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9)
신인인데 천만배우 9화
어차피
기백, 이라고 해야겠지.
팀장은 잠시 말문이 막힌 상태로 무영을 쳐다봤다.
숱한 웹드라마 오디션을 봐왔지만, 이런 대답은 또 처음이었으니.
“……그거 굉장한 각오네요.”
게다가 저 진솔한 눈빛을 보라.
아무리 연기하는 사람이라지만, 가식이 전혀 없는 순수 그 자체였다.
옆에 주르륵 앉아 있던 다른 참가자들이 속으로 비아냥댔다.
‘왜 저렇게까지 하지?’
‘어이가 없네. 앞에서 저러면 뒤는 어쩌라고.’
솔직히, 가벼운 마음으로 온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저 경험이나 쌓을 겸 혹은 재미있어 보여서.
웹드라마의 특성상 일반 드라마보다 훨씬 가볍게 취급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대표님이 봤으면 뻑 갔겠네.’
하나 지금은 회사 모두가 이번 프로젝트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뜻이 같은 사람끼리 모여 죽자 살자 덤벼도 모자랄 판 아닌가.
“그럼 한번 기대해 보겠습니다. 자.”
저런 자세를 가진 무영에게 눈꽁찜꽁이라며 호들갑 떨 상사의 모습이 훤했다.
“지금부터 나눠드릴 지문을 연기해 주세요. 그리고 자유 연기까지 해주시면 됩니다. 총 제한 시간은 최대 3분을 넘지 마시고요.”
팀장이 직원에게 눈짓했다. A4용지에는 짤막한 대본이 적혀 있었다.
무영은 그게 진행될 작품의 단락임을 알아챘다.
“76번부터 시작하세요.”
[골목 / N] [포장마차 천막을 걷으며 들어오는 학생.] [학생 : (피곤함에 찌든 표정으로) 안녕하세요. 장사하세요?] [주인공 : 앉아요. 뭐 줄까요?] [학생 : (오천 원짜리를 내밀며) 제일 잘 팔리는 거, 이만큼만 주세요. 떡볶이랑 순대 빼고. 어른들이 먹는 거로요.] [주인공 : (의아해하며) 어른들은 뭘 먹는데요?] [학생 : (약간 신경질적인 말투) 그건 제가 아니라 사장님이 아시겠죠.]3분 안에 해야 하는 연기인지라, 확실히 짧았다.
무영은 대본은 빠르게 살피며 주요 포인트를 잡아냈다.
맨 처음 N이라 적힌 것부터.
보통 낮은 D(Day)로 밤은 N(Night)으로 표기하지.
‘밤, 포차, 그리고 학생이라. 좋아.’
무영은 순식간에 몰입하며 대사를 떼었다. 힘없이 한 음절씩 겨우 내뱉듯.
“……안녕하세요. 장사하세요?”
“……!”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듣기 좋은 미성이었는데!
무영에게서 나온 목소리는 모래처럼 갈가리 찢긴 것이었다.
‘방금 뭐지?’
‘목소리가 어떻게 저렇게 변해?’
‘까, 깜짝이야.’
직원들이 술렁거리려던 차, 무영은 틈을 주지 않고 다음 대사를 이어갔다.
“제일 잘 팔리는 거, 이만큼만 주세요. 떡볶이랑 순대 빼고. 어른들이 먹는 거로요.”
그는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아주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그 한 행동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고되고 피곤한 고등학생의 밤. 장사하냐고 물을 정도면 정말 깊은 밤이겠지. 아니면 포장마차가 처음이거나. 왜 왔을까? 이 인물은. 대체 어떤 인생이기에…….’
무영의 머릿속에서 우주가 터지는 것 같았다.
지문으로 만난 인물의 인생이 다 각도로 보이는 듯해서. 그리고 그게 자신의 삶이었던 것처럼 깊게 공감할 수 있어서.
모든 게 본능적이었고,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건 제가 아니라 사장님이 아시겠죠.”
울컥, 반항적인 눈빛과 함께 읊조리는 대사. 무영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순한 인상의 아이는 어디 가고 삶에 찌든 학생만 남아 있었다.
“이, 이제 자유 연기-”
“죄송해요.”
직원이 스톱워치를 보이며 남은 시간을 알려주려 했다.
하나 무영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대사를 이었다.
“제가, 제가 너무 피곤해서 그래서 그랬어요.”
손바닥으로 눈가를 닦으며 중얼거리는 아이. 다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멍하니 입만 벌렸다.
‘지금…… 대본을 이어서 하는 거야?’
완전한 빙의(憑依).
인물에게 완전히 녹아들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무영은 눈물을 닦더니 멍한 시선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보글보글, 따뜻한 포장마차의 열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졸림, 끓는 국물들, 그리고 주황빛의 조명까지.
“궁금했거든요. 왜들 멀쩡한 가게 안 가고 포장마차에서 술을 먹나. 저기가 뭐기에…… 근데 들어와 보니 알겠네요. 따뜻해요.”
무영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는 잠긴 목을 풀며 보이지 않는 상대방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내 다시 대답.
“-좋아요. 그럼 그거 주세요. 아주 맵게. 네에. 오늘 좀 그랬어요. 스트레스가 쌓이다 못해 터지는 날이라.”
담담하게 중얼거리는 무영. 두 입술을 꾹 닫으며 팀장을 쳐다봤다.
일 초, 이 초, 삼 초…….
시간은 째깍째깍 흘렀지만, 회의실 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저 시간 끝나지 않았어요?”
“네? 어머나- 죄, 죄송합니다.”
무영의 말에 시간을 재던 직원이 당황해했다.
혹시 시간까지 계산했던 것인가?
3분 25초를 넘어가는 숫자에, 직원은 팀장의 눈치만 살폈다.
“이상입니다.”
“어어. 잠깐만. 잠깐만.”
77번이 일어서려고 할 때, 팀장은 양해를 구하며 그를 다시 앉혔다. 무영은 달궈진 감정으로 인해 발그레해진 볼을 만지작거렸다.
“그, 자유 연기는 대본 이어서 한 거 맞죠?”
“네. 맞습니다.”
“상상해서 한 거예요?”
팀장은 볼펜을 까딱거리며 물었다.
물론, 이게 S급 스타 작가의 대본은 아닌지라, 유출을 염두한 것도, 둘 것도 아니었다.
다만 궁금했을 뿐.
‘상당히 비슷했지?’
‘응. 확실히. 대사는 달라도 전개나 설정이.’
어떻게 보지 않은 부분을 짚어낼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직원들이 속닥거리자, 무영은 눈을 또르르 굴렸다.
“……혹시 문제가 되나요?”
“아니, 아니! 편하게 얘기해 봐요.”
팀장의 손사래에 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일단 학생이 밤에 포차 찾는 게 일반적이진 않잖아요. 그만큼 이 친구에겐 힘든 하루였다는 걸 방증하는 게 되고요.”
천천히, 무영의 입에서 인물의 삶이 흘러내렸다.
“인사하면서 장사하냐고 묻는 부분에선 이 친구가 꽤 철이 들었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피곤에 절어 순간적으로 짜증이 나갔지만, 곧장 사과하겠구나 싶었죠.”
그렇지. 보통 학생이 들어가면서 장사하냐고 묻는 건 좀 특이하니까.
“이것저것 다 주세요, 가 아닌 오천 원어치만 달라는 대목에선 넉넉지 않은 형편임을 알았고요. 비슷한 궤인데, 이런 상황이라 또 철이 빨리 들지 않았을까요?”
그 짧은 시간에, 지문으로 캐릭터를 완벽히 꿰뚫은 것이었다.
팀장은 거의 빠져들 것처럼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요?”
“……어른이 먹는 걸 달라고 한 부분. 제 경우를 떠올려 보니…….”
성인을 앞둔 딱 그 시기.
너무 힘들었던지라, 어서 어른이 되어 도망치고 싶었다.
그래서 어른의 전유물이라 여겨지는 것들에 시선이 가더라.
“-뭐 이런 이유로 집에 가기 싫은 어느 날. 인물이 충동적으로 집과 비슷하며, 어른의 세계라 여겨지는 포장마차로 들어왔다 상상했습니다.”
“매운 건? 매운 거 달라고 그러던데?”
“스트레스엔 그게 제일이니까요.”
입시 스트레스까지 쌓이면서 매일매일 매운 걸 입에 달고 살았던 무영이었다.
“전 특히 닭불라면을 주로 먹었습니다.”
별거 아니라는 듯, 무영은 가볍게 툭툭 던지며 자신이 분석한 캐릭터를 읊었다.
그러자 팀장 옆에 있던 직원이 감탄하며 웃었다.
“연기 말고 글을 써야겠는데요? 아니면 평론가나.”
“그런 쪽은 재능이 없어서요. 말씀은 감사합니다.”
“신 들린 것 같아요. 어떻게 그렇게 쪽쪽 뽑아내지?”
혀를 두르며 중얼거리는 말. 분석과 시간 안배까지 완벽하지 않은가.
게다가 PPL인 닭불라면을 즐겨한다니!
우연이 계속되면 운명이라지.
팀장은 강력한 어떤 계시 같은 것을 느꼈다.
“센스가 있네요. 관찰력이랑 상상력이 꽤 좋은데, 연기한 지는 정확히 얼마나 된 거죠? 만약 하게 되면 이번 작이 처음인 건가?”
그는 아예 몸의 방향을 맨 끝의 무영에게 고정한 상태였다.
한껏 흥미로워진 목소리는 덤이고.
“그렇습니다.”
“촬영이 주로 밤에 진행돼요. 문제없죠?”
“크흠.”
팀장의 노골적인 물음에 직원이 헛기침을 해댔다.
아직 77번부터 80번까지의 지원자가 남아 있었으니, 팀장은 수습하며 덧붙였다.
“다른 분들께도 공통된 질문이에요. 문제없으시죠?”
“네? 아, 네네.”
“문제없습니다.”
대답하긴 했지만, 영 개운치 않은 표정들이다. 그도 그럴 게, 앞에서 이미 저런 걸 보여줬는데…….
‘아. 진짜. 짜증 나네.’
‘하필이면 맨 처음에 했어.’
‘끝났구먼.’
가능성이 있을 리가 없다. 분위기가 완전히 기울었다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무영은 곰곰이 스케줄을 떠올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밤 촬영 괜찮습니다.”
기숙사가 밤 11시에 닫히고 아침 6시에 열리니까, 뭐 여차하면 밖에서 날밤 새우지 뭐.
꽃가루의 행운을 노리고 있는 무영에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좋습니다.”
그의 대답에 팀장이 입꼬리를 올렸다.
실로 만족스럽다는 표정. 그는 볼펜으로 무영의 지원서에 별표를 왕왕 쳐댔다.
스윽스윽-
‘그러고 보니 대표님도 참 신기해.’
보석 같은 아이가 나올 것이라, 굳게 믿어 중얼거리던 조미영이었지.
그녀의 희망대로 진짜 보석이 나타났다. 그것도 외모, 연기, 센스까지 겸비한.
“그럼 77번 보겠습니다.”
팀장은 속히 진행하라는 듯 손짓했다.
이미 무영의 차례에 시간을 많이 뺏긴 상황.
이어서 오디션이 재개되긴 했지만…… 불 보듯 뻔하지 않겠는가?
‘어차피-’
무영의 신들린 연기를 보고 어차피 안 될 거라 되뇌는 참가자들.
‘어차피-’
1화 조연은 낙점되었다는 직원들의 묘한 분위기. 거의 수박 겉핥듯이 의례적인 연기와 질문 따위가 오갔다.
‘오디션 꽤 재미있네. 나름 잘한 거 같지? 흐힛.’
오직 무영만이 그 기류를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앞으로 일어난 꽃가루의 행운이 뭘까, 추측하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