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654
654화. 암시
거의 자정이 다 된 시각, 구조팀은 이미 성건우와 친구가 된 호텔 경비원을 우회해 214호 투숙객의 차를 찾았다.
트렁크를 개조한 검은색 SUV였다.
백새벽은 전자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한동안 이리저리 두들겨보던 끝에 게네바의 별 도움을 받지 않고도 차량의 트렁크를 여는 데 성공했다.
경보기도 울리지 않았다.
손전등 불빛 아래, 빵, 압축 비스킷, 컵라면, 각종 통조림, 총알 한 상자, 소총 두 자루가 드러났다.
“없네⋯⋯.”
성건우는 실망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황 위원은 소형화된 수소 폭탄이라고 말했지만 장목화가 아는 한 아무리 소형화시킨다 한들 그 폭탄을 고성능 배터리만 하게 줄일 수는 없었다. 구세계 기술이 아무리 발전되어 있었다고 해도 그 정도는 아닐 터였다.
장목화는 그 핵탄두가 못해도 1~200킬로그램 정도는 되리라 생각했다. 그 정도는 숨기기도 힘든 규모였다.
계속해서 손전등 빛이 이곳저곳을 오가고, 차 앞부분을 살피던 백새벽과 용여홍도 동시에 결과를 보고했다.
“없어요.”
장목화는 느릿하게 한숨을 토했다.
“좋아, 그냥 우연한 사건이었나 보다. 돌아가서 쉬자.”
* * *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장목화는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은 그녀는 성건우가 흥얼거리는 콧노래를 듣는 한편 오늘 있었던 일들을 빠르게 한번 되새겼다.
순간 약간의 죄책감이 느껴졌다.
길치인 그녀는 이전에 머릿속에 그려둔 건물의 배치도에 근거해 214호의 생물 전기 신호를 확인했다. 하지만 그게 정말 제대로 살핀 것이 맞는지, 호수를 잘 찾아갔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어쩌면, 아마도, 틀렸을지 몰라. 그 맞은편 방의 상황을 살핀 것인지도.’
곰곰이 고민해 보던 장목화는 난감한 나머지 머리를 벅벅 긁고 싶어졌다.
‘아, 너무 쪽팔리잖아! 아직 그 사실을 발견한 사람이 없으니 다행이지.’
그리고 지금 그녀는 이미 침대에 누워있기까지 한 상황이었다.
전의 탐색에 실수가 있었음을 확인한 이상 다시금 정탐을 해봐야 했다.
장목화는 곧장 그 작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그녀의 눈이 번쩍 뜨였다.
214호 방에 인간과 고도로 비슷한 생물 전기 신호가 느껴졌다!
약간의 별빛만 스미는 어두운 방에서 장목화는 눈을 번쩍 떴다.
잠은 이미 싹 달아난 상태였다.
신중한 그녀는 이번에 각성자의 의식 감응을 이용해 보았다.
결과는 머릿속에 빠르게 반영됐다.
214호 방에 인간 의식은 없었다.
‘이게 대체⋯⋯.’
컴컴한 천장을 눈에 담으며 장목화는 끓는 물처럼 끊임없이 생각했다.
생물 전기 신호와 인간 의식 감응 결과를 결합한 그녀는 우선 아무도 없어야 하는 214호 방에 한 각성자가 숨어있는 모양이라 판단했다.
그 의식은 숨겼지만 생물 전기 신호는 처리하지는 못한 바람에, 성건우의 감지는 피했어도 지금은 그 존재를 들킨 것일 터였다.
이후 장목화가 가장 먼저 떠올린 건 누군가 뭔가를 찾기 위해 214호에 잠입했을 가능성이었다.
예를 들자면 소형화된 핵탄두 같은 것.
이는 214호 투숙객이 그 거래를 중개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에 뜻밖의 사고가 일어났을 그 가능성에서 추측할 수 있는 가설이었다.
이 때문에 장목화는 현재 감지되는 상대가 방송 시스템을 하이잭한 그 사람일 수 있겠다고 의심했다.
그녀는 곧 무의식적으로 긴장했던 근육을 이완시켰다. 누구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차원이었다.
장목화는 어떠한 행동에도 나서지 않고 조용히 감시만 했다.
시간이 1분 1초 흘러가는 동안 놀랍게도 그 생물 전기 신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장목화 자신처럼 침대에 얌전히 누워있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이상하네. 뭔가를 찾으러 온 게 아닌가?’
속으로 중얼거리던 장목화가 다시금 새롭게 방향을 틀었다.
‘설마 214호 방에 있는 게 다른 사람이 아니라 혈압강하제를 도둑맞은 그 불운한 투숙객인가? 그 사람 아직 병원에 있다고 하지 않았나? 몰래 돌아온 건가? 계엄 전에? 지금 같은 환경이면 병원에서 몰래 빠져나가도 금방 추적 조사당할 텐데.’
그렇게 이 상황에 대해 궁리하고 있던 그때였다. 갑자기 장목화의 머릿속에 한 줄기 번개가 스쳐 지나가며 안개에 가려진 부분이 확 밝아졌다.
‘잠깐만, 호텔 지배인 심강태는 나랑 건우한테 214호 투숙객이 계엄령이 내려지기 얼마 전에 돌아왔다고 했어! 난 그 사람을 눈여겨보려 했었고!’
순간 양손을 불끈 쥐었던 장목화가 느릿하게 힘을 풀었다. 지금 머릿속엔 또 다른 기억 하나도 남아있었다.
‘심강태는 214호 투숙객이 아직 병원에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어. 그래서 난 지나치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겠다고 판단했는데.’
이 완전히 모순된 두 기억 앞에, 장목화는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누군가 내 기억을 수정했어! 심강태랑 대화한 지 얼마 안 된 그때!’
다시금 장목화가 살짝 인상을 썼다.
‘아니, 아니야. 수정이 아니야. 원래 기억을 흐리게 만들고 새로운 기억을 이식한 거야! 지금 214호에 숨은 그 사람이 한 짓일 가능성이 커!’
뒤이어 짙은 의혹을 느낀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원래 장목화는 누구도 기억을 열람하고 조작하지 못하게 대비 중이었다.
호텔 지배인 심강태는 혈압강하제를 도난당한 그 충격적인 사건을 마치 아주 오래된 일처럼 흐릿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장목화도 그에게 몇 번이나 언질을 준 후에야 관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를 보면 214호 투숙객이 말인 영역의 강력한 각성자일 수도 있겠다는 추정도 가능했다. 이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하나 더 있었다.
반역자 두 명이 빠르게 발견된 건 구세군의 엄격한 관리와 체제 덕분이었다. 하지만 둘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끊으면서 누구와 거래했는지, 어떠한 단서도 남기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꽤 공교로운 일이었다.
그런데 만약 이것이 누군가가 이식한 비관적인 기억 때문이라면……?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자마자 자살해 버리는 건 매우 합리적인 행위였다.
당시 장목화는 머릿속으로 얼른 에이돌른의 주시를 떠올렸었다. 하지만 그러한 보호막 아래에서도 기억은 바뀌어 있었다.
너무나 비합리적인 상황이었다. 상대의 대가가 유약함과 겁이 아니라고 한들, 달지기의 주시와 관련된 기억을 마주했을 때는 그걸 아무렇지 않게 여기거나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설마, 날마다 달지기의 주시를 받아 이미 면역이 됐나?’
어쩌면 상대는 장목화의 기억을 열람하지 않고 최근의 기억만 흐릿하게 만든 뒤, 본인이 날조해낸 새로운 기억과 연결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하면 상대는 에이돌른의 주시를 마주할 위험을 피하면서 원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 경우 상대가 왜 생물 전기 신호 감응에는 대비하지 않았는지도 설명이 되었다.
장목화가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건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즉, 모종의 교훈을 얻어 남의 기억을 함부로 열람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거야. 음, 자체적인 능력의 한계 때문에 열람에는 어려움을 겪는지도 모르지. 아무튼 내가 지금 이런 생각들을 하더라도 비교적 안전한 상황이야. 상대한테 발각될 염려는 없어.’
머리를 굴리는 사이 장목화의 생각은 조금 더 확실해졌다. 이 가설은 대부분 상황은 다 설명할 수 있지만 그래도 한 가지 문제는 존재했다.
상대가 타인의 기억을 열람할 줄 모르거나, 열람할 수 없는 각성자라면 대체 어떻게 구조팀이 심강태에게 혈압강하제를 도둑맞은 이야기를 들은 것을 알고 때맞춰 그 상황을 처리한 것일까?
이에 대해 추측해볼 수 있는 건 두 가지였다.
첫째, 상대는 구조팀처럼 내력이 있거나 실력 좋은 이들을 대상으로 기억을 열람하기는 쉽지 않아도 호텔 지배인 심강태 같은 일반인의 기억을 열람하는 데는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심강태의 기억을 열람했다면 그와 대화를 나눈 구조팀에게 수를 쓸 수 있을 터였다.
둘째, 상대는 그가 가진 다른 능력이나 도구로 호텔 안의 특정 상황을 감시할 수 있을지 몰랐다.
신중한 성격의 장목화는 두 번째 가능성에 조금 더 마음이 기울었다.
이내 느리게 한숨을 내쉰 그녀는 잠을 자려는 듯 자세를 조정했다.
현재 사고의 중심은 이 생각들을 동료들한테 어떻게 안전히 전할지, 또 어떻게 214호에 있는 상대에게 완벽하게 대처할지로 옮겨졌다.
장목화가 계속해서 각종 방안을 떠올리고 그 방안을 부정하기를 반복하던 그때, 큼지막한 침대 한편에서 갑자기 성건우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지금 구조팀이 묵는 스위트룸엔 침실 두 곳, 그리고 거실과 화장실이 하나씩 있었다.
“왜 그래?”
장목화는 화들짝 놀랐다. 마치 비밀이 폭로되고 적의 기습을 마주한 듯한 느낌에 죄책감과 당황스러움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미약한 별빛 속, 몸을 튼 성건우가 장목화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갑자기 전의 처리가 꼼꼼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214호를 검사하지도 않고 그냥 돌아왔잖아요. 만약 그 안에 어떤 단서가 숨어있다면요?”
‘그래서 그렇게 일어난 거구나.’
장목화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정색하고 대꾸했다.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생각해봐. 그 방은 이미 도둑이 다녀갔고, 그 이후론 구세군 사람도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방문했었어. 분명 철저하게 현장을 감식했겠지. 그런데도 아직 발견되지 않은 단서가 있겠어?”
잠시 고민하는가 싶던 성건우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네요.”
장목화는 바로 벌렁 드러눕는 그를 힐긋 보다가 불쑥 질문을 꺼냈다.
“522호 유람선 트라우마는 통과했어?”
522호와 912호 유람선 트라우마는 그 뿌리가 같았다. 912호 트라우마를 통과할 방법을 찾았으니, 522호 트라우마는 거의 공짜나 다름없었다.
구조팀은 토론을 거친 끝에 522호와 912호의 방 주인이 유람선 트라우마에 대응하는 섬을 극복하고 심령의 복도에 진입할 수 있었던 건, 이후 선장이 무심병에 걸리지 않고 살아남은 것을 발견하고 그에게서 단서를 찾았기 때문이리라 추측했었다.
곧이어 성건우가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었다.
“아직은요. 중요한 순간에 통과하려고요. 전쟁에 임하는 와중에 돌파해야 적의 예상을 뛰어넘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죠!”
잠시 멍한 표정을 드러낸 장목화가 말했다.
“정신 차려. 각성자한테 누가 전쟁에 임한 와중에 돌파한다는 표현을 써? 그 트라우마를 통과한 후 바로 신세계로 이어지는 대문을 마주한다면 모를까. 하지만 그게 가능해?
전에 퍼스트 시티에서 가상 세계 주인을 마주했을 때, 넌 그런 돌파 따위에 기대지 않고도 이겼잖아. 상대의 약점을 파악하고, 그 약점을 노릴 수 있는 도구를 이용해서. 전쟁 중의 돌파는 그렇게 겸사겸사인 경우가 더 많지.”
성실한 성건우가 정색한 채 대꾸했다.
“알겠어요, 저희 생각이 너무 많았네요.”
그는 틀린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인정하는 편이었다.
이 기회를 틈타, 장목화가 다시 덧붙였다.
“그럼 넌 오늘 밤에 522호 유람선 트라우마를 통과해봐. 육식주랑 생명 천사 목걸이 가져가는 거 잊지 말고. 뜻밖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잖아.”
말을 마치자마자 장목화의 머릿속엔 갑자기 두 장면이 떠올랐다.
하나는 성실한 성건우가 몸의 통제권을 빼앗고 도구 따위가 무슨 필요겠냐고, 눈 감고도 통과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장면.
다른 하나는 성실한 성건우, 성급한 성건우 모두 다 짓누른 채 몸을 차지한 또 다른 성건우가 자신이 쥔 도구를 보고 그걸 이용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암시를 알아차리는 장면이었다.
장목화의 말이 떨어진 순간, 성건우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흐릿한 별빛이 드리운 밤,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없이 바로 시선을 거뒀다.
몇 초 후, 장목화가 자발적으로 제안했다.
“내 혼란한 오른손, 빌려줄까?”
“좋아요.”
곧장 일어나 앉은 장목화는 자신의 전술 배낭을 집어 들어 빠르게 지퍼를 열고, 안에서 검은색 장갑을 움켜쥐었다.
거의 동시에 장목화는 바르르 몸서리를 쳤다.
겨울이 성큼 다가온 듯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