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341
341화. 합작
장목화는 잠시 머뭇거리다 물었다.
“소나영이라고 했지⋯⋯. 혹시 여기 훠궈 식당이나 다른 식당을 연다면 계속 운영할 수 있겠어? 이렇게 많은 사람이 먹고 살 수 있을까?”
‘팀장님도 건우한테 전염됐어. 정말 식당을 열 생각을 하다니.’
용여홍은 백새벽의 동조를 구하려다, 회색 스카프를 두른 조그마한 그녀가 깊은 생각에 잠긴 걸 발견했다.
이내 소나영이 동료들과 시선을 한번 주고받은 뒤, 망설임 끝에 답했다.
“여기선 어려울 거야. 1, 2층에서 저렴하게 판다면 모르겠지만. 여기는 항구랑 가까워서 선원이 아주 많아. 그들은 가진 돈은 없어도 여자랑 음식, 술엔 돈을 아끼지 않거든. 상인들과 그 사람들 경호원도 수시로 항구에 머물고. 수도 적지 않아.”
“관찰력이 엄청 좋구나.”
장목화가 뭔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소나영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말했다.
“우리가 끌어온 손님은 주로 항구에서 오거든. 근데 오거는 우리한테 레드리버어를 가르쳐주지 않았어. 우리가 손님과 소통하면 자기한테 골치 아픈 일이 생길까 걱정스러웠나 봐.”
이때 또 다른 여자가 끼어들었다.
“오거는 우리한테 요리도 시켰어. 주방장 고용비를 아끼려고.”
그녀는 눈치 빠르게 자신들이 기본적인 요리가 가능하단 걸 홍보했다.
장목화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음, 식재료는 걱정하지 마, 우리한테 루트가 있거든.”
루트는 바로 조씨 가문의 장원들이었다. 만약 단번에 반 지성교를 몰아내지 못하면 허양원에게 연락을 하는 수도 있었다. 그에게도 퍼스트 시티에 자리한 장원이 있을 터였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오거는 단순히 너희들만으로 사업을 이렇게까지 불린 거야?”
“이 건물이 자기 것이거든. 사람들을 아주 흥분시키는 뭔가를 팔기도 해.”
소나영은 관찰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전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성건우가 경호원을 돌아보았다. 가득한 늑대 울음 속에서 유일하게 멀쩡한 그 남자였다.
눈짓을 받은 경호원도 순순히 설명했다.
“파라다이스 아일랜드에서 가져온 대마와 신상품들입니다.”
“너희도 마셨어?”
장목화가 여자들 모두에게 물었다.
그 순간, 지금껏 나오지 않았던 애쉬랜드인 창녀들도 홀로 몰려들었다. 일부 손님들도 멍한 얼굴로 따라 나와선 구조팀 쪽으로 걸어왔다. 게네바와 용여홍은 친절하게 그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비싼 물건을 어떻게 우리한테까지 써. 우린 식당이야 다 운영할 수 있어. 근데 저들은?”
소나영이 다급히 오거 무리를 가리켰다.
이내 성건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남은 경호원을 더욱 불안하게 하는 웃음이었다. 그가 애쉬랜드어로 말했다.
“그건 나한테 맡겨.”
그리고 성건우가 늑대소굴 깊은 곳에 자리한 방을 가리켰다.
“넌 나 좀 따라와.”
경호원에게 쓴 말은 레드리버어였다.
“안 돼⋯⋯.”
경호원은 울상이 돼 중얼거렸으나 성건우의 말을 거부할 순 없었다.
성건우는 그렇게 오거 무리를 한 명씩 방으로 데려가 새로운 추리 광대로 그들끼리의 순환 논증을 형성했다.
소나영을 비롯한 여자들은 그토록 험악했던 사장과 무시무시했던 경호원들이 어느 순간 순한 양으로 변한 상황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온순해진 그들은 여자들 앞에 복종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저들이 너희 종이야. 음, 명단에 적힌 이들을 차례로 설득한다면 당분간은 아무 문제도 없을 거야. 와, 근데 진짜 큰 조직이네.”
성건우가 손에 든 종이를 보며 감탄했다.
“당분간이라면, 그 후에는?”
장목화가 물었다. 여자들의 마음을 꿰뚫어 본 질문이었다.
성건우는 오거가 든 연합202를 빼앗아 소나영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리곤 진심 어린 미소와 함께 말했다.
“최대한 빨리 이거 사용법을 익혀 봐. 그리고 저들 중에 누구라도 이상한 모습을 보이거든 곧장 쏴버려.”
“그건⋯⋯.”
여자들 모두가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자 성건우는 아까보다 더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까 말했다시피 우리는 합작하기 위해 온 거야. 진정으로 너희를 구할 수 있는 건 너희 자신밖에 없어.”
소나영은 웃고 있는 성건우를 보며 연합202 권총을 천천히 쥐어보았다. 차갑고 단단한 촉감이 느껴졌다. 꼭 나를 도와줄 지팡이를 쥔 듯했다.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은 기분이었다. 그러자 서서히 몸에 힘도 더해졌다.
“쓸 수 있겠어?”
장목화가 물었다.
소나영이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전에 엽총을 써본 적이 있어. 산탄총이랑. 그거랑 비슷하겠지.”
그때, 갓 스물이 됐을 법한 소녀가 끼어들었다.
“난 쓸 수 있어. 전에 우리 마을에서 써본 적이 있거든.”
장목화가 웃으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넌 이름이 뭔데?”
소녀도 눈을 반짝이며 아름다운 장목화를 쳐다보았다.
“이경서.”
장목화는 살짝 미소를 지어주곤,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또 총 쓸 수 있는 사람? 기관단총이나 각종 소총 다 포함해서.”
여럿이 느릿하게 손을 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장목화가 다시 온화하게 웃었다.
“너희는 앞으로 동료들한테 이런 총기 사용 방법을 가르쳐줘. 사람이 많을수록 너희들 힘은 강해질 거고, 여기 퍼스트 시티에서 더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거야. 훈련할 장소는 있어?”
소나영이 얼른 답했다.
“있어. 이 건물 지하에 사격장이 하나 있어. 사장이랑 다른 사람들이 연습할 때 쓰던 곳이야.”
“오거.”
성건우가 이들이 더는 오거를 사장이라 부르지 않게 힘주어 강조했다.
“그래, 오거.”
소나영도 한때는 사장이었던 종을 보며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장목화가 말했다.
“총알은 걱정하지 마, 한번 쓴 총알 탄피를 재활용할 수도 있고, 새 총알을 살 수도 있어. 근데 죽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야, 알지? 나중에 우리가 총알을 구해올게. 값도 최대한 싸게, 그린올리브의 최저가로 책정할 거야.”
“응.”
여자들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장목화는 이 장소 전체를 감시 중인 백새벽, 용여홍, 게네바를 한번 훑었다. 다들 본능적으로 흩어져 주변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주변을 쳐다본 장목화는 살짝 망설이다가 운을 뗐다. 여자들은 아직도 많이 혼란스럽고,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나도 알아, 단순히 식당을 운영하는 것만으론 이렇게 많은 사람이 먹고살긴 힘들겠지. 구세계에선 괜찮았을지 모르겠지만 신력 이후론, 아마 앞으로 10년, 20년, 심지어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도 몰라.
그러니까 식당이 첫 단계라고 생각하는 거야, 알았지? 식당을 운영하면서 다른 기회도 찾아보고 갖은 노력을 다해야 해. 그래야 배도 불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가질 수 있는 거야.
물론 당연히 힘들고 피곤할 거야, 위험하기도 할 거고. 그래도 예전의 그 삶을 다시 이어 나가고 싶은 건 아니잖아, 그렇지?”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여자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아니야! 우린 매일 이렇게 구원받을 날만 꿈꿔왔어.”
여자들에게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백새벽은 그 말에 흠칫 놀라 고개를 옆쪽으로 돌렸다.
“그래?”
장목화가 되물었다.
이내 170센티미터 정도의 장신인 데다상당히 예쁘게 생긴 여자 한 명이 앞으로 몇 걸음 걸어 나왔다.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난 여기서 지낸 지 거의 3년이 다 돼가. 나보다 더 오래 있는 사람은 네다섯밖에 안 돼. 그 이유가 뭘까?
여기엔 우리 몸 상태가 어떤지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우리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 전염됐는지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아. 근데 대부분은 여기 온 지 2년쯤 지나면 심각한 병에 걸려 온몸이 다 썩어들어가거든.
그러면 작은 방에 갇혀. 다들 병이 깨끗하게 낫기를 기다리지만, 보통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말지.
그래도 치료될 희망이라도 있는 사람은 그나마 다행이야. 그 희망마저도 없는 사람은 곧장 항구로 실려 가 강에 던져지거든. 앞으로 1년, 혹은 몇 달만 더 있었다면 나도 그렇게 됐을지 몰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또 다른 여자가 훌쩍거리며 덧붙였다.
“난 친한 친구가 한 명 있었어. 여기로 같이 팔려 왔는데 그 애는 1년도 지나지 않아서 더러운 병에 걸려 온몸에 이상한 게 자라났어.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의 친구가 생각나. 어두컴컴한 방에 누워서 신음하듯 중얼거렸지.
진희야, 나 해가 보고 싶어⋯⋯. 진희야, 나 엄마가 해준 감자전이 먹고 싶어⋯⋯. 그, 그 애는 그때 그 애는 겨우 열아홉 살이었어!”
진희라는 여자는 그대로 쪼그려 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눈물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누군가는 흐느끼고, 누군가는 통곡했다.
이 순간 용여홍은 얼굴이 화끈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전에 성건우를 말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게 너무도 부끄러워서였다.
울음소리가 잦아들 무렵, 장목화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더 똘똘 뭉쳐서 서로를 보호해야 해. 퍼스트 시티, 그린올리브에서 혼자는, 심지어 두세 명이라고 해도 암흑가 조직에 유린당하기 쉬워. 치안관만 믿을 수도 없지. 무기를 단단히 장착하고 동료랑 등을 맞대야만 너희만의 생존 공간을 개척할 수 있는 거야.”
아직 얼굴에 눈물 자국이 흥건한 여자들이 분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잠시 머뭇거리던 소나영이 말했다.
“질문이 있어.”
“뭔데?”
장목화가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소나영은 오거 무리를 가리켰다.
“아까 그랬잖아. 저 사람들 당분간은 우리 종이 돼서 우리 말에 복종할 거라고. 근데 우린 레드리버어를 몰라. 요리랑 관련된 몇 가지 단어만 알아. 그럼 저들이랑 어떻게 교류하고 분부를 내리지?”
장목화도 일찍이 고민한 문제인 듯, 스스럼없이 전술 배낭을 풀었다.
“자, 번역기야. 레드리버어, 애쉬랜드어 둘 다 바꿔주는 거야.”
이 번역기는 타르난에서 얻은 것이었다. 그곳에서 파는 전자제품은 어느 곳보다 저렴했다.
장목화는 여자들에게 천천히 사용법을 가르쳐주고, 목을 한번 가다듬었다.
“하나 강조해둘 게 있어.”
여자들은 동시에 고개를 들어 장목화를 바라보았다.
“번역기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이야. 그러니까 이것만 믿기에는 문제가 많다는 거지. 어느 날 갑자기 망가져 버리면 어떡해? 게다가 이렇게 너희 인원이 이렇게 많은데, 번역기 한 대만 가지고 살 수 있겠어?
그러니까 최대한 빨리 레드리버어를 익혀야 해. 적어도 일상적인 소통 정도는 가능하게. 음, 이 번역기는 레드리버어 학습에도 도움이 될 거야. 나도 간단한 교재를 만들어서 한동안은 너희한테 레드리버어 수업을 해줄게.”
진지한 장목화의 눈빛을 보며, 여자들 모두가 충격적으로 기뻐했다.
“좋아!”
“그래!”
“응!”
장목화의 눈에도 그녀들의 환희와 갈망이 훤히 보였다. 그래서 장목화는 다시 한번 목을 가다듬은 뒤 말을 이어갔다.
“오거랑 관련된 사람들과 일들은 우리가 처리할 거야. 너희가 할 일은 저 종들을 데리고 여길 관리하는 거야. 음, 늑대소굴 영업은 당장 중지해. 기이한 전염병이 돈다든가 하는 핑계면 괜찮지? 대마 사업은 한동안은 유지해도 될 거야. 단골손님들에게 이상한 낌새를 들키면 안 될 테니까.”
장목화가 모두에게 할 일을 정연하게 안배하며, 오거 무리가 지니고 있던 총기를 하나씩 나눠주었다. 백새벽도 곁에서 장목화가 경험이 없어 빠트리는 부분까지도 완벽하게 메워주었다.
그 후 성건우는 지도부의 도움으로 정리한 명단을 가지고 이 건물 내부에 오거와 깊이 관련된 인물들을 차례로 방문했다. 여자들 편에서 합작해달라고 설득하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