나인 송아와 꽤 친해진 무영. 둘은 나란히 앉아 메이크업을 받았다.
그녀가 장난스레 대본을 보며 웃었다.
“오늘 드디어 도하 매력 폭발이네.”
“그러게요. 누나 조심하셔야겠어요. 아, 참. 그 얘기 들었어요? 뮤직쓰랑 협업해서 KPOP중심 설 수도 있다는 거.”
“응? 그거 픽스던데?”
“네에에-? 아 미친다. 저 어떡해요?”
서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스탠바이에 들어서는 두 사람. 무영이 먼저 일어나 스튜디오로 가려 하자, 송아가 머뭇거렸다.
“먼저 갈래? 난 마무리 좀 하려고.”
“……? 네. 알겠어요.”
뭐지? 화장 다 한 것 같은데? 무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카메라 앞에 섰다. 몇 분 정도 지났을까. 송아가 머리를 넘기며 나타났다.
“늦어서 죄송해요.”
“예에. 슛 들어가겠습니다.”
얼굴은 전혀 바뀐 것 없다. 조금 쭈뼛거리며 팔 부근을 매만지는 송아.
“아.”
무영은 뭔가 어색한 변화를 눈치챘다. 겨울이라 매일 긴 옷만 입은 데다, 작중 봄일 때도 팔을 드러내지 않았건만, 이번에는 민소매였다.
‘쑥쓰러우신가? 의외네.’
아이돌이면 더 파격적인 무대의상도 많잖아. 무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피아노 앞에 자리 잡았다.
오늘의 러브씬은 도하가 미란이의 손등에 키스하며 애정을 공세하는 장면이었다.
“누나. 손.”
어색하게 손을 뻗는 송아. 그녀는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무영의 눈치를 봤다. 뭔가 말할 거리가 있는 듯싶었지만,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갈게요. 레디-! 액션!”
무영은 사념을 뒤로하고, 집중했다.
보드라운 미란이의 손을 맞잡고 손가락 하나하나에 자신의 깍지를 끼워 넣었다. 그리고 천천히 당겨 그 손등에 키스.
쪽-
소리가 남과 동시에 도하가 그녀를 올려다봤다. 열망에 이글거리는 눈빛이 가히 뜨겁다.
“오케이, 컷! 다시 갈게요.”
“클로즈업인가요?”
“네. 맞습니다.”
조연출의 지시를 듣고서 옷매무새를 정리하는 무영. 손바닥에 잔뜩 묻은 컨실러를 발견했다.
“어?”
뭐지? 왜 손에 이런 게…….
“다시 가겠습니다. 스탠바이! 레디, 액션!”
무영은 다시 한번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부드럽게 매만지는 손깍지. 그리고 손등을 넘어서 가느다란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아.’
송아의 손목 부근에 덕지덕지 칠해져 있는 컨실러. 무영의 입맞춤으로 지워진 그 아래 흐릿한 상처가 나 있었다. 자해 상처였다.
‘이것 때문이구나.’
분장실에서 혼자 늦도록 뭐하나 싶었더니, 이걸 지우려 한 거였어.
송아는 붉어진 얼굴로 무영에게 도움의 신호를 보냈다. 스태프들에게 알려져서는 안 될 일인지라, 누구한테 상의하지도 못 한 일.
“미란아.”
무대나 행사에서는 액세서리로 가렸지만, 드라마 연출상 맨 손목 노출은 필수였다. 도하가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그 손을 가까이 당겼다.
“좋아해.”
그리고 카메라에 잡히지 않게끔, 구도를 틀어 그녀의 손목을 제 입에 가져왔다. 마치 뱀파이어가 피를 빨아 마시는 듯, 부드럽지만 강렬하게.
“오케이- 컷!”
“무영아. 애드리브 좋다?”
“이번에는 얼굴만 딸게요.”
아무것도 모르는 스태프들이 웃으며 카메라 세팅을 움직였다. 벌겋게 얼굴이 오른 송아가 제 손목을 뒤로 숨기며 무영에게 말했다.
“……고마워.”
“별말씀을요.”
“아무한테도 말 안 해줬으면 좋겠어.”
“당연하죠. 누구에게나 그런 비밀은 있잖아요. 그런데요. 선배. 도하와 미란이처럼 선배랑 저랑도 서로를 좀 더 의지하고 믿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입술에 묻은 컨실러를 지우며 웃었다.
“그랬으면 이렇게 컨실러 안 발랐어도 됐을 텐데.”
송아는 그의 말에 손부채질하며 열기를 식혔다. 별다른 말과 의문 없이 도와준 무영이 고맙기만 했다.
“우리 파트너잖아요. 파트너.”
“……너 아이돌 했으면 진짜 잘했겠다.”
완전 리더감이네.
송아의 장난스러운 말에 무영은 그저 웃기만 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