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775
775화. 실마리
장목화는 계속해서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리고 게스트 보루에는 물자 수집을 주목적으로 하는 제8 연구원 사람이 숨어 있고, 제8 연구원 본부 역시 분명 빙원의 모처에 있지.”
게네바가 붉은 눈빛을 번득였다.
“이럴 가능성도 있다. 그 고행승은 원래 누군가와 게스트 보루에서 만나기로 했고, 그래서 기후가 극한인 이곳에 한동안 머물며 병증이 악화된 거지.”
성건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그 사람, 혹은 그 세력은 왜 굳이 게스트 보루에서 한 걸까요?”
그 질문에 답한 이는 없었지만 모든 이들의 머릿속과 메인 모듈 속에는 동시에 한 가지 단어가 떠올랐다.
제8 연구원.
성건우는 짧은 침묵에 개의치 않고 신난 듯 얘기를 지어내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 고행승이 속한 세력은 보리 불상 때문에 다른 세력한테 파괴됐을지 몰라요. 이에 고행승은 불보를 챙겨 병든 몸을 이끌고 먼 길을 걸어가 게스트 보루에 도착했죠. 그렇게 자기를 비호해 줄 어떤 사람, 혹은 어떤 세력을 찾다가 끝내 버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거죠.
아니면 소속된 세력을 배신하고 보리 불상을 훔친 고행승이 어딘가로 가서 어떤 일을 완수하려다가 날씨 때문에 게스트 보루에 갇힌 이후 하루하루 악화되는 병증에 죽음을 맞이한 것일 수도 있고요.
그렇다면 의뢰인이 사건이 발생한 지 3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게스트 보루에서 그 불상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유도 설명되죠.”
짝! 짝! 짝!
성건우는 동료들의 호응을 기다리지 않고 자체적으로 박수 세례를 내렸다.
탁! 탁! 탁!
팀원 중, 참 예의가 바른 게네바만이 따라서 손뼉을 쳐주었다.
이내 장목화는 느릿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구세계 콘텐츠 너무 많이 본 거 아니냐⋯⋯? 네가 얘기한 건 무협 세계나 선협 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잖아.”
‘내가 보기엔 건우 말도 그럴듯하긴 한데. 어느 정도 가능성은 있어.’
물론 용여홍도 속으로만 중얼거렸지, 그 생각을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그 사이 장목화가 화제를 전환했다.
“하지만 그 두 가능성도 일종의 가설이긴 하지. 그걸 검증할 수 있는 흔적이 어느 정도 있을지도 모르고.”
“어떻게 검증해요?”
백새벽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장목화가 웃었다.
“사냥꾼 길드에 임무를 공포하면서 유적 사냥꾼들을 통해 게스트 보루에서 보리 불상을 찾으려는 의뢰인이라면 전에도 그 사람, 혹은 그들은 사냥꾼 길드에 그 고행승에 관한 실마리를 찾는 임무를 공포하지 않았을까?
그런 시도를 이삼 년간 해온 끝에 마침내 목표가 이곳 게스트 보루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거야.”
백새벽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냥꾼 길드로 가서 지난 3년간 공포된 임무 기록을 뒤져볼까요? 그건 다 기밀 사항일 텐데⋯⋯.”
그녀가 도중에 말을 흐린 건, 이미 게네바를 통해 현지 사냥꾼 길드 시스템을 해킹해 네 사람의 새로운 신분과 사냥꾼 등급을 수정하자고 얘기했던 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럴 수 있다면 전에 공포된 임무 기록을 살피는 건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게네바의 검색 실력은 구조팀의 네 탄소 기반인이 힘을 합쳐도 상대가 안 됐다. 그는 단 몇 초 만에 선별과 열람을 마칠 수 있었다. 심지어는 몇 초가 채 안 걸릴지도 몰랐다.
한 차례 토론을 더 거친 후, 구조팀은 보리 불상 사건을 조사할 기초적인 방안을 세웠다.
첫째로 해야 할 일은 중요 증인을 방문하고 상응하는 증거를 검사해 각성자 능력으로 그 고행승이 정말 병으로 죽은 게 맞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둘째는 사냥꾼 길드에서 과거의 임무 기록을 검색하는 것이었다.
고행승이 게스트 보루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의뢰는 분명 현지 사냥꾼 길드에 공포되었을 것이었다. 게다가 그 의뢰가 공포된 것은 얼마 전의 일이기도 할 것이었다. 심지어는 반년이 채 지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러지 않았다면 보리 불상 임무를 공포한 의뢰인은 진즉부터 고행승의 행방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세 번째로는 정보상과 수의적으로 고른 몇몇 게스트 보루 주민을 통해 최근 3년간 발생한, 전과 다른 이상 현상에 대해 파악해야 했다.
구조팀은 보리 불상이 이렇게나 중시되는 건 그 자체로 신비로운 데가 있기 때문이라 믿었다. 그걸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손에 들어갔다면 분명 재앙이나 기이한 일이 일어났을 것이었다.
네 번째는 자료에 근거해 고행승과 접촉했던 모든 이를 한 번씩 만나는 것이었다. 그 고행승이 커닝미스나 빙원의 모처에 대해 물은 적은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점이었다.
장목화가 이 절차를 맨 마지막으로 미룬 건, 이 일엔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 * *
구조팀이 계획을 다 수립했을 때 태양은 이미 하늘 정 가운데 떠 있었다. 그러나 노르스름하고 탁한 공기층 때문에 햇빛도 제 역할을 다하진 못했다.
성건우의 재촉에 여관을 떠난 구조팀은 먹을 것을 찾았다.
이따가 게네바와 사냥꾼 길드에 방문해야 한다는 것을 감안한 구조팀은 가깝고도 익숙한 미스터 헨리에 한 번 더 방문했다. 낯선 곳을 돌아다니다 뜻밖의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어제저녁 그들을 맡았던 갈색 머리 종업원은 구조팀을 보자마자 적극적으로 맞이하며 구석진 테이블로 안내했다.
주문한 음식을 잘 받아적은 직원이 돌연 목소리를 잔뜩 낮췄다.
“사냥꾼 길드에는 다녀오셨겠네요? 제가 아는 그 친구와 연결해줄까요?”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라던 바에요.”
일부 고성능 배터리 충전도 마쳐서, 그녀는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다.
물론 그 정보상과의 만남은 내일이나 모레쯤으로 정할 생각이었다. 그러는 편이 더 온당했다.
“그 친구는 어디 있습니까? 이름이 뭐죠?”
성건우가 주도적으로 나섰다.
갈색 머리 종업원은 아무 말도 없이 미소를 지으며 구조팀을 바라봤다.
장목화는 곧 예비용으로 가지고 있던 기사 은화 한 닢을 꺼냈다.
갈색 머리 종업원은 바로 은화를 받아들고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지티스라는 여자입니다. 불과 철 여관에서 일하고 있죠.”
순간 성건우의 얼굴에 아까워 죽겠다는 표정이 내걸렸다.
‘아, 기사 은화 괜히 줬네! 그 정보상은 우리도 이미 알고 있다고!’
갈색 머리 종업원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휴무이니 조금 기다리면 여기로 점심을 먹으러 올 겁니다. 그때 소개해드리죠.”
‘지티스는 소식도 밝고 칭송도 자자하네. 전혀 안 그래 보이는데.’
장목화가 속으로 감탄하던 그때, 그 프런트 여자 직원이 미스터 헨리 식당의 문을 열고 나타났다.
리넨 셔츠에 같은 색 긴 바지, 짙은 색 가죽 코트를 입고 검은 부츠를 신은 그녀는 여전히 벌꿀색 머리카락을 가볍게 틀어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식당 안으로 들어온 지티스는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주변 테이블에 몇 번이나 부딪혔다. 왠지 그 커다란 남회색 눈동자에 빛이 보이지 않았다.
‘상태가 엉망인데, 각성의 대가인가?’
장목화는 이제 이러한 상황에 가장 먼저 각성자 대가를 떠올렸다. 비정상적인 상황일수록 각성자와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 컸다.
이내 갈색 머리 종업원이 웃으며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지티스, 너를 찾는 사람이 있어.”
눈꺼풀을 들어 구조팀 쪽을 바라보던 지티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가까이 다가온 지티스가 약간 경계심 어린 어투로 물었따.
“뭘 알고 싶은데?”
순간 놀란 성건우가 내뱉듯 물었다.
“우리를 못 알아보는 거야?”
그의 얼굴에 억울함과 실망감이 어려 있었다.
잠시 기억을 더듬던 지티스는 마침내 그들을 떠올려 냈다.
“여관의 손님?”
왠지 그녀는 아침에 있었던 일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맞아. 지티스한테 의자 좀 하나 가져다줘.”
지티스에게 대답한 장목화가 갈색 머리 종업원에게 말했다.
곧이어 지티스가 자리에 앉고 종업원이 떠나자 성건우는 아버지의 사진을 불쑥 꺼내 정보상에게 건넸다.
“혹시 이 사람 알아? 12년 전에 이곳 게스트 보루에 왔을지도 몰라.”
성건우의 행동은 전에 몇 번이고 연습해보기라도 한 듯 너무나 돌발적이고 빨랐다. 장목화가 그를 미처 막을 틈조차 없었다.
지티스는 사진을 받아들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12년 전이라면 난 겨우 14살이었는데⋯⋯.”
그 순간, 움찔하던 그녀의 말투가 바뀌었다.
“이 애쉬랜드인⋯⋯.”
“봤어?”
순간 성건우의 눈동자가 미친 듯 떨렸다.
장목화, 용여홍, 백새벽 역시도 기쁨이 차올랐다.
이내 지티스는 구조팀을 바라보며 운을 뗐다.
“여기 게스트 보루에서 애쉬랜드인을 보긴 매우 힘들어. 가끔 오는 사람도 보통 서너 명으로 이뤄진 팀이지. 하지만 이 사람들은 차 몇 대에 나눠타고 왔어. 인원도 무려 10명이 넘었고. 그래서 어릴 때인데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 인상이 깊게 남아있어.”
성건우가 황급히 호응했다.
“그래, 그래, 그 팀 규모가 엄청 컸어!”
미간을 구긴 장목화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우리 레드리버인 눈에 애쉬랜드인은 대부분 비슷해 보이는데도 사진 속 이 사람의 생김새를 기억하고 있는 이유가 뭐야?”
지티스는 입을 벙긋거리며 몇 초나 머뭇거리다가 답했다.
“그게 내 천부적인 재능일지도 모르지. 안 그럼 나도 정보상으로 일하진 못했을 거야. 거리에서 한번 마주쳤을 뿐인 사람이라도 난 그 사람 생김새를 떠올릴 수 있거든.”
성실한 성건우가 즉시 지적했다.
“근데 넌 방금 하마터면 우리를 못 알아볼 뻔했잖아. 당장 오늘 아침에 이야기를 나누기까지 했는데!”
지티스의 말투가 차가워졌다.
“기억을 떠올린 후에는 알아봤잖아?”
‘확실히 좀 이상한 사람이네.’
장목화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녀는 성건우가 나서기 전에 지티스에게 물었다.
“사진 속 이 사람 팀이 게스트 보루에 와서 뭘 했는지 알아?”
지티스는 잠시 침묵했다.
“잘 몰라. 근데 너희들 대신 물어봐 줄 수는 있어. 어디 가서 물어봐야 하는지 알아.”
성건우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응했다.
“좋아!”
이내 약간 멍한 표정을 드러내는가 싶던 지티스가 침착하게 강조했다.
“찾아다니려면 꽤 오래 걸릴 텐데 난 헛수고하고 싶진 않아.”
이번엔 이쪽 방면의 일에 익숙한 백새벽이 나섰다.
“계약금을 원하는 거야?”
지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 은화 5개. 만약 정보를 얻지 못한다면 4개를 반환하고 별도의 정보를 덤으로 줄게.”
장목화가 웃었다.
“공평하네. 근데 우린 알고 싶은 게 2가지 더 있어.”
지티스는 그게 뭐냐고 묻는 대신 눈빛으로 말하라는 뜻을 전했다. 그녀의 남회색 눈동자는 대화를 나눌 때만큼은 빛이 났다.
장목화가 물었다.
“스미스가 이끄는 무근자 상인단 알지?”
“알아. 그 사람들, 지난주에 날 찾아와서 한 가지 사건에 대해서 여러 방면의 정보를 요구했었어.”
갑자기 지티스의 목소리가 좀 낮아졌다. 이는 그녀가 하는 말의 내용과 어느 정도의 대비를 이뤘다.
장목화가 말을 이었다.
“음, 최근 스미스의 무근자 상인단에게 물건 운송을 맡긴 게 누구인지 알고 싶어. 어, 약 열흘 정도 전에 있었던 일이야.”
“좋아.”
지티스는 이 부탁도 받아들였다.
계속해서 장목화의 말이 이어졌다.
“보리 불상 임무의 각종 소식도 알았으면 해. 소문이어도 상관없어. 사냥꾼 길드에 없는 것이기만 하면.”
“최근에 굉장히 많은 유적 사냥꾼이 그 소식을 구했어. 덕분에 수입이 꽤 짭짤해졌지.”
지티스는 드물게도 웃음을 지어 보였다. 웃는 얼굴은 무표정할 때보다 훨씬 예뻐 보였다.
“이렇게 세 가지야.”
장목화가 정리를 하자, 지티스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금은 여전히 기사 은화 5개면 돼. 내일 오전과 오후는 여관 근무 시간이니까 그때 날 찾아와. 기본적인 피드백으로 너희들이 헛돈을 쓴 게 아니라는 걸 알려줄게.”
돌연 백새벽이 끼어들었다.
“왜 사냥꾼 길드를 통하지 않고?”
사냥꾼 길드의 핵심 임무는 담보를 제공하며 상응하는 정보의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한편, 양측의 신뢰를 촉진해주는 것이었다.
지티스는 재차 약간 멍한 표정을 드러내더니 엄숙한 투로 말했다.
“난 내가 제공하는 정보가 사냥꾼 길드의 손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해.”
그녀의 모습과 말투는 평소와 딴판으로 진지해져 있었다.
초조해하는 성건우를 힐긋 보던 장목화는 웃으며 기사 은화 5개를 꺼내 지티스에게 건넸다.
“문제없어. 넌 현지인이니 돈만 먹고 사라질 걱정은 하지 않을게.”
그녀의 웃음에는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뜻이 어려 있었다.
물론, 지티스가 그 뜻을 알아들었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기사 은화 5개를 받아 챙긴 지티스의 눈은 다시 빛을 잃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일이 없다면 난 이만 갈게.”
“좋아.”
장목화는 성건우가 호쾌하고 대범한 모습을 보일 틈도 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