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829
829화. 두 장소
장목화는 군용 외골격 장치에 의지해 무심자 거주지에서 멀리 벗어났다.
이후 그녀는 또 한 번 길을 잃었다.
뭐, 딱히 놀랍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녀는 바로 능숙하게 전봇대 하나를 타고 기어오르더니 꼭대기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총총 뜬 별빛도, 야간 투시 기능도 톡톡한 도움이 됐다.
장목화는 터널 입구로 가는 방향을 빠르게 찾아냈다.
“거리 2개 우회, 갈림길 여러 개, 방향도 여러 번 틀어야 하네⋯⋯.”
돌아가는 길을 살피면 살필수록 장목화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녀는 앞으로도 몇 번이고 계속 길을 잃을 거란 걸 알았다.
하지만 오래도록 병을 앓으면 의사가 된다고 했던가.
빠르게 머리를 굴리던 장목화는 곧 대책을 하나 떠올렸다.
터널까지 직선으로 가는 길이었다.
벽을 만나면 벽을 넘고, 집을 만나면 그 지붕을 타고 오르면 됐다.
그러면 최대한 잘못된 선택을 면할 수 있었다. 거기다 장비의 GPS 기능까지 활용한다면 장목화는 기껏해야 한두 번 길을 잃고 말 것이었다.
방안을 찾은 그녀는 곧장 행동에 나섰다. 전봇대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조심스레 가장 먼저 가로질러야 하는 집으로 향했다.
일단 장목화는 오른손을 뻗어 벽에 얹었다. 벽을 짚고 몸을 훌쩍 날려서 그리 높지 않은 건물 지붕으로 뛰어오를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과 달리 오른손을 얹은 벽에는 아무 힘도 줄 수 없었다. 그건 마치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텅 비어있었다.
이에 이미 무게 중심을 그곳에 뒀던 장목화는 저도 모르게 앞으로 고꾸라지며 벽을 향해 돌진했다.
그녀는 벽을 관통하면서 데굴데굴 굴렀다.
다행히 유전자 개조가 된 몸에 군용 외골격 장치까지 착용한 장목화는 빠르게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녀는 이내 벽을 돌아보았다. 표정에는 충격과 의혹이 가득했다.
‘여긴 현실의 신세계야. 전자파 환경이 엄청 혼란스럽지. 나랑 건우가 본 탑과 건물은 사실 이 도시의 진짜 모습이 아닌 걸까? 여기 모든 게 다 왜곡된 채 거대한 환상을 형성하고 있나? 진실과 거짓이 뒤범벅돼있는 걸까?’
확인을 위해 조금 전 벽 앞으로 다가간 장목화는 오른손을 살짝 뻗었다.
그녀의 오른손은 마치 공기를 통과하듯 회백색으로 칠해진 석벽을 그대로 관통했다.
뒤이어 장목화는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그녀는 벽을 뚫고서 조금 전 넘어졌던 곳으로 돌아갔다.
‘달지기 중에는 환각을 관장하는 깨진 거울이 있지. 현실 신세계에 이런 기이한 부분이 존재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야.’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재차 그 벽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이번엔 매우 느리게 움직이며, 가짜 벽을 통과할 때의 느낌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그녀의 오른손 손바닥은 조용히 벽 표면에 닿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더 이상은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 이상 손을 뻗을 수가 없었다.
벽은 차갑고 단단했다. 허상 같은 느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 * *
직선 주로를 택한 덕에, 장목화는 얼마 지나지 않아 터널로 돌아왔다.
닫힌 대문을 열고 그녀는 능숙하게 성건우 곁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그의 의식과 접촉했다.
전처럼 캄캄한 장면 다음으로, 손을 흔드는 성건우가 나타났다.
“알려줄 게 있어요!”
무거웠던 장목화의 마음도 약간은 편안해졌다.
“잘됐네, 나도. 음, 신세계 규칙이나 비밀과 관련된 말을 할 때는 최대한 암호를 활용해야 해, 알지? 그런 방법을 쓸 수 없을 때는 비유를 들고.”
“신세계 비밀과는 관계없는 얘기에요. 인수영 집에 들어갔었는데⋯⋯.”
성건우는 그의 경험을 자세히 전달했다.
“근데 가치 있는 물건은 못 봤어요, 기이한 기척의 원천도 못 찾았고요.”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입을 열었다.
“인수영 방에 어떤 책들이 있었는지 얘기해봐.”
성건우는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드러냈다.
“기억 안 나는데. 아, 구현을 해볼 테니 알아서 보세요.”
의식을 통한 교류였기에 그는 직접 책장이 있던 방으로 돌아가 그 안의 광경을 보면서 장목화의 눈앞에 직접 구현해줄 수 있었다.
그렇게 방 안을 살피던 장목화가 모종의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
“인수영은 인간 의식 관련 연구에도 상당한 관심이 있던 모양이야⋯⋯.”
“관심이야 저도 있어요. 다만 책들이 너무 전문 서적처럼 보여서 나중에 시간이 나면 다시 연구해봐야겠어요.”
성건우는 그건 전혀 신기하게 여길 부분이 아니라는 듯 대꾸했다.
장목화 역시 그의 말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우리가 전에 수집한 정보들을 보면 인간의 각성과 신령의 금기 구역은 전부 구세계 과학자들이 진행한 의식의 비밀에 관한 연구의 산물인 것 같아.
음, 제8 연구원의 진정한 목표는 각성 방법이 아니라 인간 의식의 수수께끼인지도 몰라. 각성 방법은 그저 부차적으로 얻어진 결과인 거지.
인수영이 북방 회사의 청년 과학자이자 중대 프로젝트 위원회의 위원이었다는 건 확실해. 그 이름은 호움 난임 센터의 유전자 연구 최첨단 분야 세미나에도 있었잖아. 제8 연구원 원장으로 의심되는 이두형 선생과 나란히.
그러니까 인수영은 제8 연구원 핵심 연구자였을 가능성이 커. 난 원래 인수영이 부원장, 찰리, 박사 중 하나로 탑 부근에 살 거라 생각했었어. 근데 핵심 구역과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집을 찾고, 사진을 발견했다니.”
그녀가 ‘이 교수’를 생략한 건 인수영의 성이 인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녀가 별칭을 사용하려 했다면 ‘교수’ 정도로 하고 말지, 굳이 가짜 성까지 붙이진 않았을 것 같았다.
“꼭 그렇다고 할 순 없어요. 어쩌면 이 집은 인수영 집이 아니었을 수도 있어요. 인수영을 짝사랑하던 제8 연구원 다른 연구자 집일지도 모르죠.”
성실한 성건우도 장목화가 했던 추측 전반부는 지적하지 않았다.
장목화는 진지하게 고민한 뒤 입을 열었다.
“그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네.”
성건우는 순간 의기양양해졌다.
“구세계가 파괴됐을 때 죽은 합원 주인은 인수영에 대한 애정과 집착으로 잠들지 못한 영혼이 돼서 신세계의 집을 배회하고 있는 거예요. 제가 들었던 경미한 기척도 그 영혼이 낸 거고요!”
장목화가 반문했다.
“근데 네가 그 흑흑거리는 울음소리, 여자 목소리 같았다며.”
잠시 멈칫한 성건우는 다시 또 당당하게 말했다.
“여자가 여자를 짝사랑할 수도 있잖아요.”
장목화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사이, 생각이 또 다른 곳으로 튄 성건우가 화제를 바꿨다.
“인수영이 정말로 살아있고, 제8 연구원의 신세계 강자 중 한 명이라고 해도 찰리나 박사 둘 중 하나일 것 같아요. 나머지는 배제해도 될 거예요.”
제8 연구원의 다른 신세계 강자들은 다 구세계 파괴 이후에 점차적으로 승급한 이들이었다.
“부원장은 왜 빼?”
장목화가 물었다.
성건우가 당당하게 답했다.
“북방 회사 오크 부총재, 기억 안 나요? 부원장은 그 사람일 거예요. 북방 회사 부총재 겸 중대 프로젝트 위원회 부주임.”
그리고 북방 회사와 제8 연구원의 관계는 이미 자명했다.
“음…….”
장목화는 이제 이 대화를 마무리했다. 더 이상 다른 단서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덧붙여 그녀는 정신력의 소모를 고려해 성건우에게 말했다.
“날 위해서 좀 가줬으면 하는 곳이 있어.”
“어디요?”
성건우는 장목화의 부탁이 아닌, 본인이 가고 싶은 양 적극적이었다.
장목화는 길치긴 해도 기억력은 상당히 좋았다. 거기다 보조 칩과 군용 외골격 장치 시스템 도움도 받을 수 있어서, 오늘 밤 탐색하고 관찰한 일부 거리와 건물들을 빠르게 구현해냈다.
물론 일부 기억엔 혼란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그녀는 적잖게 길을 잃었던 데다가 아직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한 길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보조 칩과 군용 외골격 장치는 해당 내용을 완벽히 기록했고, 심지어 그녀가 높은 곳에 올라가서 찍은 야간 사진까지 잘 보존돼 있었다.
장목화가 그중 한 곳을 가리켰다.
“신세계에서 여기 대응하는 곳으로 가서 어떤 건물이 있는지, 그 안에 이상은 없는지 확인해봐. 내가 아까 이 건물 벽을 짚고 지붕으로 뛰어오르려고 했는데 벽에 그대로 관통됐었거든.”
장목화는 겪은 일을 간결하게 들려주었다. 그 건물이 끝내 실물로 바뀌었다는 내용까지 다 포함된 이야기였다.
눈을 반짝이며 듣던 성건우는 직접 그 상황을 겪지 못한 걸 아쉬워했다.
“알겠어요, 이따가 한번 가볼게요.”
그의 답은 시원시원했다.
뒤이어 장목화는 또 다른 장소를 가리켰다.
“여기는 불이 밝혀진 곳 중 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야. 여기 대응하는 장소도 가서 누가 사는지, 혹은 어떤 건물이 있는지 봐봐.”
성건우는 다시 또 시원하게 응하며, 두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를 기억에 새겼다. 거기다 신세계의 구조와 대조해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가 이 작업을 마치자 장목화도 교류를 끝냈다.
* * *
성건우는 곧장 두 책장 앞으로 다가가 인간 의식과 관련한 모든 서적을 꺼낸 뒤 그것을 빠르게 한 번 살펴보았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지는 않았다. 혹시 끼어있는 쪽지는 없는지, 책장 여백에 적힌 것은 없는지를 집중적으로 확인했다.
성건우는 이 일에 거의 30분을 들였지만 발견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에 다른 방으로 돌아선 그는 더 자세한 조사를 시작했다.
쓸데없는 짓일 가능성이 컸지만 성건우는 때로는 놀랄 만큼 인내심이 강하고, 또 때로는 놀랄 만큼 변덕스러웠다.
끝내 아무런 소득 없이 합원을 떠난 그는 방향을 판별한 뒤 장목화가 지시한 첫 번째 장소로 향했다.
성건우는 길치 장목화가 아니었다. 그는 비교적 많은 불빛이 있는 거리들을 우회해 상응하는 위치에 도착했다.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눈앞에 나타난 건 작은 광장이었다. 광장에는 우아한 형태의 돌기둥들과 특징이 또렷한 조각상들이 세워져 있었다.
구세계 선현들을 모델로 한 조각상 중엔 애쉬랜드인도, 레드리버인도 있었다. 교과서에서도, 콘텐츠 등에서도 본 인물들이라 성건우도 꽤 익숙했다.
이내 성건우는 조각상과 돌기둥 사이를 몇 번이나 오가다가, 손을 뻗어 표면에 직접 얹어보기도 했다. 결국 그가 실망한 듯 중얼거렸다.
“이상한 건 없는데⋯⋯.”
이에 음험하고 악랄한 성건우가 코웃음을 쳤다.
“신세계의 비밀을 그렇게 찾기 쉬웠다면 누가 벌써 찾았겠지.”
“맞아, 맞아.”
성건우가 동조했다.
성건우들은 이곳 상황을 기억해둔 뒤, 장목화가 말한 두 번째 장소로 발길을 돌렸다. 그곳은 현실 신세계에서 빛을 밝힌 곳 중 탑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 * *
전처럼 성건우는 불빛이 밝혀진 곳을 최대한 피하며 어둠 속을 누볐다. 혹여나 누군가와 마주쳐서 조사 속도가 느려질까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성건우는 마침내 그 거리 어귀에 이르렀다.
이곳엔 남회색 4층 건물이 한 채 있었다.
전체적으로 굉장히 고전적인 느낌이었다.
건물 꼭대기 층에는 밝은 형광등 하나가 켜져 있었는데, 창문에 비친 사람의 그림자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여기도 불이 들어와 있네⋯⋯.”
성건우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자 성급한 성건우가 불만을 표했다.
“왜 바로 가지 않고?”
그는 지금 합원에서의 일 때문에 성건우들에게 제압된 상태였다.
음험하고 악랄한 성건우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저 안에 있는 게 제이콥처럼 우호적인 사람일지, 배터리를 찾는 악마일지 어떻게 알아? 일단 좀 더 관찰한 다음에 결정하자고.”
냉정하고 이성적인 성건우는 턱을 긁적이며 말했다.
“방을 하나 찾아보자. 목적지의 입구를 확인할 수는 있어야겠지만 지나치게 가까우면 안 돼. 들킬 수도 있으니까. 그 후에 방문객들을 관찰하면서 주인의 신분을 확인하는 거야.”
감정을 중시하는 성건우가 의문을 표했다.
“어떻게 확인해? 우리가 그 방문객들을 꼭 안다는 보장도 없는데.”
음험하고 악랄한 성건우가 낮게 웃었다.
“일단 방문객이 저곳을 떠날 때 혼자인지 아닌지 봐야지. 혼자라면 곧장 따라붙어서 친구가 된 후에 주인의 신분을 알아보는 거야.”
“하지만 어떻게 들키지 않고 따라붙어?”
성실한 성건우가 머리 위에서 환하게 빛나는 가로등을 가리켰다.
성건우들은 동시에 침묵에 빠졌다.
결국 먼저 정적을 깬 건 또 성급한 성건우였다. 그가 단호하게 결정했다.
“일단 관찰부터 해보자!”
지형을 관찰하던 성건우들은 곧 어둠에 잠긴 고층 건물 6층으로 향했다.
성건우가 들어가자, 대응하는 방의 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그는 으슥한 곳에 숨어 유리창 너머의 비스듬히 떨어진 목적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의식을 숨기려고 해봤지만, 소용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