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750
750화. 아침 기도
다음 날 오전.
재차 차를 몰고 절벽 마을을 떠난 구조팀은 골짜기 마을로 향했다.
도살된 양과 소의 피 냄새가 아직도 이곳 공기 중에 섞여 있었다.
그래도 길바닥의 피는 길어온 개울물에 나름대로 깨끗하게 씻겨나갔지만, 작은 벌레들은 여전히 그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벌레는 용여홍이 잘 아는 파리나 모기가 아니었다. 이 계절에, 특히나 빙원 근처인 이곳에 있을 리가 만무한 생물이었다.
용여홍은 저 벌레들이 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변이로 인해 탄생한, 추위에 강한 날벌레겠거니 생각할 뿐이었다.
긴 다리로 작은 광장과 주위 길거리에 세워진 차량 사이를 능숙하게 누비던 성건우는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하 씨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 그가 불쑥 입을 열었다.
“맛있는 냄새⋯⋯.”
용여홍은 무의식적으로 코를 벌름거렸다. 성건우의 말대로 옅은 피 냄새 사이에 고기 굽는 냄새가 섞여 있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이렇게나 기름진 음식을 먹다니, 안 될 일이지!”
성건우는 원통스럽다는 듯 한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쪽에서는 엔드이어 시티 사람 몇몇이 어제저녁 피우고 남은 모닥불에 돼지고기 몇 점을 굽고 있었다.
아무 양념도 하지 않은 고기에는 소금과 골짜기 특산품 일종인 식물의 분말만 뿌려져 있었다. 하지만 고기 본연의 냄새만으로도 매우 유혹적이었다.
이내 근처에 들러붙은 성건우는 몸에 그다지 좋지 않은 음식을 비판하려는 듯 진지하게 얼굴을 굳혔다.
“내가 뭘 주면 한 점 얻어먹을 수 있을까?”
“옷!”
“에너지바.”
“무기.”
엔드이어 시티 청년 셋은 각각 다른 답을 내놓았다.
그들은 모피를 주로 생산했지만 기후가 워낙 온화한 골짜기는 겨울이 아닐 땐 보통 남쪽 날씨랑 비슷해서 그렇게까지 두꺼운 옷은 필요가 없었다.
성건우는 물 흐르듯 에너지바 두 개를 꺼내더니 큼지막한 고기 한 조각과 바꿨다. 그 자리에서 허겁지겁 고기를 먹는 동안 성건우의 입이 기름에 번쩍거렸다.
용여홍은 못 참겠다는 듯 침을 삼킨 후 곁의 백새벽을 돌아보았다.
“먹고 싶어?”
“아침 먹은 지 얼마 안 됐잖아. 넌 가서 한 점 맛이나 봐.”
백새벽이 별생각 없어 보이자, 용여홍도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최근 먹은 몇 끼가 다 고기 요리였잖아.”
마침내 고기 한 점을 먹어 치운 성건우가 이 틈에 엔드이어 시티 청년들에게 물었다.
“하 씨는?”
방금 그의 에너지바를 받은 청년이 광장 안쪽의 차 한 대를 가리켰다.
“하 씨, 지금 아침 기도 중이야. 그들이 믿는 진리는 사람을 그렇게 성가시게 한다니까? 우리는 매해 마지막 날에만 대미사를 드리고, 그 외에는 기도하고 싶을 때만 하면 되는데.”
그 말에 용여홍은 뭔가 친근감을 느꼈다.
‘빅보스가 신도한테 가지는 태도랑 꽤 부합하네.’
그 사이 장목화가 나서서 성건우를 가리켰다.
“우리 동료도 사명을 믿어. 근데 너희랑은 또 달라.”
성건우가 바로 신나서 말했다.
“맞아, 맞아! 우린 새 생명이 탄생했을 때랑 한 생명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만 각각 만월례와 장례를 치르고 그 외에는 모든 걸 간략하게 진행해. 매일 아침 일어났을 때 달지기가 아직 날 살아있게 함에 감사할 뿐이야. 또 좀 정기적으로 인도자한테 소집돼서 설교 한 차례 듣고 성찬을 먹고.”
끝으로 그가 손을 들어 입을 훔쳐냈다. 상대가 자신을 이단으로 여기며 질책할 것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이내 조금 전에 대답한, 부스스한 머리에 비교적 하얀 피부, 옅은 갈색 눈동자를 가진 청년이 부럽다는 표정을 보였다.
“우리는 대미사를 치를 때만 성찬을 먹는데.”
“너희 성찬은 뭔데?”
성건우가 재빨리 물었다.
청년은 아직 거래가 안 된 소량의 소, 양, 돼지를 가리켰다.
“도살한 각종 짐승. 끝은 사명에게로 돌아간다는 의미야. 각 부위로 다양한 음식들을 만드는데, 그중에 가장 귀중한 건 각종 피랑 관련된 음식이야. 휴, 근데 안타깝게도 이번에 우리가 가지고 나온 음식은 남쪽에서 다 팔려버렸어. 안 그럼 너한테도 맛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사명을 믿는 성건우를 열정적으로 대했다.
“부위별로 다양한 음식을 만든다고? 어디서 들어봤던 것 같은데⋯⋯.”
장목화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게네바는 대답하려다 지능 로봇이란 사실을 들킬까 바로 스피커를 껐다.
이후 장목화는 금세 기억을 떠올렸다.
“아, 타르난에서 들어봤었구나. 고 회장의 고향에서는 돼지를 잡는 풍습이 있다 했지. 그 조리법을 타르난으로 가지고 들어왔다고 했었어.”
성건우가 주먹 쥔 오른손으로 왼손 손바닥을 쳤다.
“맞아! 우리한테 돼지를 잡아주겠다고도 했었어요! 그러고 보니까 주 관주가 아직 우리한테 돼지 한 마리 빚진 게 있네요.”
그는 그 사실을 도무지 잊질 못했다.
“주 관주가 빚진 건 아니지.”
장목화가 무심하게 대꾸했다.
엔드이어 시티의 청년은 멍한 얼굴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문득 깨달은 듯 입을 열었다.
“우리 대미사에서도 돼지를 잡아. 너희들이 말한 고 회장이라는 사람, 아마도 구세계의 북쪽 어느 지역 출신이거나 그 사람들의 후손일 거야. 우리 엔드이어 시티에도 그런 사람이 꽤 많아.”
그도 그 지역이 어느 구역에 있는지는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이는 그가 그들의 후손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고, 현재 빙원은 이미 상당히 넓은 부분을 점거한 터라 구세계 지도와 비교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름이 어떻게 돼? 나중에 엔드이어 시티에 방문하게 되면 널 찾아서 너희 대미사에 참석하려고. 같은 사명의 신도끼리 등한시하지 않겠지?”
돼지를 잡는다는 이야기에 성건우는 두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는 아직은 사유 유도를 사용하지 않았다. 장목화의 의견에 따라 일단은 정상적인 대화 과정에서 어디까지 물을 수 있을지 확인할 생각이었다.
엔드이어 시티 청년은 그 말에 진심으로 감명받은 듯 웃으며 답했다.
“내 이름은 이천량이야. 천성이 선량하다는 뜻이지. 어, 우리 엔드이어 시티에서는 외부인은 접대하지 않아. 우리의 구체적인 위치가 새어나가는 걸 방지하려고. 너희가 어느 장로의 초대를 받지 않는 이상에는 그래.”
성건우는 매우 실망스러워했다.
“아아⋯⋯. 하 씨도 장로야?”
“아니.”
이천량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가 같은 사명을 믿는 조직 사이에 왜 의식과 성찬이 다르냐는 질문이 떠올라 다시금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 엔드이어 시티는 엔드이어 교단 위주로 건립된 곳이야. 너희는 아마 달지기를 믿는 다른 교파에 속해 있겠지. 에버나이트 교단이야? 아니면 일몰 교파? 생명 제례?”
“생명 제례.”
성건우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을 했다.
이천량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후 그와 몇 마디 이야기를 더 나눈 뒤 구조팀은 광장 안으로 향했다.
* * *
하 씨는 오늘도 곰 가죽 코트 차림에 군용 자동차 보조석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차 앞에 선 구조팀은 서로를 돌아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진리가 말인이 아니란 추측에 더 무게가 실린 것이었다.
반 지성교는 줄곧 ‘지식은 독약이며 사고는 함정’이라고 외쳐댔었다. 그런 사람들이 신도가 아침 기도 중에 경문을 읽도록 뒀을 리가 없었다.
설령 말인의 또 다른 교파에 속해 있다 한들 비슷한 상징을 쓰는 그들이 정반대의 모습을 보일 리도 없었다.
구조팀은 잠시 서서 하 씨가 아침 기도를 마치고 책을 덮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장목화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차 안을 훑어보고 있는데, 문득 ‘대학 물리’라는 네 글자를 발견했다.
‘대학 물리?’
식견이 넓은 장목화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성건우는 의혹을 그대로 드러냈다.
“물리?”
하 씨가 고개를 들고 미소를 보였다.
“물리란 사물의 도리이자, 세계의 진리, 우리 주님의 구현이지. 물론 인간이 책으로 쓴 물리는 진리에 가까운 것일 뿐, 진리는 아니라 일정한 허점이 있을 수밖에 없어. 그래서 수시로 뒤엎고 수정해야 해. 전에는 이런 적도 있었어. 내가 본 어느 물리학 총론에⋯⋯.”
용여홍이 한참 대학교 물리 수업을 들던 때의 무력감을 떠올리던 그때, 돌연 성건우가 하 씨의 말을 끊었다.
“목걸이에 걸린 사람 인형과는 전혀 다르네. 이목구비가 없는 펜던트는 보지 말고, 듣지 말고, 맡지 말고, 묻지 말고, 그저 명령에만 따르는 말인을 상징하잖아.”
하 씨는 약간 화가 난 듯 대꾸했다.
“그건 이교도들의 해석이지! 이 상징의 진정한 의미는 인간의 눈, 코, 귀, 입, 눈썹 중 어느 것도 머리만큼 중요하지는 않다는 뜻이라고!”
그리고 냅다 차에서 내린 그는 손가락을 하나씩 뻗어 머리 양옆을 누르곤 목소리를 높였다.
“진리는 우리 머릿속에 있다!”
성건우는 고개를 돌려 장목화를 바라보았다.
“제 생각에 팀장님은 진리를 믿어야 할 것 같아요.”
장목화가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 어디서 탄생했을지도 모를 가짜 신을 믿겠어?’
그러나 그녀는 진리를 믿고, 말인 영역 각성자로 의심되는 하 씨가 소리소문없이 본인 기억을 열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억지로 딴 생각을 했다.
호응받지 못한 성건우는 다시 하 씨에게 시선을 돌렸다.
“상당히 훌륭한 교리네. 생명을 중시하고 아이를 사랑한다는 우리의 이념과 필적할 정도로.”
“너 생명 제례 교단이냐?”
하 씨의 물음에, 성급한 성건우가 내뱉듯 말했다.
“이제 안 거야? 아직 우리 기억을 안 뒤져봤구나?”
너무 빠르게 튀어나온 말이라 장목화가 미처 막을 새도 없었다.
성급한 그 덕분에 이곳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썰렁해졌다.
몇 초 후, 하 씨가 헛기침을 두어 번 하며 입을 열었다.
“기억을 뒤져보는 건 비도덕적이지. 엄청 위험하기도 하고. 넌 지금 네가 마주한 사람이 전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 영원히 모를 거다.
만약 내가 한 사람을 보자마자 그 기억을 읽을 수 있었다면, 일찍이 고위급 존재와 연루된 내용으로 인해 그 자리에서 미쳐버리거나 죽었을 거야.
진리는 우리에게 누군가 심연을 응시하면, 심연도 그를 응시한다고 알려주셨어. 그러니 능력을 남용하면 안 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굴어야지. 난 일반적인 상황에서 상대한테 악의가 있는지 없는지 간단히 파악할 수 있어.”
짝! 짝! 짝!
성건우가 손뼉을 쳤다.
“진리는 과연 진리네. 사실 그건 애쉬랜드인 속담을 통해서도 충분히 설명 가능한 얘기야. 강가에 서 있는 이상 신발이 젖지 않을 순 없지.”
‘반 지성교랑은 전혀 다른 스타일이네. 사실이야, 정말로 우리 기억을 열람하려 했다면 당신한테는 분명 문제가 생겼을 테니까.’
장목화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팀원들에게 하 씨를 마주하는 동안 수시로 에이돌른의 주시와 장생의 꿈을 떠올리라고 지시한 바 있었다.
또한 이들에게는 게네바라는 보험도 있었다.
하 씨가 웃으며 말했다.
“난 진리의 가르침을 인용하는 데 습관이 돼 있어서 말이야.”
장목화가 기세를 몰아 말했다.
“당신처럼 진리를 믿는 사람들과 사명 신도는 꽤 잘 지낼 것 같네.”
하 씨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부하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엔드이어 시티가 건립됐을 당시, 우리 진리 신도들은 적잖은 힘을 들였고 달지기 사명은 우리한테 굉장히 우호적으로 굴었어.”
용여홍은 그의 말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를 포착해냈다.
‘엔드이어 시티 건립 당시부터 진리가 있었다고? 꽤 오래된 존재였네.’
구조팀이 전에 교류한 엔드이어 시티 사람들 이야기에 따르면 그 거점이 정식적으로 건립된 것은 혼란의 시대 중기였다. 반고 바이오보다 그다지 늦지 않은 시기에 형성된 셈이었다.
언제나처럼 다른 부분에 집중한 성건우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달지기의 우호적인 태도도 느낄 수 있어?”
생명 제례 교단 신도이자 반고 바이오 직원인 그도 억지로 지하 빌딩 최하층에 난입했을 때야 빅보스의 주시를 한번 느껴보았을 뿐이었다.
하마터면 성건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뻔했던 하 씨는 한참 뒤에야 그 뜻을 알아차렸다.
“달지기 사명의 우호적인 태도는 엔드이어 교단 장로들을 통해 구현됐어.”
“그렇구나⋯⋯. 그 사람들은 총 몇 명인데?”
성건우가 궁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 씨는 그를 한 번 살핀 뒤 모호하게 답했다.
“적지는 않아.”
장목화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화제를 전환했다.
“엔드이어 시티는 사명에 대한 신앙이 주류지?”
“맞아. 8할 정도는 그래. 못 믿겠으면 저쪽에 가서 물어봐도 돼.”
솔직하게 부인하는 것 없이 대략적인 수치까지 제시한 하 씨는 주변 차량 옆에 있는 부하들을 가리켰다.
“좋아!”
성건우가 곧장 응했다.
구조팀은 원래부터 엔드이어 시티의 여러 사람과 접촉하고 상응하는 정보를 모을 계획이었다. 이 적절한 구실과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