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kie but One-in-a-Million Actor RAW novel - Chapter (98)
신인인데 천만배우 98화
팬 미팅
“아…….”
무영은 깨질 듯한 머리를 쥐어 싸며 일어났다. 해는 이미 중천에 걸려 넘어가는 시간. 타들어 가는 갈증이 아니었다면 더 잘 수 있었을 거다.
“일어났냐?”
“형? 아오…… 지금 몇 시예요?”
“한 시 반. 젊음이 좋긴 좋아. 나 같았으면 오늘 못 일어났다.”
그는 무영에게 꿀물을 건네줬다. 어제저녁에 시작한 종방연은 1차, 2차를 넘어 4차까지 이어졌다. 맨 처음에는 가벼운 샴페인으로 시작했던 것이 시간이 갈수록 폭탄주로 이어진 것이다.
“저 어제 실수 안 했죠?”
“어? 기억 없어?”
“네. 3차까지는 생각나는데, 와- 4차에서 폭탄주 입에 딱 대는 순간 끊어졌어요. 눈 뜨니까 지금인데요?”
그의 말에 고경민이 감탄하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역시 어제 끝까지 무영과 자리를 지킨 터. 대신 운전을 핑계로 술은 한 모금도 안 마셨지. 옆에서 지켜봤을 때 그는 전혀 취한 것 같지 않았다.
“너 완전 멀쩡하던데? 사람들한테 초코우유도 돌리고, 피디님이랑 다른 사람들 다 택시 태워서 보내고. 나랑 들어오면서 해장국까지 먹고 왔잖아.”
“제가요?”
오히려 놀란 건 무영이다.
제2의 인격이라도 있는 걸까. 정신은 나갔는데 행동거지는 똑바로 했나 보군. 그는 웃으며 베개에 얼굴을 비볐다.
“으아. 모르겠다. 형 저 더 자도 되죠?”
처음 겪은 종방연은 진짜, 진-짜 재미있었다.
1차는 고급라운지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며 격조 있게 감사 인사를 나누는 자리였다면, 뒤로 갈수록 엠티에 온 것처럼 부어라, 마셔라!
“음. 저녁까지는.”
“저녁에 뭐 있어요?”
“광고 촬영 가야 해. ROS.”
“아아. 그렇구나. 그럼 저 좀만 더 잘게요. 갈 때 피부 탱탱하게 만들려면 더 자야 해요.”
비슷한 나이 또래 멤버들이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대학 생활을 잘 즐기지 못했으니, 무영은 술게임이란 것도 어제 처음 해봤다. 세상에. 그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아, 참. 그리고 팬 미팅 날짜도 잡혔다?”
“언제요?”
“다음 주 주말.”
너무 급하게 잡은 건 아닐까, 싶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청률 공약과 함께 여는 이벤트인지라 종영 열기가 끝나기 전에 해야 했거든.
“너무 빠른데요?”
“그렇게 됐어. 이번 주가 마지막 방송이니까.”
“음. 몇 명 정도 오는데요?”
“오늘 카페에서 신청을 받고 있어. 최대한 많이 수용하도록 해볼게. 자세한 건 계속 진행 중이라. 그쪽은 회사에 맡기고, 넌 개인 이벤트 준비해 줘.”
“아. 노래랑 춤.”
그는 이불을 끌어안으며 고민했다.
아무래도 [너는 별, 나는 별> 주제곡 하나를 하는 게 좋겠지? 하지만 [역병> 때문에 좋아해 주시는 분도 있을 테니, 대중적인 것도 하나 해야겠는데.
“음음. 좋아요. 정했어요.”
“벌써?”
그는 다 생각이 있다는 듯 손가락으로 입을 가렸다.
“네. 클래식한 게 제일 좋겠죠. 로민이한테 도움 좀 받아야겠지만요. 아, 참. 걔는 잘 들어갔나 몰라.”
무영은 휴대폰을 찾았다.
수십 개씩 들어와 있는 전화와 문자. 대부분 스태프의 인사거나 모르는 번호였다.
“이상하게 점점 저장 안 된 번호로 연락이 많이 와요. 요즘.”
예전에는 하루에 한 번 울리는 것도 드문 휴대폰이었는데 말이다. 그 말에 고경민이 꿀물을 홀짝이며 말했다.
“너 너무 스태프들이랑 연락하고 지내지 마.”
“네? 왜요?”
몇 달 동안 동고동락하며 고생한 사이인데, 연락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귀한 인연들 아닌가. 하지만 고경민은 단호했다.
“사람 속 아무도 모른다. 조만간 번호 바꾸러 가자. 아니면 세컨 폰을 만들던지. 요즘 개인 정보 잘 빠져서 주기적으로 바꿔줘야 해. 특히 연예인들은 더더욱.”
그의 말에 무영이 풀 죽은 듯 엎드렸다.
이제는 편안하게 사람들과 인연 맺는 것도 힘들겠구나. 하긴. 얻는 게 있으면 이런 것도 있어야지. 그는 일단 답장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근데 팬 미팅 진행 시간은요?”
“사장님이 너한테 물어보라고 하셨는데-”
“전 하루 종일도 좋아요.”
“-그렇게 말할 것 같아서 두 시간 추천한다. 콘서트도 두어 시간인 걸 감안해. 무영아.”
“아. 그럴까요? 좋습니다. 좋아요!”
“그리고 팬미팅에 초대 연예인 한 명 있으면 좋은데, 부탁할 만한 사람 있어?”
“초대요?”
“응. 초대 공연 때문에, 아무래도 볼륨이 커지니까.”
“엔빈이 아니면 로민이? 아! 유나도 있다.”
“……유나도 좋긴 한데, 제로텀 멤버한테 부탁하는 게 낫겠다. 한번 물어보고, 없으면 회사 쪽에서 구해볼게.”
무영은 만족스럽다는 듯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보름이라.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제일 큰 비중이었던 촬영 스케줄이 비어서 시간이 많이 남는다는 것. 그는 머릿속으로 이벤트를 짜기 시작했다.
* * *
[배우 하무영 첫 번째 팬미팅 & [너는 별, 나는 별> 시청률 30% 감사 공약]짙은 하늘색 팸플릿에 적힌 제목.
그 아래에는 식순이 적혀 있었다.
-1부-
입장 안내 멘트
협찬사 CF VCR.
공식 팬카페 응원 VCR 및 개설 축하 멘트
오프닝 및 하무영의 감사 인사
-2부-
[역병>과 [너는 별, 나는 별> 명장면 VCR 감상촬영 비하인드 토크
팬들과 소통하는 포스트잇 토크
-3부-
축하 공연
-4부-
싸인회 및 선물 증정식
하무영 편지 낭독 및 클로징
“우와. 길다.”
무영은 뒤편에 새겨진 자신의 얼굴을 보며 중얼거렸다. 해야 할 게 산더미구나. 형 말 듣고 두 시간 한다 해서 다행이다.
“무영아. 움직이지 말라니까.”
“앗. 죄송해요.”
팬 미팅 당일. 무영은 메이크업을 받으며 이벤트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판이 커졌다.
“후원사는 뮤직쓰 맞아요?”
“응. 그래서 오늘 기자들도 많이 오니까, 잘해.”
“우와. 미치겠네.”
덕분에 회사에서 나가는 지출도 없을뿐더러, 팬미팅 역시 무료로 이뤄졌다.
이로 보나, 저로 보나 서로에게 너무 좋은 기회지. 무영은 달달 떨리는 손을 붙잡으며 웃었다.
“연습 많이 했잖아? 그래도 떨려?”
“말도 마세요. 저 어제 꿈까지 꿨잖아요.”
보름 동안 연습실에서 살다시피 하며 준비한 공연 두 개. 하나는 도하 주제곡이었고 하나는 댄스 무대였다. 도하 노래는 몇 달 동안 해온 거니 그나마 괜찮은데…….
“사람들이 눈갱이라 하면 어떡하죠?”
“괜찮아. 다 그런 맛으로 보는 건데 뭘.”
“흑…… 다들 온다 해놓고 안 오시면 어떡하죠? 그래서 저 혼자 빈 무대에서 춤추면…….”
“얘가 오늘따라 왜 이래?”
“아아. 미치겠어요오-”
팬 미팅에 오시는 분들은 총 150명. 작은 이벤트 홀을 꽉 채울 만큼 많은 인원인데, 그만큼 무영에겐 부담이자 기대였다. 그는 셔츠를 점검하며 긴장된 한숨을 내쉬었다.
“2부에서 3부 넘어가는 쉬는 시간 10분이랑 로민이 공연 10분 해서 딱 20분밖에 안 나거든요. 그사이에 빨리 화장해야 하니까 준비 잘 해주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가발이랑 세팅 미리 해둘게요.”
“베이스는 발려 있으니까 눈이랑 입만 좀 손 보면 될 것 같아요.”
매니저가 스타일리스트와 꼼꼼하게 일정을 체크하는 동안, 대기실 문이 열렸다. 로민이었다. 그는 꽃다발을 든 채로 손을 흔들었다.
“형. 하이요.”
“왔어? 와줘서 고마워.”
“에이. 우리 드라마 공약, 형이 총대 메고 하는 건데 당연히 와야죠.”
“밖에 사람 많아?”
불안한 무영의 말에 로민이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비밀이라는 듯, 알쏭달쏭. 그는 꽃을 매만지며 말했다.
“이건 나중에 무대에서 줄게요. 형. 파이팅.”
“어? 어어. 그래.”
“하무영 씨. 이제 슬슬 나가실까요?”
“네! 잠시만요!”
팬 미팅 시작이 성큼 다가왔다. 셔츠와 슬랙스, 그리고 깔끔하게 넘긴 머리를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무영. 팬분들 처음 보는 자리니까, 최대한 단정하고 멋지게 해야지.
“형. 근데 팬클럽 이름은 정해졌어요?”
“어? 응응. 정해졌는데-”
“하무영 씨!”
“네에! 갑니다! 이따 보자, 로민아!”
무영은 진행관계자의 부름에 후다닥 복도로 뛰어나갔다.
옷가지와 소품, 메이크업 도구 따위를 들고 따르는 스태프들까지. 정신이 없다.
“파이팅!”
동생의 깜찍한 응원을 뒤로하고, 무영은 이벤트 홀 입구 뒤쪽에 당도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은은하게 어두운 공연장이 보인다. 관객석에 빼곡히 앉아 있는 사람들의 뒤통수.
[넌- 내 매력에 빠져-]무대 위 커다란 스크린에는 ‘뮤직쓰’ CF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었다.
맨 앞줄에 쪼르륵 앉아 있는 기자들까지.
우와. 이거 미치도록 떨린다. 그때, 화면이 바뀌며 잔잔한 음악이 나왔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우리의 배우, 하무영 당신을 응원합니다.]팬들이 직접 쓴 손글씨 응원이 하나씩 떠오르며 무영의 얼굴이 나왔다.
[너는 우리의 무영문화재. 언제나 지켜줄게.] [국보 연기 하무영!! 사랑해!!] [지킴이들이 네 옆에 있을게. 무영아.]무영이의 팬클럽 이름, 무영문화재.
애칭은 지킴이였으니. 무영은 절로 모르게 미소 지으며 그 영상을 지켜봤다. 점점 떨림이 줄어들었다.
“네! 안녕하세요. 오늘 하무영 씨 팬 미팅 사회를 맡은 김지훈입니다! 식순은 다음과 마찬가지로-”
팬들의 응원 VCR이 끝나자, 사회자가 자신을 인사했다. 이제, 무영이 나타날 시간이다.
“-자아, 주인공 하무영 씨를 모시겠습니다! 하무영 씨!”
그의 외침에 무영이 계단을 내려갔다. 무대 뒤에서 나타날 거라 생각했던 팬들이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어어어?”
“무영이다!”
“어디어디?”
그는 와다다 계단을 내려가 마이크를 잡았다. 빠지는 곳 없이 꽉 차 있는 관객석. 무영은 꾸벅 인사하더니,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하무영입니다. 지킴이 여러분, 정말 반갑습니다!”
“와아아-!”
서로 손을 흔들며 애틋함을 나누는 무영과 팬들. 기자들의 셔터 누르는 소리 역시 함께 섞여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팬 미팅은 뜨거운 열기 속에서 매끄럽게 진행됐다. 짧은 준비 기간이었지만, 전혀 모자람 없이.
“여기 이 질문 재미있네요. ‘무영아, 드라마 너무 잘 봤어. 근데 듣기로는 음치라던데 진짜니?ㅠㅠ’”
“와. 어디서 들으셨지? 안타깝지만, 예. 사실입니다. 하하.”
“이상하네요. 노래 굉장히 잘 부르시는 것 같던데?”
“저도 참 희한한데요. 연기라고 생각하면 잘 돼요. 저번에 씨원이 형 만났는데, 형도 신기해하더라고요.”
“아, 참. 우리 이 얘기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음원 귀신 말입니다. 질문이 여기 있어요.”
의자에 앉아서 사회자와 떠들다 보니, 2부는 순식간에 흘러갔다.
드디어 공연에 설 시간이 된 것이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으며 2부를 마무리했다.
“여기까지가 2부였습니다. 잠시 쉬는 시간 10분 갖고, 바로 축하공연 시작할게요. 무영 씨. 준비 잘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무영은 지킴이들에게 인사한 후, 재빨리 무대 뒤로 돌아갔다. 스타일리스트가 화장품을 든 채 기다리고 있었다. 무영의 입에 붉은 립스틱이 올라갔다.
“빨리, 빨리!”
“옷 어디 있어?”
콘서트 백스테이지를 방불케 하는 소란. 벌써 쉬는 시간이 끝났는지 사회자 목소리와 함께 [너는 별, 나는 별>의 OST가 들려왔다.
“인어왕자 정민, 제로텀의 로민입니다!”
“꺄아아악!”
그 말은 남은 시간 4분 남짓!
짙은 아이섀도와 함께 날렵하게 올라가는 아이라인. 긴 웨이브 가발이 본디 제 것처럼 자연스럽고 우아하다.
“무영아. 됐다.”
“구두, 여기!”
킬힐까지 장착한 그가 떨리는 마음으로 무대에 올라갔다. 옆이 시원하게 트인 치마로 무영의 긴 다리가 살랑살랑.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백지윤의 [성인식 날>!”
“꺄아아아-!”
딴- 딴딴따다-
익숙한 전주가 나오며, 무영이 허리에 손을 올렸다. 백댄서들 역시 같은 복장.
지켜보던 로민은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숨죽였다. 웃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 어울리네.’
부드럽게 움직이는 웨이브가 장난 아니다. 무영은 치명적인 눈빛을 장착하며 웃음을 흘렸다. 붉은 입술을 손으로 훑으며 윙크 찡긋!
“꺄아아악!”
“무영아! 아아앍!”
무영의 손짓 한 번에 쏟아지는 함성.
체격만 아니라면 진짜 여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운 얼굴이었다.
예쁘게 잘 마른 근육이 조명 아래서 슬쩍슬쩍. 다들 즐거워하며 소리치던 것도 잠시요, 이내 할 말을 잃은 채 무영에게 빠져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