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786
786화. 이게 그 저격수야?
1층으로 내려간 구조팀 다섯 팀원은 마침 짐을 꾸리며 교대할 동료를 기다리는 지티스를 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장목화가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무슨 결과라도 있었어?”
저격수 행방에 관한 조사 결과를 묻는 말이었다.
고개를 든 지티스는 돌연 예와 같은 미스터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응.”
“……결과가 있었다고? 그 저격수의 행방을 찾아냈단 말이야?”
장목화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그녀가 생체 공학 와우를 이식한 이래, 자신의 청력을 의심해본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지티스는 웃음을 거두고 눈썹을 살짝 추켜 올렸다.
“안 믿는 거야?”
“믿어!”
성건우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진심을 표했다.
반면 용여홍과 백새벽은 조용히 피어오르는 의심을 억눌렀다.
어떻게 하루도 안 돼서 저격수의 행방을 알아냈단 말인가!
말이 되지 않았다. 구조팀이 모든 망설임을 뒤로 하고 전력투구한다 한들 몇 시간 안에 그 저격수를 찾아내려면 엄청난 운이 따라줘야 했다. 하루 이틀 안에 무슨 결과를 얻어내기는 힘든 작업이었다.
지티스는 재차 이면지 한 장을 꺼내, 만년필로 뭔가를 써 내려갔다.
몇 초간 종이를 관찰하던 장목화는 지티스가 지금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고 판단했다.
어느새 그 곁으로 다가간 성건우는 목을 죽 빼고 내용을 살폈다.
“진짜 잘 그린다! 그림을 배웠어?”
뜻밖의 물음에 지티스는 잠시 후에야 뚱하게 답했다.
“아니.”
“그럼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거네! 나중에 기회가 생기거든 꼭 배워봐. 네 재능 썩히지 말고.”
성건우가 진심으로 말했다.
그 사이 프런트로 모여든 나머지 팀원들도 지티스가 소묘의 방식으로 그린 한 사람을 보았다.
이내 솔직한 게네바가 성건우의 말에 반박했다.
“그림을 잘 그려봤자 아무 의미가 없어. 그걸로 먹고 살 수는 없으니.”
결국 지티스는 못 참겠다는 듯 고개를 들고 게네바와 성건우를 몇 번 번갈아 가며 보았다. 이런 쓸데없는 문제로 주인과 논쟁을 하는 지능 로봇을 본 적은 없는 모양이었다.
“겐, 잊었어? 퍼스트 시티 대귀족들은 악사와 화가들을 좋아한다고.”
성건우가 논리적으로 대꾸했다.
게네바는 바로 말을 고쳤다.
“내 말은, 화이트 기사단에서는 의미가 없다는 뜻이었어. 여기서는 소박한 것을 숭상하니까.”
성건우가 콧방귀를 뀌었다.
“아이스트의 집을 봐. 대체 어디가 소박하냐?”
둘의 대화가 점점 곁길로 빠지는 가운데, 지티스가 초상을 완성했다.
그림을 받은 장목화는 이면지에 그려진 무릎길이의 코트를 입은 한 남자를 보았다. 직사각형의 나무 상자를 등에 멘 그는 머리를 굉장히 짧게 깎았고 콧대는 기형적으로 높으면서도 그렇게 과장스럽지는 않았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 남자에게 유난히 기억에 남는 특징은 없었다. 말로 설명하려고 하면 또렷하게 묘사하기 힘든 생김새였다.
“머리는 갈색이야. 눈은 약간 노랗고.”
지티스가 덧붙였다.
“이게 그 저격수야?”
용여홍은 못 믿겠다는 듯 반문했다.
지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오른손을 펼쳐 보였다.
“그랜드 기사 금화 2개 줘. 나머지 8개는 이 사람 찾고 확인한 뒤에 줘.”
“계산이 잘못됐잖아. 계약금으로 준 기사 은화 10개는 아직 네 손에 있는데? 그만큼은 깎아줘야지.”
성건우가 지적했다.
순간 말문이 막힌 지티스의 얼굴에 멍한 표정이 떠올랐다.
장목화는 이 상황을 여전히 신기하게 여기면서도 2개뿐인 그랜드 기사 금화를 꺼내 상대에게 건넸다.
뒤이어 그녀가 캐물었다.
“이 저격수가 어느 쪽으로 갔는지 확인해줄 수 있어?”
초상화를 돌려받은 지티스는 재차 고개를 숙이고 그림을 그렸다.
곧 지티스가 만년필을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구조팀의 눈앞에 간략한 지도가 나타났다.
“아마 이런 길로 갔을 거야. 모르가 살던 그 블록으로 우회해 들어갔고.”
장목화는 순간 이런 느낌을 받았다.
‘꼭 그 저격수의 도주 과정을 직접 목격한 것처럼 말하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지티스나 지티스의 어느 중요한 정보 제공자가 대대적인 기억 열람을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답이 나오지 않는 행동이었다.
물론 이와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능력은 기억 열람 하나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었다.
오늘 근무 담당인 지티스는 밖으로 나가지는 못했을 테니, 그 저격수의 행방을 찾아낸 것은 그녀의 합작자일 가능성이 컸다.
모든 능력에는 거리 제한이 있고 불과 철 여관에서 광업 연합회 건물까지의 거리는 거의 1킬로미터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심령의 복도 깊은 곳까지 탐색한 성건우라도 여기 앉아 그 먼 곳까지 영향을 미칠 순 없으니 다른 각성자의 사정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지티스가 신세계 강자나 달지기로부터 은혜를 받은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확실히 그건 능력밖의 일이었다.
“그 사람이 모르가 살던 그 블록으로 우회해서 돌아왔다고? 우리는 이 사람을 마주친 적이 없는데!”
성건우가 아쉽다는 듯 주먹을 불끈 쥐며 탄식했다.
장목화는 다시 지티스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다른 단서는 없어?”
지금까지 또 자신만의 세계에 빠졌던 듯한 지티스는 그 말에 바르르 몸을 떨며 정신을 차렸다.
“없어. 하지만 난 내가 제공한 정보만으로도 그랜드 기사 금화 10개 치의 값은 한다고 봐.”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그게 진짜라면 그렇지.”
이윽고 이 신기하고 대단한 정보상과 작별한 구조팀은 저격수의 초상화를 가지고 홀을 떠나 지프에 올랐다.
* * *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뒷좌석의 용여홍은 불과 철 여관을 돌아보며 경탄을 금치 못했다.
“지티스는 대체 어디서 정보를 얻었을까? 게스트 보루 주민 대부분이 지티스의 정보 제공자이기라도 한 것 같다니까⋯⋯.”
옆에 앉아있던 백새벽이 입술을 오므렸다.
“지티스의 정보 획득 능력은 확실히 내가 본 중에 제일 강해.”
“만약 게스트 보루 주민 대부분이 정말로 지티스의 정보 제공자라면? 예컨대 지티스한테 천안통이 있다면, 수시로 수많은 이들의 눈을 통해 게스트 보루의 각종 사건을 목격하고 실시간으로 대량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어.
그래, 분명 그럴 거야. 지티스는 수백, 수천, 나아가 더 많은 장면을 감시하고 있어서 평소에 멍하니 정신을 빼놓고 있는 거야! 딱 맞아떨어지네!”
성건우는 스스로 떠올린 기이한 발상을 점차 확신했다. 운전 중이 아니었다면 손뼉이라도 쳤을 기세였다. 아마 그가 공중도덕을 중시하지 않았더라면 벌써 경적을 울리며 찬사를 보냈을 터였다.
이내 솔직한 게네바가 일렀다.
“천안통에도 거리 제한은 있어. 불과 철 여관에서 광업 연합회까지의 직선거리는 973미터야. 그리고 지티스는 오늘 근무지를 떠나지 않았지.”
“그럼 지티스의 정보 제공자에게 천안통이 있는 거겠지. 아니다⋯⋯.”
성건우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천안통을 가진 것이 정보 제공자라면 지티스가 평소 집중하지 못하고 수시로 정신을 빼놓고 있는 것이 설명되지 않았다.
장목화가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지금은 그걸 토론할 때가 아니야. 그 저격수에 대해 생각해야지.”
백새벽이 말을 받았다.
“그 사람은 분명 모르 집 근처에 살고 있을 거예요. 낮에는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관찰하면서 문제가 생기면 바로 저격할 수 있게 준비했다면, 저녁에는 어떻게 했을까요? 설마 모르를 창틀 위에서 자게 했을까요? 저희가 확인한 침실 침대는 창가에 붙어있진 않던데요.”
용여홍은 자신의 입장에서 추측을 해보았다.
“저격수가 만약 한 명뿐이면 밤낮 가리지 않고 계속 모르를 감시해야 하는 상황에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진즉 지쳐 나가떨어졌을 거예요. 지금껏 버티지도 못했을걸요. 제 생각에는 모르를 감시하는 제8 연구원 사람은 적어도 둘이거나 그 이상일 것 같아요. 교대로 돌아가면서 일을 맡았겠죠.”
장목화가 칭찬했다.
“훌륭해. 다들 아주 일리 있는 분석을 했네. 지티스의 정보가 없었더라도 우리는 하루 이틀 내로 모르의 아파트와 그 주변 건물들로 범위를 천천히 좁혀나갈 수 있었겠어.”
“손해네요! 그랜드 기사 금화 10개만 괜히 버렸어요!”
성건우가 비통해했다.
하지만 장목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조사 시간을 줄이고 저격수의 초상화를 손에 넣을 수 있다면 그랜드 기사 금화 10개를 아낄 필요는 없지! 음, 모르 집 근처에서 탐문할 때는 최대한 조심해야 해. 도처에 제8 연구원의 끄나풀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건우는 때가 되면 상대랑 곧장 친구가 되는 게 좋겠다.”
“네!”
성건우는 기다리기 힘들다는 듯 힘차게 답했다.
이후 용여홍이 한숨을 한번 뱉었다.
“제8 연구원은 왜 일을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었을까요? 두세 사람을 보내 모르를 감시하게 할 필요까지 있었을까요? 차라리 모르의 기억을 직접 삭제하는 게 더 낫지 않나?”
장목화가 추측했다.
“모르 같은 유용한 도구를 찾기 쉽지 않았을 수도 있지. 때마다 그를 새롭게 포섭하는 것도 성가신 일이었을 거고.
어, 빈번한 기억 삭제가 뭔가 후유증을 남겨서 상대의 지능이나 사유 능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지도 몰라. 게다가 정상적으로는 아이스트 너머까지 조사해내기 불가능한 상황이잖아. 아이스트가 기억을 삭제당하고도 모종의 방식을 통해 위탁자가 모르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을지 누가 알았겠어?
솔직히 제8 연구원이 모르 쪽에 하나의 방화벽을 세워둔 것만 해도 굉장히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조치라고 할 수 있어. 다른 경로로 정보가 새어나갈 것을 걱정한 거겠지?”
* * *
지프는 퇴근 중인 인파를 뚫고 힘겹게 모르가 살던 블록에 도착했다.
이후 초상화를 가지고 차에서 내린 성건우, 장목화는 아파트 주위의 상점을 골라 탐문을 시작했다.
사유 이식 아래 그들은 누구의 의심도 사지 않았고 누구의 경계심도 일으키지 않았다. 상점 상인들은 전부 진지하게 그들의 질문에 답했다.
그렇게 3번째로 방문한 잡화점 중년 부인이 모르가 사는 아파트를 가리키며 이야기했다.
“본 적 있어. 저쪽 건너편에 살아. 며칠에 한 번씩 와서 티슈를 사 가.”
잡화점 주인의 답에, 장목화와 성건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게네바의 눈에서도 붉은빛이 두어 번 번득였다.
“이 사람이 어느 층, 몇 호에 사는지 아세요?”
장목화가 캐물었다.
사유가 이식된 상점 주인은 구조팀의 지나치게 상세한 질문에도 의아해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말하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별 관심을 끌지도 않는 사람이야. 수시로 와서 물건을 사 가지 않았다면 난 그런 사람이 있는지도 몰랐을걸. 나도 그 사람이 저 라인으로 들어가는 것만 알지, 구체적으로 어느 층, 몇 호에 사는지까지는 몰라.”
잡화점 주인이 오른손을 뻗어 맞은편 아파트의 한 입구를 가리켰다. 모르의 집으로 통하는 입구였다.
저격수는 모르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것을 넘어 아예 같은 라인에 살았다. 이는 밤에도 편하게 감시하려 했을 거라는 백새벽의 추측에도 부합했다.
장목화와 성건우는 서로 시선을 주고받은 뒤 잡화점을 떠나 해당 아파트 그 라인 앞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