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719
719화. 설원
신력 49년, 2월 어느 날.
춘절은 지났지만 검은 늪 황야 북쪽은 여전히 겨울인 듯했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땅은 그저 차갑고 망망하게만 보였다.
“위드 시티에서 본 설경보다 훨씬 충격적이네.”
용여홍은 차창 근처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바깥 풍경에 개탄했다.
앞쪽 운전석엔 성건우가 앉아 있고, 그가 오른손 옆에 높은 스피커에서는 한창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눈꽃은 흩날리고 북풍은 스산하며, 세상은 끝없이 아득하네⋯⋯.
보조석에선 결국 장목화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좀 신나는 노래 들으면 안 돼? 새해가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네가 연말 공연에서 불렀던 그런 노래 좋잖아.”
성건우는 진지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밖에 나와 있는데 즐겁고 기쁜 분위기에 젖어있으면 실수하기 쉬워요. 잠시 야외 훈련을 하러 나온 거라고 해도 진지하게 임해야죠. 지나치게 여유를 부리면 훈련하는 의미가 없잖아요?”
장목화가 이번 야외 훈련을 계획한 건 구조팀이 앞으로 마지막 불가 성지를 찾고, 빙원으로 탐색하러 간 성건우 부친이 실종된 그 도시를 탐색하고, 제8 연구원의 구체적인 위치를 파악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춘절을 맞아 다들 마음이 붕 뜬 상태라, 정식 임무에 나서기 전에 팀원들의 마음가짐도 원래대로 돌려둘 필요가 있었다.
장목화는 훈련 장소를 일부러 빙원 가장자리 근처인 검은 늪 황야 북부로 잡았다.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그곳 환경에 적응하려는 훈련이었다.
그래야 팀원들도 빙원의 극단적인 기후를 만나더라도 속수무책으로 당황하거나 혼란스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장목화가 원래 계획한 훈련 시기는 새해가 되기 전이었다. 하지만 결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용여홍과 백새벽에게 야외 훈련은 너무 가혹한 것 같아서 지금까지 기다렸다가 정식 신청 후 제니에게 보고한 상태였다.
“야, 누가 팀장이야?”
성건우를 노려보던 장목화가 용여홍에게 당부했다.
“이따 차에서 내리면 설경은 너무 오래 쳐다보지 마. 미리 선글라스를 쓰든가. 내가 설맹(雪盲)에 대해 설명해줬었지?”
“네, 알겠어요.”
늘 순종적인 용여홍은 바로 선글라스를 꺼내 착용했다.
그때 여전히 단발머리인 백새벽이 보조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쉴 곳을 찾아봐야 할까요?”
이 지역에는 마을이나 상점은커녕 큼지막한 돌이나 눈에 잘 띄는 나무도 없었다. 그저 하얀 땅만 끝없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그래, 시간도 다 됐네. 밥 먹어야지. 이런 날씨랑 환경에선 몸속 에너지를 잘 유지하는 게 제일이지. 어떠한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게.”
빵! 빵! 빵!
성건우가 클랙슨을 울리는 것으로 박수를 대체했다.
장목화가 무슨 대꾸를 하기도 전, 지프가 돌연 눈으로 한 겹 뒤덮인 도로 측전방으로 길게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끼익!
다행히 다른 차도 없고 도랑이나 장애물도 없어서 지프는 얌전히 멈췄다.
“조심해.”
장목화는 성건우가 클랙슨 울리는 데 정신을 빼놓았다고 질책하지 않았다. 그가 클랙슨을 울리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미끄러졌을 환경이었다.
용여홍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미끄럼 방지 타이어로 바꾸지 않았나요?”
이번 야외 훈련 목적은 설원에서의 생존이었으므로 차 바퀴도 미리 챙겨온 미끄럼 방지 타이어로 교환해둔 상태였다.
순간 성건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미끄럼 방지 타이어도 만능은 아니니까. 너도 집에서 아무 변수도 없이 늘 새벽이가 하라는 대로만 하진 못하잖아. 그거랑 마찬가지야.”
용여홍은 말문이 막혔다.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백새벽이 상황 수습에 나섰다.
“우리는 더 일리 있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 따라서 결정해.”
“맞아, 맞아.”
용여홍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보통 새벽이 말이 더 일리가 있지.’
속으로 중얼거리며 웃던 장목화는 성건우가 더는 부부 사이를 이간질하지 못하도록 저지했다.
“저쪽에 세워. 인덕션 설치하고 통조림 데워 먹자. 압축 비스킷이랑.”
성건우는 조용히 오른손을 들어 입가를 닦아냈다.
* * *
지프는 장목화의 지시대로 전방 설원에 정차했다.
그리고 구조팀은 각자 바쁘게 맡은 일에 돌입했다.
용여홍은 차 지붕 위의 태양열 충전기를 검사했고, 성건우는 인덕션과 먹을 통조림, 압축 비스킷을 꺼냈다. 그리고 백새벽은 검측기를 이용해 주위의 오염도를 측량했으며, 장목화는 주위 경계를 담당했다.
잠시 후, 용여홍이 먼저 입을 열었다.
“태양 에너지 충전이 얼마 안 됐네요. 휴, 지프에 쓸 양도 충분하지 않아서 요리는 고성능 배터리로만 해야겠어요. 이대로 가면 우리 에너지도 언젠가 바닥날 거예요. 계획보다 일찍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요? 나중에 설원 한가운데서 멈추면 어떡해요.”
장목화가 웃었다.
“그게 바로 빙원에서의 임무에 따르는 난제 중 하나야. 전에 우리가 빙원에 갔을 때는 여름이었지만 빙원 깊은 곳의 날씨는 한여름에도 극단적이야. 이 정도 추위를 생각하면 안 돼. 더 추운 상황에서 고성능 배터리가 사용 가능한지도 미지수고.”
용여홍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각 방면에 적응할 이런 훈련이 필요한 거네요.”
“이따가 눈싸움할래?”
순간 성건우가 신난 얼굴로 이 진지한 공기를 박살 냈다.
용여홍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쟤는 진짜 눈싸움에도 전력을 다하는 놈이잖아.’
성건우는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너랑 새벽이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눈싸움할 정도로 자랄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작은 빨강이 좀 내버려 둬라.’
장목화는 속으로 중얼거리면서도 문득 생각이 그쪽으로 튀었다.
‘근데 새벽이랑 여홍이, 결혼한 지 몇 달이나 됐는데 왜 아직 소식이 없지?’
반고 바이오에서 결혼한 뒤 아이 없이 사는 부부는 없었다. 다들 한 치의 예외도 없이 결혼과 동시에 임신을 준비했다. 물론 결혼한 지 1년이 넘어서 임신하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그건 극소수에 불과했다.
게다가 용여홍과 백새벽은 전에 유전자 개량을 받고자 진행한 정밀 신체검사에서도 그쪽 방면에 아무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었다.
하지만 장목화도 아무리 궁금해도 절대 먼저 물어선 안 된다는 걸 아주 잘 알았다. 용여홍과 백새벽이 먼저 언급하지 않는 이상 입을 다물어야 했다. 아무리 친하고 좋은 사이라도 지켜야 할 선과 예의가 있는 법이었다.
장목화는 차오르는 충동을 꾹 참고서 성건우만 재촉했다.
“빨리 밥이나 해!”
“네!”
성건우는 곧장 스토브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시각 용여홍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여태까지 어머니 고홍자는 벌써 두 번이나 다산 부적에 대해 언급했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뻔했다.
야외 훈련을 나와서까지 그런 압박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잠시 후, 소고기 조림 통조림이 데워졌다. 좋은 냄새가 설원 위로 퍼지며 용여홍의 입맛도 돋웠다.
경계를 맡은 장목화를 제외하고 백새벽, 용여홍, 성건우는 각자의 도시락통을 쥔 채 쪼그려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먼저 소스를 듬뿍 묻힌 압축 비스킷을 한입 베어 문 용여홍이 만족스럽다는 듯 눈을 게슴츠레 떴다.
“전에는 물려서 쳐다보기도 싫더니, 몇 달 있다 먹으니까 또 맛있네.”
성건우가 픽 웃었다.
“앞으로 또 보름 내내 이것만 먹으면 통조림만 봐도 구역질이 날걸.”
“너는 아니고?”
“나도 그렇지.”
또 성건우를 한 방 먹이지 못한 용여홍은 다시 도시락통에 집중했다.
게 눈 감추듯 식사를 마친 성건우가 장목화와 교대하고 나서도 용여홍과 백새벽은 계속해서 통조림을 맛있게 먹었다.
한창 식사하던 도중, 장목화가 아무렇지도 않게 넌지시 물었다.
“작은 흰둥이, 회사 규정에 신혼부부는 외근을 안 해도 된다고 나와 있어. 근데 너랑 작은 빨강이는 왜 아직 그걸 보고하지 않는 거야?”
백새벽과 용여홍이 내근 전환을 신청하지도 않고, 제니가 알아서 지시를 내리지도 않아서 장목화도 어쩔 수 없이 계속 둘을 데리고 다니는 중이었다.
백새벽이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
“신혼부부가 외근을 안 해도 되는 건 임신 준비에 몰두해 빨리 아이를 갖기 위해서예요. 근데 저랑 여홍이는 그렇게 빨리 임신할 생각은 없어요. 한 몇 년은 신혼 생활을 즐기고 싶어요. 회사의 출산 격려 정책에는 위배 되는 행동이지만 저희는 그간 많은 공헌을 했으니 2, 3년 정도는 참아주겠죠.”
장목화는 미간을 살짝 구겼다. 백새벽의 말은 아무래도 팀을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둘러댄 변명 같았다.
‘신혼을 즐기고 싶다고? 작은 흰둥이 네가 할 법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그냥 구세계 콘텐츠에서 그대로 베낀 표현 아니야?’
뒤이어 장목화가 용여홍을 돌아보았다.
“너도 그렇게 생각해?”
그녀는 용여홍이 아이를 굉장히 좋아한다는 걸, 무엇보다 늘 백새벽과 함께 내근직으로 일하기를 바라왔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네, 제 생각도 새벽이랑 같아요.”
용여홍의 답을 듣고, 장목화가 애써 웃었다.
“전과는 달라졌네. 너답지 않은 말이야.”
“그야 당연하죠.”
장목화의 말에 대꾸한 건 멀지 않은 곳에서 경계를 서던 성건우였다.
성건우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작은 빨강이랑 작은 흰둥이 둘 다 당분간은 아이를 갖고 싶지도 않고, 팀을 떠나고 싶지도 않다는 사유를 이식해둔 상태니까요.”
“뭐?”
용여홍과 백새벽 모두 의아한 얼굴을 했다.
본능적으로 농담하지 말라고 하려던 그들은 점차 진지해지는 성건우의 표정에 머리가 웅, 하고 울리는 것 같았다.
두 사람도 곧 진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확실히 성건우에게 그런 사유를 이식받은 바 있었다.
장목화는 성건우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무겁게 가라앉혔다.
“진지하고 중요한 상황에선 동료한테 능력을 안 쓴다고 하지 않았어?”
고개를 끄덕이던 성건우가 정색한 채 말했다.
“말할 게 있어요.”
성건우의 진지한 태도에 팀원들도 덩달아 조용해졌다. 또 무슨 병이 도진 것인지 알 길이 없지만, 다들 일단 그의 말을 기다렸다.
먼저 장목화가 고갯짓으로 말했다.
“얘기해봐.”
성건우는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우리가 제니 부장을 통제해 단체 메일을 발신하고 최하층에 잠입해 빅보스에게 보고를 하러 갔던 일, 기억해요?”
장목화가 솔직하게 답했다.
“그건 기억해. 그 후의 기억은 삭제당했지. 회사에서 이미 다 해결했다는 인상만 흐릿하게 남아있어. 아무래도 뭔가 비밀이랑 관련된 것 같아.”
그녀는 이 사실을 이미 용여홍과 백새벽에게도 공유한 바 있었다.
성건우는 곧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저는 그것까지 기억하고 있어요!”
“어떻게?”
장목화는 당시 상황은 기억하지 못해도 회사 사람이 성건우의 기억을 몇 번이나 거듭 확인해가며 지웠으리라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성건우가 극도로 특수하고 비밀스러운 방법으로 모두를 속이지 않은 이상, 그렇게 중요한 일을 처리하는 데 절대 빈틈을 남겼을 리는 없었다.
성건우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걸렸다.
“우리 중 악을 증오하고 인류 구원을 본분으로 아는 녀석은 회사가 생명 제례 교단을 그냥 봐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당시 무고하게 죽은 심도환 아저씨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못 할 짓이라고요. 그래서 그 각성자가 손 쓰기 전에 그 기억의 복사본을 갖고 수종이를 상징하는 틈에 파고들었어요.”
용여홍은 조용히 친구를 응시했다.
‘남 편한 꼴을 못 보네.’
뒤이어 장목화도 미간을 찌푸렸다.
“너무 위험한 짓 아냐?”
사실 위험한 짓이란 것도 굉장히 절제한 표현이었다. 아직 깊은 곳까지 탐색하지도 않은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가 강자의 기운으로 형성된 틈 속을 멋대로 파고드는 건 거의 자살행위와 다름없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수종이의 내력이 매우 비밀스럽고 장생과 관련된 것으로 의심된다는 사실이었다. 틈 건너편에 도사리고 있을 위험은 절대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가 대항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