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814
814화. 달지기는 인류의 의식을 먹고 산다
침묵 속에 시간은 1분 1초 흘렀다.
그렇게 무려 30분이 지났을 즈음, 둘은 인간의 활동 흔적을 발견했다.
정상인의 것인지, 무심자의 것인지까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장목화와 성건우는 흔적을 따라 노선을 틀어 절벽 쪽으로 향했다.
초목이 가득 자라난 이곳엔 자연적으로 형성된 길조차 없었다.
“뱀도 없네.”
성건우는 전방의 풀을 걷어차며 뜬금없는 감상을 밝혔다.
이 팀원에게는 충분히 적응된 지라 장목화도 대충 대꾸만 했다.
“추위에 강한 품종으로 변이되지 않았나 보지⋯⋯.”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녀가 차가운 눈빛으로 총구를 들었다.
“저기 동굴이 있어.”
빽빽한 나무 뒤쪽, 대량의 잡초와 덩굴에 뒤덮인 절벽에 시커먼 동굴이 하나 있었다.
동굴은 상당히 잘 은폐돼 있었다. 인적이 워낙 드문 산 깊은 곳에 자리한 데다 툭 튀어나온 바위에도 가려져 있어 어지간해서는 발견이 힘들었다.
장목화도 이쪽에 단서가 있으리란 확신으로 반복해서 관찰하지 않았더라면 동굴은 전혀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인간 의식은 없어요.”
성건우가 즉시 호응했다.
장목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 특징에 부합하는 생물 전기 신호도 없어.”
이야기 도중, 그녀는 왼손만으로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을 받쳐 들고 자유로운 오른손으로 무장 벨트에 걸린 손전등을 꺼냈다.
장목화는 곧장 동굴로 들어가려 하지는 않았다. 돌진하려는 성건우도 막고, 동굴 입구에서 7~8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서서 안쪽을 한번 들여다보았다.
동굴 안, 자연광으로 밝혀진 곳엔 인간 활동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었다.
장목화는 한 걸음씩 옮겨가 손전등으로 더 깊은 안쪽을 비췄다.
그 순간, 갑자기 그녀가 제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동굴 안 깊은 곳에 석벽에 기대앉은 백골이 있었다.
남루한 검은색 가운을 걸친 백골이었다.
“진구는 아니겠죠?”
성건우가 물었다.
“그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
장목화의 답은 매우 신중했다.
성건우는 곧장 목소리를 높였다.
“너무 비참하게 죽었네요! 우리가 너무 늦었어요!”
장목화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척 명령을 내렸다.
“들어가서 검사해보자.”
진즉부터 그 말을 기다린 성건우는 곧장 동굴 안으로 튀어 들어갔다.
장목화는 느릿하게 그를 뒤따르며 만일의 상황에 대비했다.
“죽은 지 2년은 됐겠네요.”
성건우가 백골 옆에 쪼그려 앉았다.
장목화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그의 말을 계속 경청했다.
“뼈에 금이 가거나 부러진 흔적은 없어요⋯⋯.”
성건우는 발견된 상황을 하나하나 다 알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옆쪽 돌 틈에서 뭔가를 집어 들었다.
“녹음 펜이네요.”
‘녹음 펜⋯⋯.’
장목화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생각이 많아진 탓이었다.
“물건 자체에 숨겨진 각성자의 힘은 없어요. 안에 저장된 내용이 있는지는 지금 확인할 순 없고요.”
성건우는 최선을 다해 검사했다.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돌아가서 겐한테 맡겨보자.”
동굴 안을 한 번 더 뒤졌지만, 이외의 다른 단서는 없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이 사실을 용여홍, 백새벽, 게네바에게 알리며 이쪽으로 오라고 전했다.
* * *
게네바의 검시 결과도 성건우와 거의 비슷했다. 다만 거기서 그는 사망자가 애쉬랜드인이라는 것까지 밝혀냈다.
화이트 기사단 세력 범위 내에서 애쉬랜드인을 만날 확률은 굉장히 낮았다. 그러니 이 산 깊은 곳에서 발견된 애쉬랜드인 시신이 다른 사람의 것일 가능성도 거의 없었다.
구조팀은 이 백골이 지티스의 분신이 당시 맞닥뜨린 그 사람, 엔드이어 시티 전 대장로, 진구란 잠정 결론을 내렸다.
곧 장목화는 성건우에게 녹음 펜을 게네바에게 넘기도록 했다.
“겐, 이따 넌 대열 맨 앞에서 걸으면서 녹음 펜 내용을 들어봐. 나중에 지프에 돌아가면 그 안에 무슨 힘이 숨겨져 있진 않은지 알려줘.”
“문제없지.”
게네바는 좀처럼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구조팀은 그렇게 숲을 떠나 지프를 세워둔 곳으로 향했다.
* * *
게네바는 차에 탑승한 뒤 녹음 펜을 장목화에게 돌려주었다.
“비정상적인 파동은 없었다. 관련 내용은 이미 내 저장 모듈에 복사했고.”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눈에서 붉은빛을 격렬하게 번득였다.
“녹음된 내용은 광인의 외침 같았는데, 너희들 의문을 해결해줄 매우 중요한 정보가 들어있기도 했다.”
용여홍, 백새벽, 성건우가 분분히 등을 곧추세웠다.
장목화는 숨을 들이마시며 게네바를 향해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게네바는 이내 자신이 복사한 내용을 재생했다. 이래야만 절대적인 안전을 보장할 수 있었다.
지직- 지직-
소음 섞인 빈 부분이 빠르게 넘어가고, 거친 남성의 음성이 퍼져나왔다.
“나는 이두형이다. 반드시 기록해둬야 할 것들이 있다. 어떤 달지기도 믿으면 안 된다!”
구조팀원들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던 그때, 남자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그 뒤로는 한동안 끝없을 공백이 이어졌다.
“내용이 더 있어.”
게네바는 성건우가 인내심을 잃기 전, 얼른 정보를 알렸다.
이후 1~2분 정도 지나자 조금 전 그 남자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 나는 이두형이다. 난 아주 무시무시한 것들을 알고 있다⋯⋯.
이 대목에서 그의 목소리가 다시 또 사라졌다. 지직거리는 소음만이 아직 녹음된 내용이 돌아가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장목화는 조용히 옆쪽의 게네바를 돌아보았다.
게네바는 바로 모두를 보며 설명했다.
“내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이두형이라 자칭하는 진구는 녹음하려 할 때마다 뭔가에 방해를 받았어. 지금 들은 내용도 사실은 여러 단락의 녹음으로 이루어진 거다.”
그 후로도 정말 광인의 외침 같지 않은 녹음 몇 단락이 흘렀다.
– 나는 이두형이다. 난 아마 얼마 못 살 거다⋯⋯.
– 나는 이두형이다. 종말은 끝나지 않았다. 구세계 파괴는 시작일 뿐이다!
– 나는 이두형이다. 나는 이두형이 아니다⋯⋯.
용여홍이 게네바에게 빨리 감기라도 해보라고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다시금 짙은 두려움이 어린 거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나는 이두형이다. 내가 본 애쉬랜드는 거대한 목장이다. 거기서 사육되는 것들은 전부 달지기들의 먹이다! 달지기는 인류의 의식을 먹고 산다!
거대한 목장⋯⋯. 달지기들의 먹이⋯⋯. 인류의 의식을 먹고 산다⋯⋯.
말들은 벼락이 되어 구조팀원들 머릿속을 쾅쾅 때렸다.
그들의 표정에도 변화가 일었다. 심지어는 성건우 역시 진지한 표정을 드러낸 채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거의 동시에 그들은 한 가지 사건을 떠올렸다.
추운 환경이 인류의 정신 및 체격에 미치는 영향 실험!
‘체격 좋고 정신이 또렷한 사람의 의식이 더 맛있고 더 영양가 있나?’
순간 장목화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뒤이어 떠오른 한 광경이 있었다.
매일 밤, 불이 꺼지면 엄동설한처럼 추워지는 반고 바이오 지하 빌딩, 그리고 유전자 개량의 보급으로 대부분 체질이 꽤 괜찮은 편인 직원들⋯⋯.
지직- 지직-
구조팀이 계속된 연상을 하는 사이에도 소음은 계속해서 지프를 메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또 약간 거친 남자의 목소리가 시작됐다.
– 나는 이두형이다. 지금 아무 문제도 없다고 생각하지 마라. 달지기들이 애쉬랜드로 돌아오면⋯⋯.
짧은 정적 후, 그는 돌연 극도의 공포가 어린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 진리!
용여홍은 귀가 다 웅웅, 울릴 정도였다.
녹음은 여기서 끝이었다.
‘진리’는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인 듯했다.
“이게 다야.”
게네바는 재생을 마치고 제일 먼저 지프 안의 적막을 깼다.
잠시 후, 용여홍이 애써 웃었다.
“이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는 거잖아.”
“맞아, 맞아.”
성건우가 동조했다.
다음 순간, 성실한 그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의식을 모조리 먹혀버리면 그 자리에서 죽는 거고, 정수만 먹혀버리면 무심자로 변하는 건가?”
용여홍은 그 문제로 토론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건 상처 입은 자들의 아물지 않은 환부를 벌리고, 피로 얼룩진 고통을 직면하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그때, 장목화가 표정을 거두고 성건우의 말을 받았다.
“그렇다면 무심병 바이러스라는 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겠네.”
뒤이어 백새벽이 의문을 표했다.
“그렇다면 신세계 강자는 어떻게 무심병을 전파할 수 있는 걸까요?”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말했다.
“신세계에 진입하면서 이미 인류 의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가할 능력을 얻은 건지도 몰라. 그럼 신세계 강자도 현실과 신세계 사이를 오갈 때 인간 의식을 연료로 써야 하는 건가? 그게 퍼스트 시티에 동란이 일어났을 당시 상당 지역에서 소규모 무심병 폭발이 발생한 진짜 원인인가?”
용여홍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런 뜻밖의 상황을 제외하면 매해 회사에서 나타나는 무심병 환자는 되게 적은 편이잖아요.”
성건우는 즉각 방금 들은 녹음을 되뇌었다.
“나는 이두형이다. 지금 아무 문제도 없다고 생각하지 마라. 달지기들이 애쉬랜드로 돌아오면⋯⋯.”
“그만!”
장목화는 성건우가 그 비명까지 흉내 낼 것을 직감하고 그를 저지했다.
성건우는 아쉬운 듯 바로 입을 다물었다.
이내 백새벽이 모종의 생각에 잠긴 채 중얼거렸다.
“달지기들은 애쉬랜드로 돌아오기 전에는 이렇게 몰래, 조금씩 먹을 수밖에 없는 걸까요? 게다가 모든 달지기가 목장 하나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닐 거예요. 여기서 조금 먹고, 저기서 또 조금 먹는 식으로 야금야금 먹어 치운 인간 의식 총량이 꽤 될 것 같은데.”
장목화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면 신앙이 무심병을 전파하는 상황이 더 잘 설명돼.”
달지기는 신도들의 낭독과 기도를 통해 상응하는 위치를 파악하고 그 주위에 존재하는 무관한 이들의 의식을 먹어 치울 수 있었다.
만약 주위에 무관한 이들이 없는데 극도로 굶주린 상황이라면 자신을 믿는 신도라도 먹는 수밖에 없을 터였다.
이때, 게네바가 팀원들에게 일렀다.
“제4 연구소 깊은 곳에 있던 허약한 달지기가 대량의 실험 대상을 필요로 했던 것과도 맞아떨어져.”
성건우는 주먹 쥔 오른손으로 왼손바닥을 내리쳤다.
“어쩐지! 506호 주인이 달지기가 인간을 먹는 것 같다는 추측을 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네.”
그와는 달리 다른 팀원들의 마음은 전보다 더 무거워졌다.
장목화가 미간을 살짝 구겼다.
“하지만 장생을 믿고 영원한 세월 교파에 가입했던 506호 주인은 어떻게 그 사실을 발견했을까? 진구는 또 왜 갑자기 미치고, 이런 내용을 기록한 걸까? 이건 분명 모든 달지기가 공통적으로 지키려 한 비밀일 텐데.”
성건우는 장목화를 흉내 내며 말했다.
“보아하니 신세계의 갈등과 관련된 듯한데. 적에게 타격을 입힐 수만 있다면 이런 비밀이 밝혀지더라도 그들은 아무 상관도 없던 거예요.”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확실히 우리를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했던 여러 갈래의 힘이 있기는 했지. 근데 우리가 이런 일에서 얼마나 쓸모가 있겠어?”
용여홍은 점점 더 진지해지는 그들을 보고 황급히 입을 열었다.
“제 생각에는 506호 주인 말을 그대로 믿어도, 녹음 몇 단락만 듣고 달지기들한테 뭔가 문제가 있을 거라 확신해서도 안 될 것 같아요. 만약 장생의 음모라면요? 게다가 이런 녹음이야 얼마든 만들어낼 수도 있잖아요.”
“맞아요.”
백새벽이 용여홍의 편을 들어주었다.
장목화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방향이 잡혔으니 앞으로는 당연히 검증을 해봐야겠지.”
그리고 그녀가 용여홍, 백새벽을 향해 웃어 보였다.
“난 너희보다 더 회사에 아무 문제가 없길 바라. 난 한 번만 더 승진하면 관리층에 진입할 수 있어. 아버지도 관리층이고, 오빠도, 새언니도 직원 등급이 낮진 않지.
이런 가정에서 자란 내가 어떻게 그 모든 걸 버리고 새로 시작하기를 원하겠어? 하지만 문제를 마주한 상황에 그걸 피할 순 없어. 병을 감추고 치료를 꺼리려 해선 기회만 잃을 뿐이야.”
위로를 마친 그녀의 표정이 진지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