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715
715화. 저기서 이야기할까?
B구역, 196호.
장목화는 겨우 6제곱미터밖에 안 되는 방을 한번 눈에 담았다. 그러고는 어떠한 평가도 하지 않고 창가 탁자에 있는 의자로 가 앉았다.
“생명 제례 교단, 어떻게 할 생각이야?”
장목화가 성건우와 이 이야기를 하려고 한 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한 그가 비이성적인 짓이라도 할까 염려하는 마음에서였다.
성건우의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팀장님한테 도움을 청할 생각이었어요.”
“무슨 도움?”
장목화는 경계를 바짝 세웠다.
침대 가장자리에 앉은 성건우는 더욱 눈을 형형하게 빛냈다.
“만약 우리가 계속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으면, 작은 흰둥이와 작은 빨강이 꿈에 영향을 미친 그 사람은 안절부절못하다가 결국 두 사람한테 다시 같은 꿈을 꾸게 하면서 중요한 정보들을 더 많이 전달하려 하지 않겠어요?”
“그럴 가능성이 크지.”
장목화가 냉정하게 평가했다.
성건우는 웃음을 흘렸다.
“우린 인간 의식만으로는 누가 누군지 판별할 수 없다는 걸 알아요. 만약 그날 꿈에 영향을 받은 게 여홍이, 새벽이가 아니라 저랑 팀장님이었다면 우리는 상대를 감지하고 붙잡을 수 있었을 거예요. 심문도 해서 생명 제례 교단과 관련한 정보를 알려주는 목적과 그 진정성도 파악할 수 있었겠죠.”
“이론상으로는 그래.”
장목화는 성건우의 계획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성건우는 신이 난 듯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기회를 틈타 우리가 여홍이, 새벽이로 위장해서 새벽이 집에 들어가 꿈의 영향을 받기를 기다리는 거예요. 위장이야 근무 시간 동안 하면 될 테니까 쉽게 발각당하지도 않을 거예요.”
“근데 매일 위장할 순 없잖아. 언제 꿈에 영향을 받을지도 모르고.”
장목화가 찬물을 끼얹자마자 성건우는 곰곰이 생각하다 약간 낙담했다.
이에 장목화가 살짝 웃음을 보였다.
“계획을 우연과 운에 의지할 순 없지. 이 방안의 성공률은 민수안과 제니 부장을 직접 찾아가 생명 제례 교단 구성원이 맞냐고 묻는 것만 못⋯⋯.”
말을 하던 장목화가 돌연 입을 다물었다.
동시에 성건우는 뭔가 깨달은 듯 오른 주먹으로 왼손바닥을 쳤다.
“그래요, 직접 물어보면 되겠네! 소 이사를 찾아는 건 너무 위험하고 엄청 뜬금없기도 해요. 근데 민수안이랑 제니 부장을 찾아갈 이유는 충분해요.
전에 약속한 신체검사를 빌미로 민수안을 찾아가면 되고, 작은 흰둥이랑 작은 빨강이가 꾼 꿈을 보고하겠다는 빌미로 제니 부장을 찾아가면 돼요. 그리고 대화를 가장한 설득으로 가장 진실한 답을 얻어내는 거죠.”
장목화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그들한테 아무 문제도 없다면? 네가 언제까지나 사유 이식의 효과를 유지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성건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
“그들에게 정말 아무 문제도 없다면, 생각이 과했던 우리가 누군가에게 이용당했을 뿐이라면, 전 사유 이식을 해제하고 상응하는 벌을 받을 거예요. 모든 걸 잃고 어디에 갇혀 교육받게 되더라도 아무 원망 안 해요.”
장목화가 엄숙한 얼굴로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상급자를 상대로 능력을 사용하는 건 엄청난 일이야. 어느 조직에서도 그런 일을 용인해주지는 않아.”
하지만 성건우는 상관없다는 듯 대꾸했다.
“심령의 복도에 진입한 후, 회사에서 절 M1으로 승급시켜줄 수도 있다고 했어요, 제가 거절했지만. 그 기준대로면 저랑 제니 부장은 같은 급이에요.”
잠시 뜸을 들이던 그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났다.
“게다가 알 사람은 다 제가 심각한 정신병이 있다는 걸 알잖아요.”
‘……그 이유는 아주 만능이구나.’
장목화는 할 말을 잃었다.
다시 성건우는 계속 의기양양하게 말을 이었다.
“저 같은 사람은 무슨 실수를 저질러도 괜찮아요. 팀장님이랑은 아무 관계도 없는 일지요. 저랑 제니 부장을 만나러 가기 전까지 팀장님은 제가 그 자리에서 무슨 문제를 일으킬지 예견할 수도 없고요.
무엇보다 저처럼 가치 있는 정신병자를 가두거나 죽여봤자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하나도 없어요. 만약 제가 빅보스나 이사회 구성원이라면 차라리 그런 사람을 애쉬랜드 위로 내쫓고 임무나 계속 줄 거예요.
그러면 그 사람이 회사 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그 사람을 이용해 다른 세력에 해를 끼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이 순간 장목화는 손뼉을 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심지어 이런 그의 예측에 덧붙일 세부 사항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렇다고 회사에 돌아오는 걸 완전히 금지해서도 안 돼. 일정 시간마다 불러들여 가족을 만나게 하면서 감정적인 속박을 유지하도록 해야겠지.’
말이 없는 장목화를 보고, 성건우는 계속 충동질을 했다.
“우리는 회사에서 나고 자랐어요. 여긴 우리 집이에요. 우리 집을 위협하는 뭔가가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신중하게 대해야지 알량한 요행심을 가져선 안 돼요. 틀릴지언정 놓치면 안 되잖아요.”
그 말이 마치 화살처럼 장목화의 약한 부분을 파고들었다.
다른 세력 사람은 이곳에서 나고 자란 직원들이 반고 바이오에 갖는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같은 토박이 직원인 성건우는 그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폐쇄적이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환경은 자연히 그 안의 사람들에게 귀속감을 갖도록 했다. 게다가 장목화와 성건우는 부모님 대부터 이곳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중의 토박이였다.
몇 초 후, 장목화가 놀리듯 물었다.
“설마 나한테 능력 썼어? 그게 아니면 내가 이렇게 모험적이고, 대담하고, 광기 어린 데다 규칙을 심각하게 위배하는 계획에 동의할 리 없잖아.”
“네.”
“……뭐?”
놀란 장목화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마주한 이때, 성건우가 자신을 상대로 능력을 쓰진 않았을 거라 확신했었다.
무엇보다 성건우가 이런 이유를 대기도 전에 장목화의 마음은 이미 동요하고 있었다. 고향이자 집인 회사를 그만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장목화의 눈동자가 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성건우가 긍정한 진짜 의미를 깨달은 것이었다.
‘……나한테 어떠한 책임감도 지우지 않으려고 그러는 거구나. 이 모든 결정에 대한 책임을 사유 유도라는 능력에 떠넘길 수 있도록 하려고.’
순간 마음이 따뜻해진 장목화의 얼굴에도 옅은 웃음이 번졌다.
“그럼 그렇게 생각할게.”
성건우도 그녀를 따라 매우 행복하게 웃었다.
* * *
월요일 오전.
상견례를 마친 용여홍과 백새벽은 휴가를 내고 495층 질서감독국으로 혼인 신고를 하러 갔다.
그래서 현재 구조팀 사무실에는 장목화와 성건우, 둘만 남아있었다.
장목화는 이 좋은 기회를 틈타 제니 부장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연결되고, 장목화가 진지하게 말했다.
“부장님, 장목화입니다. 보고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네, 네. 급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네, 바로 가겠습니다.”
장목화가 전화를 끊자 성건우는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왜 저도 간다는 말은 안 해요?”
장목화는 느릿하게 한숨을 뱉은 뒤 간단하게 설명했다.
“제니 부장한테 정말로 무슨 문제가 있다면 너도 온다는 사실을 미리 알게 됐을 때 사유 유도 등의 능력에 대비하려 할 거야. 그럼 우리 탐문 결과가 진실일지 거짓일지 파악하기 어려워져.”
그녀는 곧 자조하듯 웃었다. 지금 구조팀장 장목화는 반고 바이오 내부, 자신의 직속 상사를 향해 칼을 겨누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짝! 짝! 짝!
성건우는 조용히 팀장의 철두철미함에 박수만 보냈다.
시선을 주고받던 둘은 곧 14호를 떠났다.
* * *
646층으로 통하는 엘리베이터도, 부부장의 사무실도 오늘은 성건우가 곁에 있기에 장목화는 길을 잃지 않았다.
똑똑똑-
완전 무장 한 두 경비의 주시 속, 장목화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방에선 제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문고리를 잡아 돌리자, 사무용 책상 앞에 앉아있는 제니가 보였다.
긴 밤색 머리와 밤색 눈동자, 깔끔한 흰 셔츠에 검은색 짧은 재킷 차림의 제니는 성건우를 발견하고 물음표를 띄웠다.
“뭐야?”
장목화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말씀드리려는 사항은 우리 팀원이 발견한 겁니다. 혹시 중요한 세부 사항을 빠뜨릴까 싶어 함께 왔습니다.”
이후로 그녀는 제니의 반응을 기다렸다. 만약 제니가 성건우와의 대화를 격하게 거부한다면 의심도도 수직으로 상승할 것이었다.
제니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소파를 가리켰다.
“저기서 이야기할까?”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하늘색 찻잔을 챙겨 소파로 왔다.
장목화는 성건우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간 뒤 문을 닫고, 제니 맞은편 긴 소파에 성건우와 나란히 앉았다.
장목화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부장님, 사실 여기 성건우 팀원은 이미 소 이사님께 사안을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그 후 새롭게 발견된 게 있어서 부장님께 꼭 보고해야 할 것 같다고 판단했습니다.”
제니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목인걸에 대한 얘기? 안 그래도 소 이사와 얘기했어. 내가 그 사건 조사를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을 고르는 중인데. 왜, 너희도 가담하고 싶어서?”
“네, 네!”
성건우는 그 일에 자원하기 위해 온 사람처럼 굉장히 간절하게 답했다. 거짓된 느낌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장목화의 예상대로였다. 소지훈은 직접 조사에 나설 사람이 아니었다. 믿음직한 부하에게 맡길 게 뻔했고, 그 대상은 제니일 가능성이 컸다.
다만 성건우가 이렇게나 자연스럽고 진심 어린 모습을 보이리란 건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다.
‘이게 바로 인격분열의 장점이겠지.’
장목화는 속으로만 조용히 중얼거렸다.
제니가 웃으며 답했다.
“생각은 해볼게. 그만한 능력이 있는 너희들이 동참해준다면 조사는 훨씬 간단해지겠지. 음, 새롭게 발견된 게 있었다고?”
장목화는 의도적으로 옆에 앉은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성건우는 잠시 말을 고르는 듯하더니 느릿하게 말했다.
“새로운 발견이란 사실 제니 부장님과 관련된 겁니다. 그러니 원래대로라면 부장님은 이 일과 거리를 둬야 하죠.”
옅은 미소를 짓고 있던 제니의 얼굴에 또렷한 의혹이 드러났다.
성건우는 그의 충심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희는 제니 부장님을 믿습니다. 부장님이 저희를 신뢰하시는 것처럼요. 저희는 언제나 부장님과 같은 편이고, 부장님과 같은 참호를 쓰는 전우입니다.”
표정이 약간 편안해진 제니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새로운 발견에 대해서부터 말해봐.”
“그러니까, 저희 팀 용여홍 팀원, 백새벽 팀원이 며칠 전 같은 날 밤, 같은 꿈을 꿨습니다. 꿈에서 두 팀원은 민수안 소장이 생명 제례 교단 사람임을 알게 됐고, 그에 따라 사력을 다해 부장님을 찾아간 뒤 이 사실을 보고했는데 부장님 역시 생명 제례 교단의 구성원이었답니다.”
제니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확실히 이상한 꿈이긴 하네. 하지만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그걸 그대로 믿을 수는 없지, 안 그래?”
성건우가 정색을 한 채 반문했다.
“그렇다면 부장님, 부장님은 생명 제례 교단 사람이십니까?”
“당연히 아니지.”
제니는 아주 여유롭게 답했다.
장목화는 그 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성건우의 진술에 사유 유도의 능력이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제니더러 두 사람을 믿을 만한 동료이자 생사를 함께 한 전우, 같은 팀 팀원으로 여기도록 하는 사유 유도였다.
이런 상황에 제니가 정말 생명 제례 교단 사람이라면, 그녀는 성건우와 장목화 역시 그런 줄 알고 솔직하게 사실을 털어놓았을 것이었다.
이내 장목화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꿈을 만들어낸 사람이 이상한 거였어. 그것만 믿고 맹목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아 다행이지. 아니, 맹목적인 행동보단 확인이 더 적합한 표현인가.’
성건우도 안심한 듯한 표정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사명은 새 생명을 상징하지만, 생명 제례 교단은 다른 이의 생명을 경시하며 멋대로 그것을 박탈하죠. 잘못된 길을 택한 채 경전을 왜곡해서 해석하고 있는 겁니다.”
제니는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들을 뿐, 아무런 평가도 하지 않았다.
계획에 따라 한층 더 심층적인 확인을 진행한 성건우가 물었다.
“제니 부장님, 부장님은 달지기를 믿으십니까?”
제니는 두 사람을 훑어본 뒤 웃음을 머금은 채 말했다.
“어떤 달지기를 믿고 있기는 하지.”
순간 긴장한 장목화와 성건우는 부부장 사무실 안의 분위기가 전에 없이 경직된 것을 느꼈다.
“어떤 달지기요?”
성건우가 웃으며 물었다.
제니는 심장이 자리한 곳에 손을 얹으며 진지하게 답했다.
“길고도 긴 밤, 사명이 비호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