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820
820화. 꿈의 끝
재차 흩어진 세 사람은 이 사무실의 다른 곳들도 수색해보았다.
그렇게 이두형이 자신들과 어느 정도 떨어지자, 장목화는 긴장을 약간 푸고 조금 전 일을 복기해보았다.
‘이 사무실은 제8 연구원 원장이 쓰던 곳이야. 그 원장이 이두형이라 서명했지. 즉, 제8 연구원 미스터리한 원장이 바로 이두형이거나, 엔드이어 시티 대장로 진구처럼 모종의 사건으로 누군가 스스로를 이두형이라 칭하기 시작하면서 제8 연구원의 금기가 되고 신세계 강자들이 언급을 금지한 거야.
또한 진 교수 기억에 해당 기억을 몰라보게 하는 특수한 상태가 부가돼 있어. 이두형 선생이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지.
당시 호움 난임 센터 세미나에 이두형 선생이 참석했던 것 역시 일맥상통해. 제8 연구원 원장이자 북방 회사의 실질적인 통제자가 개인적으로 자기 조직과 다른 연구 조직이 함께 진행한 세미나를 들으려 하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잖아.
음, 제8 연구원은 비밀 기구였으니 이두형 선생은 북방 회사에서 맡은 표면적인 직무가 없었는지도 몰라. 그래서 아무런 직함도 없었던 거야.’
장목화는 생각하면 할수록 이 이두형이 저 이두형인 것 같다고 느꼈다. 두 가능성 중에서도 아무래도 전자일 확률이 더 커 보였다. 호움 난임 센터에서 세미나가 진행된 것이 구세계 파괴전이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도 이두형은 이두형이라 불렸었다.
제8 연구원 원장에게는 분명 특수한 데가 있었을 터였다. 어쩌면 그는 일찍이 부원장, 이 교수 등에 둘러싸여 죽임당하고 육신을 잃었으나 철저한 죽음을 맞이하지는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 후, 애쉬랜드에선 심령의 복도 깊은 곳까지 탐색한 각성자들 가운데 미쳐서 스스로를 이두형이라 칭하기 시작한 이들이 수시로 나타난 것이었다.
‘잠깐, 건우한테 물들지 말자. 멋대로 소설을 쓰면 안 돼.’
장목화는 생각을 가라앉혔다. 일단은 제8 연구원 깊은 곳까지 탐색하고 그곳에 숨겨져 있던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확인한 뒤, 기회를 봐서 이두형을 떠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여기까지 정리한 그녀가 군용 외골격 장치에 탑재된 통신 시스템으로 성건우에게 이야기했다.
“건우야, 이따가 기회를 마련해 줄게. 넌 곧장 심령의 복도에 들어가 205호 꿈속 회의자들의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외우고 그 회의실 다음에도 회의실이 나오는지 확인해봐. 만약 회의실이 아닌 다른 곳이 나오면 뭔가 얻을 수 있을지 계속 탐색해 보고.
음, 이건 한편으로는 이두형 선생이 갑자기 기억을 찾아 정신을 잃는 걸 방지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계속 제8 연구원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뭘 맞닥뜨릴지 모르는 만큼 최대한 강해져야 하기 때문이기도 해.”
성건우는 아무런 이의도 표하지 않았다. 다만 호기심은 그대로 드러냈다.
“기회를 어떻게 마련해주려고요?”
장목화가 웃었다.
“그야 간단하지. 어지간하면 솔직하게 털어놓는 게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야.”
그녀는 다시 책장 앞에 이른 이두형에게로 직행한 후, 웃으며 말했다.
“이두형 선생님, 저는 적당한 장소를 찾아서 한 30분 정도 쉬었다가 마저 안으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왜죠?”
이두형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장목화는 진심 어린 목소리로 설명했다.
“곧 제8 연구원 깊은 곳에 들어가게 될 거잖아요. 건우가 이미 꿈속 회의자들 문제 해결 방안을 파악했으니 이 기회에 그 일을 마무리 짓고 혹시 그 꿈에서 무슨 수확을 얻을 수 있을지 확인해보고 싶어서요.
제8 연구원 깊은 곳에 숨겨진 중요한 비밀은 매우 위험할 겁니다. 그걸 탐색하기 전에 실력을 강화할 기회가 생겼으니 놓치고 싶지 않네요.”
그녀의 말엔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단, 눈앞의 당신 역시 대비해야 할 대상에 속한다는 사실만 언급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두형은 고개를 끄덕이며 농담을 했다.
“알겠습니다. 벼락치기라도 해야죠. 근데 왜 여기서 쉬지 않고요?”
‘당신이 문득 심심해져서 방에 있던 문서를 뒤져볼지도 모르잖아요.’
장목화는 일찍이 준비해둔 이유를 댔다.
“이곳은 제8 연구원 원장 사무실이에요. 그는 굉장히 미스터리한 인물이고 그와 관련된 일은 전부 언급이 금지돼 있죠. 여기 오래 머물렀다간 뜻밖의 일이 벌어질까 걱정됩니다.”
“제가 있는데 뭘 걱정하십니까?”
이두형은 그런 것 따위 상관없다는 듯 대꾸했다.
‘당신 때문에 걱정된다고요!’
장목화는 성건우에게 입을 열 기회도 주지 않으려고 즉각 답을 이었다.
“안정감을 위해서요.”
“알겠습니다.”
이두형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눈치였다.
* * *
사무실 수색을 마친 세 사람은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꽉 닫힌 은백색 양개형 금속 대문이 나타났다.
“여기서 좀 쉬시죠.”
장목화가 곧장 제안했다.
“좋습니다.”
이두형은 벽에 기댈 수 있는 자리를 찾아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는 원장 사무실에서 가지고 나온 책을 꺼냈다.
장목화는 그 책을 힐끗 바라보았다. 군용 외골격 장치의 보조 기능 덕분에 책의 제목을 또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삼현간주(三玄簡注)」
‘애쉬랜드 고대 철학서네.’
시선을 거둔 장목화는 경계에 집중했다.
그리고 성건우는 이두형을 흉내 내듯 가부좌를 틀고는 헬멧에 가려진 양쪽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심령의 복도에 진입했다.
* * *
205호 밖.
성건우는 어느 정도 시간을 들여 연습한 끝에, 장목화가 알려준 해결 방안을 완벽하게 읊는 데 성공했다.
겨우 외운 내용을 잊어버릴까 곧장 방에 진입한 그는 회의실 의자에 인영들이 떠오르는 것을 보자마자 해결 방안을 전달했다.
그가 말을 마치자 잠깐의 정적 후 회의자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아주 훌륭한 생각이군.”
“굉장히 창의적이야.”
이러한 찬사 속에 회의실 갈색 문이 입을 벌렸다.
끼익-
성건우는 그걸 보자마자 무엇도 신경 쓰지 않고 바로 문을 통과했다.
문 너머에 자리한 건, 회의실이 아닌 어둑한 복도였다.
복도 양옆에는 방이 하나도 없었다.
“발전했네!”
성건우가 기뻐했다.
‘최소한 더 이상은 학술 교류를 듣지 않아도 된다고!’
다음 순간, 그는 두 팔을 벌리며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온 듯한 익숙함이 느껴져⋯⋯. 바로 저 앞에서!”
뒤이어 그가 턱을 쓸었다.
“신세계 대문에 가까워진 느낌인가? 내 신세계 대문이 저 앞에 있는 거야? 신발이 다 닳도록 찾아다닐 때는 보이지도 않더니, 이렇게 우연히 찾게 됐다고? 너무 지나치게 공교로운 우연 아닌가?”
성건우는 머뭇거리지 않고 어둑한 복도를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갔다.
반고 바이오 지하 빌딩 구조와는 분명 달랐지만 그럼에도 걸음은 갈수록 빨라졌다. 눈을 감고도 집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익숙한 느낌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성건우가 우뚝 멈춰 섰다. 복도 끝에는 양개형 대문이 하나 나 있었다.
새카만 문은 묵직해 보이면서도 공허해 보였다. 두 가지의 전혀 다른, 모순적인 느낌이 공존했다.
* * *
“신세계 대문을 찾았어요, 여명의 꿈속에 있었어요.”
현실로 돌아온 성건우는 군용 외골격 장치에 탑재된 통신 시스템을 이용해 장목화에게 이야기했다.
장목화는 처음에는 흠칫 놀랐으나 곧 이를 당연하게 여겼다.
205호가 성건우 눈앞으로 옮겨진 것은 한참 전이었다. 그 안에 신세계 대문이 숨겨져 있던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장목화는 성건우가 205호를 택하는 대신 무심병의 위험을 무릅쓰고 503호에 들어갔다 한들 그 안에서도 신세계 대문을 발견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고 의심했다.
그녀는 소리 없이 긴 한숨을 내쉰 뒤 성건우에게 말했다.
“일단 급하게 굴지 말자. 제8 연구원 깊은 곳에 이른 후 그곳 상황을 봐서 그 대문을 열지 말지 결정하자.”
“네.”
성건우는 반대하지 않았다.
그도 자신이 지금 신세계에 진입하면, 그 후에는 업힌 채 제8 연구원 깊은 곳을 탐색할 수밖에 없을 거란 걸 잘 알고 있었다.
* * *
장목화는 아무 말 없이, 미리 말한 30분이 다 지날 때까지 기다렸다.
“이두형 선생님, 시간 다 됐네요. 계속 안으로 들어가실까요?”
돌아선 그녀를 보고, 이두형도 ‘삼현간주’를 덮고 웃었다.
“시간을 굉장히 엄수하시는군요. 그렇게 급하게 굴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워낙 게으른 편이에요. 성격이 급해서 못 기다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헬멧 바이저 속, 장목화가 웃으며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건우가 꿈에서 이미 수확을 거뒀습니다. 덕분에 앞으로 탐색에 어느 정도의 자신감을 갖게 됐어요.”
당연히 어떤 수확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기 어려웠다. 그렇기에 두 사람이 외골격 장치 통신 시스템을 이용해 사적으로 교류한 건 숨길 필요도 없는, 아주 합리적인 일이었다.
“맞아요, 맞아.”
성건우도 뿌듯하다는 듯 동조했다.
이두형은 쥐고 있던 책을 던져버린 뒤 일어나 미소를 지었다.
“그럼 가시죠.”
그의 시선은 곧 단단히 닫힌 은백색 양개형 대문으로 향했다.
군용 외골격 장치를 입은 성건우, 장목화는 각각 문 한 짝씩을 맡았다.
끼긱- 끼긱-
묵직한 소리와 귀를 찌를 듯 날카로운 소음 속에 은백색 대문이 밀렸다.
이때, 성건우가 감탄했다.
“원래 비밀번호가 있었네!”
이 문은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열리는 형식이었다.
“내가 몰랐을 것 같아?”
장목화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지금 여기엔 게네바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 전기 뱀장어형 생체 공학 의수 보조 칩과 전자 전문가 성건우한테만 의지해 제8 연구원 시스템을 돌파하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니 일단 강제로라도 열 수 있는지 확인해보는 것이 나았다.
장목화는 만약 문이 밀리지 않을 경우 함정이 있는지부터 확인하고 레이저 발사기와 전자파 무기 등을 이용해 대문을 아예 파괴할 작정이었다.
군용 외골격 장치와 생체 공학 의수의 힘은 확실히 차원이 달랐다.
물론 장목화는 이 일을 성건우와 상의하진 않았다. 굳이 묻지 않아도 그의 답변이 예상됐던 까닭이었다.
‘차라리 핵폭탄을 쓰죠? 그럼 문도 열고 뒤탈도 없을 텐데.’
그 사이, 이미 해결한 문에 대해선 완전히 잊은 듯한 성건우는 전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 대형 트럭 2대가 나란히 달려도 될 만큼 넓은 길이 하나 있었다. 더불어 콘크리트 바닥에 설치된 레일 2줄이 천장에 달린 조명을 받고 서늘한 빛을 번득였다.
길엔 그것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한 수십 년은 누구도 방문하지 않았을 듯한 적막만 감돌 뿐이었다.
순간 장목화는 마음을 묵직하게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 더 강해지는 걸 느꼈다. 전방에 폭풍우의 원천이 자리해 있기라도 한 것 같았다.
“약간 어둡네.”
성건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을 듣고, 이두형이 웃었다.
“전자파 환경의 문제입니다.”
뒤이어 그는 장목화와 성건우를 지나쳐 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멀리까지 울려 퍼지는 발소리에 죽음 같은 적막이 더 두드러졌다.
장목화와 성건우도 곧 얼른 따라붙어 이 길 끝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