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848
848화. 구조팀의 진정한 사명
성건우가 미궁의 규칙을 파악해보려던 그때, 측전방의 어느 방 안에서 경미한 기척이 느껴졌다.
뒤이어 그 방의 흰색 문이 알아서 열렸다.
성건우는 호기심과 경계심을 동시에 안은 채, 반대편 벽으로 다가가 그 방 안의 상황을 들여다보려 했다.
그 순간, 열린 방 안에서 굉장히 맑고 깨끗한 남자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현재 상황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싶지 않나?
들어와, 내가 알려주지.”
상대는 레드리버어를 쓰고 있었다.
“나를 속이려는 게 아닌지 어떻게 알지?”
성건우가 경계심을 드높였다.
그사이 이미 이동을 마친 그는 열린 문을 통해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시야에 화려한 셔츠를 입은 남자의 인영이 비쳤다.
다시 목소리가 대꾸했다.
“널 속일 생각이었다면 이런 수고 따위 할 필요도 없었지.”
“많이 들어본 말인데⋯⋯.”
작게 중얼거리던 성건우가 외쳤다.
“증거를 대!”
방 안의 존재는 침묵했다.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답은 몇 초 후에야 돌아왔다.
“너한테 답을 줄 사람이 나밖에 없어. 너한테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그러니까 그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 내가 어떻게 알아?”
성건우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성급한 성건우의 인솔 아래 그 방 쪽으로 다가갔다. 동시에 그가 재차 강조했다.
“절대 나를 속이지 않겠다고 직접 말해.”
그 말에는 사유 이식의 힘이 담겨 있었다.
처음부터 성건우는 사유 이식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최종적으로 효과를 발휘할지 어떨지는 그도 알 수 없었다. 앞서 만난 윈스트 갈랜드와 강소월은 모종의 방식으로 그의 영향을 무시했었다.
성건우는 문 앞에 이르고 나서야 말을 건 이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했다.
금발을 3대 7로 넘긴 청년이었다. 외모도 중상 정도는 되었다.
푹신한 등받이 의자에 앉은 그는 화려한 셔츠에 통이 넓은 비치 팬츠를 입고 있었다. 머리에는 선글라스까지 얹어놓은 것을 보니 꼭 휴가라도 온 것 같았다. 전체적으로 보면 살짝 거만함이 느껴졌다.
성건우는 더는 상대가 거짓말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고 있었지만 청년은 여전히 그의 걱정을 달래주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속이는 게 이득이면 넌 앞으로의 일들을 감당할 필요도 없었을 거야.”
“왜?”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성건우가 되물었다.
청년은 전보다 약간 낮아진 목소리로 답했다.
“조금 있으면 너도 알게 돼.”
“오오. 이름이?”
성건우는 그제야 예의 바르게 물었다.
청년이 웃었다.
“그래, 우리는 만난 지 얼마 안 됐지. 난 진리야.”
성건우는 화들짝 놀랐다.
“네가 진리라고? 전에 말하는 걸 들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인데!”
진리는 이런 자질구레한 질문에도 빼지 않고 답해주었다.
“그건 나한테 전에 일어난 문제 때문에 탑 밖에서 얘기할 때는 모종의 영향을 받아서 그래. 그런 느낌이 준달지기 신분에 더 부합하기도 하고.”
“두 번째 이유가 더 마음에 든다.”
성건우가 손뼉을 쳤다.
뒤이어 그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준달지기는 뭐야?”
진리의 표정이 약간 차가워졌다.
“준달지기는 곧 달지기가 될 존재야.”
성건우는 구조팀이 했던 추측을 떠올렸다.
“말인을 대체하고 싶어?”
진리가 피식 비웃었다.
“그 겁쟁이를 대체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야. 게다가 그는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는 쪽에 서 있기도 하고. 하하, 이제는 너한테 알려줄 수 있어.
말인의 대가는 ‘나약’이야. 그는 지금 구제할 도리가 없는 겁쟁이가 돼있지. 달지기가 아닌 너라도 조금만 세게 나가면 말인도 굴복하려 할걸.”
성건우가 기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렇구나. 근데 넌 왜 나를 도우려 하는 거야?”
진리가 답했다.
“자유를, 그리고 애쉬랜드의 미래를 위해서.”
“그게 무슨 말이야?”
진리가 웃었다.
“대부분의 달지기는 더 이상 지금의 상태가 유지되지 않기를 원해. 다 장생이 정한 그 게임 규칙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
그리고 애쉬랜드의 사명은 이미 우리에게 충분히 부합하는 육신을 준비해뒀어. 그러니 우리는 더는 인간 의식을 먹이로 삼지 않아도 돼. 때맞춰 몸만 바꾸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거야.
또한 우리는 각성자의 행위를 구속해 애쉬랜드 인간들이 무심병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할 수도 있고.”
성건우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빅보스가 현재 상황을 바꾸려는 쪽이라고? 우리는 그분이 선택한 선택받은 자이자 행운의 사람들인 거야?”
진리는 받은 질문에 대해서는 무조건 답을 해줘야 한다는 강박이라도 있는 듯 다시 한번 웃으며 말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 많은 구조팀 중에서 성공을 거둔 건 오직 너희들뿐이니까.”
“성공이라면, 현실 신세계를 찾아낸 거?”
성건우가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물었다.
진리는 고개를 저었다.
“사명이 왜 구세계를 파괴한 진정한 원인과 무심병의 본질을 몰랐겠어? 왜 현실 신세계가 어디 있는지 몰랐겠어?
그녀가 구조팀을 하나하나 파견한 건 그저 너희가 그 과정 중에 애쉬랜드 곳곳에 흩어진 장생의 인격과 접촉해 그들 중 하나와 친구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야. 장생의 인격은 늘 구세계와 관련된 일들에 둘러싸여 있으니까.
하지만 다른 구조팀들은 각양각색의 원인으로 모조리 실패하고 말았지.”
“그렇구나⋯⋯. 난 줄곧 우리 팀에 행운아가 있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저 확률의 산물이었을 뿐이네.”
성건우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실망하기보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그가 진리의 호응은 기다리지도 않았다는 듯 또 물었다.
“대부분의 달지기가 현재 상황이 바뀌기를 바란다면 왜 우리가 장생의 인격 중 하나랑 친구가 돼야 했던 거야?
알겠다, 장생이 현상유지파의 큰형님인 거구나! 하지만 너희 쪽이 다수라면 직접 해결할 수 있는 거 아냐?”
성건우는 말을 잇던 도중 모종의 가능성을 떠올린 듯 대경실색했다.
“설마 그 다수의 달지기가 다 힘을 합친다 해도 장생의 적수는 못 되는 거야? 그자를 지지하는 쪽은 소수파잖아!”
화려한 셔츠에 비치 팬츠를 입은 진리가 소리 내 웃었다.
“그렇게 떼로 몰려드는 것도 방법이긴 하지. 근데 그 지경이 되면 신세계는 완전히 찢어질 거고 애쉬랜드의 인류는 다시 치명적인 재난을 겪게 돼.
가장 간단한 이유는 장생은 한 해를 대표하는 달지기이자 가장 특수하고 가장 강력한 달지기라는 거야. 게다가 그에게는 여러 지지자도 있어.
우리가 정말 공개적으로 전력을 다해 싸운다면 당연히 우리의 최종 승리로 끝나기야 하겠지. 그러나 목숨 걸고 맞서는 과정에, 각각의 달지기는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려고 그들에 속한 인간 의식을 미친 듯 섭취해야 할 거야.
달지기 대부분은 인자하고 연민할 줄 알아. 자신에게 의지하는 인류 집단을 과하게 해치지 않길, 현상을 바꾸는 데 큰 대가를 치르지 않길 바라.
사명도 마찬가지야.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반고 바이오의 직원을 희생시키지 않았을 거라고.
우리가 이곳을 떠나 부합하는 육체를 갖게 되면 더는 굶주림을 달래기 위해 일부 인류를 통제하지 않아도 돼. 그럼 인류도 해방과 자유를 얻겠지.”
짝! 짝! 짝!
언제라도 성건우의 손뼉은 좀처럼 늦는 법이 없었다.
“장생의 특정 인격과 우정을 쌓는 게 이후의 과정에 도움이 돼?”
그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진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가 내가 너한테 길을 알려줄 거야. 그 길을 따라 죽 가다 보면 선홍색 문이 하나 나타날 텐데 그 문 뒤에 장생의 모든 인격이 숨어있어.
문에 이른 뒤 내가 방금 했던 말을 그대로 한번 반복해. 그러면 현상을 바꾸기를 원하는 인격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거야.
너도 알겠지만 장생에서 분열된 수많은 독립 인격에는 각자의 입장과 판단력이 있어. 이게 바로 우리의 기회지. 일부 장생에 우리 다수파의 힘이 합쳐지면 문제는 금방 해결돼.”
성건우의 얼굴에는 이해가 잘 안 된다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 과정에서 나와 수종 아니, 장생의 특정 인격 사이의 우정은 아무런 작용도 하지 않잖아. 그럼 빅보스가 그렇게나 많은 구조팀을 파견한 것도 의미가 없는 거 아냐?”
진리는 고개를 저으며 반박했다.
“무척이나 의미 있지. 너와 장생의 특정 인격이 우정을 쌓지 않았더라면 넌 그 선홍색 문을 볼 수조차 없어. 설령 봤더라도 열 수도 없을 거고, 열더라도 장생의 먹이나 되겠지.
간단히 말해서 장생의 그 인격이 너를 비호해 주리라는 뜻이야.”
성건우가 주먹 쥔 오른손으로 왼손바닥을 쳤다.
“알았다! 어떤 사람 집에 방문해 도움을 청하는 거랑 똑같은 상황이네. 만약 사전에 그 집의 아이와 좋은 관계를 맺어 게임 친구가 됐다면 그 애의 집 주소를 알아내기도, 집에 방문할 구실을 마련하기도 편했을 거고 그 집에서 내 도움 요청에 응할 가능성도 커질 테니까.”
“맞아.”
진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성건우는 곧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 집 애를 데리고 허구한 날 게임만 하면 그 애 아버지한테 두들겨 맞지 않을까?”
“⋯⋯.”
진리는 말문이 다 막히는지 잠깐의 침묵 끝에 대꾸했다.
“그건 그냥 비유일 뿐이잖아. 앞으로 네가 할 일에 그런 문제는 없어.”
성건우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럼 네가 아까 나를 속일 수 없다고 한 이유는 뭐야? 난 이미 장생의 특정 인격과 친구가 됐으니 나한테 직접 최면을 걸거나 내 기억을 조작해서 너를 완전히 믿게 하고 네 말을 있는 그대로 장생들에게 전하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진리가 웃었다.
“장생을 우습게 볼 수는 없잖아. 그가 설마 네가 통제당하는 중인지 아닌지, 하는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조차 못 알아차리겠어?
내가 너를 통해 찾은 네 친구한테 이치와 인정으로 설득하는 것과 총으로 머리를 겨눈 채 응답을 요구하는 건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잖아.”
성건우는 그러한 광경을 상상해보며 대꾸했다.
“그렇지. 후자의 경우라면 난 내 친구를 구해낼 생각에만 빠져서 총으로 그 협박범 머리를 날려버렸을 거야.”
잠시 말이 없던 진리는 몇 초 후에야 입을 열었다.
“그건 네게 그럴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지. 가봐, 우리의 진심과 호의를 그대로 담아 장생의 그 인격을 설득해야지.”
그의 목소리는 전보다 약간 더 낮아져 있었다.
하지만 성건우는 꼼짝하지 않았다. 아직 의문이 남아있어서였다.
“달지기들을 애쉬랜드에 들이는 게 정말 좋은 일일까?”
진리는 받은 질문에 대해서는 기필코 답했다.
“나한테 묻는 거야? 그에 대한 내 답은 당연히 좋은 일이라는 거지.”
“어째서 좋은 일인데? 난 네가 말한다고 곧이곧대로 믿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날 설득해 봐.”
감정을 중시하는 성건우가 진지하게 되물었다.
소파 위의 진리가 자세를 바꿔 앉았다.
“내가 방금 말했잖아. 이곳을 떠나 적절한 육신을 갖게 되면 우린 더 이상 인간을 먹이로 삼을 필요가 없어진다고. 자급자족이 가능하다니까?
동시에 우리 역시 물자가 부족한 데다가 어떤 것도 보장할 수 없는 황폐한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그렇기에 반드시 각성자를 제압해서 그들이 인류 사회에 제대로 녹아든 채 각자의 특장점을 발휘하도록 해야만 해.”
성건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인류는 결국 너희들 명령에 따라야 하잖아.”
진리가 웃었다.
“구세계 인류에게도 황제, 대통령, 기업 총수 등 통치자가 있었어. 덕분에 상응하는 질서를 유지하고 평안히 살면서 즐겁게 일하고, 문명의 발전도 이뤄갈 수 있던 거 아니었겠어?
그 황제, 대통령, 집정관이 달지기로 바뀐 상황일 뿐인데 그걸 못 받아들이겠다는 거야?
게다가 달지기들의 마음이 다 같은 것도 아니야. 각자 생각이 다양하지.
상황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나면 권력 분립과 서로를 제약하는 균형이 생길 수밖에 없어. 특정 존재가 일반적인 규범을 벗어나는 일 같은 건 절대 벌어질 리 없다고.”
성건우는 일단 긍정부터 한 뒤 중얼거렸다.
“일리 있는 이야기인데, 열몇 마리 승냥이와 이리가 양 떼한테 ‘무서워하지 마, 우리는 권력 분립과 서로에 대한 제약으로 너희들의 안전과 자유를 보장해 줄 거야. 우리 함께 노력해서 아름다운 신세계를 만들어보자.’라고 말하는 이 상황 자체가 좀 이상하게 느껴지는데.”
진리가 느릿하게 한숨을 토해냈다.
“그렇게 비유하면 안 되지. 달지기는 대부분 인자하고 인류를 불쌍히 여겨. 상응하는 육신을 갖고 나면 더는 인류의 의식을 갈구하지도 않을 거고.
그보다는 오히려 인류가 창조해나갈 운명을 더 좋아해. 너희들한테 전혀 위험하지 않다니까.”
성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른 각성자는? 정말로 그들을 통제할 수 있어? 그들은 분명 계단을 올라 ‘신령의 금기 구역’에 진입하고 새로운 달지기가 되려 할 거야. 또한 한 달지기의 탄생은 거대한 혼란을 야기할 거고, 거대한 혼란은 무시무시한 재난을 초래하겠지.”
진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점은 안심해도 돼. 달지기는 신령이고 그 자리는 13개뿐이니까. 나 같은 존재도 준달지기에 불과한데 신세계에 이르러 그 서열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다가 충분한 달지기의 지지를 받아야만 말인이라는 그 겁쟁이를 대체할 기회를 얻을 수 있어.
미래에 더 이상 새로운 달지기는 나타나지 않을 거야. 또한 나 정도 위치에서도 신세계급 이하의 각성자는 충분히 제압할 수 있고.”
성건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안심이야.”