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738
738화. 불법(佛法) 교류
허양원은 한참 후에야 신세계 관련된 정보를 겨우 소화했다.
“그걸 어떻게 조사할 생각이지? 신세계 교차점을 제거하는 데 뜻밖의 상황이 생기지는 않나?”
“이론상으로 뜻밖의 상황 같은 것은 생기지 않습니다. 조사로 말할 것 같으면 아주 간단합니다. 상응하는 기기를 가지고 각성자의 감지력을 이용하면 멀리서도 찾아낼 수 있습니다.”
경험이 풍부한 장목화는 상당한 확신을 갖고 말했다.
“다른 사람 집에 멋대로 들어가거나 하지는 않을 겁니다.”
성건우는 가슴까지 탕탕 치며 약속했다.
허양원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자네들이 노스 스트리트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친서를 하나 써주지.”
꽤 위험해 보이는 신세계 교차점을 제거해주겠다고 자원한 이들에게 그 정도의 호의는 기꺼이 베풀 수 있었다.
구조팀이 답하기 전, 그의 질문이 이어졌다.
“두 번째 목적은?”
성건우는 옆에 앉은 기계 승려 정념을 바라보며 웃었다.
“정념 선사와 불법을 교류하고자 합니다.”
“무슨 토론을 하고 싶으십니까?”
기계 승려 정념이 합성음으로 이루어진 목소리를 냈다.
그가 거절하지 않은 것은 어떠한 위험도 예견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상대가 대체 뭘 묻고 싶어 하는 건지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제도 선사 성건우는 두 손으로 합장하며 염불부터 외웠다.
“나무아뇩다라삼먁삼보리, 선사, 저는 선사의 교단에서 언제 처음으로 각성자가 출현한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장목화가 덧붙였다.
“선사를 비롯한 이들이 승려가 되지 않았을 때, 교단도 아직 형성되지 않았을 때를 포함한 질문입니다. 이러한 질문이 승려 교단의 비밀에 연루돼 있다는 건 알지만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면 꼭 가르쳐주십시오. 저희도 이에 상응하는, 선사가 흥미로워할 법한 정보를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침묵하던 정념이 입을 열었다.
“구세계가 파괴됐을 때 몇 사람이 각성하게 됐습니다. 그 후로 1년에 걸쳐 속속들이 각성자가 나타났지요. 하지만 그 수는 매우 적었습니다. 그러다 뭇별 혹이 나타남에 따라 각성의 난도는 현저히 낮아졌고요.”
디마르코에게 있었던 일은 뭇별 홀이 구세계 파괴 이후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시사했지만, 정념의 말에는 그래도 상당한 가치가 있었다.
일단 이는 구세계 파괴가 인류의 각성을 초래했다는 것을, 혹은 무심병의 대폭발과 동시에 소수의 인간이 각성하게 되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디마르코와 승려 교단 내의 몇 사람이 그 예였다.
거기다 정념은 뭇별 홀이 나타나면서 각성의 난도가 낮아졌다고도 했다. 이는 멋대로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그 말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분명 있을 것이었다.
심지어 장목화는 정념이 이런 말을 한 이유도 짐작할 수 있었다. 승려 교단 내에 원래는 각성하지 못하고 있던 이들도 뭇별 홀이 나타난 후에 연속적으로 각성을 했다는 말 아니겠는가.
“그렇군요. 제가 각성을 했을 때는 이미 뭇별 홀이 있어서 최고 난도에 도전할 수 없었습니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성건우는 금세 실망한 빛을 보였다. 그러다 또 그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선사, 저는 승려 교단의 적잖은 이들이 각성 후에야 의식을 업로드하여 기계 승려가 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원래 영생인이었던 자 중에서도 각성을 한 사람이 있습니까?”
정념의 눈구멍 안에서 붉은빛이 몇 차례 번득였다.
“있습니다. 하지만 매우 적지요. 비율로 따져보면 비영생인보다 낮아요.”
“왜죠?”
성건우는 마치 기계 승려를 대표해 불만을 표하는 듯했다.
정념은 금속 목을 좌우로 한 번씩 돌렸다. 본인도 그 이유를 알지는 못한다는 뜻이었다.
고민하던 장목화가 입을 열었다.
“영생인의 각성과 일반인의 각성에는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정념의 답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장목화는 몇 초간 생각하다가 재차 물었다.
“각성에 따르는 다른 변화 같은 것도 없습니까?”
기계 승려의 눈에서 번득이는 붉은빛이 순간 훨씬 더 짙어졌다. 그의 답은 한참 후에야 튀어나왔다.
“의식 업로드를 한 후 각성한 승려라면, 각성할 때 동체 속 바이오닉 칩이 일정한 혼란을 보입니다. 다시 안정을 찾기까지는 수십 분이 걸리죠.”
“왜 그런 겁니까?”
성건우가 이곳에 자리한 모두를 대신해 의문을 표했다.
“저희도 모릅니다. 관련된 연구를 줄곧 이어오고 있기는 하지만요. 나무아뇩다라삼먁삼보리.”
승려들이 칩과 동체에 관련한 연구를 하고 있다니. 구세계를 잘 이해하고 있는 민속학자 장목화는 그 사실이 좀 황당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정념의 거대하고 든든한, 검은색 금속 구조로 이루어진 몸을 보자면 그게 또 당연한 것 같기도 했다.
이번엔 성실한 성건우가 제도 선사를 대신해 물었다.
“승려들은 매일 불법을 연구해야 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기계 승려 정념은 합성음으로 이루어진 목소리로 답했다.
“교단 내 구성원 대부분은 당시 영생인 프로젝트에 참여한 연구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불법을 연구할 뿐만 아니라 본인이 해야 할 일을 알아서 찾아 긴 삶을 충실하게 만들고 있지요.”
용여홍이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물었다.
“의식을 업로드한 후에는 정말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겁니까? 그러한 기술에 여전히 존재하는 결함과 그로 인한 심각한 정신 문제가 있는데도요?”
정념은 침묵했다.
순간 민망해진 용여홍이 덧붙였다.
“교단의 비밀에 관련된 문제라면 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렵사리 교류가 가능한 기계 승려를 마주한 만큼 용여홍도 당연히 애쉬랜드에 넓게 퍼져 있는 소문과 반고 바이오 교과서에 적혀 있는 정보가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구조팀이 전에 만난 정법과는 이렇게 담담하고 평화로운 대화를 하기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기계 승려 정념이 느릿하게 말했다.
“고려해야 하는 건 정신적 문제뿐만이 아닙니다. 저희는 이후 의식 업로드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대응하는 의식이 약화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도 이와 비슷한 변화가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연구자들은 수십 년 전부터 계속 그 원인을 찾아 영생인 기술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 중이지요. 하지만 어쨌든 영생인의 수명은 일반인의 몇 배, 심지어는 열 몇 배에 달합니다. 불법을 깨우치고, 스스로를 수양하고, 과위(果位)를 얻고, 해탈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죠.”
장목화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영생인 기술이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다는 소문과 맞아떨어지는 이야기야.’
이 이야기에 옆쪽에 자리한 허양원의 심장도 쿵쿵 뛰고 있었다.
그는 번화한 인간 세상에서 충분히 즐기다가 쉰 살이 넘으면 의식을 업로드해 영생인이 될 생각이었다.
물론 정념은 그에게 한 사람의 의식이 쇠미해지기 시작한 후부터는 영생인 기술에 일정한 위험이 따르며 실패할 확률도 생긴다고 일러둔 바 있었다.
허양원이 일흔에서 여든 살의 노인이 된 후가 아니라, 쉰 살 정도에 의식 업로드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때, 성건우는 이제야 기계 승려 정념이 맨 처음에 했던 답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선사, 뭇별 홀이 나타난 후부터 각성의 난도가 낮아졌다고요?”
“그 방면에 있어서는 사례가 무척 많습니다.”
정념은 결론만 내놓을 뿐,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성건우는 자신의 말뜻을 설명하려 애썼다.
“제 말은, 뭇별 홀이 각성의 난도를 낮추는 데 무슨 역할을 했냐는 겁니다.”
노란 승복과 붉은 가사를 두른 기계 승려 정념은 신실하게 합장했다.
“우리 부처님의 자비 때문이지요. 뭇별 홀, 기원의 바다, 심령의 복도는 세자재여래와 우리 부처님이 더 편히 중생을 제도하고 그들의 영혼을 인도하기 위해 만든 문입니다. 고해(苦海)에서 벗어나 극락정토로 직행하기 위한 길이지요.”
“나무아뇩다라삼먁삼보리.”
제도 선사 성건우가 낮게 염불을 외웠다.
정념은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다른 질문이 더 있습니까?”
고민하던 장목화가 정색을 하고 물었다.
“승려들도 무심병에 감염됩니까?”
붉은 눈빛을 번득이며 멈칫하는가 싶던 정념은 잠시 후에야 답했다.
“그렇습니다. 저희는 이미 육신이라는 가죽 껍데기를 버린 상태이기는 하나 속세와 고해에 아직 벗어나지 못한 까닭에 각종 고통을 겪곤 합니다. 과위를 얻어 극락정토에 진입해야지만 진정한 해탈을 할 수 있지요.”
장목화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성건우를 저지했다. ‘기계 승려라고 해 봤자 겐과 같은 지능인보다 나은 점은 하나도 없군요.’ 같은 말을 지껄일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짧게 한숨을 토한 그녀가 말했다.
“저희 질문은 이게 다입니다. 선사께서 묻고 싶은 것은 뭡니까?”
정념은 일찍이 생각해둔 것이 있는 듯 곧장 물었다.
“신세계의 존재를 믿습니까?”
곁에서 용여홍이 정념을 한번 쳐다보았다.
‘극락정토의 존재를 누구보다 확신하던 게 당신들 아니었나요?’
이윽고 장목화가 진심을 담아 답했다.
“네. 저희는 신세계에 진입한 강자와 접촉하기도 했고, 신세계와 연결된 교차점을 보기도 했으니까요.”
용여홍은 다시 속으로 중얼거렸다.
‘우리가 언제 신세계 강자랑 접촉했지? 우리가 만난 신세계 강자는 염호뿐인데⋯⋯. 아, 놀라서 물러났거나 쇼크사한 박사랑도 접촉한 것으로 치나?’
곧 허양원이 내뱉듯 물었다.
“신세계에 진입한 강자? 그렇다면 자네들은 신세계에 있는 그들과 어떻게 소통한 거지?”
그 질문에서 그가 받은 충격과 의혹, 호기심을 똑똑히 읽어낼 수 있었다.
“신세계에 진입한 그들이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는 돌아온 신세계 강자와 만난 적이 있어요.”
성건우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답했다.
“돌아올 수 있다고요?”
기계 승려 정념이 의혹이 어린 목소리를 냈다.
장목화는 예리하게 그 의문을 알아차렸다.
“선사의 승려 교단엔 과위를 얻고 극락정토에 진입한 고승이 없습니까?”
그녀는 승려 교단이 말하는 극락정토가 각성자 레벨 중 새로운 세계이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정념이 눈으로 붉은빛을 번득였다.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동체는 이미 전부 운행을 중지했고, 누구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영생인과 일반인 사이에 일정한 차이가 있는 걸까요?”
백새벽은 이 사실을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신세계에서도 영생인은 좀 특별한 유형인 걸까?
생각에 잠겨 있던 장목화가 입을 열었다.
“각 대형 세력의 고위층에서 신세계에 강자가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은 비밀이 아닙니다.”
침묵에 빠진 정념은 한참 뒤에야 말을 받았다.
“무심병이 극락, 신세계에서 기인한다고 하셨지요. 그 증거가 뭡니까?”
장목화가 곧장 답했다.
“그 증거는 고리처럼 연결돼있습니다. 전에 저희는 잠든 채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는 신세계 강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곁에 오래 머무르면 무심병에 걸리게 되는데, 이로 인해 그가 잠든 그 마을이 소멸하고 말았죠.
저희는 다른 루트를 통해 이와 비슷한 신세계 강자 근처에서도 흡사한 현상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또 구세군 어느 고위층 구성원은 신세계 강자가 인위적으로 무심병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했고, 저희 친구 중에도 신세계 강자의 공격을 받아 무심자로 변한 사람이 있습니다.
수많은 신세계 교차점 주위에서는 각성자 능력에 영향을 받은 것 같은 이상 현상이 발생하곤 합니다. 그 교차점 주위에 오래 머무를 경우에도 무심병에 걸릴 확률은 높아지지요.”
구체적인 사람과 사건을 언급하지 않는 이 대답은 굉장히 모호했다. 또한 장목화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유람선 트라우마로부터 얻어낸 결론이었다.
기계 승려 정념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얌전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허양원은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눈앞의 구조팀이 그런 고차원적인 일을 수차례 겪고도 여태 살아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십여 초 후, 정념이 염불을 외웠다.
“나무아뇩다라삼먁삼보리. 더 이상의 질문은 없습니다.”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한 성건우는 허양원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점심 식사 시간 아닙니까?”
허양원이 웃음을 짜냈다.
“이미 주방장한테 음식을 더 준비해놓으라고 지시해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