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669
669화. 빙원
성건우는 다시 턱을 매만지며 물었다.
“팀장님 말은 구세군이 기강호를 비롯한 이들의 실종을 확인했지만, 아직 살아있을 가능성 때문에 무작정 사망 통지서를 보내진 못했을 거란 거죠?”
“음, 그렇다면 그 믿음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빙원은 환경이 극악이라 물자 보급이 쉽지 않아. 2년은커녕 겨울 한 번 버티기도 어려운데.”
성건우는 장목화의 생각에 따라 분석을 시작했다.
“목적지랑 관련 있을까요? 그 고고학팀의 목적지는 위험하고 기이하긴 해도 물자나 추위를 버틸 건물이 제법 있는 곳일 수도 있잖아요. 기강호는 연구자예요. 고고학팀에 참여해 빙원으로 파견됐죠. 그 사람들이 찾아내고 연구하려던 건 뭘까요?”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물었다.
“중요 실험실이 있는 구세계 폐허 도시, 불모지 13호 유적 같은 곳일까?”
“하지만 그런 곳에 간 사람의 생사도 확인 못 할 리는⋯⋯.”
순간 성건우가 말을 줄였다. 불모지 13호 유적 상황과 비슷하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폐허에도 오하명 같은 괴물이 적지 않을 테니 구세군으로서도 제한적인 탐색만 가능할 것이었다.
누군가 그 안에서 실종됐다면 그들이라도 전면적인 수색을 진행할 수는, 최종적인 상황을 확인할 순 없었다. 게다가 어쩌면 기강호가 포함된 그 고고학팀은 수시로 지원을 기다리고 있다는 전보를 보내고 있는지도 몰랐다. 물론 그게 누가 보낸 신호일지 확인하기는 어렵겠지만.
감정을 중시하는 성건우는 결국 난감한 한숨을 뱉었다.
“만약 기강호의 고고학팀이 정말로 그렇게 실종된 거라면 성영희의 말을 전하기도 쉽진 않겠네요.”
구조팀의 능력이 될지 안 될지는 차치하더라도, 그곳은 구세군의 감시와 관리를 받는 곳인 만큼 그들과 아무런 충돌도 빚지 않으면서 깊은 곳까지 파고들기는 힘들었다.
장목화도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지프를 보다가 성건우를 돌아보았다.
“맞아, 차근차근 나아가면서 상황을 파악하는 수밖에. 건우야,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오늘 밤에 522호 유람선 트라우마를 통과해봐. 그 후 타이 시티에 도착하기 전까지 공략집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심령의 복도 깊은 곳까지 탐색하는 게 좋겠어.”
성건우는 평소처럼 기괴한 반응 대신 오른손을 왼 가슴에 얹었다.
“네, 문제없어요. 전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이 순간 장목화는 그가 전과는 약간 달라진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그날 밤, 기원의 바다에 들어간 장목화는 다음 섬을 찾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미 이곳에서 적잖은 시간을 들인 상태였다.
그로부터 거의 1시간을 더 보낸 끝에, 마침내 새로운 섬을 찾았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이 섬은 핏빛 안개에 뒤덮여 있었다.
‘이건 또 무슨 트라우마지?’
장목화는 속도를 높여 그 섬에 이르렀다.
섬에 올라 한참을 나아가던 그때, 그녀는 어느 괴석 꼭대기에서 뛰어내린 한 인영을 보게 되었다.
쿵! 쿵! 쿵!
추락하는 동안 적잖은 돌기둥과 부딪힌 인영은 몸이 다 산산조각이 났고, 내장은 사방으로 튀었으며, 피는 페인트처럼 주위를 넓게 물들였다.
데구르르…….
괴석 꼭대기에서 뛰어내린 사람의 머리는 계속해서 굴러떨어지다가 장목화의 발 앞에 이르렀다.
고개 숙인 장목화는 고통에 잠식된 그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너무도 익숙한, 차마 모를 수 없는 얼굴……. 그녀 자신의 얼굴이었다.
장목화는 쿵쿵 뛰는 심장을 안고 섬의 다른 곳을 돌아보았다.
방금과 달리 각각의 기암괴석에는 인영들이 하나씩 늘어나 있었다.
누군가는 돌기둥 위의 툭 튀어나온 부분에 목을 맨 채 혀를 죽 내밀고 있었고, 누군가는 총에 맞아 거의 벌집이 돼 있었으며, 또 누군가는 둔기로 세게 맞은 듯 함몰된 머리로 흰 뇌수와 붉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인영들의 자세와 처지는 다 달랐지만 모두 장목화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만은 똑같았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인가?’
솔직히 그녀는 이미 죽음에 익숙해져 있었다. 강도의 습격을 받은 검은 쥐 마을의 참상도, 소란이 벌어진 이후 도처에 시체가 널려 있던 위드 시티도 지금 이곳보다는 훨씬 더 끔찍하고 심각했다.
그러나 이 섬에 자리한 이들은 전부 자신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두려움은 당연히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세상에 성건우 같은 별종이 있긴 하지만, 보통 사람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했다.
무의식중에 숨을 들이마신 장목화는 콧속을 가득 메우는 피비린내를 맡았다. 그래도 애써 불편함을 참고 침착한 태도를 유지했다. 이번엔 많은 시도를 하는 대신 섬을 구석구석까지 천천히 돌아보기로 했다.
이내 장목화는 때로는 총에 맞아 깨진 자신의 머리를, 때로는 잡초 위에 버려진 듯 흩어진 시체를 발견했다. 그 시체에는 목숨이 붙어있는 동안 끔찍한 고문을 당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너무나 사실적인 광경들 앞에, 이 기원의 바다를 나가서도 며칠 동안 이로 인한 악몽을 꾸게 될 것만 같았다.
끝내 장목화도 속마음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죽는 건 죽는 건데, 왜 이렇게 기이한 모습들로⋯⋯.”
동시에 그녀는 이 섬을 극복할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이러한 광경에 적응만 해서는 극복이 안 될 것이었다.
정말 그게 방법이라면 장목화는 매일 이곳을 한 번씩 돌아다니면 될 테고, 1, 2주만 지나면 다채로운 죽음을 맞은 자신들을 향해 농담을 건네고, 짙은 피비린내를 즐기며 간식을 먹을 수도 있었다.
‘두려움 섬 극복의 관건은 현실에 있다고 했어. 근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겠답시고 죽음을 무릅쓸 사람이 누가 있겠어? 그런 시도를 한 사람들 가운데 90퍼센트 이상은 실제로 죽고 말 텐데.
게다가 코앞에 닥친 죽음에서 겨우 살아남아도 오히려 그 경험에 놀라 겁이 많아지고 더 큰 트라우마를 얻게 되는 사람도 적지 않단 말이야.’
결국 정신력을 거의 다 소모해버린 장목화는 기원의 바다를 떠났다.
* * *
지프에서 눈을 번쩍 뜬 장목화는 가볍게 일어나 앉아 뒷좌석을 돌아봤다. 성건우에게 522호 유람선 트라우마는 잘 통과했는지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창밖으로 스미는 달빛 아래, 어느새 깨어난 성건우가 조각상으로 변한 듯 오른쪽 차창에 얼굴을 찰싹 붙이고 있는 광경이 비쳤다.
장목화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뭐해?”
그녀를 돌아본 성건우는 조용히 하라는 듯 입술 앞에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그리곤 다시 차창에 얼굴을 붙이고 밖을 쳐다보았다.
의혹을 안은 채 조수석으로 건너간 장목화는 성건우의 시선을 따라 바깥의 상황을 확인했다.
수면 모드에 진입한 듯 모닥불과 지프 사이에 책상다리로 앉은 게네바가 있고, 용여홍과 백새벽이 무기를 쥐고 모닥불과 지프 주위를 돌고 있었다.
“뭐가 문젠데?”
장목화의 끝나기 무섭게, 용여홍과 백새벽이 서로를 보며 짧은 순간 눈을 맞춘 뒤 활짝, 혹은 엷게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장목화는 저도 모르게 엄마 같은 웃음을 지었다.
이윽고 그녀가 성건우를 보며 조용하게 속삭였다.
“개 사료를 먹고 있었구나.” (* 커플에게 염장질 당한다는 표현)
구세계 콘텐츠에는 정말 다양한 표현이 나왔다.
성건우는 바로 창에 붙인 볼을 떼고 장목화를 돌아보았다.
“멍멍!”
“⋯⋯.”
장목화는 성건우와 수준을 맞출 수도, 여기서 그냥 포기할 수도 없었다. 자존심상 허락이 안 됐다. 결국 그녀는 화제를 바꾸는 차선책을 택했다.
“크흠, 522호 유람선 트라우마는 통과했어? 다른 수확은 없었고?”
성건우가 금세 진지해졌다.
“통과했어요, 혼란의 기운 한 덩어리를 또 얻었어요. 아마 팀장님이 가진 혼란한 오른손에 융합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럼 사용횟수도 늘겠죠.”
장목화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혼란의 기운을 더 얻었다니⋯⋯. 각각의 각성자가 진입하는 심령 세계와 트라우마가 서로 독립적이고, 912호에서의 탐색이 522호에의 상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건 나도 알아. 근데 신세계와 연루된 데다가 심령에 녹아들 수 있는 기운도 유일한 것이 아니라니⋯⋯.”
“그게 바로 공평이죠. 혼란한 오른손 좀 줘봐요.”
성건우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 왼손을 뻗었다.
곧 두 사람 사이엔 추위로 인해 떨림이 번졌다.
“여름에는…… 참, 유용하겠네요…….”
성건우는 덜덜 떨며 새로 얻은 혼란의 기운을 장갑에 전이시켰다. 둘이 완벽하게 융합하는 것을 보면 같은 뿌리에서 난 것이 확실해 보였다.
“꼭…… 여름을…… 여러 번…… 겪은 것처럼 말하네.”
장목화도 겨우 답한 뒤 혼란한 오른손을 급히 전술 배낭에 쑤셔 넣었다.
반고 바이오는 지하 빌딩인 만큼 계절의 구별이 또렷하지 않았다. 밤이 서늘한지, 추운지, 더 추운지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다시 성건우가 무슨 대꾸도 하기 전, 장목화는 자신이 세 번째로 발견한 섬의 상황을 전했다.
점차 성건우의 눈이 환하게 반짝거렸다.
“엄청 흥미로운데요?”
신기하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성건우는 당장이라도 다른 성건우들에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죽은 모습을 취하도록 할 생각으로 보였다.
장목화는 못 말린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너한테는 이런 섬이 없던 거겠지.”
성건우가 아쉽다는 표정을 드러내었다.
“우리 중에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애가 있는데.”
유약하고 겁 많은 성건우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장목화는 능숙하게 대화 주제를 본론으로 돌렸다.
“넌 그런 두려움을 이겨내려고 할 때 어떤 생각을 했어?”
점차 성건우는 고민에 잠겼다.
“누구한테든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죠. 극도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거나 정신질환이 있는 소수를 제외하면요.
우리는 모두 두려움을 두려워해-. 하늘에 500년의 세월을 빌리기를 바라지⋯⋯.”
“노래 부르지 말고!”
바로 장목화에게 저지당한 성건우는 10여 초 뒤에야 갈피를 잡았다.
“삶의 가치를 찾고, 죽음의 의미를 알아야죠. 그래야 더 솔직하게 그걸 직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장목화도 모종의 깨달음을 얻었다.
“황 위원이나 장 씨 어른 같은 분들처럼?”
성건우는 말없이 신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구세군이 복구한 도로 몇 곳과 그 도로를 따라 지어진 거점, 휴게소 등등 여러 가지 편의한 환경 덕에 구조팀은 사흘도 채 안 돼 빙원에 도착했다.
한여름을 맞은 이때, 빙원 중에서도 남쪽인 이곳에서 동토는 보이지 않았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길거나 짧은 잡초와 흑녹색 숲 정도에 불과했다.
구조팀은 물자를 보충한 뒤 빙원에 진입했다. 이후의 길은 점차 거칠어졌고 도중에 보이는 거점과 거점 사이의 간격은 점점 멀어졌다.
그로부터 2, 3일이 더 지나자 유적 사냥꾼팀과 마주치는 횟수도 대폭 줄어들었다. 대지는 황량했으며 동물은 많아졌다.
구조팀은 이토록 그렇게 정확하지 않은, 혹은 주위에 남은 것들이 없어 참고하기도 어려운 지도를 따라 타이 시티로 향했다.
이후 며칠이 더 흘렀을 무렵, 구조팀의 눈앞에 한 호수가 나타났다. 레드스톤 마켓 부근 분노의 호수보다 훨씬 커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또한 수질이 굉장히 맑은 호수는 구름 몇 점 없는 파란 하늘을 깨끗하게 담아냈다. 마치 선경처럼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진짜 아름답다.”
한참 고민해도 적합한 시구를 찾지 못한 용여홍이 짧게 평했다.
“날씨도 너무 좋고.”
백새벽이 동조했다.
“오늘은 좀 일찍 쉬자. 호수 근처에서 야영하자고.”
장목화는 긴 여정에서는 팀원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