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810
810화. 새로운 방
구조팀은 위층으로 올라와 잡아둔 방에 들어왔다.
장목화는 전술 배낭을 옆에 내려놓고 1인용 소파에 앉으며 웃었다.
“앞으로 2, 3일은 좀 쉬자. 주요 임무는 에너지 보충이랑 물자 비축이야.”
“땅 위에서 진정한 쉼은 불가하죠. 아, 이건 작은 빨강이 말이에요.”
성건우가 대꾸했다.
“내가 언제 그렇게 생각했어!”
용여홍이 즉각 반박했다.
물론 그는 회사에서처럼 온몸과 마음을 놓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안전지대에 들어온 상황에서까지 그렇게 신경을 쓰진 않았다.
어쨌든 곁에는 아내가 누워있고, 밖에는 믿음직한 동료들이 불침번을 서고 있기 때문이었다.
장목화는 성건우가 무슨 소리를 하기 전에 얼른 흐름을 끊었다.
“늦었다, 뭐 먹을래?”
성건우는 눈을 반짝이며 곧장 메뉴 선택에 집중했다.
* * *
어두운 밤, 성건우는 침대에 누워 심령의 복도에 진입했다.
그가 2월의 달지기 여명을 대표하는 205호 앞에 쪼그려 앉자, 성급한 성건우가 재빨리 분리돼 나와 씩씩거렸다.
“이제 들어가도 되지?”
성실한 성건우까지 떨어져 나왔다.
“그래, 스스로를 속이면 안 되지. 전에 정해둔 두 목표는 다 달성됐어. 제8 연구원의 구체적인 위치를 찾고 커닝미스의 탐색을 마치면 들어가겠다고, 그때는 저 안에서 뭘 맞닥뜨리더라도,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했잖아?”
“맞아, 맞아.”
또 다른 성건우가 동조했다. 언제나 이쪽 편에 서 있던 성건우였다.
음험하고 악랄한 성건우가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 죽고 싶으면 너희들이나 가. 우리까지 끌어들이지 말고!”
“꼭 내가 너를 끌고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처럼 말한다? 너 같은 겁쟁이 녀석은 진즉 떨궈버렸다면 난 벌써 혼자서 이 일을 다 해냈을 거야!”
성급한 성건우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대꾸했다. 어차피 자신에게는 따로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었다.
이내 새롭고 신기한 것을 좋아하는 성건우도 끼어들었다.
“달지기의 방을 탐색하면 어떻게 될까? 뭘 얻을 수 있을까?”
그의 말투에는 강한 기대감이 어려 있었다.
정말 각각의 의견이 분분했다. 더는 한 팀으로 이끌긴 힘든 상황이었다.
이에 냉정하고 이성적인 성건우는 205호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여러 성건우들이 막 환호하려던 찰나, 순간 이성적인 성건우가 홱 돌아서더니 205호 문 앞을 막아섰다. 그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는 아직도 달지기가 왜 인류를 사육하는지, 회사에 어떤 위험이 숨겨져 있는지 몰라. 설마 유용한 육신을 미리 망쳐서 회사 안의 모두를 끝없는 심연 아래로 떨어뜨리고 싶은 거야?”
“그런 걱정을 안은 채 죽고 싶지는 않아.”
눈이 약간 붉게 부어오른 성건우가 그 의견에 동의했다.
“맞아, 맞아.”
동조하기를 좋아하는 성건우는 원래부터 담벼락 위의 풀처럼 바람이 이리로 불면 이리로 흔들리고, 저리로 불면 저리로 흔들렸다.
뒤이어 반기계 승려 제도 선사가 손바닥을 세우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나무아뇩다라삼먁삼보리. 스스로를 먼저 제도하고 남을 전도해야 하며, 스스로를 위해 남을 제도해야 하는 법입니다.”
그가 가까스로 생각해 낸 불가의 잠언을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악을 증오하는 정의의 사자 성건우가 말했다.
“회사 사람들도 구하지 못해서야 어떻게 전 인류를 구원할 수 있겠어?”
뒤이어 가장 밝은 성격의 성건우가 웃으며 성건우들을 바라보았다.
“각자 의견이 다르니 투표를 하자.”
표결 결과 성건우 민주 협의회에서는 6대 4로 일단 달지기가 인류를 사육하는 이유를 파악한 뒤 205호를 탐색하자는 결론이 내려졌다.
신기하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성건우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휴, 우린 왜 여태 엔드이어 시티 각성자의 심령 방 탐색을 못 했을까?”
그랬다면 비교적 간단하게 엔드이어 시티의 구체적인 위치를 파악하고 심지어는 달지기가 인류를 사육하는 그 이유도 파악할 수 있었을지 몰랐다.
“운이 좋지 않았던 거지.”
성실한 성건우가 답했다.
“누군가 우리를 만나기 싫어한 것일 수도 있고.”
음험하고 악랄한 성건우는 냉소를 지었다.
이야기하는 사이, 다시 하나로 합쳐진 성건우들은 심령의 복도 깊은 곳으로 나아갔다. 다른 방에서 신세계로 통하는 대문이나 엔드이어 시티에 관련한 정보를 발견할 수 있을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한참을 걷던 성건우의 눈빛이 살짝 급변했다.
그의 전방으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주홍색 방문에는 503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강소월의 방이었다.
* * *
“안 들어갔다고?”
다음 날 오전, 장목화는 성건우의 얘기를 듣고 대견한 듯 웃었다.
성건우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503호의 위험도는 205호보다 더 높을지도 몰라요.”
탁! 탁! 탁!
이번에는 게네바가 성건우를 위해 손뼉을 쳐주었다.
성건우는 아쉽다는 표정을 드러냈다.
“겐이 심령의 복도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에요. 그럴 수만 있다면 겐한테 503호 탐색을 맡겼을 텐데.”
여태까지 확인된 503호의 위험은 탐색자를 무심병에 걸리게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로봇은 무심병에 걸리지 않았다.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저녁에 다시 토론해보자. 일단은 물자를 구하러 나가자고.”
구조팀에겐 전에 남겨놓은 돈이 조금 있었다.
* * *
아래층으로 내려오자마자, 용여홍은 막 리셉션을 떠나 여관을 빠져나가는 치안관 한 명을 발견했다.
“뭘 묻고 갔어?”
오늘 낮의 리셉션 직원 역시 지티스였다. 성건우는 지극히 단골스러운 자세로 지티스에게 질문부터 던졌다.
지티스는 주위를 한번 둘러본 후, 목소리를 낮췄다.
“이만은 이곳의 기사단 부단장이었어. 이만의 죽음이 그랜드 기사들 주의를 끌었고, 그래서 계속 진정한 사인을 조사 중이야.”
“너를 의심해?”
장목화가 성건우보다 앞서 질문했다.
지티스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여태 분신을 이용해 정당하지 못한 이익을 노리지 않아서 다행이지. 이만과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접점도 없어. 그들은 나에 대해서는 아무 의심도 안 해. 치안관들은 내가 꽤 괜찮은 정보상이라는 걸 알아서 나한테 무슨 단서가 없는지 확인하러 온 거야.”
장목화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인 후, 목소리를 최대한 죽였다.
“앞으로는 어느 곳에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이만과 분신에 관해 이야기하지 마. 주위에 누가 없어도, 우리랑 얘기할 때도.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는 말을 너보다 더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거지만.”
천이통이라는 능력을 가진 건 지티스 혼자만이 아닐 것이었다.
지티스는 약간 변한 표정으로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구조팀이 막 지티스와 작별을 고하고 이제 게스트 보루의 곳곳을 다니며 물자를 수집하러 떠나려는데, 백새벽이 불쑥 입을 열었다.
“엔드이어 시티에 대해 들어본 적 있어? 정보상 일을 하는 3년 동안 엔드이어 시티에 대해 들어본 게 있을 것 같은데?”
지티스가 기억을 한번 더듬었다.
“들어봤어.”
성건우가 눈을 반짝임과 동시에 지티스가 말을 이었다.
“매해 여름, 그들은 차량 행렬을 여기로 보내. 식량과 고기를 석탄과 강철 등의 물건으로 바꿔서 가져가고.”
성건우가 다급하게 캐물었다.
“그럼 엔드이어 시티가 어딨는지 알아?”
지티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기들끼리 얘기할 때도 그건 전혀 언급하지 않아.”
지티스도 천이통으로 엔드이어 시티 차량 행렬을 감청해본 듯했다.
“엄청나게 신중하네.”
장목화가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딱히 놀랄 일은 아니었다. 엔드이어 시티 같은 소형 세력은 퍼스트 시티나 반고 바이오 같은 조직의 도움을 받든, 지리적인 이점으로든 스스로를 잘 보호해야 했다.
엔드이어 시티가 빙원 위, 다른 대형 세력과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해도 구체적 위치가 들통난다면 매우 위험해졌다. 여름이 찾아오는 대로 적잖은 이들이 노리고 들어올 게 뻔했다.
지티스가 구조팀을 보며 말했다.
“엔드이어 시티 사람을 찾고 싶다면 게스트 보루에서 여름까지 기다려.”
“응.”
장목화는 확답을 하는 대신 스리슬쩍 넘어갔다.
그들의 뭉개기 작전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지티스의 제안도 선택지 중 하나가 될 것이었다.
* * *
여관을 나온 성건우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진심 어린 한숨을 토했다.
“오늘의 공기질은 어제보다 367.55퍼센트 좋아졌네.”
“어떻게 계산한 거냐?”
게네바는 정확한 숫자를 제시한 성건우가 뜻밖인 모양이었다.
성건우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너 흉내 낸 거지, 겐! 구체적인 숫자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한 건데? 잘했어? 한 번 더 해볼까?”
지능인 게네바는 한동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장목화는 남몰래 하늘로 시선을 피했다가 분위기 수습에 나섰다.
“날씨 좋네!”
빙원 쪽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이 게스트 보루 상공을 뒤덮은 탁한 공기를 말끔히 밀어내주고 있었다.
“바람이 좀 차네요.”
용여홍은 입고 있던 회색 제복의 옷깃을 여몄다. 여름이 멀지 않았지만, 빙원 근처의 게스트 보루는 여전히 쌀쌀했다.
간단히 말해 햇볕을 쬘 수 있는 곳은 비교적 따뜻하고, 바람이 불어오는 응달은 좀 추운 편이었다.
“맞아.”
백새벽도 목에 두른 스카프를 꽁꽁 싸맸다. 노예 번호도 없고, 마음속 응어리도 풀어진 지금, 그녀의 스카프는 비로소 완벽한 제 역할로 되돌아왔다.
주위를 둘러보던 장목화가 말했다.
“가자. 차 타고 가서 물자 보충해야지.”
* * *
저녁.
배불리 먹고 마신 구조팀은 한데 모여 503호 일로 토론을 시작했다.
성건우를 제외한 나머지 팀원들 의견은 일치했다.
일단은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너한테 아직 무심병 감염을 막을 방법이 없잖아. 강소월의 방을 탐색하는 건 대책이 없는 방법이야. 갔다가 돌아올 수 없게 된다고.”
장목화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모종의 의미에서 보면 503호는 달지기 여명의 꿈을 상징하는 205호보다 더 위험했다. 물론 꿈이 반드시 위험하리란 법도 없고, 그에 따른 위험을 피할 방법이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현재 탐색자를 무심병에 걸리게 하는 203호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도 없는 상황이었다.
성건우가 억울하다는 듯 물었다.
“그럼 언제까지 기다려야 탐색할 수 있을까요? 저와 강소월은 알고 지낸 지 오래됐어요. 이제는 친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렇게 위험하진 않을 거예요. 뭐, 일방적인 친구이긴 하지만.”
장목화가 살짝 눈동자를 위로 굴렸다.
“우리가 파악한 정보로 볼 때, 신세계 강자 정도는 돼야 개인의 힘으로 무심병의 감염에 대항할 수 있어.”
“신세계에 진입하고 난 후에 503호를 어떻게 탐색해요.”
이 방면에서 성건우의 머리는 늘 또렷하게 잘 돌아갔다.
순간, 백새벽이 의문을 제기했다.
“신세계 강자는 심령의 복도에 돌아올 수 없나?”
짧은 침묵이 맴도는가 싶던 그때, 성건우가 손뼉을 쳤다.
“좋은 질문이야.”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말했다.
“우리가 지금 확신할 수 있는 건 심령의 복도에는 달지기들에 대응하는 방들이 존재한다는 거야.”
그 사실에는 구체적인 예시도 따랐다. 여명의 205호, 장생의 102호가 바로 그 예였다.
게네바는 그에 기반한 추측에 나섰다.
“그렇게 보면 신세계 강자의 심령 방은 여전히 남아있는 모양이네. 알 수 없는 건 그들의 심령 방이 신세계에 진입하기 전처럼 안에서 밖으로도 열릴 수 있냐는 거다.”
밖에서 안으로 열리는 건 문제가 없을 터였다. 성건우가 장생의 102호에 진입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질적 탐색만 진행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때, 성건우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손뼉을 치며 웃었다.
“신세계 강자가 자유롭게 심령의 복도에 진입할 수 있고, 적이 내 방 번호를 알고 있다면 정말로 언제든지 공격을 받을 수 있겠는데?”
“걱정하지 마. 네 기원의 바다에는 달지기 기운이 남아있잖아.”
용여홍도 친구가 그런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으리란 걸 알았다.
무엇보다 구조팀은 현재 수종이가 도수종의 유년 시절이자 장생 강림체의 일부라는 사실을 믿고 있었다.
“맞아, 맞아! 그들이 내 방을 방문하기를 기다렸다가 수종이랑 같이 게임으로 맞아줘야지!”
성건우의 눈이 반짝였다. 주의가 다른 곳으로 옮겨진 그는 이미 503호의 탐색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