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90)
신인인데 천만배우 90화
위대한 도전
“영재요?”
예능 ‘위대한 도전’은 케이블 방송이었다.
S사에서 촬영하다 급하게 차에 올라탄 무영은 어이없이 되물었다.
영재랑 붙는다고 하면 머리싸움일 텐데, 그를 어떻게 이긴단 말인가?
“응. 방송에서 너 서연대 나온 걸 초점으로 잡을 거래. 대결 종목은 상식을 비롯한 문제 풀기부터 시작해서 암산까지 있을 거라네.”
“으아. 나 다 까먹었는데.”
“그래도 수능 친 지 이제 일 년 됐잖아. 머리에 부스러기 좀 안 남아 있나?”
“형. 수능 끝나고 문 나서는 순간 다 증발이에요.”
“하하. 그래도 상대한테 핸디캡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뇌섹남. 요즘 대세잖냐. 드라마 홍보하러 가는 거니까 도하 캐릭터랑도 딱 맞고.”
“그렇긴 한데…….”
틀리면 개망신이잖아.
무영은 대본을 찬찬히 살피며 중얼거렸다. 상대는 중학생 1학년인 김소운 군. 일반인인지라 정보가 전혀 없다.
“가면 바로 촬영 들어가요?”
“응. 시간 타이트해. 두석 선생님한테 인사만 드려.”
“아. 맞다. 저 너무 기대돼요. 진짜 팬이거든요.”
“대한민국에 그분 팬 아닌 사람도 있냐.”
“진짜 TV랑 똑같이 착하세요?”
“20년 동안 그 자리 지킨 거 보면 말 다했지.”
“……좀 씻고 올 걸 그랬나.”
무영은 방금까지 드라마 촬영을 하던 차였다. 덕분에 머리와 옷, 화장까지 모두 도하 그 자체. 여차하면 ‘위대한 도전’ 끝나고 다시 S사로 가야 할 수도 있다. 고경민은 핸들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이게 상대가 일반인이라 시간 맞출 수 있었어. 스튜디오에, 문제 정해져 있으니 촬영 시간도 정확하게 나오고.”
“여러모로 좋은 자리라 이 뜻이죠?”
“그래. 그러니까 가서 잘해봐. 꽁돈 100만 원 타면 고기 먹여주라.”
“그거 진짜 주는 거예요?”
“당연하지. 방송에서 거짓말하면 큰일 나.”
흐음. 그건 좀 탐나는군. 백만 원이면…….
“근데 그 돈 있어도 쓸 시간이 없겠는데요.”
하루 24시간 가까운 시간을 드라마에 할애하고 있었다. 아직 무영 스스로 요령이 없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은 한 번에 두세 작품씩 어떻게 찍나 몰라.
“다 왔다. 내려.”
그들은 케이블 T사 주차장에 도착해 바로 14층으로 올라갔다. 밤 11시다. 이 시간에도 14층은 대낮처럼 활발했다. 스태프들과 방청객분들로 인산인해.
“하무영 씨. 이쪽으로 오세요.”
“아. 네에.”
“대본은 받으셨죠?”
“네네.”
예능부 연출이 그를 대기실로 안내하며 포인트만 꼭꼭 짚어줬다. 출연자의 입담이나 재치로 방송 분량을 확보하는 게 아니라, 철저히 대본대로 따라가는 예능이었다.
“두석 형이 인사하고 소개하면 노래가 나와요. 뒤에서 신호 드릴 테니 그때 나가시면 됩니다. 무대 걸을 때 높이가 좀 있으니 조심하시고요.”
“아하. 네에.”
“인사하실 거죠? 대기실 이쪽이에요.”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국민 MC 두석. 방송 경력만 벌써 20년째인 베테랑 코미디언이자 예능계를 꽉 붙잡고 있는 능력자. 자연스럽고 능청스러운 입담은 그의 주특기였다.
끼익.
“형. 오늘 게스트 하무영 씨에요.”
“어! 어어!”
생크림 빵을 와앙- 먹고 있던 그가 반갑게 일어나며 손을 닦았다. 세상에. 진짜 MC 두석이다.
“우, 우와. 안녕하세요! 하무영입니다!”
“아이고. 하무영 씨. 반가워요. 요즘 바쁜데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요. 드라마랑 영화 진짜 재밌고 좋더라고요. 내가 팬 됐어. 팬! [역병>이랑 [너는 별, 나는 별> 맞죠? 하하!”
오 마이 갓.
그 MC 두석이 본인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팬이라고 해준다.
어렸을 때부터 TV에서 봤던 그 사람이! 무영은 뭐라 말할 수 없는 감동에 멈칫거렸다.
“저, 저야말로 진짜 팬이에요. 선생님.”
어린 시절, 토요일마다 TV에서 하던 예능에 울고, 웃고. 덕분에 외롭지 않았다.
밥 먹을 때 항상 같이 있어 줘서 고마워요. 무영은 그의 두 손을 꼭 붙잡으며 진심으로 감격했다.
“선생님이 제 어린 시절이셨어요.”
그 말에 역시 멈칫거리는 두석. 손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웃었다.
“진짜 멋진 말 고마워요.”
“아. 어떡하죠? 너무 떨려요. 선생님.”
“하하! 그러면 안 되는데. 오늘 대결하러 왔잖아요. 저기, 김소운 군 만나봤어요?”
“아니요. 저 방금 와서요.”
“그래. 그러면 준비 잘하고, 아차차! 싸인 한 장만 해줘요. 우리 딸이 무영 씨 찐팬이야.”
무영에게 종이와 펜을 내미는 두석. 그때 확 실감 났다.
무영이 진짜 연예인이 되었다는 것과 [역병> 그리고 [너는 별, 나는 별>의 시장 반응이 뜨겁다는 것을.
“저, 저도 해주세요. 싸인…….”
“물론이죠! 사진도 찍을까?”
“너무 좋아요…….”
무영은 싸인을 하면서도 손이 덜덜 떨려왔다. 내가, 하무영이, 국민MC 두석에게 싸인을 해주다니! 믿을 수가 없다. 둘은 서로 싸인을 교환하고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이거 SNS에 자랑해도 되나요?”
“물론이죠. 우리 팔로우도 할까요?”
“……선생님. 저 좋아 죽겠습니다.”
“하하하! 재밌는 친구네.”
그렇게 훈훈하니 첫인사를 마친 무영. 연출팀의 그를 재촉했다.
“대기실로 가실게요!”
“앗. 네넵! 선생님. 그럼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그래요. 우리 잘해봅시다.”
끼익! 탁!
문이 닫히자마자, 무영은 다리를 후덜거리며 걸었다. 고경민이 웃으며 그를 부축했다.
“그렇게 좋아?”
“세상에. 형. 저 데뷔하길 정말 잘했어요.”
그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이름까지 기억해 주다니. 원기 충전 제대로 했다. 그는 주먹을 꽉 쥐며 결의를 다졌다.
“진짜 열심히 할거예요.”
“너 여기서 더 열심히 하면 쓰러질 것 같은데?”
“이 상태로라면 뭐든! 밤샘 촬영 세 번, 아니, 두 번까지 가능!”
* * *
높다란 무대 아래 방청객들이 쭉 앉아 있었다. 그들 사이사이 자리 잡은 카메라들. 굴착기처럼 기다란 레일에 앉은 감독님이 마이크에 대고 신호를 내렸다.
“준비됐습니다.”
“슬레이트 쳐주세요! 가겠습니다!”
“네에!”
타악!
스태프가 슬레이트를 치자, 두석이 인사하며 오프닝을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너와 나의 위대한 도전! 두석입니다! 요즘 따라 날씨가 너무 추워요. 그렇죠?”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보며 멘트를 이어가는 MC. 물 흐르듯이 매끄럽다. 무대 뒤에서 그 모습을 보던 무영이 긴장해서 발을 동동 굴렀다.
“-오늘의 게스트를 모셔보겠습니다. 충무로의 화제, 청춘 드라마의 리더! 하무영 씨입니다.”
“와아아아!”
“하무영 씨. 지금 나가시면 됩니다.”
무영은 연출팀이 말해준 동선을 따라 무대를 걸었다. 옆에서 터지는 작은 반짝이들. 긴장할 때는 언제이고, 막상 카메라 앞에 서니 세상 여유롭다.
“안녕하세요. 하무영입니다!”
“와아아악!”
“이야. 역시 반응 뜨겁습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역병>이 데뷔작이라 알고 있는데, 따지고 보면 정말 신인이세요. 하하. 어때요, 인기 실감 나십니까?”
사회자의 말에 무영이 수줍게 웃었다.
“네. 덕분에 위대한 도전에 나올 수 있었어요.”
“아이고. 말씀도! 서연대 재학 중이시라고 들었는데요?”
그렇게 한참을 이어가는 인터뷰. 무영의 프로필과 더불어 두 작품 홍보가 꼼꼼하게 진행됐다. 화면을 보면 피디가 웃으며 직원에게 중얼거렸다.
“두석이 형, 쟤 마음에 들었나 보다. 인터뷰를 뭐 저리 길게 해?”
“그러게요. 대본에 없는 것도 계속 물어보죠?”
간단히 넘길 수 있는 얘기도 우쭈쭈, 더 말해보라며 맞장구를 신나게 쳐줬다. 그 덕분에 무영은 예상치 못했던 것까지 모두 끄집어내야 했다.
“-해서 귀신 소리가 녹음되면 대박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 덕분 아닐까요? [역병> 촬영할 때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거든요.”
“아! 들었어요. 조명이 떨어질 뻔했다면서요?”
작가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손을 흔들었다. 스케치북 크게 적혀 있는 글자, ‘다음!’ 두석은 웃으며 알겠노라 답했다.
“자아. 그럼 다음으로 오늘 우리 도전자 하무영 씨와 대결할 상대를 소개하죠. 대한민국의 자랑이 되고 싶다, 영재 김소운 군입니다!”
빵빵 터지는 음악과 함께 교복 입은 남학생이 걸어나왔다. 그런데…….
‘어라?’
남자아이의 등에 매달려 있는 한 할머니 귀신. 뭐가 그리 안쓰러운지 연신 손으로 아이의 볼을 매만지고 있었다.
“전국 모의고사 100등 안에 드는 수재-!”
두석이 그를 소개하건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영을 향해 인사하는 김소운 학생.
그러고 보니, 교복 역시 물려받은 것처럼 헐렁하다. 운동화도 그렇고…….
“하지만 하무영 군 역시 서연대학교에 갈 정도로 수재죠. 과연 어떤 대결이 펼쳐질까요? 기대됩니다! 김소운 군의 핸디캡을 보여주세요!”
그 말에 스태프들이 책상 두 개를 내왔다. 필기도구와 계산기 등인 놓인 것과 빈 것.
“네! 김소운 군의 핸디캡은 바로 암산입니다! 문제는 올해 수능에 나왔던 것들로 선정했고요. 하무영 씨는 그럼 두 해 연속으로 수능을 치는 것이나 마찬가지네요.”
“그렇게 되나요? 아. 생각보다 유쾌하진 않습니다.”
“하하!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풀어주세요. 자아,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MC 두석의 안내에 맞춰 두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 화면에 나오는 수능 문제를 천천히 풀어가는 무영. 옆을 힐끔거리니, 김소운 학생은 눈에 불을 켜고 집중한 상태다.
‘저걸 어떻게 암산으로 풀어……?’
확실히 영재는 대단하네. 대단해.
그가 혀를 차는 동안에도 뒤에 매달린 할머니는 여전했다. 뭐가 그리 애틋한지, 아이의 머리를 연신 만지작만지작.
“무영아. 뭐 해? 문제 풀어야지!”
고경민의 주의에 무영이 퍼뜩 정신 차렸다. 그래, 저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앞에 있는 것부터 해결하자. 무영은 기억을 더듬으며 펜을 놀렸다.
결과는-
“하무영 씨, 점수는요? 아! 92점입니다! 그렇다면 김소운 군의 점수는-! 89점! 딱 한 문제 차이네요! 축하합니다! 도전자 하무영 씨의 위대한 도전이 성공했습니다! 상금 백만 원-!”
무영이의 승리.
폭죽이 터지며 팡파르가 울렸다.
할머니 귀신이 신경 쓰여서일까? 무영은 정신없이 소감과 클로징 멘트를 치고서 무대를 내려왔다. 고경민이 그를 끌고 피디에게 달려갔다.
“피디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야. 젊은데 똑똑하기까지 하고, 이거 불공평해서 살겠나 몰라. 응?”
“뇌섹남 타이틀 꼭 좀 부탁드립니다. 피디님.”
“그럼요. 걱정마요. 우리가 다 알아서 할테니까. 두석이 형이 무영 씨를 참 좋게 봤나 봐? 아차차. 이건 출연료랑 상금. 우리는 딱, 바로 현금으로 쏴주지! 하하!”
봉투가 두툼하다. 훈훈한 인사가 오고 가는 와중, 무영은 고민하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근데 김소운 학생, 피디님 아는 학생이에요?”
“응? 아니. 내 모교에 물어봤거든. 공부 좀 잘하고 똑똑한 애 없냐고. 쟤가 학원 하나 안 다니고 전교 1등을 그렇게 한다더라. 할아버지랑 둘이 사는데 용돈벌이 좀 하겠다면서 출연한다대?”
상금과 별개로 떨어지는 출연료, 20만 원.
무영과 고경민은 피디에게 인사 후, 복도로 나섰다. 김소운 군이 혼자 걸어가고 있었다.
“저기, 잠깐만!”
“어어? 무영아?”
반사적으로 그에게 뛰어가는 무영. 학생은 무슨 일이냐는 듯 돌아봤다.
“아까…… 대단하더라고.”
“……? 고맙습니다.”
“늦었는데 혼자 가려고? 보호자는?”
“할아버지가 밑에서 기다리셔요.”
자꾸 마음이 쓰였다. 어렸을 때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그런가. 그는 볼을 긁적이며 물었다.
“학생, 할머니 있지?”
“……할머니 없는 사람이 어딨어요?”
“아니, 그러니까. 저기 머리 봉실봉실하시고, 눈 꼬리는 이렇게 쳐졌는데 눈 밑에 점 있는.”
무영은 고심하다가 등에 업힌 할머니의 외관을 묘사했다. 그러자 튀어나올 듯 눈을 크게 뜨는 김소운.
“우리 할머니 알아요?”
“맞네. 알다마다! 어쩐지- 너 할머니 빼다 박았구나? 어쩐지 익숙하다 했어.”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까 받은 봉투를 그에게 쥐여줬다. 그 순간, 사방으로 터지는 꽃가루.
파앗!
처음이었다. 행운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스스로 행운을 만들어 낸 것이.
얼떨떨한 무영과 같이 함께 얼떨떨한 김소운. 두 사람은 눈만 끔뻑끔뻑, 서로를 쳐다봤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