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단서
교회당 밖으로 나선 두 사람은 백새벽과 용여홍이 있는, 버려진 빌딩으로 향했다. 그런데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누군가 그들 앞을 가로막았다. 가면을 보니 조금 전 로페즈를 따라 나갔던 레드스톤 마켓의 주민, 앙헤바스의 수하들이었다.
그중 거미 가면을 쓰고 기관단총을 든 한 남자가 그 총으로 장목화와 성건우를 겨누며 턱을 살짝 치켜들었다.
“보스가 너희를 부른다.”
장목화는 전혀 놀라지 않은 듯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성건우는 거기에 덧붙여 진지한 목소리로 강조했다.
“같이 가달라고 말해야지.”
그러나 거미 가면 남자는 콧방귀를 뀌고는 성건우에게서 돌아선 다음 앞으로 척척 걸어갔다. 나머지 두 사람은 무기를 든 채 장목화, 성건우를 포위하듯 양옆에 섰다.
건물 한 채를 끼고 돌자, 다시 로페즈를 볼 수 있었다.
금발 남자는 황토색 ATV 후드 위에 앉아 미소를 지으며 장목화와 성건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양옆에도 총을 든 수하가 한 명씩 서 있었다.
“아주 침착하군.”
로페즈가 호탕하게 웃었다.
“경계 교파가 이미 개입한 상황에 우리를 죽일 수 있겠어?”
말하는 사이 장목화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며 한 건물의 옥상을 살폈다.
로페즈는 상체를 살짝 앞으로 기울이며, 더욱 묵직한 압박감을 풍겼다.
“죽은 사람은 범인을 지목할 수 없지. 버즈 그 멍청한 놈 역시 무엇도 증명하지 못했잖아? 내가 너희를 찾은 건 너희들한테 할 말이⋯⋯.”
그 순간 로페즈는 돌연 한 인영이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것을 보았다. 얼굴엔 털이 부숭부숭하고 입이 뾰족한 가면이 그의 시야에 가득 들어찼다.
워낙 빠른 데다 급작스러워 총을 뽑을 여유도 없었다. 로페즈는 일단 손을 들어 앞을 가로막았지만, 상대는 또 손을 뻗어 그의 팔을 옆으로 홱 치워버렸다. 결국 로페즈의 흉부와 복부가 무방비하게 드러났다.
‘엄청난 힘이다!’
로페즈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원숭이 가면을 쓴 사냥꾼은 어깨를 살짝 틀면서 그의 가슴팍을 냅다 들이받았다.
쾅!
로페즈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쓰러졌다. 성건우는 때를 놓치지 않고 팔꿈치를 내리찍었다.
퍽!
복부가 팔꿈치에 짓눌리자, 로페즈의 상반신은 반동하듯 튀어 올랐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상대는 이미 그의 목을 틀어쥐고 있었다.
로페즈는 의기양양한 원숭이 가면을 쓴 상대를 보며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주위에 자리한 로페즈의 수하들은 죄다 총으로 성건우를 겨누고 있었지만, 그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로페즈를 보던 그가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첫째, 내 형제를 욕하는 건 참을 수 없어. 둘째, 차의 후드는 앉으라고 있는 곳이 아니야. 셋째, 부탁한다고 말해야지.”
로페즈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거 완전 미친놈 아냐?”
성건우는 로페즈의 목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어 상대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했다. 지금 그는 로페즈의 몸으로 ATV 왼편에서 이쪽을 겨누고 있는 세 자루의 총을 막고, 등 뒤는 장목화에게 맡겨둔 상태였다.
장목화는 그가 튀어 나갔을 때 어쩔 수 없이, 그러면서도 협조적으로 연합 202를 뽑아 들고 로페즈의 수하 하나를 겨누었다. 그 외 나머지 수하들은 방아쇠를 당기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모두 양손 동작 불능 효력 범위에 자리해 있기 때문이었다.
로페즈는 몸부림을 쳐보려 했지만, 성건우가 반대편 손으로 뽑아 든 아이스모스는 이미 그의 가슴팍에 닿아있었다.
의기양양한 원숭이 가면에선 어떠한 감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 로페즈가 할 수 있는 건 두 손을 들어 올리고 투항하는 것뿐이었다.
곧이어 ATV 후드에서 로페즈를 끌어내린 성건우는 그의 목을 움켜쥔 손을 풀고 엉망이 된 상대의 옷깃도 정리해주었다. 가슴과 복부에 묻은 먼지까지 손수 털어준 그가 이내 친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그러니까 얼마나 좋아.”
뒤이어 성건우는 총으로 계속 상대를 겨냥하며 한 걸음, 한 걸음씩 장목화의 곁으로 물러났다.
로페즈는 좀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여태 수많은 전투를 겪어왔지만, 성건우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원하는 게 뭔지 가늠도 되질 않았다. 그저 느껴지는 것이라곤 차마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광기밖에 없었다.
성건우가 로페즈를 알아서 놓아주자, 로페즈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곧장 반격에 나설 준비를 했다.
그는 남에게 한 방 먹고서 속으로 울분을 삭이는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앙헤바스 무리에서 이만한 지위에 이른 것도, 그런 성격이라 수없이 싸움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결코 큰 덩치와 키만 믿고서 허세로 몸값을 높인 게 아니었다.
로페즈는 만약 이런 수모를 겪고도 자신이 곧바로 상대를 죽이지 않거나 그에게 반격조차 하지 않는다면, 앙헤바스의 수하인 레드스톤 마켓 주민들과 외지 망명자들 사이에 웃음거리가 되리라 확신했다. 이 순간 이후로는 더 이상 강건하고 냉정하며, 남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고, 추종해야 마땅한 거인 로페즈로 살 수 없을 것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장목화가 왼손을 높이 들어 올리더니 손가락 세 개를 폈다. 그러자 갑자기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황토색 ATV 옆쪽의 흙이 튀면서 움푹 파인 총알 자국을 새겼다.
누군가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쪽으로 총을 쏜 것이었다.
로페즈와 수하들은 조건반사적으로 몸을 날리거나, 타이어 뒤쪽에 웅크리고, 콘크리트 더미 뒤쪽으로 굴러갔다. 상당히 능숙하고 숙련된 모습이었다.
연합 202를 쥔 장목화는 속으로는 경계심을 유지하면서도, 겉으로는 아주 가볍고 여유로운 웃음을 흘렸다.
“알고 있을 텐데, 우리 팀원은 네 명이라는 거.”
* * *
같은 시각, 고층 빌딩 옥상.
주위 구역을 감시할 수 있는 이 고층 빌딩 꼭대기에서, 백새벽은 조준경에 눈을 바짝 붙인 채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라도 방아쇠를 더 당길 수 있었다. 이미 경고 사격을 마친 백새벽은 이번엔 반드시 한 사람의 숨통을 끊을 생각이었다.
용여홍은 그녀가 매우 부러웠다. 자신도 이렇게 적을 위협할 수 있는 역할을 맡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신의 사격 솜씨가 백새벽보다 한참 뒤처져 있다는 건 그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가 가지고 있는 건 바주카포 사신이었다. 이 탄약은 일반 총알보다 훨씬 비쌌으며, 자칫하다간 팀원들까지 해하기 쉬웠다.
* * *
한편, 로페즈와 수하들은 몸을 숨기는 동시에 장목화를 겨냥하며 대치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장목화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다들 총을 내려놓고 평화롭게 대화할 수는 없는 거야?”
“그래, 그래.”
성건우가 맞장구를 쳤다.
‘방금 먼저 달려든 게 누군데!’
로페즈는 속으로만 소리 높여 반박했다.
그 사이 장목화는 먼저 연합 202를 거두며 진심을 보였다. 물론 백새벽과 용여홍에게 어떤 손짓을 취하진 않았다. 빌딩 옥상의 두 사람도 계속 현 상태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로페즈는 일순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숨어있는 것 역시 자신의 이미지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수하들에게 더 얕보일 수도 있었다.
결국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ATV 앞으로 돌아갔다. 뒤이어 손에 쥐고 있던 연합 202 총구도 완전히 아래로 내린 후에 입을 열었다.
“대체 뭘 원하는 거냐?”
“우리를 부른 건 너였잖아?”
장목화가 반문했다.
몇 초간 침묵하던 로페즈가 이를 부득 갈다가 말했다.
“내가 너희들에게 단서를 줄게. 무기 강도 사건과 헬빅 피살 사건을 맡은 거 아니었나?”
그러자 장목화가 소리 내어 웃었다.
“맞아. 지금은 두 가지 가능성이 있어. 첫째는 버즈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 이 경우 무기는 앙헤바스에게 있겠지. 그럼 버즈와 헬빅의 나머지 심복들은 굳이 헬빅을 죽일 이유가 없어. 헬빅은 이미 죽었지만, 그들은 어떤 것도 얻지 못했잖아. 오히려 앙베바스에게 도움이 됐으면 됐지.
둘째, 무기가 사실은 그들의 손에 있고, 앙헤바스는 이와 아무런 관련도 없을 가능성이야. 정말 그렇다면 그들이 가장 의심스러운 용의자가 되겠지. 너희들이 생각하기에는 둘 중에 어느 쪽일 것 같아?”
장목화는 버즈의 말에 더 무게를 싣고 있었다. 성건우와 버즈는 이미 친구가 된 상태라, 딱히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도 굳이 이런 질문을 하는 건 로페즈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였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로페즈가 불쑥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가능성도 있지. 우리 보스가 저지른 짓도, 버즈 녀석들이 저지른 짓도 아닐 가능성. 헬빅이 무기 강도 사건과 아무런 관련도 없이 그냥 원수한테 살해됐을 수도 있잖아.”
장목화는 상대의 말뜻을 해석해보았다.
‘로페즈의 답은 그들이 버즈의 무고함을 알고 있다는 걸, 동시에 앙헤바스도 헬빅이 죽을 줄은 몰랐다는 걸 암시하는 건가?’
그녀가 다시 입을 열기 전, 로페즈가 덧붙였다.
“우리 보스는 아직도 이 일이 버즈 녀석들 짓이라 생각해. 헬빅이 죽었으니 그들 중 한 명은 그의 아내, 자식, 세력과 물자를 전부 이어받게 될지도 몰라.”
“그들 중 누군가가 테레사 부인과 사통했을 수 있다는 거야?”
장목화는 상대의 말에 설득당한 척 물었다. 어떻게 해서든 한 가지 정보라도 더 얻어내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로페즈는 꽤 신중했다.
“확실히 그렇다고 말은 못 하지. 우리 보스가 전에 헬빅이 자신에게 그런 얘기를 했었대. 테레사가 본인한테 너무 냉담하다고, 경계를 구실로 언제나 헬빅과의 잠자리도 거부한다고 말이야.”
‘레드스톤 마켓에서는 아주 정상적인 일 아닌가?’
속으로 중얼거리던 장목화가 물었다.
“우리한테 주려고 했던 단서가 뭔데?”
로페즈는 미동도 없는 원숭이 가면 사내를 슬쩍 보다가 말했다.
“헬빅의 사인은 쇼크사야. 너무 이상하지 않아?”
“이상하기 때문에 의심스러운 거지.”
장목화가 말을 반복했다.
로페즈는 이제 좀 분노에서 약간 벗어난 듯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그건 어떤 각성자의 능력인지도 몰라. 우리 보스가 말하길, 그런 각정사는 에이돌른을 믿는 집단에서 비교적 많이 나타난대. 레나토 주교, 혹은 다른 경고자에게 그런 능력이 있을 수도 있지. 지하 방주의 디마르코에게도 그런 각성자가 한 명 딸려 있고.”
장목화는 모종의 생각에 잠긴 양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카를 집사가 헬빅을 죽였을 거라는 뜻이야?”
경계 교파에서 레드스톤 마켓에 분란을 일으킬 이유는 없었다.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는 게 그들에게도 가장 좋았다.
“그게 바로 너희들이 조사해야 할 부분이지. 우리 보스에게도 그에 대한 증거는 없어.”
로페즈가 웃었다.
그러자 장목화도 따라서 미소를 지었다.
“음, 마지막 질문, 너는 그 무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
“그것 역시 너희가 스스로 조사해야 해.”
로페즈는 말을 마친 뒤 상당히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그 모습에서 의혹을 느낀 장목화가 성건우를 돌아봤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손을 살짝 썼다는 걸 시인했다.
장목화는 다시 정면을 보며 생각했다.
‘억지쟁이 능력을 살짝 응용한 건가? 가짜 신부를 마주했을 때 때처럼, 저 자에게 이성을 심각하게 거스르거나 곧바로 후회하게 할만한 짓을 하게 하지는 않으면서, 저도 모르게 스스로를 과시하게 만든 거야?’
로페즈의 저 웃음은 버즈의 말에 진실을 더했다. 로페즈는 정말로 그 무기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심지어는 그가 직접 무기를 숨겼을 것이다.
이때 성건우가 뜬금없이 한마디 내뱉었다.
“여섯 명이에요.”
장목화는 그의 말뜻을 곧장 알아차렸다.
‘2대 6이라고? 로페즈를 제압해 강제로 친구 삼아 무기를 찾자는 건가?’
더 엄밀히 말하자면 2대 6이 아닌, 4대 6이었다. 빌딩 옥상에서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백새벽과 용여홍도 있었다.
문제는 상대를 산 채로 잡는 게 쉽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이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면 적잖은 사상자가 생길 텐데, 딱히 원수지간도 아닌 사이에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이는 장목화의 도덕적 기준에도 맞지 않는 이야기였다.
“급하게 굴 것 없어.”
장목화가 대꾸했다.
두 사람의 묘한 대화에 위험을 직감한 로페즈는 주변을 더욱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는 화력과 실력 모두 상당한 이 유적 사냥꾼들과 빨리 작별하고 싶었다.
“해줄 이야기는 다 해 준 것 같네.”
“잘 가.”
장목화도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로페즈는 수하 두 명에게 부근의 고층 빌딩 뒤쪽으로 ATV를 몰도록 한 뒤, 나머지 수하들과 걸어서 이동했다. 그들은 다 각자 주위로 흩어진 채 장애물에 몸을 숨겨가며 경계를 곤두세웠다. 차로 한꺼번에 이동하다가 다 같이 화를 입는 불상사를 피하려는 것 같았다.
“훌륭한 경계심이네.”
성건우는 박수로 그들을 칭찬했다.
그렇게 로페즈 일당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장목화는 그제야 무전기를 들어 백새벽에게 내려오라는 지시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