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745
745화. 지원자
2~30년간 안정적으로 발전해온 절벽 마을은 전에 비해 인구가 확연히 늘어난 상태였다. 원래는 텅 빈 곳도 서서히 채워진 상태라 구조팀은 한참을 이동한 끝에야 물자 저장 창고를 만날 수 있었다.
촌장이 앞쪽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위층은 평범한 창고고 아래층은 냉동 창고야. 물자 목록은 홀에 있으니 알아서 고르도록 해.”
“알겠습니다.”
장목화는 앞으로 몇 걸음 나가 촌장과 나란히 섰다.
촌장이 가리킨 창고 문 앞에서는 반백의 노인이 바람을 쐬고 있었다.
“조 노인은 자네들처럼 실험에 지원한 적이 있었어. 돌아온 후부터는 회사 규정에 따라 비교적 편안한 직무에 배정되었지.”
조 노인은 촌장과 나이는 비슷해 보였지만 머리숱은 훨씬 적고, 얼굴의 주름도 더 또렷했다. 현재 그는 두꺼운 솜옷을 입고 있었는데, 이곳이 빙원 근처라 그런지 4월인데도 여전히 좀 쌀쌀하긴 했다.
“어느 프로젝트에 참여하셨나요?”
성건우는 호기심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어제 반고 바이오 직원이 왔다는 소식을 접했던 조 노인은 눈앞의 준수한 네 사람을 보고 어렵지 않게 그 신분을 알아차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웃으며 말했다.
“추위에 대한 인간의 내한성(耐寒性) 실험 같은 거였지.”
“회사에서는 왜 아직도 그런 실험을 하는 거죠?”
성건우는 자신도 아는 게 꽤 많다는 듯 질문을 이어나갔다.
뒤이어 장목화도 웃으며 대화에 참여했다.
“어떤 실험이었는데요?”
조 노인은 눈동자를 위로 굴려 기억을 더듬었다.
“처음에는 우리를 빙원 깊은 곳으로 끌고 가 얇은 옷만 입혀놓더라고. 하마터면 얼어 죽을 뻔했어. 다행히 구조됐지만. 두 번째 실험에서는 두꺼운 옷을 줬지. 하지만 도저히 추위를 견딜 수가 없었어⋯⋯.
세 번째 실험은 조금 남쪽에서 진행됐어. 전에 있던 곳보다는 온도가 훨씬 높은 곳이었지. 그들이 우리한테 각각 얇은 옷과 두꺼운 옷, 그리고 내가 지금 입고 있는 것 같은 솜옷을 줬었는데 별 도움이 되지는 않았어. 극심한 추위로 인해 문제가 생긴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조 노인의 이야기를 듣던 구조팀에겐 강한 의혹이 생겼다.
회사에서 진행한 이 실험의 목적은 대체 뭘까. 설마 정말로 각종 환경에서 인간들의 내한 능력을 측정하려는 거였을까?
당시 일을 들으려는 사람들은 참 흔치 않았다. 뜻밖의 일이었지만, 조 노인은 창고 문 앞에서 계속 기억을 반추하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가 참여한 실험은 줄곧 빙원 모처에서 이루어졌고 얇은 옷, 비교적 두꺼운 옷, 솜옷을 번갈아 입어가며 각기 다른 시간을 견딘 후 간이 건물에 들어가 검사를 받는 순서로 이루어졌다고 했다.
그 외의 다른 변수는 없는, 굉장히 단조로운 실험이었다.
장목화는 회사에서 제공한 자료와 자신이 수집한 빙원 관련 자료를 토대로 조 노인을 비롯한 이들이 영하 3, 40도에서 영상 5, 6도 사이에서 이루어졌으리라 판단했다. 해당 실험은 단계별로 매우 상세하게 진행된 듯했다.
‘그런데 영상의 기온에서도 실험했으면서, 무슨 내한성 실험이지……?’
전 연구자인 장목화가 보기엔 해당 실험의 방안이 목적에 부합하지 않아 보였다. 회사에서 정말로 얻으려던 데이터는 내한성이 아닌 것 같았다.
잠시 망설이던 장목화가 물었다.
“신체검사에는 어떤 항목들이 있었습니까?”
노인은 진지하게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어디든 다 검사했지. 머리, 목, 가슴, 배, 손발⋯⋯.”
노인을 보며 용여홍은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래선 구체적으로 어떤 데이터를 수집하려 했는지 파악할 수 없겠는데.’
그리고 성건우의 관심은 언제나처럼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
“가장 인상 깊게 남은 검사는요?”
조 노인은 그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검사는 다 똑같지 않나? 내가 기억하는 건 그 간이 건물이 비교적 좀 추운 편이었다는 것뿐이야.”
짝짝짝!
성건우가 마치 ‘가장 인상 깊게 남은 것은 추위’라는 말을 기다렸다는 듯 만족한 얼굴로 손뼉을 쳤다.
조 노인은 당연히 그 뜬금없는 반응에 흠칫 놀랐고, 옆에 있던 촌장도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워했다.
속으로 한숨을 내쉰 장목화는 바로 수습에 나섰다.
“이 친구는 워낙 농담하는 걸 좋아합니다. 그래서 때론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기도 하고, 기이한 행동들을 하기도 합니다.”
조 노인이 깨달음을 얻은 듯 말을 받았다.
“아⋯⋯. 당시 지원자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지.”
성건우가 다급하게 물었다.
“설마 제 이복, 혹은 이부 형제인 건 아닐까요? 그 사람은 어떻게 됐죠?”
조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모르겠군. 그자는 다른 거점 사람이었거든. 처음에는 꽤 조용한 편이었는데, 갈수록 농담하기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더라고. 그 후 실험이 끝나고 마을로 돌아오면서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게 됐고.”
“환경에 좀 적응한 후에야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성건우는 그 마음을 잘 안다는 듯한 투로 답했다.
장목화는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가 이 증언을 머릿속에 잘 새겨두었다.
“그 실험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은 몇이나 되나요?”
다시 이어진 장목화의 질문에, 조 노인은 손가락을 꼽아가며 답했다.
“6, 7할은 되지, 아마? 간사는 원래부터 사망자가 적은 실험이라 그랬어. 안 그럼 각 거점에서 그렇게나 많이 몰려들지도 않았을 거고, 겉보기에는 괜찮아 보여도 실제로는 허약했던 지원자 중에 사망자가 겨우 3, 4할에 그치지는 않았을 거야.
휴, 그래도 생존자 대부분은 각종 동상에 걸렸고, 추위 때문에 머리에 이상이 생기면서 미쳐버린 사람도 있지.”
추위 때문에 머리에 이상이 생겼다고?
그런 일을 경험해 본 적도 없고 자료로 접해본 적도 없어서 장목화는 그게 과연 정상적인 상황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이에 그녀는 고개를 틀어 게네바를 바라보았다.
가운을 걸치고 후드를 뒤집어쓴 게네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신의 데이터베이스에도 그와 관련한 지식은 없다는 뜻이었다.
장목화는 더 이상의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호기심을 과하게 드러낼 경우 타인의 의심을 사기도 쉬웠다. 무엇보다 조 노인이 아는 것이 그렇게 많아 보이진 않아서 더 물어도 다른 답이 나올 것 같진 않았다.
“지원자가 되는 건 아주 수고로운 일이죠. 당시를 생각하면 저도⋯⋯.”
이어, 과거를 공유하려던 성건우는 장목화가 잡아당긴 팔에 강제로 말을 멈췄다. 그렇게 그가 남긴 공백은 장목화가 바로 메웠다.
“좋아, 이만 들어가서 물자를 고르자고.”
눈치가 빠른 촌장은 곧장 조 노인을 향해 말했다.
“문을 열게. 내가 귀빈들을 안내하도록 하지.”
조 노인이 창고 문을 여는 사이, 장목화는 짐짓 여유로운 말투로 촌장에게 전에 못다 한 이야기를 꺼냈다.
“지지난 주에 빙원으로 간 회사의 과학 연구팀의 규모는 컸습니까?”
촌장은 덤덤하게 답했다.
“안 컸어. 스무 명 정도 되는 사람이 차 대여섯 대를 타고 왔었지. 그중 절반은 지원자로 보였고. 자네들과 비교하자면 꽤 큰 규모였지만.”
말을 마친 촌장이 멋쩍게 웃었다.
장목화도 웃으며 화제를 전환했다.
“그들은 이 마을에서 며칠이나 머무른 겁니까?”
“사나흘 정도? 그래, 나흘 좀 안 되는 때에 갔어.”
촌장은 기억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답이 더 또렷해졌다.
그때, 이미 열린 문을 보고 촌장이 구조팀을 창고 안으로 안내했다.
“음, 빙원으로 갔으니 그 사람들도 물자를 적잖게 보충했겠죠?”
장목화가 말했다.
촌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행히 그들이 몰고 온 차중 절반은 각종 기계, 아, 기구로 차 있었어.”
순간 장목화의 얼굴에 호기심이 떠올랐다.
“무슨 차였길래 그렇게나 많은 기구를 실었대요?”
“평범한 SUV였어. 트렁크가 개조돼 있더라고.”
그 과학 연구팀에 관한, 기밀 사항에 연루되지는 않은 질문 몇 가지를 더 던진 장목화는 그 모든 질문에 만족스러운 답을 얻었다.
이후 구조팀은 그들의 수요에 맞게 물자를 고르기 시작했다.
물자들을 창고 밖으로 가지고 나와 지프에 실은 장목화는 촌장이 건넨 장부를 한번 확인한 뒤 자신의 전자카드로 공헌 점수를 지불했다.
* * *
곧 있으면 정오가 되는 시간이었다.
장목화는 팀원들을 데리고 절벽 마을 안을 거닐었다.
주민 대부분은 농사로 바빴다. 집에 남은 소수 중 더러는 아이를 보며 바느질을 했고, 또 더러는 마을 사무소 내에서 각기 다른 일들을 처리했다.
또 한 가지 공통점은, 모두가 구조팀에게 호의적이고 열정적이었다. 구조팀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고 싶어 하는 주민도 심심찮게 만났다.
촌장보다 나이가 많은 한 할머니는 창가에서 햇볕을 쬐다 근처를 지나는 구조팀을 보고 황급히 밖으로 나오기도 했다.
“젊은이들, 점심은 우리 집에 와서 먹으라고!”
“저희도 할머님을 회사에 들일 수는 없습니다!”
장목화가 미처 대꾸하기도 전에 성건우가 먼저 나섰다.
흠칫 놀랐던 할머니는 바로 웃으며 답했다.
“다 늙어빠진 내가 어떻게 감히 회사에 들어갈 생각을 하겠어? 그냥 회사 사람들을 보기만 해도 기뻐서 그러는 거야.
당시 회사가 우리를 받아주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길을 내주지 않았다면 내가 아이들을 낳고 키울 수 있었겠니? 이 나이까지 살 수 있었겠어? 이제는 더 이상 밖으로 나가서 일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니까!”
장목화는 옆으로 한발 나가 성건우의 앞을 막고 웃었다.
“마음만 잘 받겠습니다. 저희는 정오에 할 일이 따로 있어서요.”
촌장 가족만큼 부유하지도 않은 사람의 집에 불쑥 들어가 공밥을 얻어먹을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아쉬운 듯 손을 휘휘 흔들었다.
“나중에 기회 되면 꼭 우리 집에 와서 밥 먹어!”
구조팀도 분분히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 할머니 집에서 어느 정도 멀어진 후, 용여홍이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회사는 이곳에서 정말로 존경받고 환영받네⋯⋯.”
예전이라면 자신이 그 반고 바이오 직원이란 것에 자부심도 생기고 뿌듯했겠지만, 지금의 용여홍은 그 사실을 생각하기만 해도 불안하고 서글퍼졌다.
이내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목적이 무엇이든 절벽 마을 주민들에게 회사는 상당한 도움을 베풀었고 실질적인 이득도, 분명한 희망도 안겨줬어.”
“맞아요.”
백새벽이 동조했다.
이번에 일부러 해자 마을 쪽으로 돌아온 구조팀은 그곳도 전과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을, 점차 활기차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바 있었다.
솔직한 게네바가 분석에 나섰다.
“혼란의 시대와 신력 초기의 상황이 대부분의 거점에겐 악몽과 같아서 그럴 거야. 당시의 삶은 지옥과도 다름이 없었지.”
현재와 대비되는 과거가 있기에 더욱 고마워할 거라는 뜻이었다.
장목화는 저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겐, 이런 타이밍에 꼭 그렇게 심각할 필요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