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57
57화. 도시
다음 날, 구조팀 야영지 안.
막 점심을 먹은 용여홍은 주머니에서 리치만 한 크기에 딱딱한 청외색 껍데기로 싸인 열매 하나를 꺼냈다.
그가 이로 물어 껍데기를 깨자, 그 안을 가득 채운 부드럽고 흰 과육이 드러났다.
용여홍은 흘러나온 즙부터 맛을 본 뒤, 쏙 빨아들인 과육을 우물거렸다.
“진짜 맛있다⋯⋯.”
과육을 삼킨 그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감탄했다.
하루 동안 받은 훈련으로 그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생선과라고 불리는 이 음식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드넓은 지역에 분포하며 가뭄에 잘 견디고 잎이 단단한 관목에서 나는 이 열매는 생장 기간이 짧고 보존 기간은 길었으며 어떠한 독성도 없었다. 유일한 문제가 있다면 생산량이 극도로 적어 관목 한 그루당 겨우 몇 개만 나기 때문에 주식으로 삼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이 열매만을 수집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백새벽의 말에 따르면, 이 열매는 적잖은 황야유랑자에게 어렸을 적 가장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다고도 했다.
성건우의 손에도 생선과가 들려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남은 희고 부드러운 열매를 입에 집어넣었다.
이 야생 열매의 과육은 그가 처음에 상상했던 것처럼 부드럽고 쫄깃하지 않았으며, 사과와 비슷한 사각사각한 식감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약간 시면서도 달콤한 맛이라 이 열매에 계속 손이 갔다.
과육 안에 숨은 몇 개의 얇은 씨마저 으적으적 씹어 삼킨 성건우가 손을 탁탁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후 훈련의 시작을 알리려던 장목화는 북쪽 하늘에서 연달아 터진 세 개의 불꽃을 발견했다.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불꽃이었다.
“회사의 신호탄이야⋯⋯.”
미간을 살짝 찌푸린 그녀가 작지 않은 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이렇게나 빨리 도착했다고?”
“누군가가 회사를 사칭한 걸까요?”
백새벽이 한 가지 가능성을 제기했다.
자세히 불꽃을 살피던 장목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건 회사의 특제 신호탄이야. 외부인은 흉내 낼 수 없지. 게다가 색깔의 순서도 정확해.
어쩌면 이 부근에서 야영 훈련을 하던 안전부의 한 팀이 곧바로 달려온 것일 수도 있어. 아니면 우리가 처음으로 포효를 들었던 그날 밤부터 회사에서도 웨이루 역 북쪽의 이상 상황에 주의하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던 성건우가 불쑥 웃었다.
“뭐하면 여홍이부터 보내서 상황을 확인해보게 하는 것 어떻습니까?”
“왜 나야?”
놀란 용여홍이 반문했다.
“내가 지시할 수 있는 대상은 너밖에 없으니까.”
성건우가 솔직하게 답했다.
용여홍은 그런 그를 째려보며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러자 장목화가 웃으며 말했다.
“건우 말에도 일리가 있네.”
순간 용여홍의 낯빛이 약간 창백하게 변했다.
그 사이 장목화의 말이 이어졌다.
“일단 검은쥐 마을로 돌아가자. 부근에 도착하면 외골격 장치를 입은 한 사람이 먼저 나서서 정찰부터 하는 거야.”
외골격 장치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안정을 찾은 용여홍은 손으로 이마를 치며 작게 중얼거렸다.
“내가 왜 그걸 깜빡했을까⋯⋯.”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본 장목화는 상대의 말을 제대로 듣지는 못했지만, 용여홍이 무슨 말을 했을지 대충 짐작할 수는 있었다.
그녀는 웃음을 머금은 채 반박했다.
“네가 정찰 임무를 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안전부 직원 중에 아는 사람이 몇이나 돼?
그곳에서의 정찰은 당연히 내 몫이야.”
장목화는 마지막으로 짧은 한마디만 남긴 채 지프를 향해 다가갔다.
“정리해.”
* * *
구조팀이 검은쥐 마을이 자리한 그 구릉 지대에 도착한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뒤 정찰에 나선 장목화는 신호탄을 쏜 것이 반고 바이오 사람임을 확실히 확인했다.
외골격 장치를 벗은 장목화는 백새벽이 모는 지프를 타고 성건우, 그리고 용여홍과 함께 작은 산 아래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흑회색 복장을 갖춘 반고 바이오 직원 십수 명이 자리해 있었다. 제식총기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을 둘러멘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길을 봉쇄하고 있었다.
백새벽이 상대의 손짓에 따라 지프를 멈추자, 가장 먼저 문을 열고 내린 장목화가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는 와중 붉은 바탕에 금색 글자가 적힌 사각형의 명찰을 꺼낸 그녀가 그 명찰을 가슴팍에 달았다.
명찰에 새겨진 반고 바이오라는 글자가 석양 아래 번쩍번쩍 빛났다.
완전 무장을 한 채 같은 양식의 명찰을 단 직원 두 명이 장목화에게 다가왔다. 그중 한 명은 손에 스크린이 달린 전자기기를 쥐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장목화를 보고 이렇게 물었다.
“전자카드 번호.”
“02310162155.”
장목화는 아주 능숙하게 일련의 번호를 읊었다.
손에 전자기기를 쥔 안전부 직원이 번호를 입력하자, 스크린에는 장목화와 관련된 정보가 떠올랐다.
그 안에 포함된 사진과 특징을 눈앞의 장목화와 대조해보던 그가 곧 손을 들어 경례했다.
“안녕하십니까, 장 팀장님.”
두 직원은 성건우와 용여홍, 백새벽의 전자카드 번호까지 검증을 마친 뒤에야 길을 내주었다.
“어느 대대 소속이지? 어떻게 이렇게 빨리 도착한 거야?”
장목화가 물었다.
방금 전자카드 번호를 물었던 안전부 직원이 답했다.
“웨이루 역 북쪽에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 곧장 출발했습니다. 그곳으로 가는 도중 팀장님께서 쏜 긴급신호탄을 보게 되었죠.”
전자기기를 쥔 직원이 덧붙였다.
“저희는 23대대 소속입니다.”
장목화는 그들의 답에 놀라기는커녕 안도하며 말했다.
“이곳에 온 팀은 총 몇 개지?”
“온 대대가 출동한 상태입니다. 장갑차도 포함되어 있고요.”
안전부 직원이 숨김없이 답했다.
“좋아.”
장목화가 웃어 보였다.
반고 바이오 내에서 대외 작전을 담당하는 안전부의 기본 단위는 작전팀이었다.
각각의 작전팀은 스무 명에서 서른 명 정도로 이루어져 있으며, 팀장(D7급) 한 명과 부팀장(D4급에서 D6급) 한 명이 포함되었다.
지휘의 편의를 위해 작전팀은 또 서너 개의 조로 나뉘었으며, 각각의 조를 이끄는 것은 조장(D4 혹은 D5)한 명이다.
마찬가지로 작전 팀 세 개는 행동 대대 하나를 구성했다. 여기에 별도의 인원이 더해진다면 한 행동 대대에 속한 이들은 거의 백 명에 달했으며, 이 대대를 통솔하는 대장은 보통 D8급이었다.
그 상위 조직이며 사백 명에서 오백 명 정도의 인원으로 이루어진 작전군은 안전부 최대병력이었고, D9급이 그들을 통솔했다.
비교적 규모가 큰 전쟁이 발발할 경우 몇 개의 작전군은 하나로 연합되어 임시적인 작전반을 형성했으며, 다양한 총감독(M1급 관리층)에 의해 지휘 밑 통제되었다. 빅보스 전속 호위대와 관리층 직속의 작전반, 중요 프로젝트 보안특수대는 상설 특례 조직에 속해 있는 데다가 인원수도 진정한 작전반보다 적었다.
즉, 행동 대대는 안전부의 편제상 대들보와 같은 존재인 셈이었다.
“대장은?”
장목화가 물었다.
“검은쥐 마을에 계십니다.”
전자기기를 쥔 직원이 솔직하게 답했다.
장목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안내해줘. 중요한 정보가 있다.”
* * *
건우를 비롯한 이들은 검은쥐 마을 밖에서 23대대의 대장을 만날 수 있었다. 삼십 대로 보이는 그 대장은 흑회색 옷을 입은 채 별 두 개가 더해진 명찰을 달고 있었다.
“양범석이라고 하네.”
그가 장목화에게 오른손을 내밀며 말했다.
장목화는 마찬가지로 손을 내밀어 상대의 손을 쥐었다.
“장목화입니다.”
“자네의 명성은 오래전에 들어 알고 있었지.”
양범석이 웃으며 손을 거뒀다.
그는 성건우와 키가 거의 비슷했으며 이목구비도 빼어난 편이었지만, 전체적으로 얼굴이 검게 그을려 있는 데다가 거친 느낌이 났다.
“좋은 쪽이었기를 바랄 뿐입니다.”
겸손하게 대꾸한 장목화가 성건우를 포함한 팀원들도 소개했다.
“저희 구조팀의 팀원들입니다.”
양범석은 거만한 기색 없이 백새벽과 성건우, 용여홍과도 차례대로 인사를 했다.
그 후 다시 장목화에게로 시선을 돌린 그가 말했다.
“솔직히 자네가 새로운 구조팀의 설립을 신청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는 전부 의아해했어. 그건 가장 위험한 임무 중 하나인 데다가, 자네는 굳이 그런 임무를 맡을 필요가 없으니까.”
‘가장 위험한 임무’라는 말을 들은 용여홍의 얼굴이 저도 모르게 약간 창백해졌다.
장목화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 개인적인 바람이었습니다. 애쉬랜드에도 아직 이상주의자들이 남아 있죠.”
“때때로 자네의 순수함은 부러울 지경이라니까.”
양범석은 웃음과 한숨이 반씩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처럼 아내와 자식이 딸린 사람들은 더 이상 마음 가는 대로 굴 수 없지.”
이쯤에서 한담을 마무리 지은 장목화는 맞은편에 자리한 동료가 자신의 진술로부터 유용한 정보를 뽑아낼 수 있기를 바라며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처음으로 꺼낸 이야기는 야영 첫날 밤 포효를 듣고 웨이루 역 북쪽에서 이상 상황이 발생했으리라 의심했다는 것이었다. 그 후 외골격 장치를 입은 황야 강도와의 전투, 그리고 해자 마을과 관련된 이야기는 그대로 건너뛴 후, 이동하던 도중 우연히 검은 늪 철갑뱀을 맞닥뜨렸으며 순조롭게 녀석을 처치했다고 전했다. 검은 늪 철갑뱀의 가죽은 아직 지프차 지붕 위에 얹혀 있어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초반부 이야기를 마친 장목화는 곧바로 철강회사 폐허에서의 사건과 해리스 브라운이라는 대머리 유적 사냥꾼이 들려준 이야기를 그대로 반복해서 들려주었다. 표현과 사용된 단어는 조금 달랐지만, 내용상 빠지거나 더해진 부분은 하나도 없었다.
집중한 채 그녀의 이야기를 듣던 양범석의 얼굴에서 공손한 웃음기가 점차 사라졌다.
그 다음으로 장목화가 언급한 것은 기계 승려 정법이었다.
처음에만 해도 그녀는 성건우와 용여홍이 정법과 나눴던 대화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면서, 각성자 능력으로 의심되는 타심통이라는 신통술을 중점적으로 강조했다.
하지만 그들을 쫓던 정법이 아귀도라는 능력으로 구조팀 네 사람을 통제했을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던 중, 장목화는 성건우의 행동에 대해서는 감쪽같이 숨겼다. 대신 그녀는 여성에 대한 정법의 증오가 영생인 기술의 결함 때문이 아니라, 색을 밝히는 그의 본질과 신체의 부조화로 인해 왜곡된 심리에서 비롯된 것임을 예리하게 알아차린 자신이 의도적으로 그 부분을 건드렸다고 말했다.
그런 식으로 기계 승려를 격노하게 하다가 기회를 틈타 왼손 검지를 정법의 목 접합부에 쑤셔 넣은 뒤, 전기뱀장어형 생체 공학 의수에 축적된 고압 전류를 흘려 상대의 통제 시스템과 기계 구조를 망가뜨리려 했다고 증언했다.
이 대목에서 장목화는 실제 상황을 의도적으로 왜곡했다. 사실은 당시 정법에게 위기 대응 시스템과 여분의 기계 구조가 갖춰져 있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황금손가락을 기계 승려 내부 정보 네트워크에 침투시켜 상대를 직접 통제하기만을 원했다는 사실은 밝히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