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706
706화. 전화
한숨을 내쉰 장목화는 애써 대화의 주제를 본론으로 되돌렸다.
“이따 집에 돌아가서 목서청 아버지의 죽음을 검색해볼게.”
백새벽이 미간을 구겼다.
“위험하지 않을까요? 지난번 사건으로 교훈을 얻은 생명 제례 교단이 인터넷 감시부에도 신도들을 심어두었을지 모르잖아요.”
사무실에서만 제한적으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그녀는 어느 부서에서 그 방면의 일을 관리하는지 알지 못했다.
“회사 내부에 정말 생명 제례 교단에 속한 신세계 급 강자가 있다면, 전자파 조종을 통해 인터넷에 직접 침입할 수 있어요. 오하명도 그랬잖아요.”
성건우는 평소 그 용여홍을 놀릴 때 보이던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장목화는 용여홍이 아니기에 여유롭게 웃으며 대꾸했다.
“회사 인터넷은 그래도 안전하고 수준도 높아. 오하명이라도 그렇게 쉽게 침입 못 해. 해킹 지식이나 능력을 겸비한 게 아닌 이상에는. 게다가 신세계 강자가 어떻게 현실에 줄곧 머무르면서 회사 인터넷을 시시각각 감시해?
그래도 주의는 해야겠지. 생명 제례 교단은 감시카메라를 통제한 전적이 있으니까, 이제는 정말 인터넷을 감시하고 있는지도 몰라.
하하! 걱정하지 마. 저번에 생명 제례 교단을 조사했을 때 관련 부서에서 최근 10년간 심장 문제로 인한 사망자 명단을 뽑고 어느 정도 조사를 진행했거든. 난 인맥을 활용해 해당 자료 복사본을 집 컴퓨터에 저장해뒀고.
그들이 왜 목서청 아버지 죽음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그 자료를 한 번 더 검사해본다고 문제 될 일은 없어. 하하, 물론 그 자료를 확인하는 동안 인터넷은 끊어둬야겠지.”
“조심하세요.”
백새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짝!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성건우가 소리 나게 본인 허벅지를 내리쳤다.
“아! 까먹고 있었네?”
“뭘!”
모두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성건우가 전에 이미 직접적인 단서를 발견했는데도 생명 제례 교단과 엮어 생각하지는 못했던 걸까?
뒤이어 성건우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소 이사님이 제가 탐색했던 새로운 방에 대한 자료를 정리해서 보고하라고 했었는데, 완전히 잊고 있었어요.”
‘……대단하네, 이사의 말도 허투루 넘겨버리다니.’
용여홍은 성건우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어야 할지, 아니면 그와 좀 거리를 둬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럼 나중에 정리하면 되겠네.”
장목화가 덤덤하게 대꾸했다. 그녀는 이미 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건우에게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듯했다.
성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출 후엔 보상으로 제 방에 전화기를 한 대 놔달라고 해야겠어요.”
“전화는 왜?”
장목화의 눈에 의혹이 가득 찼다.
용여홍과 백새벽 역시 그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성건우가 진지하게 답했다.
“그래야 팀장님이 인터넷 끊고 자료 읽는 동안 저한테 전화를 걸죠. 전 전자파 방해 능력으로 뜻밖의 상황에 대비하고요. 팀장님 보호해야죠.”
‘……이렇게나 본론에 맞는 이야기를 한다고?’
장목화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 후로 잠시 생각하던 용여홍이 성건우에게 말했다.
“내 생각엔 아예 네 방을 전화기가 딸린 방으로 바꿔줄 것 같은데.”
성건우는 회사에서 그만큼 중요한 직원이었다.
“안돼! 전 인류를 다 구하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더 좋은 방을 써?”
성건우가 남긴 단호한 이 한 마디에 사무실이 무섭도록 조용해졌다.
그로부터 몇 초 후, 장목화는 손을 들어 본인 뺨을 움켜쥐었다.
“사실 그럴 필요까지 없어. 사무실에 전화가 있잖아. 넌 소등시간까지 사무실에 있으면 돼.”
“어? 그러네요!”
성건우는 이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
이후, 잠시 고민하던 용여홍이 입을 열었다.
“왜 상부에 직접 보고하지 않고요?”
“상부에도 생명 제례 교단의 구성원이 숨어있을지 모르잖아. 만약 우리가 사전에 단서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그 단서를 파괴하려 할 거야. 전에 그 감시부 책임자가 자살했던 것처럼.”
장목화는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군요.”
용여홍과 백새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목화는 다시 화제를 전환했다.
“아 참, 내일은 아마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순간 성건우, 용여홍, 백새벽의 눈빛이 각기 다른 정도로 반짝거렸다.
* * *
349층, C구역 12호.
장목화는 부모님께 인사를 한 뒤 서재에 들어갔다.
컴퓨터를 켜고 상응하는 드라이브에 들어간 그녀는 인터넷 연결을 끊은 뒤 잠시 망설이다가 방 안의 구내전화를 들고 번호를 눌렀다.
* * *
따르릉!
647층 14호 안의 전화기가 울렸다.
이때 성건우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장목화의 등받이 의자에 앉아 좌우로 휙휙 움직이고 있었다.
뒤이어 바로 수화기를 든 그가 옹골지고 똑똑한 말투로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647층 14호입니다. 안전부 소속이며 구체적으로 어떤 팀인지는 보안 사항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전화 건너편의 장목화는 짜증과 웃음이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거야 뭐야?
“정답!”
성건우가 다시 경쾌하게 응답했다.
장목화는 더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대신 감정을 다잡았다.
– 그럼 이제 작업 시작한다.
전화 역시 감청당할 수 있었으므로 장목화는 사무실을 떠나기 전 성건우에게 쓸데없는 이야기도, 자신들이 목서청 아버지의 죽음을 조사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작업’이란 말이 나오면 약속대로 돕는 것이 성건우가 할 일이었다.
“네.”
성건우가 집중시킨 정신은 전화기 구조와 전자파의 전파를 통해 장목화 주위 환경에 영향을 미쳤다.
물론 이 영향은 매우 미약해서 부근에 있는 목표라도 성건우의 말을 들을 수 있어야만 그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이게 바로 지금 같은 상태에서 사유 유도는 사용할 수 있으나 억지쟁이와 문학청년, 사지 동작 불능은 사용이 불가한 이유였다.
그래도 이 미약한 영향을 바탕으로 성건우는 일정 범위 내 인간 의식을 감지할 수 있었다. 장목화 쪽에 정말로 무슨 뜻밖의 일이 발생한다면 그가 가장 먼저 도움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었다.
또 성건우는 성건우 민주 협의회의 격렬한 토론을 거친 끝에 어떻게 도울 것인지도 이미 완벽하게 다 정해두었다.
바로 장목화를 대신해 큰소리로, 간절하게 애원하는 것!
‘잘못했어요.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 용서해주세요!’
다른 사람이라면 이런 애원이 아무 소용없었다. 오히려 장목화의 귀한 시간만 빼앗는 꼴이었다.
하지만 성건우는 달랐다. 사유 유도의 능력 아래, 적은 그 사과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이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으리라 믿으며 굳이 그들을 죽여서까지 입을 다물게 할 필요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될 터였다.
당시 이 방법을 듣고 장목화도 좀 황당무계하고 우습긴 해도 효과가 있다면야 상관없겠다고 평했었다.
물론 이 애원도 농담에 가까운 대안일 뿐이었다. 중요한 순간에는 ‘그만둬’나 ‘멈춰’ 같은 간단한 명령이 더 효과적이었다.
만에 하나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바람에 사유 유도 효과가 충분히 발휘되지 않는다면 성건우는 그제야 애원을 고려할 것이었다.
장목화는 그 어떤 경고도 놓치지 않기 위해 수화기로 전해지는 성건우의 숨소리를 들으며, 다른 손으론 마우스를 움직여 저장해둔 자료를 열었다.
최근 10년간 반고 바이오 내부에서 심장에 생긴 문제로 사망한 사람들의 명단이었다. 각 사망자의 뒤에, 초기 보고서와 조사 결과가 딸려 있었다.
목 씨는 비교적 희귀한 성이었고, 그 성을 가진 사람 중 최근 10년간 심장 문제로 손쓸 틈도 없이 죽음을 맞이한 이는 더 적었다. 소수에 불과해서 장목화가 목표를 찾는 것도 매우 순조로웠다.
목인걸.
그의 사망 당시 나이 역시 목서청의 아버지와 똑같았다.
장목화는 그 목인걸의 초기 보고서와 조사 결과를 열어보았다.
5년 전 9월 30일, 417층 A구역에 사는 목인걸이 한밤중에 잠에서 깨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공용 화장실로 가던 도중 갑자기 쓰러져 힘없는 목소리로 도움을 요청했다고 했다.
하지만 인적이 드문 깊은 밤이었던 탓에 구조 요청을 감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이후 공용 화장실로 향하던 다른 이웃이 목인걸을 발견했을 때, 그는 이미 죽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부검을 거친 결과, 사인은 심근경색이었다.
초기 보고서에는 당시 질서 감독부에서 사람을 파견해 감시카메라를 확인했지만, 목인걸을 공격한 건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고도 나와 있었다.
그가 기절했을 당시 주위를 돌아다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초기 보고서가 작성된 건 5년 전, 반고 바이오 내부 감시카메라 영상의 보존 기한은 3년이었다.
지난 조사가 진행된 건 근 2년 전으로, 당시의 감시카메라 영상을 복원할 순 없어서 초기 보고서와 이후 확인한 대인 관계, 해당 층 심장병 발병 상황 등에 근거해 이 사건에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을 뿐이었다.
그때 확인된 대인 관계에 따르면 목인걸은 생전에 누구와도 큰 갈등을 빚은 적이 없었고, 그해 417층 주민 중 목인걸 외에 심장 문제로 인해 사망한 사람 또한 없었다.
자료를 모두 확인한 장목화는 수화기를 든 채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아무 문제도 없어.”
초기 보고서와 조사 결과만 본다면 목인걸의 죽음은 그저 뜻밖의 사건, 혹은 운명에 따른 결말이었다.
–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죠.
전화 건너편의 성건우가 진지하게 대꾸했다.
장목화가 피식 웃었다.
“이유는?”
– 이유는 없어요.
성건우는 도저히 믿음직스럽지 않은 말을 당당하게도 지껄였다.
이후 무조건 동조하기를 좋아하는 성건우가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 그냥 좀 너무 공교로워서요.
“이름을 잘못 지어서 운이 나빴다는 이야기나 운명과 관련된 일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화를 입은 거라는 이야기는 왜 안 해?”
장목화가 의도적으로 화제를 전환했다. 전화를 감청당하고 있을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상세한 이야기는 내일 사무실에서 할 생각이었다.
짝!
성건우가 허벅지를 내리쳤다.
– 그럴 가능성도 있긴 하네요!
장목화는 더 번지려는 그의 생각을 막고, 화제를 틀었다.
“오늘 밤에도 506호의 트라우마를 탐색할 생각이야?”
– 하루 쉬려고요. 머리가 좀 아파서.
성건우가 솔직하게 답했다.
트라우마 안에서 폭격을 당했던 그의 정신은 아직 회복이 필요했다. 그래도 그렇게 심각한 상태는 아니니 하루 이틀 푹 자면 해결될 것 같았다.
“그래, 그 트라우마에 대해 좀 더 얘기해봐. 같이 중점을 파악해보자.”
– 좋아요!
성건우는 순순히 그 제안에 따랐다.
그가 그 트라우마의 내용을 자세히 털어놓고 자신의 추측까지 밝히자 장목화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네 말이 맞아. 방 주인은 제4 연구원 가족 구역에서 꽤 오래 생활하며 그곳 사람들 대부분과 교류하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을 거야.”
그래야만 성건우와 대화한 그들이 그렇게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보이며 묻고 답하다가도 특정 범주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스스로조차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헛소리를 한 이유가 설명되었다.
– 맞아, 맞아요.
성건우가 동조했다.
계속 장목화의 말이 이어졌다.
“게다가 그 트라우마는 표면적으로는 굉장히 잔잔하고, 평화롭고, 안정적이었잖아. 네가 대문 구역에 접근하지만 않았어도 공격받지는 않았을걸. 방금 한 추측이랑 결합해보면 방 주인이 제4 연구원 가족 구역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고, 연연하고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 어쩐지 집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전화 건너편의 성건우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을 받았다.
“엄청, 엄청 직관적이네.”
장목화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