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678
678화. 보이지 않는 게네바
조회는 소란한 분위기 속에 끝나고, 게네바는 장목화를 따라 3학년 5반이라고 적힌 교실로 들어갔다.
그는 구조팀 식구 중 제일 똑똑한 장목화라면 자신과 어느 정도의 교류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 문제 상황을 한 발 더 발전시켜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장목화가 교실 중간에서 약간 더 뒤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게네바는 즉각 살금살금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던 끝에 은흑색 금속 오른손을 뻗어 그녀의 등을 살짝 두드렸다.
아까 전 용여홍처럼 한 번만 두드리고 그만두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간격에 장단을 두고 연속적으로 두드리면서 일련의 모스 부호를 전달했다.
게네바의 모습을 보지도 못하고, 말도 듣지 못하는 장목화가 부디 이를 통해 현재의 곤경을 해독하고 연기 속에서 깨어나기를 바랐다.
등을 연속적으로 두드리는 느낌에 장목화는 앉은 자세를 똑바로 곧추세운 뒤 고개를 홱 돌려 뒷자리의 급우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뒷자리 남학생은 머리를 거의 책에 박듯 공부에 열중하고 있어서인지 그녀의 시선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장목화의 미간이 팩 구겨졌다. 등을 두드리는 듯한 느낌은 계속 났지만 주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그대로 감지를 해보던 장목화는 다시 몸을 돌리더니 연습장을 꺼내 뭔가를 적어 내려갔다.
「난 언제나 내가 특별하다고,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느껴왔다. 그래서 지금 그 기회가 온 것일까? 운명이 내게 준 선물은 뭘까?」
게네바의 눈에서 번득이던 붉은빛은 1초간 멈췄다가 다시 번득였다.
그가 일련의 모스 부호를 다 보낼 때까지 장목화는 그쪽으로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모스 부호라는 것은 아예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고민하던 게네바는 장목화와의 소통은 포기하고 성건우를 찾기로 했다. 그의 인격은 이미 열 개로 분열돼 있었다. 타이 시티 제1 고등학교처럼 이 이상야릇한 곳에서도 별종으로 취급받는 사람이라면 이를 통해 몇 가지 문제를 알아차릴지도 몰랐다.
* * *
한 차례 탐색 끝에 게네바는 이 학습동 옥상에서 성건우를 발견했다.
파란색, 하얀색이 어우러진 교복 차림의 성건우는 책가방을 교차해서 메고 가장자리 여장(女牆)에 건들건들하게 서서 옆의 축구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또 그 ‘난 학교를 폭파할 거예요. 매일매일 지각하지 않아요.’란 노래를 흥얼거리는 중이기도 했다.
성건우 등 뒤로 다가간 게네바가 음량을 조절해 외쳤다.
“야!”
아무 대답이 없자 이번에 게네바는 그의 등을 두드리려 했다.
그 순간, 흥분한 표정의 성건우가 맹견처럼 몸을 홱 틀었다.
하지만 시야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게네바는 반 바퀴를 돌아 다시 그의 등 복판을 두드렸다.
좌우를 한참 두리번거리던 성건우는 기쁨과 충격의 탄성을 내질렀다.
“오! 난 항상 내가 이 고등학교에 다니는 사람 같지 않다고, 공부에 몰두하는 학생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었지. 그보다 더 중요한 일과 더 중요한 임무가 날 기다리고 있다고 믿었어.”
‘전 인류 구원?’
게네바도 이젠 성건우의 생각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했다. 동시에 안심이 되기도 했다.
‘역시 야의 자아 인지는 정상인보다 10배는 더 강해. 타이 시티 제1 고등학교 학생을 연기하는 와중에도 자아와 신분의 부조화를 인지해낸 거야.’
막 미약한 전류가 튀려던 그때, 성건우는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난 공부를 안 하는 거야. 선생님, 저는 일을 할 겁니다! 운명이 나를 소환하고 있는 것인가? 더 강렬하게 날 불러달라고!”
성건우는 계속 그 웃는 얼굴로 아무도 없는 옥상을 향해 주절거렸다.
지능 로봇 게네바는 이에 낙담하지 않았다. 그는 방금 장목화에게 보냈던 모스 부호를 성건우는 과연 알아들을 수 있을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탁탁탁- 탁탁탁-
게네바는 각각 장단이 다른 간격을 둬가며 성건우의 등을 두드렸다.
이내 성건우의 표정이 빠르게 진지해졌다. 양손을 깍지 껴 쥔 그는 두드림 빈도를 최대한 환원하려는 것처럼 오른손 검지로 왼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전보의 특징을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게네바는 속도를 느릿하게 조절했다. 기대는 절로 높아져 갔다.
곧이어 게네바가 두드림을 마치자 성건우는 불쑥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 너무 복잡하네. 기억할 수가 없어.”
“…….”
이 순간 게네바는 본인이 만약 탄소 기반인이었다면 성건우 때문에 혈압이 올라 쓰러졌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장목화가 성건우를 마주할 때마다 왼손을 들썩거리는 이유도 이제는 좀 이해가 갔다.
그러나 빈틈없고 엄밀한 지능인 게네바는 한번 또 한 번 계속 모스 부호를 반복해 보냈다.
그때, 성건우가 책가방 안에서 종이와 펜을 꺼냈다. 아무리 좋은 기억력도 형편없는 펜보다는 못한 법이었다.
게네바는 성건우가 자신이 보내는 부호를 점과 선으로 정확히 기록하는 걸 보고 메인 모듈로 이후의 교류에 쓰일지 모를 모듈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느릿하게 춤을 추듯 움직이던 성건우의 펜이 멈췄다.
그리고 종이엔 선으로 이뤄진 작은 인간이 담겨있었다. 성건우는 종이 속 그 체계 없는 패턴을 바라보며 탄식을 뱉었다.
“절세의 신공인가? 하늘이 전수한, 아주 비밀스러운 절세의 신공? 이 참뜻을 깨우치고 단련해 성과를 얻어내기만 하면 대문을 통과하고 벽을 뛰어넘어 공부라는 이 지옥에서 도망칠 수 있는 걸까?”
게네바의 메인 모듈 안에서 경고가 울리기 시작했다.
– 포기하라. 소용없다. 포기하라. 소용없다⋯⋯.
오른손을 거둔 게네바는 성건우 옆으로 다가가더니 그가 조금 전에 그랬듯 여장에 기대서 먼 곳을 내다보았다.
여러 곳을 훑던 시선은 입구의 전동 울타리도 슥, 스쳐 지났다.
그런데 그 순간, 게네바가 동료들을 흉내 내어 건립한 인간 데이터베이스의 알고리즘이 활성화되었다.
동시에 성건우가 방금 한 말 중 ‘대문을 통과하고 벽을 뛰어넘어’라는 부분이 번뜩 떠올랐다.
돌연 게네바의 메인 모듈 안에선 계몽적인 의문이 도출되었다.
‘만약 내가 지금 타이 시티 제1 고등학교를 떠나 밖에서 이 불가 성지를 바라본다면 어떤 수확을 얻을 수 있을까?’
한 차례 분석을 거친 게네바는 손으로 벽을 짚고, 6층밖에 안 되는 이 학습동 옥상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건물 밖으로 불룩 튀어나온 구조물을 한번 디딘 게네바는 충격 완화 장치도 사용하지 않고 가뿐하게 시멘트 광장으로 돌아왔다.
그는 곧 빠르진 않지만 느리지도 않게 학교 정문을 향해 나아갔다.
알루미늄 색 전동 울타리 근처에 이른 게네바는 몸을 훌쩍 날렸다.
* * *
쿵! 쿵! 쿵!
울타리를 그대로 뛰어넘어 미친 듯 내달리던 게네바는 타이 시티 제1 고등학교에서 5~6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멈췄다.
그 자리에서 돌아서자, 눈앞에 보이는 고등학교는 여전히 황량하고 황폐했다. 등불이나 학생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높은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볕이 전동 울타리 안으로 멀지 않은 곳에 세워진 지프를 비췄다.
구조팀의 녹회색 지프였다.
시선을 이리저리 움직이던 게네바는 전에 갔던 학습동 안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인영들을 발견했다. 아무래도 구조팀원들로 보였다.
“밖에서 볼 때는 정상이군.”
게네바는 이 정보를 기록한 뒤 곧바로 대책을 세웠다.
‘만약 큰 흰둥이랑, 작은 흰둥이, 작은 빨강이, 야를 강제로 학교 밖으로 끌어낸다면 원상태로 회복시킬 수 있을까?’
시도해볼 만한 방법이었다.
혹시나 존재할지 모르는 위험과 뜻밖의 상황을 피하려면 게네바는 일단 시도는 한번 해보기로 했다. 그 대상은 성건우였다.
* * *
다시 타이 시티 제1 고등학교로 접근한 게네바가 전동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어 안으로 진입한 순간, 먹구름이 재차 태양을 가렸다.
같은 시각, 학교 안의 등불이 밝아지며 인영들을 하나하나 비추었다.
게네바는 다시 구세계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실 지능 로봇에게 느낌을 받았다는 표현이 그다지 적합하진 않았다. 게네바는 이례적인 정보가 그 본질이리라 의심했다.
곧이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정면에 자리한 학습동 옥상으로 향한 게네바는 바로 성건우를 찾아냈다.
이제는 어떻게 정보를 전달해 성건우를 학교에서 도망치게 만들어야 할지 진지한 분석이 필요할 때였다.
복잡한 모듈 연산을 거친 게네바는 결국 강철 주먹을 뻗더니 성건우의 등 복판을 움켜쥐며 그대로 그를 집어 들었다.
“우와!”
성건우는 놀라기는커녕 기뻐했다.
게네바는 전에 그랬던 대로 옥상에서 훌쩍 뛰어내려 성건우를 타이 시티 제1 고등학교 밖으로 끌고 나가려 시도했다.
허공 속 성건우는 양팔을 옆으로 펼쳐 활공하는 새 같은 자세를 취했다. 알 수 없는 누군가에 의해 옥상에서 떨어져 추락하고 있다는 것쯤은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담이 조금 큰 게 아닌 듯했다.
혹여나 성건우가 비명이라도 질러 다른 이들의 시선을 끌까 입을 막으려던 게네바도 멈칫했다. 그의 메인 모듈 속엔 짧은 생각이 스쳐 지났다.
‘연기 중이라도 정신 질환자라는 본질은 가려지지 않는군.’
실제 같기도, 허상 같기도 한 이런 상황 속, 게네바는 성건우의 활공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기를, 또 뜻밖의 위험한 상황이 초래되지 않길 바랐다.
다행히 수업 때를 노려 구석진 곳에서 뛰어내린 게네바의 세심함과 성건우의 협조 덕분에 두 사람의 하행은 누구의 관심도 끌지 않았다.
안정적으로 차지한 게네바는 계속해서 성건우의 등을 떠밀며 수업동과 사무동의 외벽에 딱 붙어서 조용히, 살금살금 정문으로 향했다.
게네바는 때로는 몸을 꼿꼿하게 세우고 벽에 딱 붙어 길을 지나치는 이들의 시선을 피하기도 하고, 때로는 화단 뒤에 웅크려 숨기도 했다.
당연히 이 고등학교의 교사나 학생들, 직원들이 그를 볼 순 없었지만 성건우의 행동은 그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현재 성건우는 마치 초능력을 얻기라도 한 듯 자신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들어 올려져 허공을 가르는 이 상황에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저 양팔을 쫙 펼치고 두 발을 구르며 허공에서 자유영 하듯 허우적댈 뿐이었다.
그렇게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릿하게 이동하며 전동 울타리 근처에 이르렀을 무렵, 게네바는 팔에 힘을 줘 성건우를 울타리 밖으로 집어 던졌다.
성건우는 당황하지 않고 자세를 조정하면서 몸을 둥그렇게 말아 세 바퀴 반을 회전했다. 품위 있고 아름다운 자세였다.
철퍼덕!
그러나 마지막 반 바퀴를 앞두고, 성건우는 얼굴로 착지해버렸다.
지금의 성건우는 실전 경험이 풍부한 반고 바이오 직원이 아닌 밥 먹고 공부만 하는 고등학생이었다. 허공에서 몸을 굴리고 안정적으로 착지하는 이 어려운 동작을 수행하기엔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다음 순간, 수위가 이쪽을 돌아보기 전에 대문을 훌쩍 뛰어넘은 게네바는 재차 성건우를 잡아채고는 옆쪽으로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