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680
680화. 추측 (1)
작업을 마친 게네바는 조금 전 행동을 복기해보다가 뭔가가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맞지 않는 느낌’이라는 표현은 구세계 콘텐츠를 섭렵하면서 알게 된 것이었다. 구조팀 안에서는 흔히 사용되는 단어였다.
이내 장목화는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더 이상의 기묘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약간 실망감을 안은 채 보온컵 뚜껑을 열고 물을 한 모금 꿀꺽 마셨다.
게네바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15분이 다 지나도록 장목화는 화장실에 가고 싶어 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요의를 애써 참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게네바는 계획대로 다시 다른 방안에 돌입했다.
그는 성건우가 빌려준 물 부대를 꺼내, 자신이 가져온 법랑 컵 안에 상당량 물을 따랐다. 그런 뒤 전에 으깬 그 약의 또 다른 5분의 1을 컵에 탔다.
준비를 마친 게네바는 재차 대기 모드에 돌입했다.
그로부터 5분이 지났을 무렵, 방금 막 자리에서 일어나 선생님의 질문에 답했던 장목화는 습관적으로 보온컵을 들고 뚜껑을 열었다. 물을 한 모금 더 마실 생각이었다.
그때만을 기다렸던 게네바는 보온컵 가장자리가 장목화 입술에 닿기 직전, 기회를 놓칠세라 손에 쥐고 있던 컵 안의 액체 약 10밀리리터를 그녀의 입술 안으로 흘려 넣었다.
장목화는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따뜻한 물을 벌컥 들이켰다.
그렇게 6, 7분이 더 흘렀을 무렵, 장목화는 드디어 요의를 느꼈다. 수업이 끝나기까지 아직 10여 분이 더 남았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참고 또 참던 장목화는 결국 손을 들고 선생님께 화장실에 다녀와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전 학년을 통틀어 최고 모범생으로 손꼽히는 학생이었다.
선생님은 온화하게 웃으며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 * *
게네바는 장목화를 뒤따라 교실을 나섰다.
아직 수업 시간이라 복도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뒤이어 여자 화장실 앞에 이른 게네바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장목화를 따라 화장실에 안까지 들어갔다.
지금 그는 아까 전 성건우와 나눈 대화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겐, 너는 지능인이잖아. 왜 그런 거에 신경을 써?’
‘안 돼, 내 성별은 남성으로 설정돼 있어.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는 건 비열하고 저급한, 신사답지 못한 행동이야.’
‘그렇구나⋯⋯. 겐, 혹시 너 가상 머신 방면 프로그램도 장착돼 있어?’
‘그건 기본이지.’
‘그럼 임시로 여성 인격을 하나 만들어낸 후에 게네데일이라고 부르면 문제는 해결되는 거 아냐?’
‘좀 이상한 느낌인데. 꼭 나 스스로를 속이는 것 같아.’
‘괜찮아, 괜찮아. 여자 화장실에는 칸마다 칸막이도 설치돼 있잖아.’
동료를 구하고자 결국 게네바는 여자 화장실까지 들어가기로 했다.
다행히 화장실엔 장목화밖에 없었다. 그 사실을 확인한 뒤 게네바는 세면대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칸에서 나온 장목화는 수도꼭지를 틀고 허리를 굽혀 손을 씻었다.
그 순간, 게네바의 메인 모듈에는 이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성건우는 굉장히 의욕적인 모습으로 이렇게 말했었다.
‘기회가 생기면 팀장님한테 허황된 꿈 펀치를 한번 날려봐. 힘 조절에 주의해야 해. 팀장님은 무지 강한 사람이야. 일반적으로 신체가 약한 여자를 생각하면 안 돼. 너무 약한 힘으론 절대 기절하지 않아. 그렇다고 또 너무 세면 안 돼. 팀장님은 여자고, 사람이고. 넌 로봇이야. 알지?
너도 평소에 우리 상태 정보를 수집해 모듈을 만들어뒀을 거 아냐? 가장 적합한 힘을 계산하고 최적의 위치를 선택해야 해. 난 너 믿는다, 겐!’
게네바에게 계산이란 0.01초도 안 되어 마칠 수 있는 작업이었다.
계산을 끝낸 그는 사발만 한 강철 주먹을 휘둘렀다. 물론 적정한 수준으로 힘 조절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퍽!
장목화는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제일 먼저 그녀의 상태를 살피고 큰 문제는 없음을 확인한 게네바는 그대로 장목화를 등에 업고 여자 화장실에서 나와 복도를 따라 기었다.
교실 창문 안에서 수시로 향하는 시선들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 * *
슥슥슥-
게네바는 마치 도마뱀처럼 빠르게 학습동 측면으로 장목화를 이동시켰다. 그 아래쪽은 평소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는 구석이었다.
지면을 향해 가볍게 뛰어내린 게네바는 전에 성건우를 데리고 나갔을 때처럼 학습동과 사무동의 외벽에 바짝 붙어서 몰래 밖으로 향했다.
바로 그때였다. 전방에 자리한 창문에서 돌연 한 인영이 훌쩍 튀어나왔다. 파란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었다.
아무래도 수업을 땡땡이치고 나오는 학생인 것 같았다.
학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게네바를 발견해서는 아니었다. 눈앞에 굉장히 비뚤어진 자세로 서 있는 장목화를 보고 놀란 것이었다.
‘젠장! 발각당했다!’
게네바는 초 단위로 수많은 데이터를 계산하는 방식을 통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이고 그것에 어떠한 대처해야 할지를 예측했다.
하지만 이렇게 기이한 불가 성지에서 무엇도 자신할 수 없었다.
그 가운데, 게네바는 그 학생 눈에 비친 광경을 확인했다. 상대의 눈동자에는 고개를 축 늘어뜨린 채 기이한 자세로 서 있는 장목화만 담겨있었다.
이에 게네바는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한 가지 방안을 마련했다.
그는 장목화의 손목을 움켜쥐고 한 발 앞으로 나서서 동료의 주먹으로 남학생의 귀 아래를 가격했다.
마치 갑자기 폭주하면서 앞으로 나선 장목화가 상대를 공격한 것 같은 상황이었다.
퍽!
남학생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경계심을 곤두세우며 주위 광경을 살핀 게네바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이렇게 뜻밖의 상황을 해결한 그는 전의 노선을 따라 장목화를 데리고 전동 울타리 옆에 숨어들었다. 그러곤 성동격서의 방식을 이용해 몸을 훌쩍 날려 점프 몇 차례로 가볍게 학교 정문 밖으로 사라졌다.
* * *
게네바는 빠르게 성건우와 합류한 뒤 장목화부터 깨웠다. 그녀가 자아 인지를 찾을 수 있게 돕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내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선 장목화는 학교를 잠시 바라보았다.
“전에 방문했던 다른 불가 성지들보다 더 기이하고 위험한 곳이야.”
그녀는 성건우와 게네바를 통해 자신을 비롯한 팀원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이미 다 파악한 상태였다.
두 동료가 뭐라 호응하기도 전, 생각에 잠긴 장목화가 말을 이었다.
“어떤 말 하나가 생각나네.”
“군자가 원수를 갚는 데에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다?”
성건우가 답을 맞혀보려고 시도했다.
장목화는 그를 한번 흘겨본 뒤, 진지하게 표정을 굳혔다.
“장생은 새벽녘 꿈에서 나비로 변해 헤매었다.”
게네바는 곧장 그 말을 분석했다.
“네 말은, 이 불가 성지의 본질이 장생의 꿈이라는 거야?”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우리가 장생의 꿈에 난입했던 거라고 생각해. 심령의 복도 안에서 장생을 대표하는 방의 문을 연 셈인 거야.”
장목화의 추측에 게네바는 평소처럼 붉은 눈빛을 번득였다.
“불가에서는 세자재여래를 이야기할 때 이 세상은 신의 꿈이라고 말하고, 도가와 관련된 여러 서적에서는 장생의 호접지몽에 대해 이야기해. 그러니 장생과 꿈을 하나로 연관 지으면 비교적 합리적인 추론이라고 생각되는데.”
이는 누군가를 꿈꾸게 하는 여명 영역의 능력과는 달랐다. 자신의 꿈을 실체화하여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식이었다.
장생이 불가의 세자재여래고, 이곳이 불가 성지 중 한 곳이라는 사실을 결합하면 구조팀이 타이 시티 제1 고등학교에 진입한 이후 겪은 일을 장생의 꿈에 난입한 것으로 본다는 추측은 꽤 그럴듯했다.
성건우의 얼굴에 점차 흥분한 기색이 떠올랐다.
“장생의 꿈에 나름의 규칙이 있는 거예요. 그 규칙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은 강제로 개조되고 상응하는 사유를 이식 당하는 거죠. 그렇게 타이 시티 제1 고등학교에서 발생하는 구세계 일상 속에 부합하는 신분을 갖고 난 뒤, 꿈이라는 극장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계속 진행해 나가요.
겐과 같은 규소 기반인은 꿈 규칙의 허점에 자리해 있다고 볼 수 있죠. 삼계(三界) 밖으로 벗어나 오행(五行) 중에 있지 않은 것처럼요.”
‘현학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일리는 있는 것 같네.’
고개를 살짝 끄덕이던 장목화가 게네바에게 말했다.
“혹시 모르니 겐 네가 최대한 빨리 작은 흰둥이와 작은 빨강이도 데리고 나오는 게 좋을 것⋯⋯.”
말을 잇던 그녀의 표정이 돌연 이상해졌다.
솔직한 겐은 진지하게 제안했다.
“볼일 보고 싶으면 얼른 가.”
“…….”
장목화는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날 데리고 나오려고 대체 무슨 수를 쓴 거야?”
농담하기를 좋아하는 성건우가 게네바보다 앞서 답했다.
“말하자면 길어요, 아무튼 물 많이 마셔요.”
눈동자를 살짝 굴리던 장목화는 곧 자신이 무슨 일을 당하게 된 것인지 어렴풋이 파악했다. 그녀는 몰래 이를 북북 갈며 말했다.
“겐, 넌 얼른 학교에 들어가. 낭비할 시간 없어. 너희가 세운 계획대로 하면 될 것 같아. 아 참, 이뇨제 양은 좀 줄여. 두 사람은 나보다 약하잖아.”
중요한 일을 논의할 때의 그녀는 당당하고 거침이 없었다.
재차 타이 시티 제1 고등학교에 들어간 게네바가 정면의 학습동으로 돌진하자 성건우는 돌연 펄쩍 뛰며 뒤로 수십 센티미터 정도 물러났다.
장목화가 그를 노려보았다.
“내가 그렇게 옹졸한 사람으로 보여? 급한데 당연히 무슨 수든 써야지. 주변이나 잘 지켜보고 있어. 난 급한 일부터 해결해야겠으니까.”
이후 그녀는 부근의 황폐한 건물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잠시만요!”
성건우가 큰소리로 장목화를 불러세웠다.
“뭔데?”
돌아선 장목화는 중요한 일이 아니면 죽여버리겠다는 눈을 하고 있었다.
“팀의 전술 가이드에 따라야죠. 폐허 도시 안에서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단독 행동은 불가해요.”
장목화는 느릿하게 한숨을 토해내었다.
“내가 너무 급했네. 좋아, 근처에서 적합한 곳을 찾을 테니 넌 경계해.”
이후의 일은 상당히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게네바는 미리 세운 방안대로 백새벽, 용여홍을 차례대로 밖으로 끌어내 일깨우는 작업까지 마쳤다.
“장생의 꿈에 들어갔던 거였군요.”
백새벽은 장목화의 추측을 한 치의 의심 없이 굳게 믿었다. 그녀 역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한편 백새벽 곁의 용여홍은 침묵에 빠진 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를 보고, 성건우가 그의 눈앞으로 손을 이리저리 흔들어 보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네가 아직도 그 학생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순간 장목화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이식된 사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일반인은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혼란에 빠지게 되고, 그 혼란이 장기적으로 이어지면 정신적인 방면의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용여홍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백새벽을 몰래 힐끔 바라보았다.
“아니, 그냥, 만약 고등학생 시절에 새벽이를 알았다면, 같이 공부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아서⋯⋯.”
장목화는 입이 쩍 벌어졌다.
‘……내가 최근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벌을 받는 거지?’
“멍멍멍.”
성건우도 무표정한 얼굴로 개 짖는 소리를 냈다.
그때, 솔직한 게네바가 용여홍의 허점을 지적했다.
“꼭 좋았으리라고만 볼 순 없어. 적당한 타이밍에 적당한 사람을 만나야 그 나중 일도 진행될 수 있는 법이니까. 지나치게 이른 만남이나 지나치게 늦은 만남은 오히려 비극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지.”
“켁!”
용여홍은 저도 모르게 헛기침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