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751
751화. 과학 연구팀
구조팀이 탐문을 마치고 절벽 마을로 돌아간 것은 거의 정오 무렵이었다.
때맞춰 미리 주문해둔 점심밥과 함께 촌장이 찾아왔다.
“얼마 전 빙원으로 갔던 그 과학 연구팀이 곧 돌아온다던데. 저녁쯤 도착할 것 같은데 가서 인사라도 하겠나?”
촌장은 이 사실을 통보하기 위해 온 듯했다.
용여홍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이렇게 빨리요?”
구조팀이 예측한 그들의 도착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정도 후였다.
떠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빨리 돌아온다는 걸까?
촌장이 웃으며 설명했다.
“그들이 보낸 전보에, 변고가 있어서 예정보다 일찍 귀로에 올랐다고 우리한테 물자를 잘 좀 준비해놓으라고 하더라고.”
“변고요?”
장목화는 의혹을 숨기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나도 모르겠어. 저녁에 한번 직접 물어봐.”
촌장은 자신에게 반고 바이오 직원에게 꼬치꼬치 따져 물을 권한이 어디 있겠냐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네, 그러죠.”
장목화가 답했다.
* * *
과학 연구팀을 기다리려고 구조팀은 오후 내내 절벽 마을에만 있었다. 골짜기 마을로 가 엔드이어 시티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지도 않았다.
그리고 저녁 무렵, 북쪽에서 차량 대여섯 대가 다가왔다.
차는 온통 지저분했다. 비를 흠뻑 맞고도 얼룩을 닦아내지 못한 듯했다.
그들이 근처에 이르자 백새벽은 예리하게도 차 표면에 쌓였다가 얼어붙은 소량의 눈송이를 발견해냈다.
절벽 마을 일대의 온도는 그다지 높지 않은 편이라 얼음이 녹는 속도는 상당히 느렸다.
빠르게 검사를 통과하고 카드를 긁은 뒤 절벽 마을에 진입한 그들은 마을 사무소 전방의 작은 광장 한쪽에 차를 세웠다.
시선을 거둔 장목화는 웃으며 팀원들을 돌아보았다.
“가자, 내려가서 동료들과 인사해야지.”
성건우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동향끼리 만나면 눈물이 날 것 같은데요.”
‘진짜 동향을 만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하네.’
속마음과는 달리, 용여홍은 본인 입장을 고려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 *
게네바는 방에 남고, 구조팀 네 사람은 마을 사무소 홀로 내려갔다.
그곳에 두꺼운 옷차림을 한, 약 스무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다들 촌장이 방을 배정해주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중 대여섯은 지위가 한참 낮은지, 가장자리와 구석으로 물러나서는 아무 말도 없이 침묵만 유지하고 있었다.
이때 한 마흔 살 정도 돼 보이는, 흰머리가 조금 난 남자가 외쳤다.
“촌장님, 빨리요! 다들 따뜻한 물에 씻을 생각뿐이라고요. 오전에 미리 준비 좀 해달라고 전보를 보내지 않았습니까?”
남자는 어느 정도 유전자 개량을 한 것은 분명했으나 그다지 좋은 효과를 보지는 못한 듯했다. 원래는 꽤 괜찮았을 생김새는 갈수록 쳐지는 뺨의 근육 때문에 약간 인색해 보였다.
촌장이 비위를 맞추기 위해 웃으며 말했다.
“서 연구자, 안 그래도 지금 열쇠를 나눠주고 바로 올라가려고 하고 있잖아. 아, 맞아. 장 팀장, 이쪽은 내가 전에 얘기한 서 연구자야.
서 연구자, 이쪽은 얼마 전에 회사에서 온 장 팀장이야. 이 사람들도 빙원으로 임무를 수행하러 간다고 하네.”
장목화가 웃으며 그쪽으로 다가갔다.
“서 연구자, 장목화입니다.”
흠칫 놀란 듯하던 서 연구자의 얼굴에 점차 웃음이 피어났다.
“장문봉 딸?”
반고 바이오 연구진들 사이엔 장목화보다 장문봉이 훨씬 더 유명했다.
딸 장목화의 이야기는 대부분,
‘아아, 그 예쁘고, 키 크고, 성적도 좋은 딸? 귀에 좀 문제가 있다지?’
이렇게 귀결되었다. 최근엔 새로운 이야기도 붙은 모양이었다.
‘스물다섯 살밖에 안 됐는데 곧 관리층으로 승급할 예정이래.’
장목화는 유리한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려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서 삼촌, 안 그래도 회사에서 나오기 전에 아버지가 이번에 빙원으로 가면 아버지가 잘 아시는 분을 만날 수도 있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서 연구자는 이 상황을 매우 기뻐했다. 관리층이 아닌 데도 장목화가 그를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지위에 놓고 대접해줬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이내 그는 곧장 과학 연구팀원들과 지원자들에게 지시했다.
“너희는 촌장님을 따라 올라가.”
홀 안의 사람들이 거의 다 빠져나가자 장목화가 질문을 던졌다.
“서 삼촌, 근데 들어보니까 이번에 무슨 변고가 있었다면서요?”
서 연구자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극단적인 날씨야 빙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니까 너희도 조심해야 해. 갑자기 엄청난 눈보라가 몰아치더라고. 차 밖에 있던 지원자들은 구할 수도 없었어. 물자의 손실이나 지원자 인원을 고려해서 예정보다 일찍 돌아올 수밖에 없었지.”
장목화도 안타까운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빙원은 정말 위험한 곳이네요. 서 삼촌, 이번에는 어떤 실험을 하러 가셨던 건가요? 하하, 기밀 사항과 연관된 일이면 못 들은 걸로 해주시고요.”
서 연구자는 크게 신경 쓸 것 없다는 듯 답했다.
“그 한랭한 환경이 인간의 체격과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는 실험이었지.”
순간 성건우가 냅다 끼어들었다.
“그 실험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서 연구자가 웃었다.
“의미가 없을 수 있나? 훗날 우리는 내한 유전자 개조를 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는데. 회사는 인간 진화에 대한 탐색을 한시도 멈춘 적이 없어.”
“하지만 그건 내한 유전자와는 아무 관계도 없잖아요.”
장목화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대꾸했다.
이 실험은 추위를 견디는 능력이 높은 사람을 선별해서 내한 유전자를 찾는 것도 아니었다.
서 연구자가 손을 펼쳐 보였다.
“그건 이사회에 물어봐야지. 난 그냥 연구 진행을 담당할 뿐이니까.”
뒤이어 그는 목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말했다.
“난 먼저 돌아가서 쉬어야겠네. 저녁 식사 시간에 마저 이야기하자고.”
장목화가 막 알겠다고 답하려던 그때, 성건우가 불쑥 물었다.
“연구자로서 이 실험에 대한 본인만의 추측 같은 것도 없으십니까?”
서 연구자는 성건우를 멀뚱하게 쳐다보았다. 너는 누군데 그런 질문을 하냐는 눈빛이었다.
이에 성건우가 웃으며 덧붙였다.
“저도 반고 바이오 직원입니다. 장 팀장님 부하 직원으로, 과학 연구에 엄청난 관심을 갖고 있거든요.”
서 연구자의 눈빛이 조금씩 아득해졌다.
“오래전부터 난, 개인적으로 회사가 질적으로 변한 몸을 가진 신인류를 원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해왔어. 그보단 신인류의 정신을 강인하게 만들려는 것 같아. 그건 후천적인 환경이나 경험과도 일정 관련이 있지.”
강인한 정신⋯⋯.
그 말에 구조팀원들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건 그들이 전에 했던 추측과도 어느 정도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빅보스가 반고 바이오를 건립하고 유전자 기술의 발전을 회사 주요 목표로 삼은 건, 자신이 애쉬랜드에 강림할 때 쓸 완벽한 신체를 준비하려는 건지도 모른다는 것.
지금 보니 완벽한 신체에 강인한 정신까지 갖춰져야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달지기의 강림을 감당할 때 무심병 등의 여러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듯했다.
짝짝짝!
성건우가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
“과연 최고급 연구자답게 생각에 트여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를 보면 열을 아시는군요.”
서 연구자는 이 칭찬이 진심에서 나오는 건지, 아니면 그냥 자신을 놀리려고 한 말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의 눈치를 보고, 장목화가 성건우를 도와 해명에 나섰다.
“이 친구는 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솔직하게 해버리는 성격이에요. 완곡한 표현이란 걸 해본 적도 없어요.”
그제야 서 연구자도 웃음을 보였다.
“하지만 그런 칭찬은⋯⋯.”
그는 말도 채 맺지 못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성건우가 등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같은 진영의 친한 전우였다면 그냥 거리낌 없이 웃고 말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직접적이라 외려 당황하게 되는 칭찬이었다.
* * *
저녁 식사 시간.
구조팀은 각자 기회를 노려 과학 연구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정보를 얻었다. 그 내용은 서 연구자의 진술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지원자들이 시종일관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건, 눈보라 속의 실험품들이 얼마나 나약한지 직접 목격하고 다가올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며 슬퍼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 실험에 지원한 지원자들은 각자 다른 대가를 약속받고, 많건 적건 마음의 준비도 다 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 아니던가.
무사히 살아서 집으로 돌아간 지원자도 적지 않은 만큼, 그들은 자신도 어쩌면 그중 한 명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 *
장목화, 성건우의 방으로 들어온 용여홍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실험 항목과 구체적인 과정은 이미 명명백백하게 확인됐어요. 지금으로선 아무 문제도 없어 보여요. 과학 연구팀이 아는 건 이미 다 캐냈을 거예요.”
그의 말은 더는 그 과학 연구팀과 얽혀봤자 별도의 수확이 없으리란 뜻이었다. 그들은 그저 상부의 지시에 따라 상응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팀일 뿐이었다.
장목화가 말을 받았다.
“음, 실험 자체보다는 서 연구자의 추측이 오히려 더 가치가 있어.”
구조팀도 전부터 한랭한 환경이 인간의 체격과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는 실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이때 성건우가 돌연 한숨을 내쉬었다.
“불쌍해⋯⋯.”
솔직한 게네바가 그를 쳐다보았다.
“누가 불쌍하다는 거냐?”
성건우는 가련한 표정을 하고 답했다.
“빅보스가 애쉬랜드에 강림할 때 쓰기 위해 준비된 그 완벽한 신체.”
“그게 왜?”
이번엔 용여홍이 의혹을 느꼈다.
하지만 장목화, 백새벽은 성건우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대충 짐작이 가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성건우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용여홍과 게네바에게 말했다.
“완벽한 신체에 강인한 정신까지 갖춘 존재, 그건 태아는 아닐 거잖아. 생각해봐, 신체가 완벽하게 자라나 강인한 정신을 갖게 되면 그건 살아있는 한 사람이 되잖아.
희로애락의 감정이 있고, 과거가 있고, 기억이 있고, 본인 고유의 특성이 있는 한 사람.
근데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에게 너는 사실 달지기를 위한 존재이니, 이제부터는 네가 원하든 원치 않든 스스로를 희생해 달지기의 강림체가 돼야 한다는 통지를 받아. 그 얼마나 불쌍해.”
용여홍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성건우를 바라보다가 그는 순간 살짝 자괴감을 느꼈다.
이런 가능성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용여홍은 늘 그 강림체에 공감하길 거부했었다.
무의식적으로 반고 바이오의 무탈을 위해서라면, 지하 빌딩 내 모든 직원의 영구한 안녕을 위해서라면, 그러한 목적을 가지고 배양된 실험품 하나야 얼마든 희생시킬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성건우는 그러지 않았다.
“확실히 불쌍하네.”
솔직한 게네바는 성건우의 말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았다.
장목화도 동조했다.
“그러게. 그래도 일단은 우리가 한 추측 중 하나일 뿐이니까 그런 걸로 심리적인 부담을 느끼진 말자.”
이후 그녀는 팀원들에게 각자 방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라고 했다.
내일도 계속해서 엔드이어 시티의 사람들을 만날 예정이었다.
* * *
씻고 나와서 이야기를 나누던 장목화, 성건우는 각자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장목화는 성건우가 다시 또 방금의 화제를 꺼내지 않도록, 먼저 나서서 다른 주제를 꺼냈다.
“다른 방을 탐색하면서 신세계로 통하는 대문이 있는지 찾아봐.”
역시 장목화의 예상은 정확했다.
바로 그쪽에 정신이 쏠린 성건우는 신난 듯 손을 들고 양쪽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더니 바로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