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661
661화. 정도(正道)의 빛
다시 3층으로 돌아왔지만 구조팀 모두가 깊은 침묵에 빠져있었다.
그때, 게네바만이 좌우를 둘러보다 물었다.
“무심병과 신세계의 연관이 더 확실해졌는데,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건 구조팀의 주요 임무였다.
“마음이 무거워서 그래.”
용여홍은 기분을 숨기지 않았다.
뒤이어 성건우는 턱을 긁적이다가 소리 내 웃었다.
“난 몇 가지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어.”
“어떤 문제?”
백새벽은 성건우의 사고가 아주 이상하기는 해도 그를 통해 강렬한 영감을 얻은 적이 있던 만큼 그의 말을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하지만 대답은 창밖의 태양을 보던 장목화에게서 나왔다.
“회사에도 신세계 강자는 있어. 그럼 이사회에서도 무심병의 근원을 모르지 않을 텐데, 왜 구조팀을 하나하나 결성해 진상을 찾으려는 걸까?”
드디어 냉정하고 이성적인 성건우가 입을 열었다.
“회사의 신세계 강자들이 구세군이 처음에 겪은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매우 애매한 암시만 주고 있는지도 모르죠.”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신세계에 먼저 들어간 사람이 회사 사람인지, 구세군 사람인지에 달린 문제겠지.”
구세계의 파괴를 겪고 천신만고 끝에 신세계에 들어간 사람이라면, 아무 경험도 없고 충분한 교훈을 얻지도 못한 상황에서는 많든 적든 그곳의 중요한 정보를 밖으로 전달하기 위해 애를 쓸 터였다.
장목화는 용여홍, 백새벽, 게네바를 한 번씩 돌아보며 여전히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문득 그 생각이 났어. 우린 달지기의 주시를 받은 적이 있잖아. 그리고 우리가 처음으로 애쉬랜드에 나와 야영 훈련을 했을 때 몇 차례 우연 끝에 늪 1호 유적에 가서 수종이를 만나기도 했고.”
“헉!”
용여홍이 소리 나게 숨을 들이켰다. ‘계획’의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었다.
용여홍, 백새벽이 아무 말도 못 하고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성건우가 느닷없이 고개를 젖히고 크게 웃었다.
“왜 웃어?”
게네바가 가장 먼저 협조적으로 나왔다.
성건우는 계속 웃으며 이야기했다.
“구세계 파괴랑 신세계 비밀에 연루된 일이 계획됐다는 느낌이 든다는 거. 그게 정상이야. 오히려 그 생각이 안 들면 우리가 정확한 길에서 벗어나 있다는 뜻 같은데.”
그가 평소에 쓰던 무심병의 기원을 신세계의 비밀로 바꿔 표현한 것은, 기본적으로 구조팀이 현재 무심병이 신세계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것이 신세계의 어느 위치에 자리해 있는지, 그 본질이 무엇인지만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성건우의 말을 듣고, 장목화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회사에서는 그것들에 무슨 수를 쓸 수 있기를 바라는 것 같아. 안 그럼 구조팀들을 조직해 내보내지도 않았겠지. 지금 내가 궁금한 건 이거야. 회사의 진정한 목적은 구세계 파괴 원인과 신세계의 비밀을 조사해 후에 있을 비슷한 위기에 대비하는 것일까, 아니면 신세계의 그 탁한 물에 빨대를 꽂고 모종의 이익을 취하려는 걸까?”
한참을 생각하던 용여홍은 하나밖에 결론을 내지 못했다.
둘 다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만약 신세계에 진입한 강자가 아무 제한도 받지 않고 애쉬랜드에 신세계의 비밀을 전달할 수 있다면 회사의 목적은 분명 후자일 터였다. 하지만 신세계에 진입한 강자는 규칙, 혹은 위협에 의한 속박을 받고 있었다.
“두 목적이 합쳐진 것인지도 모르죠.”
백새벽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짝짝짝!
성건우는 박수와 함께 말을 이었다.
“맞아, 구세계 파괴 원인을 조사하고 신세계의 비밀을 파악한다면 회사에서는 신세계를 개척해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거야. 그건 장래의 비슷한 위기에 대한 대비책이 될 수도 있을 거고.”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구세계 파괴 원인과 신세계 비밀을 계속 조사할수록 점점 더 큰 위험을 맞닥뜨리게 되는 건 확실해. 지금 우린 큰 강을 횡단하다가 드디어 중류에 이르렀는데, 배에 물이 새기 시작한 걸 발견한 짝이야. 각 방면의 준비가 부족해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지. 지뢰탐지기 같은 거야.
타이 시티 불가 성지 탐색을 마친 뒤에는 바로 회사로 돌아갈 거야. 여태 얻은 수확으로 이사회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을지 확인해야겠어. 신세계에 대해 한층 더 심층적으로 알게 되고, 충분히 준비하고 나면 그때 다시 출발하려고.
일단은 남은 불가 성지를 조사하고 그 후에는 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나타났다는 그 도시에 가보려고 해.”
그녀는 성건우를 보며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그 도시는 바로 무심병으로 파괴된 곳이었다.
한동안 침묵하던 성건우는 약간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좋아요.”
장목화는 다시 용여홍과 백새벽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예정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야 용여홍은 당연히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또 백새벽은 팀원들과 함께라면 어디로 가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 다들 최대한 힘을 아껴둬. 곧 이동해야 할 테니까.”
사실 장목화는 그 누구보다 멀리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에 반고 바이오로 돌아가면 백새벽과 용여홍은 회사에 남겨둘 생각이었다.
각성자가 아닌 두 팀원이 신세계 조사에 심층적으로 연루되면 연루될수록 그 위험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질 터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본인 스스로를 지키기도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게 될지도 몰랐다.
그때, 성건우가 갑자기 또 튕기듯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의 다급한 눈빛은 백새벽을 향해 있었다.
“새벽, 이따 네가 운전할래? 아니면 내가 운전할까? 그것도 아니면 작은 빨강이한테 하라고 해?”
일단 장목화에게 운전대를 맡길 생각은 전혀 없는 듯했다.
그리고 게네바는 최대한 배터리를 아껴야 했다.
“내가 할게. 넌 뜻밖의 상황에 대비하는 데 집중해야지.”
백새벽은 단 한 번도 팀 내의 분업에 불만을 느낀 적이 없었다. 당연히 열등감을 느낀 적 역시 없었다.
“내가 해도 돼.”
용여홍이 나섰다. 물론 그도 성건우가 왜 갑자기 굳이 지금 이러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일단 대답부터 했다.
“그럼 작은 흰둥이로 결정.”
성건우는 용여홍의 말은 완전히 무시해버렸다.
뒤이어 전술 배낭을 푼 그가 스피커를 꺼내 백새벽에게 건넸다.
백새벽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눈빛으로 이게 뭐냐고 묻고 있었다.
솔직히 이번엔 장목화도 성건우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다. 그냥 백새벽이 운전할 때 음악을 틀기를 바라나보다, 짐작할 뿐이었다.
다음 순간, 성건우가 새하얗고 고른 치열을 드러내며 웃었다.
“운전할 때 노래 트는 거 잊지 말라고. 음량은 최대 크기로 맞춰놨어.”
“전투할 때 배경 음악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래도 백새벽은 환자의 입장을 최대한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아마도.’
친구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안다고 자신하는 용여홍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때, 성건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박사의 시선을 끌려고. 그 사람이 진짜 여기로 달려오고 있다면 우리가 이쪽에 있다고, 위에린 강 서남쪽으로 가고 있다고 알려줘야지. 그래야 반대편으로 가는 일반 민중을 공격하는 걸 막을 수 있지.”
순간 용여홍은 성건우에게서 후광이 비치는 듯한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탁탁탁!
인류를 보호할 책임이 있는 지능인 게네바도 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장목화는 새삼 고상한 지조와 순수한 정직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순간 자신이 너무 작게 느껴질 정도였다.
‘유일한 문제가 있다면, 저 녀석 정신이 정상은 아니라는 거지만.’
뒤이어 성건우가 다시금 제안했다.
“아니면 내가 구세군에 차를 한 대 빌려달라고 할까? 그 차를 내가 몰고 음악을 틀면서 박사의 시선을 끄는 거야.”
“그럴 필요 없어.”
백새벽이 단호하게 대꾸했다.
장목화 역시 고개를 저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럼 우리가 너무 비겁해 보이잖아?”
성건우는 의아한 얼굴로 답했다.
“간단한 계략이잖아요, 제가 시선 끄는 동안 우리 팀은 다 매복하면 되죠.”
‘이, 이건 대체 무슨 성건우야?’
숨을 한번 들이마신 장목화가 말했다.
“됐어. 박사가 정말 이곳으로 달려든다면 가장 먼저 공격할 목표는 우리가 아니라 우베이에 잠들어 있는 그분일 거야. 그를 제한하고, 그에게 영향을 주고, 그를 우회하지 않는 이상 박사는 우리랑 직접 마주할 수 없어.
신세계 강자가 주도적으로 무심병을 전파할 수 있다면 교차점을 이용해 상응하는 바이러스를 흡수하면서 주위에 끼치는 영향을 줄일 수도 있을 거야. 안 그럼 황 위원도 우리한테 그분과 함께 이동하기를 제안하진 않았겠지.”
성건우는 그 말에 아무 이의도 표하지 않았다.
* * *
구조팀이 한동안 휴식을 취하던 와중, 장목화와 성건우의 시선이 동시에 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뒤이어 호텔 지배인 심강태의 살짝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 장 씨 어른께서 여러분을 찾아 오셨습니다.”
성건우는 기뻐하며 문을 벌컥 열었다.
그곳엔 회백색 깊은 냄비를 쓴 장 씨가 있었다. 그는 여전히 하도 빨아서 하얗게 바랜 구세군의 검은 제복 차림이었다.
심강태가 장 씨를 향해 뒤돌아섰다.
“어르신, 찾는 분들은 방에 계시니 저, 저는 이만 가봐도 되겠죠?”
장 씨는 손을 휘휘 휘둘렀다.
“가서 잘 생각해봐라. 네 문제가 뭔지 깊이 반성해봐. 흥, 내가 모를 줄 알았냐? 도둑들이 왜 그렇게 활개를 치고 다닐 수 있었겠어! 너와 네 부하 녀석들이 눈을 감아줬으니까 그렇지!
떠나는 사람들은 아무 검사도 안 할 뿐만 아니라 뇌물까지 받아먹고, 문 열면 안 될 시간에 문 열어서 멋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게 해준 거 아니냐!”
심강태의 이마는 식은땀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저는 그저 손님을 왕으로 모시며, 그 강령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했을 뿐입니다. 저, 저는⋯⋯.”
“가봐.”
장 씨는 그의 설명을 더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심강태가 3층을 떠나자 장 씨는 그제야 고개를 숙이더니 냄비 아래의 틈을 통해 바닥을 살피며 방으로 들어섰다.
이후 신발로 상대를 판별한 그가 장목화에게 말했다.
“대단하구나. 당시에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것 같더니, 돌아서자마자 그 녀석을 찾아냈어!”
“지나치게 티를 냈다가는 녀석이 알아차릴 것 같아서요.”
장목화가 솔직하게 인정했다.
장 씨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위아래로 흔들리는 냄비를 통해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변명할 필요 없어. 우리 구세군도 보통 사람들한테는 솔직하고 성실하지만, 적 앞에서는 책략과 방법에 입각한 태도를 보이니까. 뭐, 혹시 무슨 변고가 생긴 거냐? 치안 관리 위원회 녀석들이 갑자기 계획을 바꿔 주민들을 동북쪽으로 이동시킨다고 하던데?”
점점 커지는 장 씨의 목소리를 들으며, 성건우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박사와 관련된 상황을 털어놓았다. 장목화가 황 위원에게 말한 그대로였다.
장 씨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랬군⋯⋯. 하……, 너희들, 일을 적잖게 겪은 모양이구나. 그러니 그만한 나이에도 신세계와 접촉하게 됐겠지. 나도 가서 내 전우들한테 알려야겠다. 이주를 준비하라고 해야겠어.”
그는 황 위원의 처치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그저 손을 휘휘 휘두르며 짧게 작별을 고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계단 쪽에서 여러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성건우는 황 위원과 그의 직원들, 경호원들을 보았다. 거기엔 성영희도 있었다.
황 위원은 장 씨를 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왔다.
장 씨도 상대가 누구인지 추측한 듯 꼼짝도 하지 않고 문 안쪽에 서 있었다. 성영희는 알아서 문을 닫고 나머지 사람들과 함께 문밖에 남았다.
“벌써요?”
장목화는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직감에 황 위원을 바라보았다.
‘몇 시간은 걸릴 거라고 하지 않았나?’
지금쯤 일반 민중들은 철수는커녕 아직 소집도 다 하지 못했을 터였다.
황 위원은 구조팀과 장 씨를 슥 훑어본 뒤 목소리를 낮췄다.
“우베이에 잠들어 있는 그분과 연락이 안 되고 있어.”
‘연락이 안 된다니?’
의아한 눈빛을 드러낸 장목화는 곧 성건우가 각성자 능력을 발휘해 염호의 의식과 접한 뒤 그의 구조 요청을 들었던 것을 떠올렸다. 그 덕분에 그녀도 황 위원의 말을 확실하게 알아들었다.
‘각성자 능력을 이용해 우베이의 신세계 강자 의식과 접했지만, 상대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는 건가? 신세계에서 무슨 변고라도 당한 것일까? 아니면 박사의 짓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