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815
815화. 우연한 만남
“근데 어떻게 검증하죠? 검증 결과 녹음된 내용이 진실이라면 회사의 문제는 또 어떻게 해결해요?”
단숨에 질문을 쏟아내는 용여홍에게선 다급한 마음이 여실히 느껴졌다.
장목화는 한숨을 내쉬고 싶었지만 팀장이라면 이런 상황에 자신이 없더라도 그런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걸, 억지로라도 희망이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걸 잘 알았다. 그렇게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말했다.
“일단은 차근차근 나아가며 살피는 수밖에 없지. 앞으로 가장 중요한 건 건우가 신세계로 통하는 대문을 찾는 거야. 나도 최대한 빨리 심령의 복도에 진입할 수 있도록 노력할 거고.
건우, 넌 신세계에서 상황을 관찰하며 달지기들이 인간 의식을 먹고 산다는 게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최대한 빨리 그곳 정세를 파악해. 음, 사실 건우가 신세계 강자가 되면 인간 의식을 더 정확하게 인지하게 될 거야.
때가 되면 약속했던 방식에 따라 우리한테 암호를 전달해줘. 신세계 상황에 변화가 생긴다면, 그리고 빅보스에게 회사를 살필 여유가 없다면 우리는 즉시 끌어들일 수 있는 각성자나 중요 인물에게 몰래 연락해야 할 거야.
신세계의 혼란한 상황이 결말을 맞기 전에 지하 빌딩 내 모두를 밖으로 끌어내고 다른 거점을 찾아야겠지. 달지기들이 완전한 모습으로 애쉬랜드에 강림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지금 우리가 걱정하고 조바심 낼 문제는 아니고.”
사실 장목화는 그냥 아무렇게나 지어낸 말로 용여홍과 백새벽을 위로하려 했었다. 하지만 말이 이어짐에 따라 사고는 더 또렷해지고 유창해졌다.
물론 이 방안은 아직 조악하고 거칠었다. 실행 가능성이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장목화는 이미 팀원들에게 예방주사를 놓은 바 있었다. 일단은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며 살피자고.
그리고 적극적으로 대책을 강구하고 방안을 마련하는 동안 그녀는 회사에 대한 엉킨 마음도 적잖게 풀려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문제는 이미 나타났다. 이제부터는 그걸 검증하고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 피하는 건 장목화의 방식이 아니었다.
이렇게 결심한 뒤, 장목화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현재 마주한 트라우마를 통과해 심령의 복도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으리란 직감이 들었다.
얌전히 그 이야기를 듣던 용여홍이 한숨을 토해냈다.
“그러는 수밖에 없겠네요⋯⋯.”
현재는 그보다 더 나은 방법이 없었다. 그는 부디 성건우가 신세계 강자가 된 뒤 무심병이 바이러스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길 바랐다.
“문제없죠!”
성건우는 진즉부터 심령 방을 탐색하는 데 최선을 다해 최대한 빨리 신세계에 들어가고 싶었다는 표정이었다.
“좋아요.”
백새벽도 이의를 표하지 않았다.
게네바 역시 그 방안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장목화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이제 게스트 보루로 돌아가서 며칠 쉬다가 돌아가자.”
반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 *
이동 중, 모든 걱정을 던져 버린 성건우가 잔뜩 신나서 말했다.
“진리는 대체 어떤 존재일까요? 진구는 끝내 그 손에 죽은 것 같은데. 진구를 죽여 놓고도 녹음 펜을 가져가지 않은 이유는 또 뭘까요?”
장목화는 각종 정보를 결합해 짐작해보았다.
“신세계에 갇혀서 현실로 돌아올 수 없는 상태였는지도 모르지. 심령 방을 찾는 등의 모종의 방식으로 진구의 의식을 포착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성건우의 생각은 또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튀었다.
“염호도 신세계에 갇혀 있었죠. 그는 왜 주위 사람들을 무심병에 걸리게 했던 걸까요? 그렇게 한다고 돌아올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보조석의 용여홍이 전의 토론 결과를 바탕으로 추측했다.
“그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량의 연료가 더 필요했나?”
생각에 잠겨 있던 장목화가 말했다.
“신세계에 갇힌 사람도 달지기처럼 인간 의식을 먹어야 하나? 생각해 봐, 염호는 미라 상태로 여태까지 살아있잖아.”
순간 성건우의 눈이 확 밝아졌다.
“달지기들의 미라는 어디 있을까요?”
“늙은 홰나무 아래에 하나 있지.”
백새벽이 일렀다.
* * *
이야기가 이어지는 와중, 지프는 게스트 보루로 돌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차창을 내린 성건우가 비스듬히 떨어진 거리 맞은편을 향해 손을 휘휘 흔들었다. 그는 몹시 상기된 얼굴이었다.
“이두형 선생님!”
이두형?
장목화, 용여홍, 백새벽은 한순간 얼어붙은 호수에 빠진 듯한 느낌이었다.
옆쪽 거리에, 한 사람이 길가를 따라 느릿하게 걷고 있었다.
40대 남자는 신장이 180센티미터가 좀 안 됐고, 시커먼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검은 머리는 길게 길렀고, 입가 주위로도 굉장히 느낌 있어 보이는 수염을 기른 남자는 구조팀이 아는 그 이두형이 맞았다.
하지만 장목화, 용여홍, 백새벽은 옛 친구를 만난 기쁨 같은 건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심지어 등줄기로는 식은땀까지 흐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성건우를 저지하기에는 한발 늦은 상태였다.
곧이어 성건우의 목소리를 들은 이두형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 지프 안에는 죽음 같은 적막이 맴돌았다.
이두형이 이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백새벽은 당장이라도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미친 듯 질주하고 싶었지만, 애써 충동을 참고 이성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지프는 결국 길가에 얌전히 섰다.
성건우는 바로 차에서 내려가 이두형을 기쁘게 반겼다.
장목화 역시 표정을 잘 조정한 뒤 그 뒤를 따랐다.
“게스트 보루에는 무슨 일입니까?”
이두형이 웃으며 물었다.
성건우가 막 답을 하려는데, 장목화가 선수를 쳤다.
“이두형 선생님, 이렇게 공개된 장소에서 하기에는 불편한 이야기도 있으니 저희가 묵는 여관으로 함께 가시는 건 어떨까요?”
마음을 어느 정도 다잡은 그녀는 올 것이 온 이상 뒤로 움츠러드는 대신 차라리 칼을 뽑아 들고 정보를 취할 작정이었다.
이두형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좋지요.”
게스트 보루의 주민 대부분과 달리 그들은 애쉬랜드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 주민이 아닌 유적 사냥꾼들이 어느 언어에 정통할지는 또 모르는 일이었다.
팀장 장목화는 팀원 성건우의 충동적인 행동을 벌하고자 그의 자리를 용여홍에게 내주고 손님 이두형을 조수석에 앉혔다.
이에 성건우는 게네바와 바짝 붙어 앉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둘에게 이 정도는 아무 문제도 아닌 듯했다.
* * *
불과 철 여관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각자 자리를 찾아 앉았다.
먼저 장목화가 이두형을 보며 첫 마디를 뗐다.
“이두형 선생님, 저희는 막 빙원의 커닝미스를 탐색하고 게스트 보루에 물자 보충을 하러 온 참입니다.”
그녀는 이두형의 표정을 관찰했다. 상대는 커닝미스에 대해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저 고개만 살짝 끄덕일 뿐이었다.
뒤이어 성건우가 못 참겠다는 듯 물었다.
“선생님은요? 선생님은 왜 게스트 보루에 오셨습니까?”
이두형이 미소를 지었다.
“제8 연구원 본부를 찾았다고 하잖습니까. 그 이야기를 듣고 문득 기억나는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들었다고? 누구한테? 당신은 어느 대형 세력에 소속된 것도 아니잖아.’
장목화는 이 생각을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그 사이, 성건우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뭔가 기억이 난 겁니까?”
이두형은 가만히 기억을 더듬었다.
“제8 연구원 깊은 곳에 뭔가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는 거요. 아주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한번 가 보고 싶었죠.”
이 틈에 장목화는 짐짓 떠보려는 듯 친절한 말투로 일렀다.
“제8 연구원 본부에는 강자가 아주 많습니다. 그렇게 쉽게 잠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닐 거에요.”
하지만 이두형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웃었다.
“구체적인 상황은 구체적으로 분석해봐야겠죠. 일단 그곳 상황을 보고 나서 어떻게 할지 결정하면 될 일 아닙니까?
만약 제8 연구원이 이미 예비 기지로 전부 철수한 상태라면요? 그렇다면 저는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그들 본부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강자들이 남아있다면 좀 기다리면서 그들을 곤란하게 할 사람이 오기를 기다릴 겁니다. 때가 되면 자연히 기회가 오게 돼 있지요.”
짝! 짝! 짝!
성건우가 손뼉을 쳤다.
“아주 합리적이십니다.”
‘합리적이긴 개뿔. 신세계 강자의 감지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 알아? 제8 연구원에 어떤 구세계 산물이 있을 줄 아느냐고! 아무것도 모르는 가운데 그들 본부 주위에 잠입하는 건 그야말로 바보 같은 짓이야. 하지만 이두형이라면 가능할지도. 엔드이어 시티에는 신세계 강자가 있으니까.’
물론 장목화는 이번에도 속으로만 중얼거릴 뿐, 끼어들지는 않았다.
그녀의 가설은 눈앞의 이두형이 그 이두형이고, 애쉬랜드에 정말 스스로를 이두형이라 칭하는 한 집단이 있다는 걸 전제로 한 이야기였다.
신세계 강자가 있는 엔드이어 시티에서 이두형으로 변한 진구가 도망쳐 나오자 끝내 진리가 직접 나서서 그를 처리했다는 가설이었다.
한편, 용여홍과 백새벽은 침묵을 유지하려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리고 게네바는 이 순간에도 주위 경계를 잊지 않았다.
성건우의 칭찬을 듣고, 이두형이 웃었다.
“오랜 시간 동안 그렇게 해왔으니까요. 뭔가를 찾아 어딘가로 향하려 할 때 상황을 보고 어떻게 할지 결정했죠. 그래서 그런지 별다른 어려움을 겪은 적도 없습니다.”
‘그야 당신은 이두형이니까.’
장목화가 계속 속으로만 답을 이었다.
이내 성건우는 부러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저는 언제쯤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저희도 선생님과 같이 제8 연구원 본부로 가 볼 수 있을까요?”
말을 마친 그는 이것이 동료들과 전혀 상의하지 않은 독단적인 결정임을 떠올린 듯, 얼른 장목화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마음이 동한 장목화는 그를 저지하는 대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두형 선생님 마음에 달린 문제지.”
사실 그녀는 여태 제8 연구원 본부에 가 볼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너무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느니 회사가 화이트 기사단 등의 대형 세력과 협력하려 해결하도록 두는 편이 나았다.
하지만 신비로운 내력과 강력한 실력을 가진 이두형과 함께면 제8 연구원 본부를 탐색하러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구체적인 상황을 확인하고 나서 최후의 결정을 하면 될 것이었다.
이두형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렸다.
“어째 당신들도 제8 연구원에 흥미를 느끼는 모양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건우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두형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좋습니다. 당신들 차를 얻어타면 저도 시간을 아낄 수 있으니까요.”
장목화가 곧장 말을 받았다.
“이두형 선생님, 잠시 저희끼리 얘기 좀 해도 될까요?”
“그러시죠.”
이두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장목화는 곧장 동료들과 함께 불과 철 여관 옥상으로 향했다.
제일 먼저 입을 연 건 용여홍이었다.
“팀장님, 회사로 돌아가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장목화가 답했다.
“음, 근데 각 대형 세력에 앞서 제8 연구원 본부를 수색하는 건 굉장히 매혹적인 선택지야. 어쩌면 더 많고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몰라. 제8 연구원 깊은 곳에 뭐가 숨겨져 있는진 차치하고, 그들의 무르익은 각성 과정만 해도 엄청난 보물이잖아. 너희도 이 기회를 통해 각성자가 될 수 있어.”
일차적으로 달지기가 인간을 사육한다는 것을 확인한 장목화는 회사 고위층에 모든 희망을 걸고 싶진 않았다.
팀장의 말에, 용여홍은 심장이 쿵쿵 뛰었다.
훗날 회사 내부의 강경파와 맞서고 회사 사람들을 지하 빌딩 밖으로 구출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걸 생각하면 분명 실력을 강화할 필요는 있었다.
백새벽도 그렇게 생각했다.
“맞아요, 맞아.”
성건우가 동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