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664
664화. 전 인류를 위해
구조팀 다섯 팀원은 뒷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장목화는 맨 왼쪽, 성건우는 맨 오른쪽이었고 그 중간에는 왼쪽부터 백새벽, 용여홍, 게네바가 순서대로 앉았다.
이를 확인한 황 위원은 남아있는 구세군 노전사들에게 명령했다.
“자네들은 자유롭게 탑승해서 각각 헬기에 빈자리가 없도록 해. 하하, 내 자리만 하나 남겨두라고.”
분부를 마친 그는 옆에 있던 직원들과 경호원들을 향해 웃어 보였다.
“자네들은 아직 젊은데 날 따라 이런 위험까지 감수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을 순 없지. 이따가 몇 개 팀으로 나눠서 각자 다른 차를 몰고 위에린 강 서남쪽으로 향하라고.”
뒤이어 황 위원은 성영희에게 물었다.
“저들이 자네한테 그 차 열쇠는 줬나?”
그 차란 구조팀의 지프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성영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1층으로 내려온 후 바로 줬습니다.”
“음, 그럼 자네는 다른 사람 몇 명과 함께 그 차를 몰고 안사이 거점 밖에서 기다리라고.”
안사이는 우베이에서 가장 가까운 삼림장형 거점이었다.
금세 각종 지시를 마친 황 위원은 헬기들을 슥 둘러보고 자신의 자리를 확인한 후 빠르게 걸어갔다.
그의 경호원들은 예정된 방안에 따라 모든 헬기의 외관을 검사했다. 혹여 누구라도 몰래 표식을 남겨 박사가 목표의 위치를 파악하게 둬선 안 됐다.
그리고도 그들은 보안봉과 대나무 장대 등을 휘휘 휘두르며, 헬기 주위에 기어오를 수 있을 만한 구역은 전부 다 확인했다.
은신할 수 있다고 그 존재까지 숨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느껴지지 않을 뿐, 실질적인 접촉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대나무 장대가 그녀의 몸을 그대로 관통할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그와 동시에 헬기 내부의 사람들 역시 남은 공간을 샅샅이 훑었다.
다다다-
프로펠러들이 빠르게 돌아가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여파로 주위에는 거친 바람이 일었다.
앞줄 창가 자리에 앉은 장 씨는 헬기 문이 아직 닫히지 않은 틈을 타, 몸을 옆으로 틀더니 다른 헬기에 탑승한 오랜 전우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동시에 그는 상당히 편안한 모습으로 외쳤다.
“전 인류를 위해!”
황 위원을 비롯한 이들도 웃으며 앞다퉈 손을 흔들었다.
“전 인류를 위해!”
한없이 장엄하고 엄숙했던 전의 외침과 달리 지금은 오랜 친구들이 인생의 다음 역을 향해 출발하기 전에 하는, 다시 만나자는 인사처럼 들렸다.
성건우도 빠질 수 없다는 듯 거의 몸 절반을 밖으로 쑥 내밀었다.
“전 인류를 위해!”
쾅!
쾅!
하나씩 문을 닫은 헬리콥터는 프로펠러가 만들어낸 강력한 바람에 두둥실 떠올라 상공을 선회하다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그 대체적인 방향은 위에린 강 서남쪽으로 일치했다.
* * *
구조팀이 탑승한 헬기 안.
어마어마한 소음에도 성건우는 굴하지 않고 여유롭게 조종사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조종사가 꽤 젊어보이자, 성건우는 상당히 놀라워하는 눈빛을 드러냈다.
“넌 노전사가 아니네?”
조종사는 허리와 등을 꼿꼿이 세우며 호탕하게 웃었다.
“구세군의 근간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우베이 민중의 이주를 엄호하기 위해서라면, 우리 젊은 세대 중에도 기꺼이 희생하려 하는 사람이 있다고! 나 같은 사람도 적지는 않아. 그런 사람들은 다른 헬기에 탑승해 있어.”
그와 같은 줄에 앉은 구세군 노전사 몇몇이 성건우처럼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재차 손을 가슴에 얹었다.
“전 인류를 위해!”
“전 인류를 위해!”
조종사는 조종 때문에 예를 취하진 못하고 큰소리로 호응만 했다.
이후 시선을 거둔 성건우는 전술 배낭을 열고 육식주와 생명 천사 목걸이를 꺼냈다. 그런 다음 각각 백새벽과 용여홍에게 나눠주었다.
“특이한 도구니까 가지고 있으면 도움이 될 수도 있어.”
중요한 순간이니만큼 백새벽과 용여홍도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성건우에게 받은 물건을 소중히 움켜쥐기만 했다.
다음으로 성건우는 장목화를 쳐다보았다.
“팀장님의 혼란한 오른손도 특이한 도구예요. 기이한 트라우마에서 기인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특별히 옥 부처를 드리진 않을게요.”
얘기하는 사이, 그는 호수 빛 옥 부처를 꺼내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래!”
장목화도 이미 혼란한 오른손을 착용한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프로펠러가 소리와 요란한 바람 때문에 대화 소리는 상당히 높아졌다.
앞줄에 앉아있던 한 구세군 노전사도 그 대화를 듣고 혀를 쯧쯧 찼다.
“좋은 물건을 참 많이도 가지고 있네. 보아하니 적잖은 일을 겪은 모양이야. 신세계 강자의 눈에 띌 법도 하지.”
성건우가 대꾸하려던 그때, 헬기의 항공 무전기에서 소리가 울렸다.
– 1호 헬기 안전 확인.
– 2호 헬기 안전 확인.
이 헬기의 젊은 조종사도 통화 장치를 집어 들고 이곳 상황을 알렸다.
“5호 헬기 안전 확인.”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6호 헬기에서도 상황을 보고했다.
* * *
“8호 헬기 안전 확인.”
장 씨는 앞줄의 조종사를 보다가 옆자리의 홍광명을 돌아보며 웃었다.
“네놈이 나서줘서 우리 대대의 체면이 살았어!”
홍광명이 겸연쩍게 웃었다.
“사실 저도 그때 전장에서 죽는 게 훨씬 나았을 거란 생각을 한두 번 한 게 아닙니다. 그랬으면 지금 같은 상황을 볼 필요도, 자식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양심을 저버릴 필요도 없었을 텐데⋯⋯. 대대장님, 근데 냄비는 왜 벗으셨습니까? 그게 진짜 무심병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잖습니까.”
그는 부끄러운 얘기를 더 잇고 싶진 않은 듯 도중에 화제를 틀었다.
장 씨는 방금 막 이 나이 든 부하에게 신세계 강자의 무시무시함을 알려준 참이었다. 그렇게 다시 이어진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조했다.
“사실 우리도 냄비로는 무심병을 막지 못한다는 걸 다 알았어. 근데 뇌 통제는 실제로 존재하는 일이야! 어떤 이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성격이 바뀌어 전에는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을 하기도 한다고. 자네도 전에는 아마 그랬을걸. 그래, 분명 그랬을 거야. 그러다 다른 이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고 나서야 정상으로 돌아온⋯⋯.”
장 씨는 말을 채 맺기도 전, 홍광명의 얼굴이 맹렬하게 일그러지는 걸 목격했다. 눈동자는 빠르게 혼탁해졌고 흰자에서는 실핏줄이 돋아났다.
“광명⋯⋯.”
장 씨도 목구멍이 콱 막힌 듯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한순간 말을 잊은 야수로 변한 듯 거친 숨소리만 낼뿐이었다.
“헉……, 헉……, 헉…….”
단 몇 초 만에 이 헬기에 탑승한 모든 인원이 무심병에 감염되었다.
점점 궤도를 벗어난 헬기도 얼마 지나지 않아 추락하고 말았다.
콰릉!
상공에 핀 화염 한 덩어리만이 세상에 마지막 흔적을 그리고 있었다.
* * *
– 7호 헬기 안전 확인.
두 번째 보고가 진행되던 가운데, 7호 헬기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보고는 들려오지 않았다.
보고가 이어진 것은 몇 초 후의 일이었다.
– 1호 헬기 안전 확인.
조종사의 설명 따위 필요 없었다. 구조팀은 곧바로 상황을 인지했다. 8호 헬기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박사가 정말로 근처에 이른 모양이었다.
용여홍이 이를 막 인지하자마자 각 헬기의 번호를 파악하고 있는, 조금 전 직접 상황을 관찰하기도 한 조종사가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8호는…… 장 씨 어른 일행이 탑승하신 헬기다.”
“⋯⋯.”
순간 용여홍의 마음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아니, 헬기 전체가 옅은 슬픔으로 뒤덮여버린 것만 같았다.
* * *
같은 시각, 3호 헬기 안.
마찬가지로 각 헬기의 번호를 파악하고 있던 황 위원 역시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장만원⋯⋯.”
꼭 기억을 떠받치던 기둥 하나를 잃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때였다. 그는 갑자기 극심한 두통과 강렬한 현기증을 느꼈다.
황 위원은 순간적으로 그 단어가 번뜩 떠올랐다.
‘무심병!’
그는 정신을 다잡으려 애쓰며 의식을 자극해 이상 현상에 대항하려 사력을 다했다. 하지만 눈앞은 점점 어두워졌고 사고는 점점 느릿해졌다.
잠시 후,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고 느낀 순간, 황 위원은 끝까지 집념을 발휘해 큰소리로 외쳤다.
“전 인류를⋯⋯!”
그의 오랜 인생을, 그 수많은 위험과 망각과 소실을 함께 해온 말이었다.
말끝은 결국 야수의 것과 같은 포효로 바뀌어버렸다. 황 위원의 눈동자는 급속도로 혼탁해졌고, 흰자는 엄청난 실핏줄로 뒤덮여갔다.
결국 조종사를 잃은 이 헬기 또한 근처의 산봉우리와 충돌해 버렸다.
콰릉!
공중으로 불길이 치솟았다.
* * *
– 1호 헬기 안전 확인.
– 2호 헬기 안전 확인.
잠깐의 침묵 후, 5호 헬기의 조종사가 울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황 위원님 헬기의 탑승자들이 희생됐다.”
“⋯⋯.”
죽음의 그림자를 목격한 용여홍의 심장은 바르르 진동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바로 고개를 돌려 옆자리의 백새벽을 바라보았다.
“나⋯⋯.”
“나중에 얘기해. 우리는 반드시 살아남을 거니까!”
백새벽은 단칼에 그의 말을 끊었다.
이윽고 성건우는 진지한 얼굴로 옥부처를 쥔 오른손을 들어 올려 왼 가슴에 얹고는 묵직한 목소리로 외쳤다.
“전 인류를 위해!”
앞줄의 구세군 노전사들도 황 위원의 죽음 앞에 떨군 고개를 동시에 들었다. 물기 어린 눈을 반짝이던 그들 역시 일제히 오른손을 왼 가슴에 얹었다.
“전 인류를 위해!”
결연하고도 격앙된 목소리가 헬기를 뒤덮었다.
* * *
우베이 시외, 위에린 강 근처, 한 언덕 위.
청재킷에 청바지, 챙 넓은 펠트 모자를 쓴 여자의 시선이 전방의 태블릿 PC로 향했다. 그 와중에도 지나치리만큼 완벽한 좌우 대칭을 고수하고 있는 그녀는 바로 허란이었다.
바닥에 놓인 태블릿 PC 액정에서는 빛줄기가 하나둘 뿜어져 나오더니 끝내는 허공에서 거대한 인영으로 응집되었다.
보일 듯 말 듯 한 그 인영을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머리, 눈, 코, 입, 손, 몸통이 있다는 것만 어렵사리 판별할 수 있는데, 모습만 보면 십몇 배로 확대한 인간 같았다. 더 전체적으로는 천계에서 강림한 신령, 혹은 심연에서 기어 나온 악마처럼 보였다.
박사는 확실히 신세계로부터 회귀한 상태였다. 다만 회귀는 제8 연구원에 숨겨놓은 그 육체로 회귀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현재 존재하는 교통수단으로는 소식을 접한 지 몇 시간 만에 우베이로 달려오기는 불가능했다. 제트기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는 존재감이 너무 확실해져서, 구세군 영공에 진입하자마자 미사일 세례를 받게 될 확률이 극도로 높았다. 안전하지 못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박사가 택한 건 이번에도 허란이 가진 태블릿 PC를 통해 전자파 장악력을 발휘하면서 우베이에 있는 목표에 영향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다만 이미 철저하게 회귀한 그가 이런 방법에 의지해 가할 수 있는 위협은 전과 차원이 달랐다. 박사는 이 상태로도 일정 범위에 무심병을 초래할 수 있지만 강도는 그가 직접 이곳에 이르렀을 때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만약 구조팀과 황 위원이 본대와 우베이에 남아있었다면 박사도 그들을 어쩌진 못했을 터였다. 인간 의식이 한데 집중돼있는 데다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 여럿이 기둥 역할을 해줄 경우, 박사도 너무 먼 거리에서는 무심병을 퍼뜨리긴 힘들었다.
영향은 퍼스트 시티처럼 사람들의 정신을 쇠약하게 하고, 밤마다 악몽을 꾸게 하며 다음 날 두통과 구역감을 느끼게 하는 정도로만 그칠 뿐이었다.
물론 신경 쓰는 이가 없다면 이런 상황은 한 달 넘게 이어질 테고, 사람들 정신이 점점 나빠지다 보면 정말로 무심병이 생길 가능성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이곳은 구세군의 핵심 도시 중 하나인 우베이였다. 그 이상 현상에 신경을 쓰지 않을 리가 없었다.
또 한편으론 구조팀이 위험을 예감하기 전, 허란을 몰래 우베이에 잠입시키고 그녀의 대칭 강박증이 발작하기 전에 기회를 틈타 다른 수단으로 목표를 공격하게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구조팀의 경각심이 상당했기에, 박사는 어쩔 수 없이 타초경사의 방법으로 우회하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