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713
713화. 소통 시도
현실로 돌아온 성건우가 전화기를 들고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여보세요, 누구십니까?”
“나야.”
용여홍이 답했다.
“나가 누구죠?”
어김없이 생트집을 잡는 성건우 때문에 용여홍의 이마에는 힘줄이 돋아났다.
“용여홍이요! 있잖아, 방금 새벽이랑 나랑 같은 꿈을 꿨어.”
“이렇게 일찍 잠들었다고?”
성건우의 관심사는 완전히 다른 곳에 있는 듯했다.
용여홍은 잠시 입술을 깨물고 심호흡으로 마음을 다스렸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우리가 같은 꿈을 꿨다는 거야. 민 소장이 생명 제례 교단 사람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제니 부장에게 가서 그 사실을 보고했더니 제니 부장도 생명 제례 교단 식의 예를 취하는 꿈을 꿨다니까?”
성건우는 길게 탄식했다.
“교우가 그렇게 많았다니⋯⋯. 너무 빨리 깼네. 너희들 꿈에 영향을 미친 그 사람이 무슨 정보를 더 주는지 지켜봤어야지. 어쩌면 다음에는 알고 보니 우리도 생명 제례 교단의 사람이었다는 내용이 나왔을지 모르잖아.”
한참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그가 그제야 중요한 걸 물었다.
“팀장님한테는 말했어?”
“아직. 지금 전화하려고.”
이 순간 용여홍은 성건우에게 먼저 전화를 건 것을 다행스럽게 여겼다. 그러지 않았다면 이 전화는 절대 끝나지 않았을 것 같았다.
그가 전화를 끊자 이번에는 백새벽이 장목화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따르릉!
설수민이 전화를 받았다.
“누구세요?”
– 안녕하세요. 장목화 팀장님 댁 맞습니까? 저는 같은 팀 동료입니다.
백새벽이 답했다.
설수민은 손으로 수화기를 막고 서재를 향해 외쳤다.
“모카야, 너 찾는다!”
서재 안의 장목화가 전화를 받자, 설수민은 그제야 거실의 전화기를 내려놓고 장문봉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얼굴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여자네.”
장문봉은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급하게 굴 것 없다니까.”
* * *
서재 안에서 장목화는 이제 백새벽과 용여홍에게 있었던 일을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였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물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진흙탕에 빠진 것 같네. 회사는 이미 비대해진 몇몇 외부 출신 조직에 심각하게 침식돼있는 걸까? 그걸 제압하고 있는 상부의 빅보스와 몇몇 강자들 덕에 겉으로만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걸까? 이번에는 다른 조직이 기회를 틈타 생명 제례 교단을 제거하려는 건가?”
– 그럼 저희는 옆에서 방관하는 게 제일 좋겠네요.
백새벽이 의견을 밝혔다.
장목화도 고개를 끄덕였다.
“음, 나도 그렇게 생각해.”
지금은 빅보스에게 직접 보고할 수도 없고, 완전히 믿을 수 있는 고위층 직원을 찾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내 장목화가 다시 웃었다.
“이 일은 모레 다시 얘기해도 안 늦어. 너희는 일단 오늘 밤에 교대로 자면서 비슷한 꿈을 더 꾸는지 확인해봐. 두세 번 교대해도 문제가 없다면 그때부터는 그냥 같이 자도 될 거야. 내일 상견례를 망칠 순 없잖아.”
백새벽과 용여홍을 달랜 뒤 전화를 끊은 장목화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수십 초 후, 수화기를 다시 든 그녀가 성건우의 집 번호를 눌렀다.
– 여보세요.
성건우는 매우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
– 누구십니까?
“누구일 것 같냐?”
장목화가 웃으며 물었다.
성건우는 당당하게 말했다.
– 작은 빨강이일 수도 있고, 작은 흰둥이일 수도 있죠. 애들이 같은 꿈을 꾼 것 가지고 얘기하고 싶었어요?
장목화가 웃었다.
“그렇게 급하게 굴 필요 없는 일이야. 더 기다리면서 지켜봐야지. 506호 방 주인의 성격이랑 경력은 알아봤어?”
– 네!
성건우는 파악한 사실을 상세하게 전달했다.
잠시 침묵하던 장목화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강한 호기심⋯⋯. 정의감과 소박한 선악관⋯⋯. 당시 506호 방 주인이 우리가 현재 마주한 것과 같은 곤경을 맞닥뜨렸고, 그 상황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는 바람에 원래는 지키려고 했던 그곳에 재난을 일으킨 건 아닐까?”
그녀로서는 이러한 연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4 연구원 가족 구역과 반고 바이오 내부의 환경과 분위기가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감상에 가까운 장목화의 질문에 성건우가 제 허벅지를 내리쳤다.
“아, 아쉽네.”
“뭐가 아쉬워?”
장목화는 그의 생각을 좀처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성건우의 표정이 조금 번뇌가 어린 듯 변했다.
“제가 506호에 진입했을 때부터 상대의 꿈에 난입했던 거였잖아요? 후에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면 위험에 직면할 용기를 이용해 속전속결로 끝내지 말 걸 그랬어요. 대신 유도를 통해 506호 방 주인이 꿈에서 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아서 말하도록 했었어야 했는데. 휴⋯⋯.”
당분간 그는 상대의 꿈에 다시 진입할 수 없었다. 적어도 세 번째 트라우마를 통과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는 심령의 복도 방을 탐색하는 데 따르는 하나의 규율이었다. 반고 바이오에서 제공한 자료에도 명확하게 나와 있었다.
「특정 방에 처음으로 진입하면 트라우마를 직면하게 될 수도 있고, 상대의 꿈에 난입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트라우마에 진입하기만 하면 그 후론 자리가 정해져, 그것을 통과할 때까지 매번 같은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또 하나의 트라우마는 다음 트라우마와 연결된다. 탐색자가 목표의 기원의 바다 근처에 이르러 그 방을 꿰뚫지 않는 이상 꿈과 조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달지기의 방도 이러한지는 표본이 너무 적고 사례가 워낙 희귀한 탓에 판단할 수 없었다.
이젠 성건우의 말뜻을 알아차린 장목화도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만약 꿈을 이용해 506호 방 주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낼 수 있다면 우리한테는 확실히 좋은 일이지. 회사 내부에서 출렁이는 비밀스러운 움직임과는 무관하다 해도 참고할 만한 가치는 있어.”
성건우는 다시 탁자 위 전화기를 보며 신난 듯 물었다.
“트라우마를 이용해 방 주인과 소통할 방법은 없을까요?”
장목화는 수화기를 쥔 채 골똘히 생각했다.
“없을 것 같은데. 넌 지금 세 번째 트라우마를 탐색하고 있잖아. 방 주인에게 연속으로 악몽을 꾸게 하고, 그의 경계심을 자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자료에 그 악몽이 네 행위와 관련돼 있는지, 대응하는 디테일이 완벽하게 반영되는지는 나와 있지 않으니까. 게다가 정말 악몽을 통해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한들 방 주인이 네게 피드백을 전달할 방법은 없고⋯⋯.”
이 대목에서 장목화가 돌연 말을 멈췄다. 기억력이 뛰어난 그녀는 성건우가 전해준 그 자료의 내용을 명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연달아 며칠간 악몽을 꾸고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피곤함을 느낀다면 그건 누군가 그의 심령 방에 진입해 상당히 깊은 곳까지 탐색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모든 방법을 도모해 상대를 특정하고 경고해야 한다. 상대가 듣지 않는다면 전투를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상대를 특정하고, 경고하고, 전투를 준비할 수 있다면 모종의 의미에서는 교류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거야. 피드백을 받을 수 있어.’
속으로 중얼거리던 장목화가 말했다.
“시도해볼 수는 있겠다. 그다지 큰 확신은 없지만.”
악몽에 트라우마 속 성건우의 행위가 완전히 반영될지, 과장되지는 않을지, 상징적인 의미만 구현될지, 특정 부분만 반영되는 건 아닐지 알 순 없었다.
하지만 정보가 잘못 전달되더라도 506호 방 주인이 위험을 감지하고 경고한다면 그것 역시 나쁘지는 않았다. 그 이후로라도 교류할 가능성은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네!”
힘차게 의욕을 드러낸 성건우는 전화를 끊고 바로 침대에 누웠다.
* * *
심령의 복도 안, 제4 연구원 가족 구역.
성건우는 어마어마한 힘을 들인 끝에 이곳의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사유 이식을 마쳤다.
더러는 ‘내가 가르쳐줄 게 있어!’ 크게 외쳤고, 더러는 ‘이리 와, 이리 와’ 코러스를 넣었다. 또 더러는 줄지어 구조 신호를 보냈고 더러는 ‘친구’란 단어를 연거푸 반복했다.
성건우는 그야말로 만반의 준비를 갖춘 셈이었다.
* * *
타르난, 세린 드림 여관.
침대에서 자고 있던 여관 사장 아이노가 돌연 몸서리를 치며 깨어났다.
어둠에 둘러싸여 빽빽한 붉은색 눈들의 응시를 받는 꿈을 꾼 탓이었다.
또 그녀의 귓가에서는 고신의 중얼거림 같은 소리가 끊임없이 맴돌기도 했다. 다만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잠시 후에야 정신을 차린 아이노가 이를 악문 채 낮게 중얼거렸다.
“그 녀석, 아직도 내 트라우마를 탐색 중이야!”
그녀는 어느 정도 이런 상황에 대한 경험이 있었다. 초기에는 적잖은 이들이 그녀의 심령 방을 깊숙이 탐색한 관계로 며칠을 연달아 악몽을 꾸기도 했었다.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그때 아이노가 했던 선택은 현실 도피였다.
부끄럽기는 했지만 효과는 있었다. 그들은 방을 다 탐색한 후 그녀의 기원의 바다까지 침입하지는 않고 호쾌하게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이후 이러한 일은 갈수록 줄었다. 더는 누구도 그녀의 심령 방 깊은 곳까지 탐색하려 하지는 않는 듯했다.
덕분에 아이노도 오랫동안 그로 인한 악몽에서 자유로워졌다.
이미 이런 경험이 있는 아이노가 어떤 대응을 할지는 안 봐도 뻔했다.
“가, 감히 내 기원의 바다에 침입하려고 하면 저, 절대 가만있지 않아!”
이불을 홱 잡아당긴 그녀는 발끝부터 머리까지 꽁꽁 감싸버렸다.
마치 모래 속에 머리를 묻은 타조 같은 모습이었다.
* * *
506호 안, 제4 연구원 가족 구역 트라우마.
성건우는 한참을 인내심 있게 기다렸지만 어떠한 경고도 받지 못했다.
냉정하고 이지적인 그는 의혹에 휩싸여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혹시 내가 아직 방 깊은 곳까지 들어온 게 아닌 건가?”
정신력이 너무 소모된 탓에 더는 기다릴 여력이 없었다.
성건우는 결국 방을 빠져나갔다.
* * *
따르릉!
새벽 1시, 용여홍과 백새벽은 별안간 울린 전화에 잠에서 깼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에 경험이 풍부한 둘은 심장이 미친 듯 뛰었다.
서로를 바라본 그들은 상대의 눈 속에 담긴 의혹과 경계심을 마주했다.
용여홍은 문득 언젠가 보았던 구세계 콘텐츠가 떠올랐다.
“받으면 죽는 전화는 아니겠지?”
이곳 애쉬랜드에서도 충분히 실현될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각성자들의 능력은 가지각색으로 기이했고, 그중에는 전자파를 통해 영향을 미치는 능력도 있었다.
“이렇게 금방 올 리는 없겠지⋯⋯.”
몸을 일으킨 백새벽이 탁자 쪽으로 다가갔다.
반고 바이오의 밤은 언제나 싸늘했다. 용여홍은 얇은 옷 한 겹만 입은 백새벽이 약간 떠는 것을 보고 황급히 그녀의 솜 코트를 걸쳐주었다.
용여홍은 이미 두꺼운 국방색 코트를 한 벌 새로 마련해 백새벽의 집에 둔 상태였다. 더는 이전처럼 무방비하지 않았다.
넉넉한 공헌 점수는 삶을 윤택하게 해주었다.
계속 울리는 전화기를 바라보던 용여홍이 숨을 한번 들이마셨다.
“나중에는 발신자 번호 표시 기능을 더해야겠어.”
“전화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각성자면 번호도 충분히 바꿀 수 있겠지.”
그러다 백새벽은 벨 소리에 깨어나려는 듯한 주위 이웃들의 기척을 감지하고 전화기 선을 냅다 뽑아버렸다.
방 안은 순간 극도로 고요해졌다.
어느새 진정한 용여홍이 입을 열었다.
“얼른 팀장님이랑 건우한테도 알려야 해. 같은 일을 겪지 않게.”
백새벽도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