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705
705화. 목서청
함께 웃고 떠들며 B구역에 진입한 세 사람은 49호에 이르렀다.
이 집은 문도 꽉 닫혀 있고, 창문도 커튼으로 꽁꽁 가려져 있었다.
그에 반해 주위의 집들은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고, 사람들은 거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똑똑똑-
주자영이 49호 문을 두드렸다.
“얘! 집에 있니?”
10여 초 정도 지나자 문이 입을 벌렸다.
끼익-
어둑한 실내에는 등이 하나만 켜져 있었다. 그다지 넓지 않은 공간은 성건우가 사는 집보다 약간 클 뿐이라 세 가족이 겨우 살 수 있을 법했다.
집에는 한 사람만 있었다. 낡은 검은색 옷을 입은 30대 여자였다.
머리카락이 덥수룩하고 피부는 약간 창백했지만, 그 외의 다른 부분은 괜찮은 편이었다. 유전자 개량의 효과를 수준 이상으로 본 듯했다.
“에너지를 아낄 줄 모르네! 왜 복도 불을 쓰지 않고 이러고 있는 겁니까?”
주자영이 뭐라 말하기도 전, 성건우가 아까워 죽겠다는 듯 이야기했다.
여자는 흠칫 놀란 눈치였다.
“부적을 쓰려면 이런 환경이어야 해.”
“아아-.”
성건우는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듯 곧장 한발 뒤로 물러났다.
주자영은 그를 힐긋 노려본 뒤 애써 웃으며 말했다.
“이쪽은 우리 큰손자 동료. 다산 부적을 얻었으면 한다네. 어⋯⋯ 너희 남편이랑 아이는?”
“아이는 할아버지 댁에 갔어요. 저는 급하게 만들어야 할 부적이 몇 장 있어서 가지 않았고요.”
목씨 성을 가진 여자가 설명했다.
뒤이어 그녀가 성건우에게 물었다.
“너도 급하니? 급하다면 때맞춰 만들어주기는 힘들 것 같은데.”
‘공헌 점수를 더 달라는 얘기군.’
구세계 콘텐츠를 섭렵한 용여홍은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이해했다.
성건우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안 급합니다. 아주머니께서 여유 있을 때 만들어주셔도 됩니다.”
“아주머니⋯⋯.”
여자는 별로 좋지 않은 표정으로 그 호칭을 되뇌었다.
‘야! 이런 상황에는 공감 능력을 발휘해야지!’
용여홍은 머리를 긁적이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하지만 그런 그도 여태 성건우의 감정 지수를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자영이 웃음을 터뜨리며 상대를 소개했다.
“이쪽은 목서청, 너보다 겨우 몇 살 많단다.”
성건우는 입을 벌리고 고개를 끄덕이다 목서청을 보며 웃었다.
“아아, 봐봐. 우린 모두 회사의 유전자 개량 기술이 무르익은 이후 태어난 사람들이야. 그쪽은 나보다 겨우 몇 살이 많을 뿐이고. 그러니까⋯⋯.”
목서청도 그를 따라 생긋 웃었다.
“그냥 목 누나라고 불러, 난 늘 동생이 없었던 게 아쉬웠거든.”
용여홍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제야 조금 전 성건우의 눈치 없는 행동이 아무 티도 내지 않고 추리 광대나 사유 유도 능력을 발휘하기 위한 포석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음흉한 놈.’
용여홍은 조용히 성건우를 아래위로 훑어내렸다.
성건우와 누나 동생 사이가 된 목서청은 전보다 확연히 적극적이었다.
“그럼 좀 기다려봐. 지금 바로 만들어줄게.”
옆에 있던 주자영이 안심한 듯 중얼거렸다.
“내가 말했잖니, 서청이는 참 좋은 사람이라니까.”
이 틈을 타 용여홍이 입을 뗐다.
“할머니, 일이 해결됐으니 더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저희는 여기서 기다릴 테니 할머니는 이제 활동 센터로 돌아가서 마저 춤추세요.”
그는 앞으로 이어질 대화에 할머니가 놀라 기겁을 하거나 위험에 휘말리게 될까 걱정스러웠다.
주자영 역시 활동 센터에 있는 친구들과 더 놀고 싶었던지 이를 사양치 않았다. 용여홍에게 몇 마디 당부를 한 뒤 곧장 돌아서 자리를 떴다.
성건우도 때맞춰 목서청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목 누나, 부적을 그리는 기술은 조상 대대로 전해지는 거야?”
목서청이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빗으며 말했다.
“맞아, 증조부님이 도사셨거든. 그 명맥이 이렇게 이어 내려온 거지.”
성건우는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질문을 이어갔다.
“이 부적들, 정말 효과가 있어?”
잠시 망설이던 목서청이 어물거렸다.
“믿으면 효과가 있지.”
“정말?”
성건우가 추궁하기 시작했다.
목서청은 동생을 속일 순 없다는 듯 한참을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전에는 효과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아.”
“왜?”
놀란 용여홍이 끼어들었다.
목서청은 부끄러운 듯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아버지가 부적을 그리는 법을 가르쳐줬을 때 난 별 흥미가 없어서 그다지 열심히 배우지 않았거든. 이걸로 공헌 점수를 적잖게 벌겠다는 걸 깨달았을 무렵, 제대로 기억하는 도안이 하나도 없었지. 그 흐릿한 기억에, 내 멋대로 다시 디자인한 걸 최대한 신비로워 보이는 절차에 따라 그렸을 뿐이야.”
멍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던 용여홍의 입꼬리가 살짝 경련했다.
‘그냥 낙서란 말이잖아⋯⋯.’
성건우는 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왜 다시 아버지한테 배우지 않고 멋대로 디자인한 건데?”
‘맞아!’
용여홍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목서청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버지는 5년 전 세상을 떠나셨거든.”
“아, 유감이야.”
성건우는 진지하게 안타까움을 표한 뒤, 재차 질문에 나섰다.
“5년 전이라면 아버지가 그렇게 연로하신 것도 아니었을 텐데, 왜 돌아가신 거야?”
목서청의 나이로 볼 때 5년 전 그녀의 아버지는 기껏해야 50대였을 것이었다. 그리고 현재 반고 바이오에서는 그 조건 덕분에 6, 70대까지 살아있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용여홍의 조부모님이 바로 그 예였다.
목서청의 얼굴에는 슬픈 표정이 떠올랐다.
“그게 운명이라는 거겠지. 갑작스러운 심근경색에 손쓸 틈도 없었어.”
‘심근경색?’
용여홍의 눈이 커다래졌다.
* * *
647층, 14호.
일부러 남아 초과 근무 중이던 장목화가 허리를 세우고 문을 쳐다봤다.
마찬가지로 사무실에 남아 소식을 기다리던 백새벽 역시 기척을 느끼고 앉은 자세를 바꿨다.
잠시 후, 발소리가 들리고 성건우, 용여홍이 사무실 문을 열었다.
장목화는 먼저 복도를 살피며 지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확인했다.
“어때?”
성건우는 양팔을 살짝 벌리며 웃었다.
“좋은 소식이 있고, 나쁜 소식이 있는데 어느 쪽 먼저 들을래요?”
‘좋은 소식이 있다고?’
용여홍은 그 말에 의아했다. 아버지가 5년 전 심근경색으로 죽었다는 목서청의 말에 성건우는 동질감을 느낀 것처럼 몇 마디 위로를 건넨 뒤 바로 화제를 전환하며 더는 그와 관련된 어떠한 얘기도 하지 않았다.
이후 다산 부적이 완성되자 그들은 곧장 활동 센터에 있는 전자 기기를 찾아 공헌 점수를 넘기면서 거래를 완료했다.
전 과정 모두 뜻밖의 사고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대체 좋은 소식이랄 게 뭘까?
“좋은 소식부터 들을게.”
백새벽이 말했다. 성건우를 몇 초간 응시하다 심각한 문제는 아니란 걸 파악한 까닭이었다.
장목화도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동조했다.
곧이어 성건우가 계속 웃는 얼굴로 이야기했다.
“좋은 소식은 작은 빨강이의 할머님, 할아버님, 어머님, 아버님, 동생들, 이모, 고모, 삼촌 모두 수상한 교파랑 아무 상관도 없다는 거예요. 그 부적을 만든 목서청한테도 아무 문제 없었고요.”
‘그래! 그건 분명히 좋은 소식이지!’
그제야 용여홍도 목서청의 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죽었다는 이야기에 충격받은 마음이 좀 가셨다.
분명히 기쁜 일이었다. 용여홍은 결국 맨 처음 확인하려던 걸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가족은 문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사실 알고 보니 문제라는 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목표는 달성된 셈이었다.
“그래, 잘됐네.”
장목화는 용여홍을 향해 축하한다는 눈빛을 보냈다.
백새벽 역시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그럼 나쁜 소식은?”
장목화가 볼 때는 이 이야기에 나쁜 소식이 이어질 것 같진 않았다.
그때, 성건우가 표정을 엄숙하게 굳혔다.
“목서청의 아버지, 그러니까 목서청에게 부적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이 5년 전 심근경색으로 죽었다네요.”
순간 장목화의 표정도 진지해졌다.
“심근경색?”
심장 방면의 문제는 늘 달지기 사명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달지기 사명을 숭배하는 조직 중에는 생명 제례 교단이 있었다.
생명 제례 교단은 일찍이 반고 바이오 내부에서 심장 마비 사건을 수차례 일으키며 여러 사람을 죽인 조직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무심병의 전파를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는 방법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선지 무심병에 대해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장목화는 그 교단에 신세계 급 강자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백새벽이 입술을 오므렸다.
“단순한 사고일 수도 있잖아?”
심근경색은 매해 발생하는 일이었다. 심장 마비와는 분명 다르기도 했다.
“더 심층적인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지.”
용여홍은 감히 단언할 수 없었다. 목서청은 그의 조부모님과 같은 층에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내 성건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목서청의 아버지는 진짜 다산 부적을 그릴 줄 알고 있었을 거야.”
“진짜 다산 부적?”
장목화가 의문을 표했다.
성건우는 목서청이 부적을 그리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고, 지금은 그저 멋대로 그린 부적을 팔고 있을 뿐이란 사실을 전해주었다. 그 후에는 안타깝다는 듯 이런 말을 덧붙였다.
“이 얘기의 교훈은 젊을 때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늙어서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는 거죠.”
장목화는 웃고 싶었지만 웃으면 안 될 이야기란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어쩐지, 그 도안을 해체해 놓고 보니 너무 간단하고 직관적이더라고.”
알고 보니 그 부적은 기억을 바탕으로 지어낸 도안이었다. 목서청의 지식수준과 상상력에 국한되어 있던 것이다.
만약 그 일을 성건우에게 넘겼다면, 구세계 콘텐츠를 섭렵한 데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생각으로 창의적이고도 더러운 부적을 그려냈을지도 몰랐다.
그러다 곧 달지기 상징 모음집을 떠올린 장목화는 방금 한 생각에 스스로 약간 동요되었다.
“진짜 부적이 아니라니 안타깝네요.”
성건우가 방금 새로 산 다산 부적을 들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진짜 부적이면 효과가 있을까?”
장목화가 웃으며 물었다. 그녀는 지난 몇 년간 구세계 민속과 관련한 여러 물건을 찾은 바 있었지만 뭔가 신기한 데가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비교하자면 지금 시대에 존재하는 달지기 관련 물건이 훨씬 더 특별했다.
이내 소파 앞으로 간 성건우는 그 위에 몸을 내던지듯 앉았다.
“누가 알겠어요? 같은 업종 종사자의 견제로 벌어진 일인지도 모르죠. 다산 부적은 실제로 효과가 있었고, 그로 인해 목서청의 아버지는 생명 제례 교단에 의해 처리된 거죠.”
용여홍이 바로 반대를 표했다.
“정말로 효과가 있었다면 5년 전까지 기다리지 않았겠지.”
부적 제작은 목서청의 증조부부터 줄곧 이어져 내려온 일이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5년 전에서야 부적을 그려 팔기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성건우가 다시 당당하게 대꾸했다.
“회사에 생명 제례 교단이 전해 들어온 게 5, 6년 전 일일 수도 있잖아.”
용여홍은 잠시 지난 일을 돌이켜보았다.
“음, 지난번 발생한 생명 제례 교단 사건은 잠잠해졌지만, 난 그게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아. 회사엔 아직 적잖은 이들이 잠복해있을 거야.”
당시 감시부 책임자가 죄를 인정하고 자살함에 따라 단서는 모두 끊어져 버렸고, 구조팀을 향한 복수를 걱정한 안전부 부부장 제니는 그들을 외부로 보내 가장 위험한 시기를 피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구조팀이 다시 회사에 돌아왔지만, 사건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물론 상부에서는 이미 다 해결됐다고 말했으나 자격이 없는 구조팀으로서는 그들이 일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이내 성건우가 용여홍을 향해 코웃음을 쳤다.
“내 기억의 일부를 삭제한 그 각성자가 아직 잡히지 않았으니까 사건은 당연히 안 끝난 거지!
내가 생명 제례 교단에 있었을 때 그들에게 다산을 가능하게 하는 물건을 받은 적은 없어. 설교할 때 부부는 서로에 대한 충만한 감정을 안고 충분히 준비한 뒤 몸과 마음을 하나로 합쳐야 한다고 했을 뿐이라고.
휴, 사명에게 임신을 도울 능력이 있는지 궁금하네. 그런 능력이 있다면 기운을 불어넣은 부적을 만든 뒤 그걸 가지고 다니기만 해도 임신하게 할 수 있을 텐데. 남자든 여자든, 임신에 필요한 행위를 했든, 안 했든.”
“그만, 그만!”
장목화는 계속해서 활개 치는 성건우의 상상의 나래를 저지했다.
용여홍과 백새벽의 낯빛도 몹시 나쁘게 변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