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792
792화. 거의 꿰뚫어 봤네
지티스의 눈이 커다래지고, 그 안의 남회색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너희는 정말 아무 악의도 없구나. 난 너희가 내 비밀을 지켜준다는 조건으로 빚 탕감이나 정보를 요구할 줄 알았어.”
그 말을 들은 용여홍은 약간 어색하게 웃었다.
뒤이어 성건우가 진지하게 대꾸했다.
“우리는 그런 사람 아니야.”
그는 그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장목화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너한테 네 원칙이 있듯이 우리에게도 우리의 원칙이 있어.”
지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사흘 안에는 아무 문제도 없을 거라는 예언을 받았었거든. 너희들한테 비밀을 들키기는 했지만 그게 나한테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네.”
‘그 불상에 예언 능력도 있어? 우리가 나쁜 마음을 먹었더라면 그것도 발각당했겠네. 그랬다면 건우의 사유 이식도 들어 먹히지 않았을 거고.’
용여홍은 놀라움과 다행스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고상한 품격이 꼭 고상한 자의 묘비명이 되는 것만은 아니었다.
성건우도 놀란 얼굴로 말했다.
“예지 능력도 있어? 넌 이미 천안통, 신경통, 숙명통의 능력을 보였잖아. 그 불상이 가진 능력이 대체 몇 개나 되는 거야?”
일반적으로 한 도구는 제작자의 능력 중 하나를 보유하고 있었고, 해당 기운을 사용할 수 있는 회수는 최대 10번 정도였다.
“아주 많아.”
지티스가 모호하게 답했다.
‘아주 많다? 보리 불상은 최소 4번째 능력을 가지고 있고 지티스가 빈번하게 사용하는 와중에도 3년을 버텼어. 게다가 앞으로도 한 1~2년은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기도 해. 달지기와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겠네! 힘의 특징으로 볼 때 불상에 담긴 기운은 분명 보리에게서 기인했을 거야.’
장목화는 지티스에게 그 불상을 빌려 한동안 연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비교적 민감한 상황이었다. 상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유 이식의 효과가 해제되지 않도록 하려면 참아야 했다. 그런 요구는 한동안 지티스와 서로 충분한 신뢰를 쌓은 후에나 할 수 있을 터였다.
이내 성건우는 느낀 그대로 솔직한 반응을 보였다.
“말도 안 돼!”
“그래, 이게 얼마나 특이한 상황인지 나도 잘 알아. 생전에 각성자였던 프란츠나 그런 사람들을 아주 많이 만나봤던 아이스트의 기억 속에 상식이 충분히 있었거든.”
보리 불상을 막 손에 넣었을 당시만 해도 아는 것이 없었지만 지난 3년간 지티스는 강력한 능력을 갖고 살았다. 돼지라도 진정한 변이 생물로 변하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아이스트가 언급되자 장목화는 뭔가 생각에 잠겨 입을 열었다.
“아이스트의 소원을 줄곧 잊지 않고 있었다니, 역시 나름의 신조를 가지고 있는 사람 답네. 근데 왜 우리한테 최대한 빨리 게스트 보루를 떠나라고 요구한 거야? 왜 우리가 다른 일에 끼어들지 않기를 바란 거지?”
지티스는 벌꿀색 머리카락을 재차 만지작거리며 약간 어색하게 말했다.
“예언 능력으로 너희들 내력이 미스터리하단 걸, 게스트 보루에서 무슨 일인가를 벌이리란 걸 직감했거든. 난 그 일로 내가 보리 불상을 가졌다는 비밀이 폭로될까 걱정스러웠어. 그래서 알려줄 수 있는 건 다 알려주고 팔 수 있는 정보는 다 팔아서 너희가 빨리 임무를 끝내고 떠나길 바란 거야.”
“작은 빨강이의 운명과 숙명을 거의 꿰뚫어 봤네!”
성건우가 손뼉을 짝짝 치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 팀의 특성을 잘 알아챈 거겠지. 보리 불상의 예지력도 상당하네.’
외부인과 함께 있는 자리인 만큼 용여홍도 평소처럼 성건우에게 반박하지 않고 속으로만 빈정거렸다.
지티스가 감정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예언이 이런 방식으로도 실현될 수 있는 줄은 몰랐어. 내 비밀이 폭로됐지만 위험에 봉착하진 않았잖아. 너희가 일으킨 일에 영향받은 건 모르고.
아이스트의 신분으로 너희랑 만났을 때는 능력이 상당히 특이한 너희들을 경계해야 한다는 걸 알았어. 하지만 지티스로서는 너희랑 아무 관계도 없다는 생각에 방심한 거야.”
‘지티스로서라니. 아가씨, 이대로 가다가는 제2의 건우가 되겠어.’
장목화는 이따가 지티스가 받은 부작용에 대해 묻고 몇 마디 주의를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그전까지는 대화가 샛길로 새지 않게 애썼다.
“내가 방금 제안한 거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지티스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너희 그 생물 제제가 어머니 상태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기만 한다면. 이만과 프란츠의 답은 지금 당장이라도 알려줄 수 있어.”
“우리가 제공한 생물 제제가 별 효과를 보이지 않으면 어떡하려고?”
성건우는 오히려 그 답을 얻는 데 급급해하지 않았다.
지티스는 솔직하게 답했다.
“이런 상황에선 너희가 아무것도 주지 않고 비밀을 지켜주겠다는 약속만 해도 너희들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어. 근데 너희는 특수한 생물 제제로 교환하겠다고까지 했잖아. 거짓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성건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난 네가 타심통이라도 쓴 줄 알았지.”
지티스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타심통은 없어.”
“완벽하지는 않네!”
성건우는 실망을 표했다.
지티스는 그를 무시한 채 장목화를 바라보았다.
“정보는 지금 주고 생물 제제가 효과 있다면 금화는 그때 줄게.”
“좋아!”
장목화가 웃었다.
지티스는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너희가 그 일에 대해 물어본 후, 난 바로 이만과 프란츠, 아이스트의 기억을 뒤져서 상응하는 내용을 찾았어.
종합적으로 그 애쉬랜드인 팀이 게스트 보루에 와서 커닝미스에 대한 일을 물어보고 다닌 건 그곳이 구세계 파괴 당시 어떤 타격을 받지도 않고, 무심병 감염 사례도 얼마 보이지 않았다는 게 이상해서였어.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으리라 믿은 거지.”
구조팀이 분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역시 그렇게 추측했었다.
지티스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만과 프란츠가 아는 바에 따르면 그 달지기의 아들은 확실히 이상하리만치 강력한 힘을 보였어. 심지어는 신세계의 광경을 애쉬랜드에 투영하기도 했지. 신세계로 통하는 대문을 장악했다고 주장한 그 사람은 평소 구세계부터 남은 어느 호화 아파트 꼭대기 층에 살았어. 그 애쉬랜드인 팀은 커닝미스로 가서 그 사람을 만나보기로 했고.”
“그 달지기의 아들이 보인 힘에는 어떤 특징이 있었는데?”
신세계의 투영이라는 이야기에 장목화도 마음이 동했다. 보아하니 그 달지기의 아들은 확실히 신세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듯했다. 그가 속한 영역을 바탕으로 그와 관련된 달지기가 누구인지 추측해볼 수 있을 터였다.
“커닝미스 현인 회의의 구성원을 제외한다면 그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어. 이만의 아버지는 일찍이 그 달지기 아들의 영향을 받았었어. 액정 TV를 통해서.”
지티스의 말투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전자파 방해? 심령의 복도 깊은 곳에 진입한 이들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니 신세계 급 강자도 당연히 그렇겠지.’
장목화가 캐물었다.
“당시 달지기의 아들은 어디에 있었는데?”
“커닝미스에.”
지티스의 답은 확신에 차 있었다.
‘커닝미스는 여기서 2~300킬로미터 떨어져 있어.]
장목화가 계속 질문을 이어나갔다.
“음, 다른 건 없어?”
지티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없어. 내일 산드로한테 파괴전의 커닝미스 지도를 한 부 주라고 할게. 달지기 아들이 살던 호화 아파트와 아이스트의 정인이 살던 집을 표시해서.”
“좋아.”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녀는 그 호화 아파트가 커닝미스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보았다.
“더 궁금한 거 있어?”
지티스가 가로등으로 밝혀진 문가를 보며 물었다. 아무래도 개방된 환경에서 보리 불상에 관련된 이야기는 영 불안했다. 그녀도 이 대화를 오래 이어나가고 싶진 않았다.
“없어.”
장목화는 이미 충분히 만족한 상태였다.
그때, 성건우가 물었다.
“네 이상은 뭐야? 보리 불상의 힘이 다 바닥나면, 뭘 할 생각인데?”
지티스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혼란과 확신, 두 감정이 동시에 번져갔다.
“불상의 힘을 다 쓰기 전에 적합한 신형 유전자 개량 약제를 살 돈을 모아 날 강화하기. 그리고 약품과 생물 제제를 마련해 부모님 병을 치료하기. 음, 최소한 부모님 상태가 안정될 만큼. 얼마 지나지 않아 난 각성할 수 있을 거야. 때가 되면 개량된 몸을 가지고 군대에 가입해 종자가 돼야지⋯⋯.”
“잠깐.”
성건우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아직 각성자가 아니야? 그럼 넌 어떻게 불상을 쓰는 거야?”
지티스가 솔직하게 답했다.
“일반인도 불상을 쓸 수 있어. 오랫동안 사용하다 보니까 각성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느낌이 들던데.”
“신기하다!”
성건우는 감탄하는 한편 용여홍과 백새벽을 돌아보았다. 너희들에게도 아직 희망이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장목화가 입을 열기 전, 그가 다시 지티스에게 말했다.
“그다음에는?”
“그다음에는 한 단계씩 진급해야지. 레드 기사, 화이트 기사, 퍼플 기사, 고급 기사, 나아가 그랜드 기사가 돼서 우리 화이트 기사단의 현 상황을 개선하는 데 노력할 거야. 모두가 겸손과 연민이란 기사도를 발휘하도록.”
말을 이으면 이을수록 지티스의 목소리는 단단해졌다.
짝! 짝! 짝!
성건우는 또 한 번 그녀를 위해 손뼉을 쳤다.
지티스도 이미 성건우의 박수 세례에 익숙해져서 덤덤하게 덧붙였다.
“난 여자와 남자가 같다는 걸, 똑같이 진정한 기사가 될 수 있고 똑같이 믿을만한 수호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
장목화가 웃었다.
“아니, 넌 증명할 필요 없어. 굳이 그런 마음을 가지지 않아도 돼. 왜냐하면 사실이 그러니까, 안 그래?”
마지막 질문을 하는 동안 그녀의 시선이 주위를 한 바퀴 훑었다.
성건우, 용여홍, 백새벽, 게네바도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시선을 거둔 장목화는 계속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증명해야 한다는 마음은 네 능력 발휘에 영향을 미치고 불필요한 압박을 줄 거야. 그럼 더 넓게 볼 수 없지. 음, 난 네가 충분히 진정한 기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네가 화이트 기사단의 현 상황을 어느 정도 바꿔놓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
지티스는 알 듯 말 듯 한 그 말에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고마워.”
“그 승려가 게스트 보루에 뭘 하러 왔는지 이야기한 적은 없어?”
장목화가 화제를 전환했다.
지티스는 고개를 저었다.
“없어. 그 사람한테 보리 불상을 받기 전까지 난 줄곧 평범한 승려인 줄 알았어. 그 전에 가끔 여기 와서 한동안 지내던 승려들과 다를 게 전혀 없었거든. 그래서 다른 질문은 안 했어.”
“그 사람 행동에 뭔가 이상한 점이 있거나 하지도 않았고?”
“응, 우리가 접촉한 횟수와 시간 자체가 아주 적어.”
“좋아.”
장목화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내 성건우가 게네바를 힐긋 보고 지티스에게 물었다.
“그 승려가 보리 불상을 줬을 때, 그걸 본 사람이 또 누가 있어? 지난 3년간 네가 불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한 사람은 없어?”
“없어.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난 일찍이 현상금 신세가 됐겠지.”
지티스가 엷게 웃었다.
성건우는 장목화를 향해 손을 펴보였다.
‘보세요, 치안관한테 받은 자료는 아무 소용도 없네요. 괜히 그랜드 기사 금화 하나랑 겐의 배터리만 소모한 거라니까요.’
장목화는 눈빛만으로도 성건우의 생각을 읽고 그를 팩 노려보았다.
조사란! 원래 하나하나 실수해가며 정확한 방향을 찾는 거라는 의미였다.
이후 그녀가 지티스에게 말했다.
“생물 제제는 내일 아침에 줄게.”
“좋아.”
지티스는 이제 그들을 완전히 믿는 듯했다.
구조팀은 지티스에게 작별을 고한 뒤 위층 방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